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것을 뒤로하기
(6. 8. 2025.)

마가복음 16:2-3

 

사람마다 자기 인생의 무덤이 있다. 헤어나오지 못하고 집착한다. 아쉽게 떨어진 시험, 옛날에 헤어졌던 남자친구, 손절하지 못하고 있는 주식 종목. 실패했다, 지나갔다, 잃었다고 인정해야 하는데, 그것이 힘드니 무덤을 맴돈다.

 

하나님은 이미 죽은 것에 대한 관심에서 벗어나게 하시는 분이다. 예수님이 죽으셨다. 예수님께 향품을 바르려고 여자 셋이 무덤으로 간다. 어차피 안 되는 일이었다. 무덤이 큰 돌로 막혀 있었기 때문이다. “안식 후 첫날 매우 일찍이 해 돋을 때에 그 무덤으로 가며 서로 말하되 누가 우리를 위하여 무덤 문에서 돌을 굴려 주리요 하더니”(마가복음 16:2-3) 하나님이 여자들에게 새로운 마음을 주셨다. 첫번째, “돌은 내가 굴린다!” – “눈을 들어본즉 벌써 돌이 굴려져 있는데 그 돌이 심히 크더라”(4) 두번째, “너는 다른 곳에 신경 써라!” – “그가 살아나셨고 여기 계시지 아니하니라 … 예수께서 너희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시나니 너희가 거기서 뵈오리라 하라 하는지라”(6-7)

 

내 삶의 죽은 자리에서 벗어나라. 첫 번째, 돌은 내가 굴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직접 굴리신다. 이렇게 적용해보라. 내가 변화시킬 수 없는 삶의 문제에 매몰되어 있지 말라. 이제 와서 학력 못 바꾼다. 취업이 안되는 업황인 걸 어쩌겠나? 변화되지 않는 부모와 자녀 계속 따라다니지 말라. 돌을 굴리는 역사는 하나님만 하실 수 있다. 신경 끄고 자유하라. 두 번째, 지금 집중해야 할 다른 주제에 몰입하라. 부활하신 예수님은 갈릴리로 가신다. 오히려 내게 새로 주신 일에 뛰어들어야 한다. 지금 내게 원하시는 위치, 원하시는 일은 무엇인가? 거기서 주님의 일하심을 새로 볼 것이다.

 

예수님이 법원에서 증언하셨다. 그런데 돌이 굴러가지 않는다. “이르되 네가 그리스도이거든 우리에게 말하라 대답하시되 내가 말할지라도 너희가 믿지 아니할 것이요 … 그러나 이제부터는 인자가 하나님의 권능의 우편에 앉아 있으리라 하시니”(누가복음 22:67,70) 아무리 내가 그리스도라고 말해도 움직이지 않는 돌을 굳이 굴리려고 하지 않으셨다. 죽음까지 밀리셨다. 그러나 살아나셨다. 예수님이 나 대신 죽음까지 밀리셨기 때문에, 나도 내 인생에 마지막 움직이지 않는 돌, 죽음에서 구원받을 것을 믿는가?

 

오늘의 구원도 그렇게 올 것이다. 내 삶의 큰 돌을 너무 애써 옮기려고 하지 말라. 죽은 것을 뒤로하고 앞으로 나아가라. 부활하신 예수님의 일하심을 새롭게 만날 것이다.

 

[1] 내가 벗어나지 못했던 삶의 무덤은 무엇이었습니까? 왜 헤어나오기 어려웠습니까? 나누어 봅시다.

 

[2-3] 마가복음 16장 2-3절을 읽어봅시다. 여자들이 무덤에 왜 갔습니까? 가봐야 소용없었던 이유는 무엇입니까? 4절을 읽어봅시다. 그러나 그 문제는 어떻게 해결되었습니까? 내가 할 수 없음을 인정해야 하는데, 계속 내려놓지 못하는 삶의 주제들이 있다면 나누어 봅시다.

