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겨진 목표, 사랑
(2. 2. 2025.)

요한일서 4:19-20

 

인생에는 직접 추구하지 않았는데 배워지는 것들이 있다. 눈치. “난 이제 눈치를 배워야지” 다짐하는 사람 없다. 그냥 살다 보면 눈칫밥이 늘어간다. 인내. 특별히 노력 안해도 나이들면 화가 좀 줄어든다. 너그러움, 유머, 사회성… 삶은 직접적인 학습으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은 우리 모든 삶을 통해 궁극적인 하나의 목표, 사랑을 가르치신다. “우리가 사랑함은 그가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음이라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노라 하고 그 형제를 미워하면 이는 거짓말하는 자니 보는 바 그 형제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보지 못하는 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느니라”(요한일서 4:19-20) 하나님은 사랑이시기에, 사랑을 배우지 못한 것은 곧 하나님을 만나지 못한 것이다. 내가 삶에서 하나님과 동행하고 있다면, 언제나 내 삶의 숨겨진 목표에는 사랑을 배우는 과정이 포함되어 있다.

 

내 관심사만을 기준으로 오늘의 삶의 숨겨진 목표를 부정하지 말라. 간접적으로 무엇을 가르치시고 계신지 민감해지라. 바쁜 상황 속에서, 상대의 자격 없음 속에서, 상황의 열악함 중에서, 누군가를 배려하며 내가 사랑해야 할 상대와 부대끼게 하신다. 커리어, 편안함, 재미, 재정을 기준으로는 결코 발견되지 않는 내 삶의 목표가 있다. 하나님이 이 상황 속에 사랑이라는 다른 목표를 함께 진행시키고 계시다면, 내 삶의 오늘은 결코 헛되지 않다.

 

도대체 그 사랑이라는 것이 무엇인가? 내가 죄인일 때 하나님이 내게 행하신 것이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로마서 5:8) 죄인인 나를 위해 죽으신 예수님 사랑 깨닫고 배우는 것이 우리 삶의 목표이다. 그 사랑 받았는가? 도대체 그것을 어떻게 경험하는가? 아마 내 삶에 다른 죄인을 만나면서 깨닫게 될 것이다.

 

오늘의 삶과, 주어진 상황을 긍정하라. 세상의 다른 기준으로는 실패로 보여도, 분명 가치 있는 여정이다. 하나님의 사랑을 느끼고, 그 사랑을 내가 배울 수 있는 여정이기 때문이다. 연휴 때 가족이랑 시간을 보내면서 참 답답한 상황 많지 않았는가? 불평 말라. 잘 하고 있다. 하나님의 숨겨진 목표는 언제나 현재 진행형이다.

 

[1] 삶에는 직접 추구한 것이 아닌데 얻어지는 것들이 있습니다. 생각나는 것이 있다면 나누어 봅시다. (예 – 눈치, 친절, 생존력, 근성…)

 

[2-3] 요한일서 4장 19-20절을 읽어봅시다. 하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우리에게 명하시는 것은 무엇입니까? 사랑을 가르치시려는 하나님의 의도를 제외하고 내 삶을 내 기준대로 판단하고 있는 모습이 있다면 돌아봅시다.

 

[4-5] 로마서 5장 8절을 읽어봅시다. 나는 누구입니까? 예수님이 하신 일은 무엇입니까? 그 사랑 앞에서 오늘 내 삶의 숨겨진 목표를 발견해봅시다. 하나님은 나에게 무엇을 가르치고 계십니까?

성령의 감동
(1. 26. 2025.)

사도행전 16:6-7

 

이론을 안다고 현실을 살 수는 없다. 살아봐야 아는 또 다른 것이 있기 때문이다. 이론상 한 달에 얼마씩 모으면 부자 된다. 이론상 하루에 몇 시간 공부하면 서울대 간다. 이론상 아이는 이렇게 키워야 한다. 그렇게 된 사람 아무도 없다. 현실엔 다른 문제들이 있다.

 

하나님은 말씀과 성령의 감동을 통해 일하시는 분이다. 바울이 선교지를 두고 고민할 때 성령이 마음에 감동을 주신다. “성령이 아시아에서 말씀을 전하지 못하게 하시거늘 그들이 브루기아와 갈라디아 땅으로 다녀가 무시아 앞에 이르러 비두니아로 가고자 애쓰되 예수의 영이 허락하지 아니하시는지라”(사도행전 16:6-7) 어디에서 말씀을 전하라는 것은 성경에 나오지 않는다. 그런데 바울은 알 수 있었다. 성령의 감동이 있었기 때문이다. 성경의 내용을 다 안다고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신자는 매일의 성령의 감동으로 인도함 받는다.

 

성령의 감동을 경험하고, 이것에 민감해지라. 말씀이 객관적인 인도하심이라면, 성령은 말씀에 기반한 주관적인 인도하심이다. ‘네 부모를 공경하라’는 객관적인 인도하심이지만, ‘지금 부모님께 뭐라고 말씀드려야 할까?’를 고민하는 것은 주관적 인도하심이다. “마땅히 할 말을 성령이 곧 그 때에 너희에게 가르치시리라 하시니라”(누가복음 12:12) 일상에 수시로 성령의 임재를 구하라. 말하기, 판단, 방향성, 마음, 통찰 모두 성령님이 주셔야 한다. 이것이 정말 하나님이 주신 생각과 마음이 맞는지 검증이 어려울 때가 많다. 그렇다고 포기하지 말라. 검증이 어렵다고 성령의 감동이 없다고 말하면 안 된다. 분명 성령은 우리에게 감동하셔서 주관적으로 우리를 이끌어 가신다.

