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저항
(2. 23. 2025.)

출애굽기 1:17-19

 

세상은 너무 크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너무 작다. 내 삶의 의미를 나의 역량으로 평가하는 시대다. 매출 얼마 나와? 논문 몇 개 썼니? 회사에서 무슨 일 해? 한달에 얼마 버니? 높이 올라간다고 비참함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외국계 증권사에서 일하는 직원에게 무슨 일을 하냐고 묻자 이렇게 답했다. “중학생 정도면 할 수 있는 마우스 클릭 업무를 하루 종일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 뜻에 순종하는 작은 행동을 사용하시는 분이다. 이집트 바로 왕이 이스라엘 백성이 늘어나자 위협을 느끼고 남자 아기가 태어나면 다 살해하라고 명령한다. 바로 왕과 맞짱을 뜨거나, 나라를 뒤엎을 순 없었다. 할 수 있는 저항을 한다. “그러나 산파들이 하나님을 두려워하여 애굽 왕의 명령을 어기고 남자 아기들을 살린지라”(출애굽기 1:17) 바로 왕이 왜 아기가 안죽었냐고 묻자 어설픈 핑계를 댄다. “산파가 바로에게 대답하되 히브리 여인은 애굽 여인과 같지 아니하고 건장하여 산파가 그들에게 이르기 전에 해산하였더이다 하매”(19) 이런 말이다. “제가 일부러 안 죽인게 아니라 제가 오기 전에 출산이 이미 끝난 거예요.” 바로에게 죽을까봐 덜덜 떨며 대답한 이 힘없는 저항 속에 모세가 나왔다.

 

내게 주신 할 수 있는 작은 순종의 행위를 찾고, 지속하라. 그것이 작은 일이라고 생각하지 말라. 하나님은 크신 분이기에, 우리의 작은 일을 크게 사용하실 수 있는 분이다. 어떻게든 회사와 학교에 사랑과 기쁨, 용서가 흐르게 하라. 나 혼자라도 웃고 다니라. 최대한 따돌림과 뒷담화가 없게 하라. 틈만 나면 전도하고, 나쁜 비리와 음해, 비성경적인 가치들이 최대한 줄어들게 하라. 어설픈 핑계를 대면서라도 악을 막아내라. 뒤에서 수를 써서 좋은 가치들이 심겨질 수 있도록 일하라. 믿는 자들과 연합하고, 바른 가치를 추구하라. 적은 시간과 물질을 떼어 이웃을 섬기고 헌금하라. 나의 작은 발버둥 속에, 모세의 출애굽이 만들어진다.

 

마지막에 순종으로 저항하신 우리의 왕이 계신다. 예수님이다. “네가 너를 구원하여 십자가에서 내려오라 하고”(마가복음 15:30) 십자가에서 인내로 순종하신 작은 저항이, 죽음을 생명으로 뒤집었다. 그 영생의 수혜자임을 믿는가? 나도 내 행동의 무게를 인간의 잣대로 평가해서는 안 된다. 작은 저항이지만, 그것은 순종이기에, 분명 하나님의 크신 일하심이 나타날 것이다.

 

작은 저항을 가치 없다 여기고 타협하거나 안주하지 말라. 순종의 큰 위력을 무시하지 말라. 산파와 같이 내게 주신 특별한 상황이, 특별한 하나님의 일을 만들어내는 모판이 될 것이다.

 

[1] 일주일 내내 하는 일들이 보잘 것 없다고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나의 작음을 느꼈던 경험들을 나누어 봅시다.

 

[2-3] 출애굽기 1장 17절을 읽어봅시다. 바로가 히브리 남자 아기들을 죽이라고 했을 때 산파들은 어떻게 행동하였습니까? 내가 속한 곳의 분위기와 관행에 휩쓸려 하나님의 뜻대로 저항하기 어려웠던 삶의 경험이 있다면 나누어 봅시다.

