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어들지 않는 기쁨”
(10. 25. 2026.)
시편 16:11
기쁨에도 질이 있다. 그 기쁨을 취할 때, 다른 기쁨이 사라지면 나쁜 기쁨이다. 알코올중독자가 이렇게 말했다. “내 아이가 날 향해 웃어도 기쁨이 없어요.” 그 기쁨을 취할 때, 다른 기쁨이 더 커지면 좋은 기쁨이다. “운동을 했더니, 잠이 더 잘 오네!”
하나님은 내게 기쁨 주시기를 원하시는 분이다. “주께서 생명의 길을 내게 보이시리니 주의 앞에는 충만한 기쁨이 있고 주의 오른쪽에는 영원한 즐거움이 있나이다”(시편 16:11) 어떤 신학자는 하나님을 ‘진정한 쾌락주의자’라고 했다. 하나님이 내게 주시고자 하는 기쁨인 줄 어떻게 분별하는가? 내가 추구하는 그 기쁨이, 혹시 다른 기쁨을 빼앗아가고 있지는 않는지 점검해야 한다.
기쁨의 균형을 회복하라. (1) 무리한 도파민의 추구를 절제하라. 자극과 쾌락을 누리면 기분이 좋은데 왜 하나님이 원치 않으시는 것인가? 하나님이 주신 일상의 다른 기쁨을 모두 앗아가기 때문이다. 유튜브를 끄고 산을 보라. 술과 게임을 그만두고 진지한 대화를 배워보라. 당신이 극단적으로 추구하는 도파민은 무조건 다른 기쁨을 재미없게 만든다. (2) 더 좋은 기쁨을 추구하라. 지금 아무리 행복해도, 더 좋은 것을 누리지 못하게 만드는 것은 나쁜 기쁨이다. 하나님이 새롭게 주시는 수준 높은 기쁨이 있는가? 사랑과 인내와 절제 속에 찾은 기쁨은 꿀맛이다. 오늘 내 삶의 여정은 분명 더 좋은 기쁨을 내게 주시기 위함이다.
기쁨이 전혀 없어 보이는 것 같은 곳에서도, 기쁨을 기대하신 분이 예수님이다.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그는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히브리서 12:2) 모든 기쁨이 사라지는 날이 죽음이다. 내가 맞이할 그 날을 대신하여 십자가에 죽으신 예수님의 공로로, 나는 죽는 날도 기쁜 날 될 줄 믿는가? 다른 기쁨을 줄어들게 만드는 세상 기쁨을 이제 청산하라. 온갖 중독과 향락과 나태함을 물리치라. 기쁨을 주시는 분은 예수님 뿐이다.
마귀는 당신에게 여전히 기쁨을 준다고 유혹하며, 다른 기쁨 하나를 빼앗아 갈 것이다. 도파민에 속지 말고, 오늘 일상 모든 곳에서 그 기쁨을 지켜나가라. 줄어들지 않는 기쁨만 하나님 주신 기쁨이다.
[1] 기분 좋아져서 계속 했더니, 오히려 삶 전체에 기분이 좋지 않았던 나쁜 기쁨을 추구했던 적이 있습니까? 모든 것이 좋아졌던 좋은 기쁨은 무엇이었습니까? 나누어 봅시다.
[2-3] 시편 16편 11절을 읽어봅시다. 하나님이 내게 약속하시는 것은 무엇입니까? 내가 일상에 주신 기쁨을 빼앗기는 방식으로 패배하고 있는 삶의 영역들을 나누어 봅시다.
[4-5] 히브리서 12장 2절을 읽어봅시다. 예수님이 십자가를 참으신 이유는 무엇입니까? 내가 죽는 날 내게 주어질 것은 무엇입니까? 기쁨을 주실 것을 믿으며, 오늘 내 삶의 행동을 어떻게 변화시킬 수 있을지 나누어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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