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것을 사랑하기
(4. 20. 2025.)

요한복음 5:23

 

사랑은 그 주변의 것을 함께 사랑하게 만든다. 지드래곤을 좋아하면 지드래곤이 들고 다니는 키링까지 따라 산다. 동료와 친해지면 그 친구의 자녀까지 더 챙겨주고 싶다. 사랑은 그와 관련된 주변을 대하는 방식에서 나타난다.

 

성경은 예수님을 인정하는 것이 곧 하나님을 인정하는 것임을 말한다. “아들을 공경하지 아니하는 자는 그를 보내신 아버지도 공경하지 아니하느니라”(요한복음 5:23)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곧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사랑하는 것을 통해 나타난다. 예수님의 고난과 부활을 알아갈 때, 우리는 성부 하나님의 사랑을 더 깊이 깨닫게 된다. 주변에 찐 신앙인을 판별하는 방법이 있다. 하나님 믿는다는 이야기 실컷 하면서, 예수님이 하신 일들에 별로 관심이 없다면 그 사람은 거르라. 그 사람은 아들을 공경하지 않기에, 하나님도 공경하지 않는 자이다.

 

우리의 삶에 이렇게 적용해 보자. 상대가 사랑하는 것을 존중하고 사랑해주라. 그것이 상대를 사랑하는 길이다. 내 남편은 내가 관심 없는 분야에 너무 열정적이다. 스포츠 경기 보는 것을 너무 좋아한다. 쓸데없는 일 그만하라고 말하지 말고, 상대가 사랑하는 분야를 함께 존중해보라. 엄청 고마워 할 것이다. 맨날 말하는 것만 좋아하는 아내가 있는가? 계속 맞장구치며 대화를 이어나가 보라. 상대가 좋아하는 것을 신경 써줄 때 그를 진정 사랑하는 것이다. 어떤 교회에 전화가 왔다. 부목사가 무슨 일이시냐고 묻자, 이렇게 답했다고 한다. “아 무슨 일인지 알 거 없고, 담임목사와 통화하고 싶으니 바꿔주세요.” 그의 요청은 거절 당했다. 상대가 존중하는 부목사를 무시하는 자는 담임목사도 무시할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사랑하셨던 것이 또 있다. “그들은 아버지의 것이었는데 내게 주셨으며”(요한복음 17:6) 예수님은 아버지께서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것을 아셨다. 그래서 우리를 함께 사랑하시고 십자가에서 죽으셨다. 아버지가 사랑하시는 것을 예수님도 사랑하셨기에, 내게 구원이 주어졌음을 믿는가? 내 인생의 구원과 행복도 그렇게 올 것이다. ‘상대방을’ 사랑하고, 행복하게 해주고 싶다면, ‘상대방이’ 사랑하고 관심 갖는 것들을 무시하지 말고 관심 가져보라. 존중해보라. 가정과 관계가 살아날 것이다.

 

“나는 그를 사랑하는가?” 이렇게 질문을 바꾸어 보라. “나는 그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아는가?” 그 사람을 향한 사랑이 더 넓어질 때이다. 상대가 사랑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고, 존중하고 인정해주라. 좋은 뜻으로 많이 변했다는 말을 들을 것이다.

 

[1] 사랑은 그 주변의 것까지 사랑하게 만듭니다. 내가 누군가를 향한 애정과 관심 때문에, 그 주변의 것까지 관심과 애정이 생겼던 경험이 있다면 나누어 봅시다.

 

[2-3] 요한복음 5장 23절을 읽어봅시다. 아들이신 예수님을 공경하지 않는 것은 무엇과 같은 말입니까? 내 방식대로만 상대를 사랑하다가, 하나님이 좋아하시는 것과 상대방이 좋아하는 것에는 관심이 없었던 지난 날을 나누어 봅시다.

 

[4-5] 요한복음 17장 6절을 읽어봅시다. 하나님은 무엇을 사랑하셨습니까? 그래서 예수님은 무엇을 함께 사랑하셨습니까? 그 결과는 무엇입니까? 내가 사랑하는 존재가 좋아하는 것을 좋아하는 것들을 소개해봅시다. 그 존재를 사랑하기 위해 내가 어떻게 변화되어야 할지 나누어 봅시다.

