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
(1. 19. 2025.)

마태복음 14:15-16

 

더 이상 도움을 받을 수 없을 때 어른이 된다. 불우한 가정의 아이들이 빨리 성숙해지는 이유가 그것이다. 도움 없이 혼자 책임질 때 성장이 시작된다. 이제 내가 내 돈으로 먹고 살아야 할 때, 내 결정에 내가 책임져야 할 때, 내 판단에 가족과 회사의 운명이 달려 있을 때… 책임은 성장을 가져온다.

 

하나님은 책임을 통해 영적으로 나를 성장시키시는 분이다. 오병이어 사건 때, 사람들이 먹을 것이 없었다. 제자들은 각자 사람들이 알아서 해결하겠거니 넋놓고 있었다. 예수님이 책임을 지우신다. “저녁이 되매 제자들이 나아와 이르되 이 곳은 빈 들이요 때도 이미 저물었으니 무리를 보내어 마을에 들어가 먹을 것을 사 먹게 하소서 예수께서 이르시되 갈 것 없다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마태복음 14:15-16) 그 일을 처리할 사람은 ‘너’라는 뜻이다.

 

하나님은 내게 하나님만 의지하여 인생의 문제를 해결해보라는 도전을 주신다. 그것을 피하지 말라. 하나님이 주신 성장의 기회이다. 더 이상 남을 평가하고 남의 도움을 받는 자리에 있지 말고 내가 책임지는 자리로 가보라. 내가 내 진로, 내 결혼, 내 생계, 내 신앙을 책임져야 한다. 내가 가르치고, 내가 평가받고, 내가 책임지는 자리를 피하지 말라. 꼬여버린 인생의 위기를 직접 기도하며 돌파해보라. 탓하지 말고 내가 하나씩 순종하며 길을 열어보라. 영적인 책임감은 열두 광주리가 남는 기적을 일으킨다.

 

십자가란 무엇인가? 영적인 책임감에 대한 약속이다. 예수님은 우리의 죽음을 책임지셨다. “아버지께서 주신 잔을 내가 마시지 아니하겠느냐”(요한복음 18:11) 아버지가 맡기신 책임을 받아들일 때, 영생과 부활의 문이 열렸다. 우리에게 주신 영적인 부담감도 결코 우리를 힘들게 하시려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내 삶에 벌어진 모든 문제를 내가 하나님과 함께 해결해보겠다고 다짐하라. 오직 하나님이 나를 도우심으로, 나로부터 문제가 해결되기 시작할 것이다.

 

먹을 것 받아먹으며 살던 시절을 끝내라. 남의 뒷담화나 하며 실실대는 시절을 정리하라. 하나님이 내게 주신 책임에 집중하라. 남들과 다르게 배불리 먹고 남은 조각을 거두는 역사가 나타날 것이다.

 

[1] 책임과 독립 속에 내가 성장했음을 경험했던 적이 있습니까? 나누어 봅시다.

 

[2-3] 마태복음 14장 15-16절을 읽어봅시다. 먹을 것이 없는 상황에 대한 제자들의 인식은 어떠했습니까? 예수님은 그런 제자들에게 무엇을 명령하십니까? 내가 하나님을 의지하여 직접 책임져야 할 상황들을 회피하고 있는 삶의 영역들이 있다면 나누어 봅시다.

 

[4-5] 요한복음 18장 11절을 읽어봅시다. 예수님은 무엇을 책임지셨습니까? 그 결과는 무엇입니까? 하나님이 오늘 내 삶에 주시는 거룩한 책임감은 무엇인지 깨닫고, 내가 기존의 삶을 청산하고 어떻게 변화될 수 있을지 나누어 봅시다.

“헌신하는 삶
(1. 12. 2025.)

이사야 6:8

 

“네가 하고싶은 것 해, 엄마는 뭘 하든 널 응원할게” 이런 부모 밑에서 방황하는 청소년이 많다. 왜? 사람은 자기가 정말 무엇을 하고 싶은지 잘 모르기 때문이다. ‘지금은 하고 싶지만 나중에 싫어지면 어쩌지?’, ‘하고싶은 것이 여러가지인데 이 중에 무엇을 고르지?’ 나의 내면을 들여다보라는 시대의 목소리는, 훨씬 사람을 혼란스럽게 만든다.

 

하나님의 사람들은 하고 싶은 것을 하며 사는 사람들이 아니라, 하나님의 부르심에 헌신하는 사람들이다. 이사야가 하나님의 부름을 받는다. “내가 또 주의 목소리를 들으니 주께서 이르시되 내가 누구를 보내며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꼬 하시니 그 때에 내가 이르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Here am I. Send me!") 하였더니”(이사야 6:8) 하나님 사람들의 인생은 이 부르심에 헌신하기 전과 후로 나뉜다. 주변에서 다들 하고 싶은 것 찾아다닐 때, 절대 조급해 하지 말라. 하나님의 부르심만을 사모하고, 그곳에 헌신해야 한다.

