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는 그릇의 긴장
(12. 29. 2024.)

고린도후서 4:7

 

홀로 있을 때 풀어진다. 그러나 무언가 같이 있으면 긴장해야 한다. 쟁반에 커피 컵을 올리는 순간 커피 쏟을까봐 조심히 운반한다. 그렇게 난폭 운전하던 사람이 차에 누구 태우면 안전운전한다. 집 청소를 하려면 집에 누구 초대하면 된다. 누군가 함께하면 긴장하게 된다.

 

예수님은 우리 삶에 함께 들어와 거하시는 분이다.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이는 심히 큰 능력은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려 함이라”(고린도후서 4:7) 예수님은 우리의 보배시다. 우리는 질그릇에 예수님을 담았다. 귀한 것을 담아 내는 인생임을 인식할 때, 삶의 모든 순간의 행동에 긴장감이 생길 수밖에 없다.

 

예수님이 거하신다는 긴장이 사라진 삶의 영역을 점검하라. 나의 생활에 예수님을 담아내야 한다. 예수님이 함께하신다는 생각이 사라지니 그런 말투가 함부로 나오는 것이다. 예수님이 이 공간의 주인 되신다는 긴장감이 사라지니 공간의 주인이 내가 되는 것이다. 누가 시간 마음대로 써도 아무 말도 안하니 시간에 대한 긴장감도 사라진다. 보이는가? 내 삶의 모든 붕괴는, 내 자신이 보배를 담은 그릇이라는 긴장감이 사라진 데서 나온다.

 

마지막까지 긴장을 놓지 않으신 분이 계시다. 예수님이다. “이르시되 아빠 아버지여 아버지께는 모든 것이 가능하오니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하시고”(마가복음 14:36) 힘들고, 지친 상태이니 긴장 풀릴만한 상황이었다. 예수님은 아버지의 뜻을 삶에 담아내신 긴장감을 잃지 않으셨다. 그 순종 때문에, 죄인인 내 삶에도 하나님이 거하실 수 있게 되었다.

 

건강한 긴장감을 회복하라. 예수님의 영이신 성령님이 언제나 우리와 함께하신다. 우리 내면에 성령님이 충만히 거하시게 하라. 그분을 불편하게 만들지 말라. 그분을 인식하는 긴장감이 내 삶을 생명력 있게 회복시킬 것이다. 무엇인가 담겨 있다면, 마땅히 긴장해야 한다.

 

[1] 긴장이 풀렸다가, 무엇인가를 의식하면서 긴장감이 생겼던 경험들을 나누어 봅시다. 내 행동은 어떻게 달라졌습니까?

 

[2-3] 고린도후서 4장 7절을 읽어봅시다. 성경은 우리를 무엇으로 묘사합니까? 예수님은 무엇으로 묘사합니까? 그리스도인의 삶은 어떤 긴장감이 있어야 합니까? 그것을 처음 느꼈던 경험들이 있다면 나누어 봅시다.

 

[4-5] 마가복음 14장 36절을 읽어봅시다. 예수님이 끝까지 삶에 담아내셨던 것은 무엇입니까? 그분의 긴장감을 통해 내 삶에 주어진 특권은 무엇입니까? 내 삶에 건강한 긴장감을 회복하기 위해 어떻게 변화되어야 할지 나누어 봅시다.

 

“각자가 예수님께로
(12. 22. 2024.)

마태복음 2:2

 

같은 목적만 있으면 전국 각지에서 사람이 몰린다. 임영웅 콘서트 장에 가보라. 전국의 권사님들은 거기에 다 있다. 대전에서는 성심당 크리스마스 케이크 산다고 난리다. 부산 티니핑 팝업 스토어에 10만명의 아기, 엄마들이 몰렸다. 사람은 모두 내게 손짓하는 그것에 반응하여, 그곳으로 달려간다.

 

예수님은 내가 반응할 수 있도록 나에게 징조를 주시는 분이다. 예수님이 태어나신다는 징조는 다양했다. (1) 동방박사들은 별을 보았다.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가 어디 계시냐 우리가 동방에서 그의 별을 보고 그에게 경배하러 왔노라 하니”(마태복음 2:2) (2) 양 치는 목자들은 천사를 보았다. “천사들이 떠나 하늘로 올라가니 목자가 서로 말하되 이제 베들레헴으로 가서 주께서 우리에게 알리신 바 이 이루어진 일을 보자 하고”(누가복음 2:15) 하나님은 각자에게 맞는 방식으로 자신을 드러내시고, 우리를 부르신다.