내게 주신 구역
(4. 13. 2025.)

시편 16:5-6

 

시기심의 가장 큰 해악은? 내가 가진 것이 하찮고 나빠 보이는 것이다. 화목하고 부유해 보이는 가정을 보면, 우리 집은 초라하고 부끄럽다. 멋진 커리어를 쌓아가는 사람을 보면 아이의 기저귀를 갈고 있는 내 손이 지친다. 나는 언제쯤 여기에서 탈출해보나?

 

하나님은 각 사람에게 허락하신 구역을 지정하시는 분이다. 다윗은 하나님이 선을 그어 주신 영역에 만족함을 이렇게 노래한다. “여호와는 나의 산업과 나의 잔의 소득이시니 나의 분깃을 지키시나이다 내게 줄로 재어 준 구역은 아름다운 곳에 있음이여 나의 기업이 실로 아름답도다”(시편 16:5-6) 세상은 좋아 보이는 곳을 향해 내 마음대로 선을 넘어갈 수 있다고 속인다. 그리스도인들은 절대 그렇지 않다. 평생에 내게 주신 직장, 내게 주신 집, 내게 주신 사람, 내게 주신 영역의 인도하심을 받아야 한다. 지금 그것이 내게 가장 좋은 것이다.

 

무조건 움직이면 안 된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먼저 내게 주신 구역의 아름다움을 고백하라. 다른 구역에서 일어나는 일을 듣다가 오늘 감사할 제목을 모두 잃어버린 것은 아닌가? 내게 지금 허락하신 가장 좋은 직장임을 고백하면서 미래가 열린다. 다른 자녀와 비교하지 않고 끝까지 이 자녀를 사랑할 때 자녀를 통한 하나님의 비밀한 일이 시작된다. 내일의 아름다움에 취해 오늘 주신 아름다움을 빼앗기지 말라. 오늘의 감사를 빼앗아가는 내일의 꿈은 다 거짓말이다.

 

예수님은 성부 하나님이 자기에게 주신 구역에 감사로 순종하셨다. “아버지께서 주신 잔을 내가 마시지 아니하겠느냐 하시니라”(요한복음 18:11) 생명에 구역에 계셨던 분이, 죽음의 구역으로 들어가셨다. 그 구역에 머무르신 것 때문에, 내가 죽음 이후 생명의 구역으로 넘어갈 수 있게 되었음을 믿는가? 오늘의 삶도 확신해야 한다. 오늘 내게 허락하신 구역은, 예수님 안에서 절대 죽음의 구역이 될 수 없다. 이 구역에 감사로 머무를 때, 부활의 능력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다 감사한 마음 있지~”라고 퉁치고 넘어가지 말라. 구체적으로 내게 무엇을 주셨는지 말하고, 그 주신 것에 대한 아름다움을 말로 표현하라. 나의 기업이 실로 아름다운 것임을 고백할 때, 이 구역에서 하나님이 하실 멋진 일도 드러나게 되리라.

 

[1] 다른 사람들의 영역에 기웃거리며 내 것이 싫어지고, 내 것을 잃어버리는 방황에 빠졌던 경험이 있다면 나누어 봅시다. (예 – 유망 직업, 인기 학과, 유행하는 헤어스타일…)

 

[2-3] 시편 16편 5-6절을 읽어봅시다. 다윗은 하나님은 어떤 분이라고 고백합니까? 자신에게 주신 구역을 어떻게 표현합니까? 하나님이 주셨다는 것을 알면서도, 내가 가장 아름답다고 고백하고 있지 못한 삶의 구역을 나누어 봅시다.

 

[4-5] 요한복음 18장 11절을 읽어봅시다. 예수님은 어떤 구역에 계셨던 분이십니까? 그분은 우리를 위해 어떤 구역으로 들어가셨습니까? 예수님 믿고 내가 죽으면 어떤 구역으로 들어갑니까? 그렇다면 예수님 안에서 오늘 내게 주신 구역에서 확신할 수 있는 것은 무엇입니까? 오늘 내게 주신 구역 중에 하나님이 주셨음을 분명하게 다시 고백하고, 그분 앞에서 어떤 태도로 오늘의 삶을 감당해야 할지 나누어 봅시다.