 

[4-5] 누가복음 22장 67절과 70절을 읽어봅시다. 예수님이 그리스도라고 말해도 믿지 않자 어떻게 하십니까? 그 결과는 무엇입니까? 내 삶의 무덤을 주님께 맡기고, 새롭게 집중하고 변화되어야 할 삶의 영역을 나누어 봅시다.

받아서 채우기
(6. 1. 2025.)

시편 81:10-11

 

문제가 있는 것은 괜찮다. 도움 받을 곳이 없을 때 막막해진다. 신입사원인데 아무도 나에게 업무를 알려주지 않는다. 돈이 필요한데 정말 빌릴 곳이 없다. 이제 이 가정을 어떻게 꾸려가야 할지 모르겠다. 내 스스로 내 필요를 채울 수 없을 때 절망이 찾아온다.

 

신자는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것을 받는 사람들이다. “나는 너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여호와 네 하나님이니 네 입을 크게 열라 내가 채우리라 하였으나 내 백성이 내 소리를 듣지 아니하며 이스라엘이 나를 원하지 아니하였도다”(시편 81:10-11) 하나님의 비워두심은 직접 채우심을 위함이다. 도움 받을 곳이 없다면, 사람부터 찾아다니기보다 하나님이 채우실 것을 기대하는 믿음의 도약이 필요하다.

 

비었다고 생각될 때마다 채우심을 간구하고 있는지 점검하라. 내 삶에 모든 비어있다고 생각되는 부분은, 하나님께 받아서 채울 것을 기대해야 하는 영역이다. 과연 나는 인생의 빈 곳에 하나님을 기대하고 있는 마음이 있는가? 마음이 공허하다. 마음을 하나님으로 채워달라고 기도하라. 입 열고 기다려야 한다. 그러면 신기하게 마음에 하늘의 것들이 채워진다. 하나님 주신 생각을 받아서 채워야 한다. 방법도 받아야 한다. 사람도, 전략도, 돈도, 이것은 주님께 받은 것이라고 확신이 들 때가 있다. 그러려면 먼저 입을 열고 간구해야 한다. 받아서 채우는 법을 모르면, 세상만 찾게 된다.

 

하나님께 받으신 것으로 삶 전체를 채우신 분이 있다. 예수님이다. “아버지께서 주신 잔을 내가 마시지 아니하겠느냐 하시니라”(요한복음 18:11) 예수님은 무엇을 받으셨는가? 죽음을 받으셨다. 받은 것으로 삶 전체를 채우셨다. 나 대신 죽음을 받으신 예수님 때문에, 나는 예수 이름으로 기도할 때 언제나 생명을 받을 것을 믿는가? 오늘의 삶도 그렇게 봐야 한다. 오늘 내 삶에 비어있음은 결코 저주가 아니다. 하나님께 입을 열고, 주시는 말씀과 주시는 하늘의 것을 받아야 한다. 내 삶은 그 채우심을 경험하는 과정이다.

 

아무도 나를 도와줄 수 없다고 생각하는 그 때에 담대하라. 부모도, 남편도, 자녀도 나를 도울 수 없는 그곳이 하나님이 나를 채우실 곳이다. 절망하지 말고 입을 열라. 하나님만 원하는 마음으로 나를 채우라. 나의 신앙이 완전히 뒤집히는 계기가 될 것이다.

 

[1] 그 어느 곳에도 내 삶을 향한 도움의 손길을 찾을 수 없었던 경험이 있습니까? 나누어 봅시다.

 

[2-3] 시편 81편 10-11절을 읽어봅시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무엇을 명하십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의 반응은 무엇이었습니까? 내 삶에 하나님을 향한 기대가 무뎌져버린 삶의 영역이 있다면 나누어 봅시다.

 

[4-5] 요한복음 18장 11절을 읽어봅시다. 예수님이 성부 하나님께 받은 것은 무엇이었습니까? 그분의 공로 때문에 나는 무엇을 받게 되었습니까? 나는 받아서 채우는 존재임을 믿습니까? 오늘 내가 주님께 받기를 원하고, 채우심을 간구해야 하는 삶의 영역들을 나누어 봅시다.