 

[4-5] 마가복음 15장 30절을 읽어봅시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어떻게 저항하셨습니까? 그 작은 저항 때문에 우리가 얻게 된 것은 무엇입니까? 크신 하나님을 믿고, 내가 결단할 수 있는 삶 속의 작은 순종, 작은 저항들은 무엇이 있을지 나누어 봅시다.

다시 공급되는 힘
(2. 16. 2025.)

잠언 24:16

 

무언가를 계속하는 것은 기적에 가까운 일이다. 계속 사랑하는 일. 매일 밥하는 일. 매주 피부관리 받으러 가는 일. 매일 아침에 일찍 일어나는 일. 계속하는 것은 힘들기에 포기하게 된다. 그래서 내 일상에 포기하는 일은 점점 늘어간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다시 시작할 수 있는 힘을 공급하시는 분이다. “대저 의인은 일곱 번 넘어질지라도 다시 일어나려니와 악인은 재앙으로 말미암아 엎드러지느니라”(잠언 24:16) 의인과 악인의 차이는 다시 시작함에 있다. 모두가 실수하고, 모두가 포기하지만, 하나님은 의인에게 다시 일어설 수 있는 힘을 주신다. “사람이 감당할 시험 밖에는 너희가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하지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하지 아니하시고 시험 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고린도전서 10:13)

 

이렇게 적용할 수 있다. 힘이 없다고 가만히 있지 않고, 다시 힘을 주실 것이라고 믿고 시도하고 행동해보라. 너무 미운 가족에게 절대 나아가지 않겠다고 다짐한 성도가 있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이 아닌 것 같아 내키진 않는 마음을 가지고 연락했는데, 하나님이 자신의 마음을 풀어주셨다고 한다. 새 힘을 공급하신 것이다. 힘이 없다고 가만히 있지 말라. 힘은 내가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다. 다시 할 수 있는 힘을 공급해주시는 분은 하나님이다. 해야 할 일 앞에 다시 서 보라. 힘은 내 안에서 오지 않고 다른 데서 온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기 직전 그 모든 압박감을 감당할 수 없으셨다. 그러나 그 상황에서 기도한 후, 다르게 말씀하신다. “일어나라 함께 가자 보라 나를 파는 자가 가까이 왔느니라”(마태복음 26:46) 다시 일어설 수 있는 힘을 하나님이 주신 것이다. 공급하시는 힘으로 십자가까지 가셨기에 내게 구원이 주어졌음을 믿는가? 나도 동일한 구원을 경험할 것이다. 내 삶의 여정을 마칠 때까지, 하나님은 끊임없이 내게 필요한 힘을 다시 공급하실 것이다.

 

다시 공급받고 싶은 힘은 무엇인가? 구체적으로 생각해보라. 지혜? 재정? 여유? 사랑? 성실? 인내? 기쁨? 평안? 그것이 무엇이든, 하나님은 그 힘을 공급하실 수 있는 분이다. 무너졌던 곳에 다시 힘을 공급받을 것을 믿고 나아가라. 이전과 다른 힘을 경험하게 되리라.

 

[1] 계속하는 힘을 내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힘에 부쳐 중도에 포기한 삶의 여정들을 나누어 봅시다. (관계, 학습, 기상 등등…)

 

[2-3] 잠언 24장 16절을 읽어봅시다. 의인과 악인의 차이는 무엇입니까? 하나님은 우리에게 무엇을 공급하십니까? 내 스스로 내 안에 있는 힘만을 바라보며 선뜻 다시 나서고 있지 못한 내 삶의 영역들이 있다면 나누어 봅시다.

 

[4-5] 마태복음 26장 46절을 읽어봅시다. 십자가 지시기 직전 예수님이 기도하신 후 예수님은 무엇이라고 말씀하셨습니까? 그 힘을 통해 우리가 누리고 있는 유익은 무엇입니까? 예수님 안에서 내 삶에도 동일한 일이 일어날 것을 믿고, 다시 공급되는 힘을 사모하며 직면해야 할 삶의 영역이 있다면 나누어 봅시다.

