“폐쇄적인 사랑 vs. 파생적인 사랑”
(12. 26. 2021.)
요한복음 21:15-16
사랑은 파생적인 결과를 낳는다. 사랑하면 사랑할수록, 그 대상만 사랑한다면, 무조건 잘못된 사랑이다. 청소년기의 사랑을 보라. 서로 둘만 좋아서 놀다가 끝난다. 폐쇄적이다. 파생적인 것이 없다. 하지만 결혼을 해보라. 부모 집을 떠났는데, 오히려 부모를 더 챙긴다. 매일 부부가 같이 사는데, 오히려 자녀를 더 챙긴다. 상대의 좋은 점이 아니라,상대 인생의 짐과 고통까지도 짊어진다. 사랑하면 사랑할수록, 파생적인 것이 나온다. 하나님이 디자인하신 사랑이다.
예수님의 사랑은 파생적인 사랑이다. 예수님이 베드로에게 사랑을 묻는다.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요한복음 21:15) 사랑한다고 대답했더니, 예수님이 말씀하신다. “내 어린 양을 먹이라”(15) 나를 사랑한다면, 나랑 평생 같이 다니자고 하지 않으셨다. 양떼를 사랑하라고 하신다. 도식화 하면, 예수님 사랑 = 양 사랑이었다. 예수님을 정말로 사랑하는 사람은, 절대 예수님을 사랑하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는 말이다. 양을 사랑하기 시작하는 것, 그것이 파생적인 사랑이다.
교회를 담임하다 보면, 실제로 목사를 좋아해주는 사람이 있다. 하지만 난 솔직히 그런 사람을 별로 믿지 않는다. 목사’만’ 좋아하기 때문이다. 끝까지 목사의 특별한 관심만 원한다. 교인들에겐 무관심이다. 교회 사역은 해본 적도 없다. 폐쇄적인 사랑이다. 파생적인 것이 없다. 내가 가장 존경하는 사람이 있다. 목사와는 별로 연락도 안하는데, 알아서 교회와 성도를 챙기는 사람이다. 파생적인 사랑이 진짜다.
내 사랑이 파생적인 결과를 낳는지 점검하라. 나의 일을 사랑하는가? 일을 사랑하기에, 팀 전체가 같이 살아나고 있는지 돌아보라. 여자친구를 사랑하는가? 사랑할수록 더 많은 사람들의 어려움을 돌보게 되는지 확인하라. 돈을 사랑하는가? 주변 사람들이 당신 돈 버는 걸 좋아하고 있는지 함께 확인해보라.
예수님은 어떻게 사랑하셨을까? 간단하다. 예수님은, 우리를 사랑하신 방식으로, 하나님을 사랑하셨다. 이해되는가? 나는 이미 예수님의 파생적인 사랑을 누리고 있다. 당연히 나도 그렇게 살아야 한다. 우리를 사랑하시다가, 죽으셨지만 부활하셨다. 나도 파생적인 사랑하다가 많이 힘들 것이다. 하지만 부활도 나의 것이다. 파생적인 사랑이 성도가 배워야 할 사랑이다.
[1] 내 인생에 가장 사랑했던 대상들을 나열해봅시다. 다른 것을 배제하고 사랑의 대상에만 몰입했던 경험과, 사랑할수록 파생적으로 넓어졌던 경험을 비교하여 나누어봅시다.
[2] 요한복음 21장 15절을 읽어봅시다.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무엇을 물어보십니까? 베드로의 대답에 예수님은 사랑의 방식을 어떻게 가르쳐주셨습니까?
[3-5] 내가 최근에 집중하고 사랑하는 것들을 나누어봅시다. 폐쇄적인 사랑입니까, 파생적인 사랑입니까? 최근의 내 삶의 패턴이 예수님이 가르쳐 주시는 사랑의 방식이 맞는지 점검해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