선을 넘었을 때
(5. 25. 2025.)

창세기 3:6

 

인생은 선을 넘는 여정이다. “한번만 더 술 마시면 같이 못 살 줄 알아!” 또 술 마시고 들어온다. “한번만 더 장난치면 엄마한테 혼날 줄 알아!” 한번 더 장난친다. “이번에도 점수 떨어지면 알아서 해!” 점수가 더 떨어진다. 아무리 선을 세워도, 인간은 그 선을 넘는다.

 

복음이란 선을 넘었을 때 다르게 반응하는 것이다. 하나님이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으면 죽는다고 경고하셨다. 먹으면 선을 넘는 것이다. “여자가 그 나무를 본즉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인지라 여자가 그 열매를 따먹고 자기와 함께 있는 남편에게도 주매 그도 먹은지라”(창세기 3:6) 선을 넘었으니 죽어야 하는데, 오히려 보호받았다.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과 그의 아내를 위하여 가죽옷을 지어 입히시니라”(21) 영적으로는 하나님과의 관계가 단절되었으나, 육체적으로는 바로 죽지 않았다. 선을 넘었을 때에도, 구원하시기 위한 은혜의 계획이 실행되기 때문이다.

 

상대가 선을 넘었을 때, 극단적으로 반응하지 말라. 선을 넘지 않게 해야겠지만, 넘었다면 그 다음 계획도 세워야 한다. 그 다음 계획이 포기인 것은 복음이 아니다. 회복의 계획, 용서의 계획, 은혜의 계획이 있어야 한다. 상대가 업무적으로 큰 실수를 했더라도, 너무 빈틈없이 몰아붙이지는 말라. 부부 사이에 말도 안되는 실망이 있었는가? 다시 풀어볼 수 있는 대화의 여지를 주라. 자녀가 아무리 말을 안 들어도, 편하게 밥먹고 집 안에서 쉴 수 있는 한결 같은 사랑을 유지하라. 선을 넘어도 언제나 새로운 길이 있다! 그것이 복음을 믿는 자들의 여유로움이다.

 

왜 이렇게 살아야 하는가? 상대가 선을 넘기 전에, 내가 먼저 선을 넘은 사람이었음을 인정하는 죄인된 마음이 있기 때문이다. “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을 인하여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너희는 은혜로 구원을 받은 것이라”(에베소서 2:3-5)

 

내가 죄인이었지만, 나 대신 죽음을 넘으신 그분 때문에 나도 현세의 경계를 지나 영생으로 넘어갈 것을 믿는가? 오늘의 구원도 그렇게 올 것이다. 예수님 안에서, 그어둔 선에서 멈추지 말라. 실망시키고, 범죄하고, 기대를 저버렸어도 그 선을 넘었을 때 주실 새로운 은혜를 구하라. 선을 넘었어도 살 길이 열릴 것이다.

 

[1] 인간은 아무리 선을 그어 놓아도, 그 선을 못 지키고 넘어갑니다. 나와 내 주변 사람들이 끊임없이 선을 지키지 못하고 넘어가며 실망을 안겨줬던 경험들을 나누어 봅시다.

 

[2-3] 창세기 3장 6절을 읽어봅시다.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으면 어떤 결과가 예정되어 있었습니까? 아담과 하와는 어떻게 행동했습니까? 21절을 읽어봅시다. 그들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내가 신앙을 가졌음에도, 내가 볼 때 선을 넘은 행동과 상황에 너무 극단적으로만 반응하는 삶의 영역이 있다면 나누어 봅시다.

 

[4-5] 에베소서 2장 3-5절을 읽어봅시다. 우리가 선을 넘은 상황에서 다르게 반응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선을 넘을 때에도 새로운 은혜의 계획이 펼쳐질 것을 확신할 수 있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오늘 선을 넘은 실망스러운 내 자신과, 실망스러운 상대방을 어떤 방식으로 다시 대할 수 있을지 나누어 봅시다.