 

올 한해, 원하는 것을 내가 찾으려는 노력보다, 부르심에 헌신하기를 사모하는 기도를 훨씬 더 많이 하라. 조급하게 결정 내리기 보다, 평범한 것을 지속하며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라. 어느 순간 느끼게 하신다. ‘아, 하나님이 이 교회에 헌신하라고 하시나보다’, ‘하나님이 이 공부 하라고 하시나보다’, ‘하나님이 이 사람과 가정을 꾸리라고 하시나보다’, ‘하나님이 이 회사에 재능을 쏟으라고 하시나보다’ … 시간이 지날수록 하고싶은 것이 아니라 부르신 것이 무엇인지 발견하는 삶이어야 한다. 그래야 훨씬 재밌게 산다. 훨씬 오래 간다.

 

하고 싶은 것에 속지 않으셨던 분이 예수님이다. “아빠 아버지여 아버지께는 모든 것이 가능하오니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하시고”(마가복음 14:36) 예수님의 삶에 가장 중요했던 것은 ‘아버지의 뜻’이었다. 그 뜻대로 십자가에 헌신할 때 우리에게 구원이 임했다. 내 삶도 같은 일이 벌어질 것이다. 하나님이 주신 뜻에만 헌신할 때, 삶 전체에 구원이 임할 것이다.

 

남은 삶, 헌신할 준비가 되었는가? 그 부르심에 순종할 자세가 되어 있는가? 하고 싶은 대로 사는 삶 말고, 헌신하는 삶을 살라. 차원이 다른 삶을 살게 될 것이다.

 

[1] ‘하고 싶은 것’을 고민하며 살아왔던 경험들을 나누어 봅시다. 어떤 결정을 내렸었고, 어떤 후회들과 갈등들이 있었습니까?

 

[2-3] 이사야 6장 8절을 읽어봅시다. 이사야의 삶은 어디서부터 변화됩니까? 이사야는 무엇이라고 고백합니까? 세상적인 움직임을 멈추고 부르심을 기다리며 하나님의 뜻을 구했던 삶의 기간이 있다면 나누어 봅시다.

 

[4-5] 마가복음 14장 36절을 읽어봅시다. 예수님이 마지막까지 집중하셨던 인생의 목표는 무엇이었습니까? 그것을 통해 우리에게 주어진 복은 무엇입니까? 나는 지금 헌신하고 있는 삶입니까? 하나님이 무엇에 나를 부르셨다고 느끼고 있습니까? 그 부르심 따라 살기 위해 변화되어야 할 삶의 태도들을 나누어 봅시다.

“그대로 간다
(1. 5. 2025.)

요한계시록 22:11

 

결심보다 무서운 것이 관성이다. 2024년에 무엇을 시작하려고 결심했었는가? 살아보니 결심대로 실행하기 어려운 내 고집은 얼마나 더 셌는가? 인간의 고집은 결코 쉽게 변화되지 않는다.

 

하나님은 나의 변화를 위해 일하시는 분이다. 요한계시록에는 마지막에 믿지 않는 자들이 나중에 어떻게 살게 되는지 이렇게 묘사한다. “불의를 행하는 자는 그대로 불의를 행하고 더러운 자는 그대로 더럽고 의로운 자는 그대로 의를 행하고 거룩한 자는 그대로 거룩하게 하라”(요한계시록 22:11) 마지막에 어떻게 되는가? 지금 나쁜 것이 그대로 이어진다. 분노, 폭력, 우울, 게으름, 음란이 영원히 심해지고 계속되며 결코 벗어나지 못한다는 말이다. 하나님의 심판은, 그 길을 그대로 영원히 계속 가게 하시는 것이다.

 

하나님이 내 삶에 영원히 행복하게 남을 것들을 위해 지금 일하고 계신다. 그 변화를 포착하지 못하고, 그대로 가버리는 실패에 빠지지 말라. 오늘 시작한 것을 내년에도 하고 있을 것이다. 오늘의 변화의 흐름이 내년에도 가속 될 것이다. 요즘 어떤 새로운 시도를 하고 있는가? 무엇에 가속이 붙고 있는가? 그 방향성은 하나님을 향하는가 지옥을 향하는가? C.S. 루이스는 지옥을 이렇게 재치있게 묘사했다. “나의 못된 성질과 시기심이 점점 심해지고 있다고 합시다. 이것은 점차 진행되는 일이므로 70년이 지난다 한들 눈에 확 뜨일 정도로 심해지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 일이 100만년 동안 계속된다면 그야말로 완벽한 지옥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겠지요.”