머리 굴리는 죄
(4. 6. 2025.)

잠언 21:30

 

세상살이를 위한 온갖 전략과 생존비법이 많다. 새벽 6시 30분 전까지는 지하철이 할인된다는 것을 아는가? 공무원은 7시를 1분이라도 지나면 야근 식대가 나와서 그걸 챙긴다고 한다. 알바에게 시급 줄 때, 연말정산 때 계산 잘못해서 세금 폭탄 맞아봤는가? 정신차리지 않으면 손해가 막심하다. 머리 굴리지 않으면 살아남기 어려운 시대이다.

 

하나님은 사람이 머리 굴리는 것에 당하시지 않는 분이다. “지혜로도 못하고, 명철로도 못하고 모략으로도 여호와를 당하지 못하느니라”(잠언 21:30) 머리 나쁜 사람은 머리 좋은 사람을 못 당한다. 그래서 세상에서 우월한 위치를 점한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서 말씀을 피하기 위해 머리 굴리는 것은 하나님 앞에 죄이다. 똑똑함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받아야 인생에 복이 있다.

 

지혜로움을 우상으로 삼지 말라. 있는 그대로 순종하지 못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이리저리 꼬아서 해석하며 회피하는 것에 하나님은 결코 당하지 않으신다. (1) 시간: 나름대로 시간을 철저히 계획하지만 하나님이 원하시는 예배, 기도의 시간을 외면하다가 더 바빠진 것 아닌가? (2) 돈: 그렇게 아낀다고 십일조 헌금 무시하다가 사고로 다 날려본 적은 없는가? (3) 사랑: 교회 밖에서는 사람 무시하고 미워하다가 하나님이 크게 깨닫게 하시고 겸손하게 하신 적은 없는가? 단순하고 무식해보이는 말씀의 순종이 있는지 확인하라. 그것이 없다면 당신은 머리 굴리는 죄에 빠져 있는 것이다.

 

지혜보다 순종이 우선이셨던 분이 예수님이다. 예수님은 지혜 자체이셨다. “하나님의 비밀인 그리스도를 깨닫게 하려 함이니 그 안에는 지혜와 지식의 모든 보화가 감추어져 있느니라”(골로새서 2:2-3) 지혜로우신 분이 성부 하나님의 요구 앞에 순종하신다. “아버지께서 주신 잔을 내가 마시지 아니하겠느냐”(요한복음 18:11) 지혜를 우상으로 삼지 않으신 예수님의 순종 때문에 내가 영생을 얻게 되었음을 믿는가? 그 은혜를 기억할 때, 내 삶의 방식도 변한다. 아무리 머리 좋아야 성공한다고 말해도, 그것이 단순한 말씀의 순종보다 우월할 수 없다.

 

짱구는 그만 굴리자. 잘나가고 똑똑하며, 세상 사람들과 잘 지낸다는 그리스도인일수록, 말씀 앞에 한없이 순수하고 단순한 순종을 해야 한다. 무식하고 투박한 순종을 기대한다. 하루 종일 말씀보고 기도하며, 시간 쓰고 돈 쓰며, 헌신하고 사랑하는 순종을 시작하라. 하나님 앞에서 머리 굴리는 것은 죄이다.

 

[1] 지혜롭고 약삭빨라야 세상에서 살아남을 수 있습니다. 내가 경험한 세상살이의 치열함과, 나만이 알고 있는 삶의 지혜와 비법을 나누어 봅시다.

 

[2-3] 잠언 21장 30절을 읽어봅시다. 하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무엇보다 우월하신 분이십니까? 내 삶의 영역 중에서 하나님의 말씀보다 삶의 지혜로움과 스마트함이 우선된 부분이 있다면 나누어 봅시다.

 

[4-5] 골로새서 2장 2-3절을 읽어봅시다. 예수님은 누구이십니까? 요한복음 18장 11절을 읽어봅시다. 그 분은 십자가 앞에서 무엇을 우선하셨습니까? 계산과 머리굴림을 넘어선 순종을 한 적이 있다면 나누어 봅시다. 오늘 어떻게 변화되어야 할지도 나누어 봅시다.