성내는 것
(5. 18. 2025.)

야고보서 1:20

 

문제를 해결하는 가장 빠른 방법은? 화를 내는 것이다. 부하 직원이 문제를 일으켰다. 화내면 된다. 애가 말을 안 듣는다. 화내면 된다. 인생이 내 마음대로 풀리지 않는다. 화내면 된다. 화는 분명 세상이 제시하는 해결의 방법이다.

 

성내는 것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방법이 아니다. “사람이 성내는 것이 하나님의 의를 이루지 못함이라”(야고보서 1:20) 그리스도인이 되었다면 손에 쥔 카드에서 한 장은 내려 놓아야 한다. 그것은 화를 내는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다. 화를 낸 후 무언가가 해결되는 듯할 때, 다시 한 번 생각하라. 분노는 하나님이 문제를 풀어가시는 방식이 아니다. 성내는 것을 내려놓을 때, 하나님의 계획이 시작된다.

 

나는 언제 가장 화가 나는가? 그 순간을 이제 다시 정의해보라. 가장 화가 나는 순간은, 사실 ‘내가 아직 다른 해결 방식을 배우지 못한 순간’이다. 화만 나는 순간은 아직 다른 해결의 카드를 사용해보지 못한 순간이라는 말이다. 그것만 보고 자랐거나, 그렇게만 행동해 본 것이다. 그 순간 이렇게 물어보라. “이 상황에서 어떤 하나님의 뜻을 드러낼 수 있을까?” 하나님의 의를 이루는 방법은 다양하다. 친절함, 인내, 한결 같은 사랑, 용서를 보여줄 수 있는 기회이다. 내가 분노 앞에 연약해지는 다양한 순간을 생각하고, 다양한 해결의 방식들을 듣고 배워야 한다.

 

내가 분노라는 방법을 사용하지 않아도, 승리할 것을 보장해주신 분이 예수님이다. “또 하늘에 크고 이상한 다른 이적을 보매 일곱 천사가 일곱 재앙을 가졌으니 곧 마지막 재앙이라 하나님의 진노가 이것으로 마치리로다”(요한계시록 15:1) 하나님이 마땅히 분노하실 것에 분노하신다. 그 진노의 대상에는 나도 포함되어 있었다. “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에베소서 2:3) 내 삶이 진노가 아닌 십자가라는 방법으로 구원을 받았음을 믿는가? 일상의 구원도 그렇게 임할 것을 믿어야 한다. 내가 영생을 얻은 방법으로, 진노가 아닌 방법으로, 오늘의 해결도 가능할 것이다.

 

성내는 것이 세상살이의 보편적인 해결방식이라는 말에 동조하지 말라. 신자가 되었다면, 당신만은 다른 길을 걸으라. 화만 났던 상황 속에서, 하나님의 의가 이루어지기 시작할 것이다.

 

[1] 요즘은 언제 가장 화가 납니까? 크게 분을 냈다가 후회하고, 일이 꼬이고, 삶이 어려워졌던 적이 있습니까? 나누어 봅시다.

 

[2-3] 야고보서 1장 20절을 읽어봅시다. 사람이 성내는 것은 어떤 결과를 가져옵니까? 나의 분노에는 분명 보고 배운 것, 습관이 된 것들이 있습니다. 지금의 나를 만들어 온 좋고 나쁜 주변의 영향들이 있다면 나누어 봅시다.

 

[4-5] 요한계시록 15장 1절을 읽어봅시다. 하나님은 마지막에 무엇을 행하십니까? 에베소서 2장 3절을 읽어봅시다. 그 진노의 대상은 누구였습니까? 나는 이 진노에서 어떻게 면제되었습니까? 오늘 내 삶에 화가 나는 상황 속에, 어떤 방식으로 다르게 반응할 수 있을지 나누어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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