 

예수님이 내가 마주해야 할 마지막 멸망을 대신 경험하셨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요한복음 3:16) 마지막 멸망은 예수님이 가져가시고, 생명을 내게 주셨다. 내 인생의 마지막이 변화되었음을 믿는다면, 그 예수님은 오늘도 내 삶에 일하고 계심을 믿어야 한다. 하나님이 오늘 내게 겪게 하시는 일들은, 그대로 가다가 멸망할 죄악들을 빨리 버리라는 인도하심이다.

 

나를 사랑하신다면, 나를 변화시키기 위한 움직임을 시작하실 것이다. 반응하고, 순종하라. 그대로 가면 지옥이다. 변화가 복이다. 훨씬 행복해질 것이다.

 

[1] 2024년 목표는 무엇이었습니까? 무엇을 실행했고, 무엇이 변화되었으며, 무엇이 아쉬웠습니까? 나누어 봅시다.

 

[2-3] 요한계시록 22장 11절을 읽어봅시다. 예수님이 다시 오시는 최후의 심판 때에 악인들은 어떤 결과를 마주하게 됩니까? 의인은 어떤 결과를 마주합니까? 그대로 가는 죄악들이 심각성을 나와 주변을 보며 느꼈던 적이 있다면 나누어 봅시다.

 

[4-5] 요한복음 3장 16절을 읽어봅시다. 내 인생의 마지막에 내가 원래 마주해야 할 결과는 무엇이었습니까? 어떻게 바뀌었습니까? 그 믿음 안에서 오늘 내 삶에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반응하고 변화되어야 할 부분들은 무엇일지 나누어 봅시다.

“담는 그릇의 긴장
(12. 29. 2024.)

고린도후서 4:7

 

홀로 있을 때 풀어진다. 그러나 무언가 같이 있으면 긴장해야 한다. 쟁반에 커피 컵을 올리는 순간 커피 쏟을까봐 조심히 운반한다. 그렇게 난폭 운전하던 사람이 차에 누구 태우면 안전운전한다. 집 청소를 하려면 집에 누구 초대하면 된다. 누군가 함께하면 긴장하게 된다.

 

예수님은 우리 삶에 함께 들어와 거하시는 분이다.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이는 심히 큰 능력은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려 함이라”(고린도후서 4:7) 예수님은 우리의 보배시다. 우리는 질그릇에 예수님을 담았다. 귀한 것을 담아 내는 인생임을 인식할 때, 삶의 모든 순간의 행동에 긴장감이 생길 수밖에 없다.

 

예수님이 거하신다는 긴장이 사라진 삶의 영역을 점검하라. 나의 생활에 예수님을 담아내야 한다. 예수님이 함께하신다는 생각이 사라지니 그런 말투가 함부로 나오는 것이다. 예수님이 이 공간의 주인 되신다는 긴장감이 사라지니 공간의 주인이 내가 되는 것이다. 누가 시간 마음대로 써도 아무 말도 안하니 시간에 대한 긴장감도 사라진다. 보이는가? 내 삶의 모든 붕괴는, 내 자신이 보배를 담은 그릇이라는 긴장감이 사라진 데서 나온다.

 

마지막까지 긴장을 놓지 않으신 분이 계시다. 예수님이다. “이르시되 아빠 아버지여 아버지께는 모든 것이 가능하오니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하시고”(마가복음 14:36) 힘들고, 지친 상태이니 긴장 풀릴만한 상황이었다. 예수님은 아버지의 뜻을 삶에 담아내신 긴장감을 잃지 않으셨다. 그 순종 때문에, 죄인인 내 삶에도 하나님이 거하실 수 있게 되었다.

 

건강한 긴장감을 회복하라. 예수님의 영이신 성령님이 언제나 우리와 함께하신다. 우리 내면에 성령님이 충만히 거하시게 하라. 그분을 불편하게 만들지 말라. 그분을 인식하는 긴장감이 내 삶을 생명력 있게 회복시킬 것이다. 무엇인가 담겨 있다면, 마땅히 긴장해야 한다.

 

[1] 긴장이 풀렸다가, 무엇인가를 의식하면서 긴장감이 생겼던 경험들을 나누어 봅시다. 내 행동은 어떻게 달라졌습니까?

 

[2-3] 고린도후서 4장 7절을 읽어봅시다. 성경은 우리를 무엇으로 묘사합니까? 예수님은 무엇으로 묘사합니까? 그리스도인의 삶은 어떤 긴장감이 있어야 합니까? 그것을 처음 느꼈던 경험들이 있다면 나누어 봅시다.

 

[4-5] 마가복음 14장 36절을 읽어봅시다. 예수님이 끝까지 삶에 담아내셨던 것은 무엇입니까? 그분의 긴장감을 통해 내 삶에 주어진 특권은 무엇입니까? 내 삶에 건강한 긴장감을 회복하기 위해 어떻게 변화되어야 할지 나누어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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