부끄러움 없는 삶
(3. 30. 2025.)

빌립보서 1:20

 

세상 바라보면 한없이 내 삶이 부끄러워질 때가 있다. 능력자들 앞의 초라한 무능, 젊은이들 앞에 힘없는 늙어감, 부유함 앞의 연약한 가난… 아무도 나에게 대놓고 말하지 않지만, 말없이 다가오는 인생의 부끄러움이 우리를 더 비참하게 만든다.

 

예수님을 믿은 후 내 삶의 처지는 절대 부끄러워할 일이 아니다. 바울이 예수님을 전하다가 옥에 갇혀 아무 것도 하지 못하는 처지가 되었다. 잘나가는 주변 사역자와 비교해서 부끄러워할 법한데, 다른 고백을 한다. “나의 간절한 기대와 소망을 따라 아무 일에든지 부끄러워하지 아니하고 지금도 전과 같이 온전히 담대하여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하게 되게 하려 하나니”(빌립보서 1:20) 예수님 만나고 바울의 삶의 목표가 달라졌다. 어떤 처지에 있든지 그리스도가 존귀해지는 것이다. 어떤 처지에 있든지 부끄럽지 않다. 그 모든 상황에서 그리스도를 존귀하게 높이는 것이 유일한 목표이다.

 

어떤 처지에서든지 예수님을 높일 수 있는 일만 생각하라. 예수님 만난 후 내 삶은 부끄러움을 가리는 것이 목표가 되어서는 안된다. 병든 것은 부끄러움이 아니다. 병상에서도 예수님 뜻대로 행할 수 있다. 말씀과 기도로 매일을 살아가는 것은 예수님 안에 위대한 일이다. 직업이 없는 것은 부끄러움이 아니다. 나의 인도자 되신 예수님의 인도하심을 받는 과정이기에 무직의 상태에서도 예수님을 높일 수 있다. 내 삶의 진짜 문제는 세상 앞에 내 자신이 부끄러운 것이 아니라, 부끄러움을 가려주시는 예수님이 없는 것이다.

 

뻔히 세상의 부끄러움이 있는데, 어떻게 부끄러워하지 않을 수 있는가? 내 마지막 부끄러움을 가려주시는 예수님을 만났기 때문이다. “거룩하게 하시는 이와 거룩하게 함을 입은 자들이 다 한 근원에서 난지라 그러므로 형제라 부르시기를 부끄러워하지 아니하시고”(히브리서 2:11) 인생에 가장 큰 부끄러움은 천국 문 앞에서 예수님이 날 모른다고 말씀하시는 순간이다. 예수님은 마지막 날 나를 형제로 불러주시기를 기뻐하셨다. 그분이 나의 오늘의 모습을 부끄러워하지 않으신다는 것을 믿는가? 내 부끄러운 죄악을 모두 가려주신 예수님 사랑이 너무 크기에, 오늘 나의 모든 삶은 예수님을 존귀하게 높이는 것만이 목표가 된다.

 

오늘의 처지를 결코 부끄러워하지 말라. 주 안에서 당신의 처지를 절대 부끄러워해선 안된다고 서로 권면하라. 날 부끄러워 하지 않으신 예수님 앞에서, 부끄러움 없이 오늘을 살자. 진정 행복한 삶이다.

 

[1] 세상을 바라볼 때 내 자신이 한없이 부끄러워질 때가 있습니다. 특별히 요즘 나는 어느 부분에서 그런 것을 느낍니까?

 

[2-3] 빌립보서 1장 20절을 읽어봅시다. 바울의 현재 상황은 어떠합니까? 그 상황에서 어떤 고백을 합니까? 요즘 내 모습이 부끄러워지는 부분이 있다면, 내 삶의 궁극적인 목표와 가치를 어디에 두고 있기 때문에 그런 마음이 드는 걸까요? 생각해 봅시다.

 

[4-5] 히브리서 2장 11절을 읽어봅시다. 사람이 마지막으로 부끄러워지는 순간은 어느 때입니까? 예수님은 나를 어떻게 대해주셨습니까? 오늘의 삶의 처지를 부끄러워하지 않고, 예수님을 존귀하게 하기 위해 삶이 어떻게 변화되어야 할지 나누어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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