 

이 땅에 예수님이 태어나신 성탄절이다. (1) 나를 예수님께로 어떻게 이끄셨는지 돌아보는 시간으로 삼으라. 별을 보여주시고, 천사를 보여주시고, 나만을 이끄시는 독특한 이끄심 때문에 내가 여기까지 왔다. (2) 같은 목적으로 모인 사람들을 격려하라. 나와 전혀 다른 삶을 사는 사람이, 어떻게 나와 같은 장소에 있을 수 있는가? 함께 모인 사람들의 다양함을 통해 예수님의 광대하심을 찬양하라. (3) 경배하는 데에 시간을 쓰라. 세상은 아직 별을 보지 못해서 백화점 가고 여행 가는 것이다. 우린 별과 천사를 본 사람들이다. 예배하고, 믿는 성도들과 함께 하는 데에 시간을 쓰라. 같이 찬송 부르라. 그것이 경배의 방법이다.

 

내가 예수님께 갈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분이 먼저 이 땅에 오셨기 때문이다.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마태복음 1:21) 그분이 나를 부르지 않으셨다면, 나는 그분께 갈 수 없다. 크리스마스에 내가 다시 예수님께 나아가는 것은, 그분이 먼저 나를 부르셨다는 증거이다.

 

나에게만 별을 보여주신 주님께 감사하며 주님 앞으로 나아가라. 나에게만 천사를 통해 자신을 알리신 주님을 경배하러 달려가라. 우리 모두 각자가 예수님께로 나아가야 할 충분한 의무가 있는 사람들이다.

 

[1] 같은 목적이 있으면 다양한 사람들이 한 곳에 몰립니다. 내가 좋아하는 주제와 관련된 행사에 사람이 몰렸던 경험들을 나누어 봅시다.

 

[2-3] 마태복음 2장 2절과 누가복음 2장 15절을 읽어봅시다. 동방박사들은 무엇을 보았습니까? 양 치는 목자들은 무엇을 보았습니까? 나는 무엇을 보고 이 자리까지 오게 되었습니까? 나를 이끄신 하나님의 징조들을 나누어 봅시다.

 

[3-5] 마태복음 1장 21절을 읽어봅시다. 내가 그분 앞에 나아가야 할 합당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크리스마스를 가장 의미 있게 보내기 위해 내가 해야 할 일들을 나누어 봅시다.

“반응은 하나님께”
(12. 15. 2024.)

출애굽기 7:12-13

 

아티스트에게 제일 힘든 건 악플이 아니라 무관심이라고 한다. 사람은 반응을 먹고 산다는 말이다. 선물했는데 상대의 반응이 너무 밋밋하면 줘놓고도 화가 난다. 우리 교회는 2부 예배보다 1부가 반응이 좋다. 그냥 그렇다는 말이다. 사람은 반응에 종속되어 산다.

 

하나님은 내가 상대하는 타인의 모든 반응을 주관하시는 분이다. 애굽(이집트)에서 이스라엘 백성을 구출하기 위해 모세를 보내신다. 기적을 행했는데도, 바로 왕의 반응이 차갑다. “각 사람이 지팡이를 던지매 뱀이 되었으나 아론의 지팡이가 그들의 지팡이를 삼키니라 그러나 바로의 마음이 완악하여 그들의 말을 듣지 아니하니 여호와의 말씀과 같더라”(출애굽기 7:12-13) 성경은 바로가 완악한 마음을 가졌지만, 그것이 하나님의 뜻 안에 있었다고 말한다. 인생의 중요한 진리를 깨닫는다. 내 행동에 대한 상대의 반응은, 내가 마음대로 할 수 없다. 오직 하나님께 달려 있다.

 

반응 때문에 주저하거나, 실망하는 모든 삶의 태도를 변화시키라. 저 사람이 나의 고백을 받아줄까? 하나님이 마음을 여시면 되는 것이다. 누군가 나를 계속 적대할 때, 그 사람을 직접 상대하려고 하지 말고 하나님께 엎드리라. 그 사람 마음이 나에게 닫히게 하시는 이유가 분명 있을 것이다. 사람의 마음을 너무 무서워하지 말라. 그것은 그리스도인들의 바람직한 삶의 태도가 아니다. 상대의 반응을 주님께 맡기고 너무 눈치 보지 말아야 한다. 반응과 관계없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들을 실행해야 한다.

 

예수님의 구원은 사람들 반응 때문에 왔다. 빌라도가 예수님의 죄를 찾지 못해서 놓아주려고 했는데, 군중의 반응이 심각했다. “빌라도가 이르되 어찜이냐 무슨 악한 일을 하였느냐 그들이 더욱 소리 질러 이르되 십자가에 못 박혀야 하겠나이다 하는지라”(마태복음 27:23)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은 어떻게 벌어진 것인가? 군중이 반대하는 반응 때문에 이루어진 것이다. 하나님은 예수님을 반대하는 반응마저 사용하셔서, 나에게 구원을 주셨다. 믿는가? 그러면 오늘도 믿어야 한다. 예수님 안에서 내가 상대하는 상대의 모든 반응은, 하나님이 나의 구원을 위해 사용하실 것이다.

 

고백에 거절 당하고, 취업에 탈락하고, 나를 차갑게 대하는 상사의 반응에 너무 휘둘리지 말라. 겸손하게 상대의 반응을 통해 인도하실 하나님을 의지하라. 반응은 하나님께 있다.