“사물에 임하는 은혜
(2. 9. 2025.)

창세기 39:5

 

하나님은 어디까지 내 삶에 함께하시는가? ‘전부’ 함께 하신다고는 하지만, 실제로는 그렇게 느끼지 않는 삶의 영역들이 있다. 내가 주문하는 메뉴에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가? 내가 고르는 유튜브 영상에 하나님이 함께하시는가? 내가 주문하는 제품, 내가 매수하는 부동산과 주식에 하나님은 함께하실까?

 

하나님은 사람과 자연 뿐만 아니라 생기가 없는 사물에도 함께하신다. 요셉이 보디발의 집을 관리하자, 요셉을 통해 임한 은혜가 이렇게 기록되어 있다. “그가 요셉에게 자기의 집과 그의 모든 소유물을 주관하게 한 때부터 여호와께서 그 애굽 사람의 집에 복을 내리시므로 여호와의 복이 그의 집과 밭에 있는 모든 소유에 미친지라”(창세기 39:5) 여호와의 복이 집과 밭에 있는 모든 ‘소유’에 미쳤다. 모든 소유물이 복된 소유물이 되었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복이 단순한 물건에까지 미친다는 또 다른 근거 구절이 있다. “네 광주리와 떡 반죽 그릇이 복을 받을 것이며”(신명기 28:5) 하나님의 은혜는 내가 쓰는 쇼핑백과 밥그릇에까지 임한다.

 

하나님의 은혜의 영역을 무한히 확장시키라. 하나님이 은혜 주시면 좋은 차, 좋은 집, 좋은 항공기 고른다. 사고를 피한다. 하나님 은혜가 사라지면 불량품 사고, 물건 쉽게 부서지고, 상한 것 먹는다. 내가 어제 상한 것 먹었는데 저주 받았다는 뜻인가? 내 아이패드 고장 났는데 저주하신 것인가? 절대 그렇지 않다. 예수님이 저주를 가져가셨기에, 예수님 안에서 경험하는 부정적인 것들마저 내게 유익이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물건에까지 미치는 하나님의 은혜는 여전히 유효함을 깨달아야 한다. 온갖 기계적이고 생명 없어 보이는 곳에까지 언제나 은혜를 구하라!

 

순종하는 자에게만 이 은혜가 가능했다. 불순종한 자에게는 저주가 임해야만 했다. “네가 악을 행하여 그를 잊으므로 네 손으로 하는 모든 일에 여호와께서 저주와 혼란과 책망을 내리사 망하며 속히 파멸하게 하실 것이며”(신명기 28:20) 그러나 예수님이 나 대신 저주받으셨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갈라디아서 3:13) 물건을 통해서도 저주를 받아야 했던 내 인생을 예수님이 구원하셨음을 믿는가? 그렇다면 오늘 담대히 은혜를 전 영역속에서 사모하라. 내가 보는 영상, 내가 타는 비행기, 내가 사는 물건마저 복이 임하게 해달라고 기도하라. 그리스도인의 특권이다.

 

좁은 곳에 갇혀 있는 은혜에 대한 생각을 풀어놓으라. 은혜가 내 삶 전 영역을 뛰어다니게 하라. 당신이 가는 곳마다 집과 밭에 있는 모든 소유에 복이 임할 것이다.

 

[1] 여기까지 하나님이 함께 하실까? 라는 의심에 하나님과 무관하다고 생각하는 삶의 영역이 있었다면 나누어 봅시다.

 

[2-3] 창세기 39장 5절을 읽어봅시다. 요셉이 보디발의 집에서 일을 시작하자 어떤 일이 일어났습니까? 복이 임한 범위는 어디까지였습니까? 내가 은혜를 구하는 영역이 넓어졌던 계기가 있다면 나누어 봅시다.