 

[1] 사람은 반응을 먹고 삽니다. 상대의 반응에 힘이 나거나, 좌절했던 경험이 있다면 나누어 봅시다.

 

[2-3] 출애굽기 7장 12-13절을 읽어봅시다. 기적을 행했을 때, 바로 왕의 반응은 어떠했습니까? 3절을 읽어봅시다. 바로의 반응은 동시에 누구의 손에 있었습니까? 상대의 반응 때문에 내 삶의 중심이 흔들렸던 경험이 있다면 나누어 봅시다.

*3절: 내가 바로의 마음을 완악하게 하고

 

[4-5] 마태복음 27장 23절을 읽어봅시다. 예수님 십자가 사건은 무엇 때문에 발생한 일이었습니까? 하나님은 군중의 반응을 어떻게 사용하셨습니까? 내 삶에서 상대의 반응을 나의 구원을 위해 사용하실 것을 믿으며, 상대의 반응을 하나님께 맡겨야 할 부분들을 나누어 봅시다.

“나만 만날 수 있는 사람
(12. 8. 2024.)

누가복음 19:5

 

모두와 친해질 수 없다. 나랑만 잘 통하는 사람이 있다. 사람 너무 싫어하지 말라. 어느 누구와는 또 잘 맞는다. 누가 나 싫어해도 실망하지 말라. 원래 나랑 잘 안 맞는 사람도 있는 법이다.

 

하나님은 내가 만날 수 있는 사람을 통해 일하시는 분이다. 삭개오는 그 당시 로마에 협력하며 적극적으로 세금을 징수하는 파렴치한이었다. 모두가 마음을 닫았던 그 사람에게, 예수님만 말을 거신다. “예수께서 그 곳에 이르사 쳐다 보시고 이르시되 삭개오야 속히 내려오라 내가 오늘 네 집에 유하여야 하겠다 하시니”(누가복음 19:5) 모두가 외면했지만, 삭개오는 예수님 말에 반응했다. 나도 나만 만날 수 있는 사람이 있다. 하나님이 나를 통해 그 사람에게 자신의 사랑을 전하신다.

 

나에게 마음을 열어주는 사람에게 먼저 집중하라. 그 연결고리를 통해 복음을 전하라. 그 사람이 내게 마음을 연 것은 내가 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행하신 일이다. 나를 좋게 봐주니, 그 사람에게 하나님을 전할 기회를 찾으라. 그래도 내 말은 신뢰하는 사람이니까, 평범한 말 하지 말고 예수님 이야기도 함께 끼워 넣으라. 내가 아니면 누가 그 사람에게 복음을 전하겠는가? 나만 만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언제나 그곳에 복음이 흘러가야 한다.

 

내가 예수님을 어떻게 믿게 되었는가?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내 마음을 여셨기 때문이다. “어두운 데에 빛이 비치라 말씀하셨던 그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을 우리 마음에 비추셨느니라”(고린도후서 4:6) 다들 예수님 모르는데, 나만 예수님 만날 수 있게 해주셨다. 이것이 내 인생 최고의 복임을 믿는가? 나도 그렇게 살아야 한다. 나만 만날 수 있게 하신 사람이 있다. 그곳에도 예수님을 흘려보내라. 관계 속에서 일하시는 하나님을 만날 것이다.

 

연말이다. 한해를 마무리하면서, 전도의 열매가 있었는지 돌아보라. 예수님의 이름을 전하는 그 자체가 주제가 되었던 날이 하루도 없었다면, 내 삶의 주제가 조금은 다른 곳에 치우쳐 있었는지 모른다. 교회까지 데리고 오지 못해도 괜찮다. 나만 만날 수 있는 사람에게, 내가 예수님 믿는다고 한번 말해보라. 우리 인생에 가장 가치 있는 일이다.

 

[1] 살다 보면, 모두와 다 잘 맞을 수 없음을 깨닫습니다. 그것을 깨닫고 관계 속에서 자유해졌던 경험이 있습니까? 모두와 친해지려고 무리하다가 한계를 깨달았던 적이 있습니까? 나는 어떤 사람과 잘 맞습니까? 나누어 봅시다.

 

[2-3] 누가복음 19장 5절을 읽어봅시다. 예수님은 삭개오에게 무엇이라고 말씀하셨습니까? 6절을 읽어봅시다. 예수님을 향한 삭개오의 태도는 어떠했습니까? 요즘 나와 친하고, 나에게만 마음을 잘 여는 친구, 가족 등의 관계를 소개해 봅시다. 예수님을 전한 적이 있습니까?

*6절: 급히 내려와 즐거워하며 영접하거늘

 

[4-5] 고린도후서 4장 6절을 읽어봅시다. 이 땅에서 내가 남들과 다르게 누릴 수 있는 최고의 복은 무엇입니까? 나만 누리고 있는 복을, 나를 통해 어떻게 흘러가게 만들 수 있을까요? 주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한 다짐들을 나누어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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