 

[4-5] 신명기 28장 20절을 읽어봅시다. 원래 우리가 받아야 할 저주는 무엇이었습니까? 갈라디아서 3장 13절을 읽어봅시다. 우리 삶에 벌어지는 모든 일이 저주가 아님을 확신할 수 있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예수님을 의지하여 내 삶에 하나님의 은혜와 복을 구해야 할 영역들을 구체적으로 넓혀서 이야기 해 봅시다.

숨겨진 목표, 사랑
(2. 2. 2025.)

요한일서 4:19-20

 

인생에는 직접 추구하지 않았는데 배워지는 것들이 있다. 눈치. “난 이제 눈치를 배워야지” 다짐하는 사람 없다. 그냥 살다 보면 눈칫밥이 늘어간다. 인내. 특별히 노력 안해도 나이들면 화가 좀 줄어든다. 너그러움, 유머, 사회성… 삶은 직접적인 학습으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은 우리 모든 삶을 통해 궁극적인 하나의 목표, 사랑을 가르치신다. “우리가 사랑함은 그가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음이라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노라 하고 그 형제를 미워하면 이는 거짓말하는 자니 보는 바 그 형제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보지 못하는 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느니라”(요한일서 4:19-20) 하나님은 사랑이시기에, 사랑을 배우지 못한 것은 곧 하나님을 만나지 못한 것이다. 내가 삶에서 하나님과 동행하고 있다면, 언제나 내 삶의 숨겨진 목표에는 사랑을 배우는 과정이 포함되어 있다.

 

내 관심사만을 기준으로 오늘의 삶의 숨겨진 목표를 부정하지 말라. 간접적으로 무엇을 가르치시고 계신지 민감해지라. 바쁜 상황 속에서, 상대의 자격 없음 속에서, 상황의 열악함 중에서, 누군가를 배려하며 내가 사랑해야 할 상대와 부대끼게 하신다. 커리어, 편안함, 재미, 재정을 기준으로는 결코 발견되지 않는 내 삶의 목표가 있다. 하나님이 이 상황 속에 사랑이라는 다른 목표를 함께 진행시키고 계시다면, 내 삶의 오늘은 결코 헛되지 않다.

 

도대체 그 사랑이라는 것이 무엇인가? 내가 죄인일 때 하나님이 내게 행하신 것이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로마서 5:8) 죄인인 나를 위해 죽으신 예수님 사랑 깨닫고 배우는 것이 우리 삶의 목표이다. 그 사랑 받았는가? 도대체 그것을 어떻게 경험하는가? 아마 내 삶에 다른 죄인을 만나면서 깨닫게 될 것이다.

 

오늘의 삶과, 주어진 상황을 긍정하라. 세상의 다른 기준으로는 실패로 보여도, 분명 가치 있는 여정이다. 하나님의 사랑을 느끼고, 그 사랑을 내가 배울 수 있는 여정이기 때문이다. 연휴 때 가족이랑 시간을 보내면서 참 답답한 상황 많지 않았는가? 불평 말라. 잘 하고 있다. 하나님의 숨겨진 목표는 언제나 현재 진행형이다.

 

[1] 삶에는 직접 추구한 것이 아닌데 얻어지는 것들이 있습니다. 생각나는 것이 있다면 나누어 봅시다. (예 – 눈치, 친절, 생존력, 근성…)

 

[2-3] 요한일서 4장 19-20절을 읽어봅시다. 하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우리에게 명하시는 것은 무엇입니까? 사랑을 가르치시려는 하나님의 의도를 제외하고 내 삶을 내 기준대로 판단하고 있는 모습이 있다면 돌아봅시다.

 

[4-5] 로마서 5장 8절을 읽어봅시다. 나는 누구입니까? 예수님이 하신 일은 무엇입니까? 그 사랑 앞에서 오늘 내 삶의 숨겨진 목표를 발견해봅시다. 하나님은 나에게 무엇을 가르치고 계십니까?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