 

예수님은 객관적인 하나님의 말씀을 모두 알고 계신 분이셨다. 그러나 주관적으로 끊임없이 인도하심을 구하고 경험하며 사셨다. “성령이 곧 예수를 광야로 몰아내신지라”(마가복음 1:12) 예수님의 구원 사역에 성령의 인도하심이 포함되어 있음을 믿는가? 그분이 성령을 따라 십자가까지 가셔서 내게 영생이 주어졌다. 오늘 나의 구원도 성령의 감동을 따를 때 경험하게 될 것이다.

 

차가운 신앙생활을 벗어나라. 신앙생활은 결코 이론에 머무르지 않는다. 매일의 행동, 순간의 판단 속에 성령의 감동을 사모하라. 성령을 사모하는 자에게 넘치도록 채워 주시리라.

 

[1] 이론을 안다고 삶을 잘 살 수 없습니다. 실제 살아가는 것은 이론과 다르다는 것을 경험한 적이 있다면 나누어 봅시다.

 

[2-3] 사도행전 16장 6-7절을 읽어봅시다. 사도바울은 자신이 선교지를 고민할 때 어떤 경험을 하였습니까? 하나님의 인도하심에는 어떤 종류가 있습니까? 평소에 성령의 감동을 따라갈 수 있는 내면의 준비가 되어 있는지 돌아봅시다.

 

[4-5] 마가복음 1장 12절을 읽어봅시다. 모든 말씀을 아시는 예수님이셨음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인도함 받으셨습니까? 그 결과는 무엇입니까? 내 삶에 성령의 인도하심을 경험했던 적이 있다면 나누어 봅시다. 또 지금 그 인도하심을 구해야 할 삶의 영역이 있다면 나누어 봅시다. 성령의 감동을 받기 위해 매일의 일상이 어떻게 변화되어야 하겠습니까?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
(1. 19. 2025.)

마태복음 14:15-16

 

더 이상 도움을 받을 수 없을 때 어른이 된다. 불우한 가정의 아이들이 빨리 성숙해지는 이유가 그것이다. 도움 없이 혼자 책임질 때 성장이 시작된다. 이제 내가 내 돈으로 먹고 살아야 할 때, 내 결정에 내가 책임져야 할 때, 내 판단에 가족과 회사의 운명이 달려 있을 때… 책임은 성장을 가져온다.

 

하나님은 책임을 통해 영적으로 나를 성장시키시는 분이다. 오병이어 사건 때, 사람들이 먹을 것이 없었다. 제자들은 각자 사람들이 알아서 해결하겠거니 넋놓고 있었다. 예수님이 책임을 지우신다. “저녁이 되매 제자들이 나아와 이르되 이 곳은 빈 들이요 때도 이미 저물었으니 무리를 보내어 마을에 들어가 먹을 것을 사 먹게 하소서 예수께서 이르시되 갈 것 없다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마태복음 14:15-16) 그 일을 처리할 사람은 ‘너’라는 뜻이다.

 

하나님은 내게 하나님만 의지하여 인생의 문제를 해결해보라는 도전을 주신다. 그것을 피하지 말라. 하나님이 주신 성장의 기회이다. 더 이상 남을 평가하고 남의 도움을 받는 자리에 있지 말고 내가 책임지는 자리로 가보라. 내가 내 진로, 내 결혼, 내 생계, 내 신앙을 책임져야 한다. 내가 가르치고, 내가 평가받고, 내가 책임지는 자리를 피하지 말라. 꼬여버린 인생의 위기를 직접 기도하며 돌파해보라. 탓하지 말고 내가 하나씩 순종하며 길을 열어보라. 영적인 책임감은 열두 광주리가 남는 기적을 일으킨다.

 

십자가란 무엇인가? 영적인 책임감에 대한 약속이다. 예수님은 우리의 죽음을 책임지셨다. “아버지께서 주신 잔을 내가 마시지 아니하겠느냐”(요한복음 18:11) 아버지가 맡기신 책임을 받아들일 때, 영생과 부활의 문이 열렸다. 우리에게 주신 영적인 부담감도 결코 우리를 힘들게 하시려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내 삶에 벌어진 모든 문제를 내가 하나님과 함께 해결해보겠다고 다짐하라. 오직 하나님이 나를 도우심으로, 나로부터 문제가 해결되기 시작할 것이다.

 

먹을 것 받아먹으며 살던 시절을 끝내라. 남의 뒷담화나 하며 실실대는 시절을 정리하라. 하나님이 내게 주신 책임에 집중하라. 남들과 다르게 배불리 먹고 남은 조각을 거두는 역사가 나타날 것이다.

 

[1] 책임과 독립 속에 내가 성장했음을 경험했던 적이 있습니까? 나누어 봅시다.

 

[2-3] 마태복음 14장 15-16절을 읽어봅시다. 먹을 것이 없는 상황에 대한 제자들의 인식은 어떠했습니까? 예수님은 그런 제자들에게 무엇을 명령하십니까? 내가 하나님을 의지하여 직접 책임져야 할 상황들을 회피하고 있는 삶의 영역들이 있다면 나누어 봅시다.

 

[4-5] 요한복음 18장 11절을 읽어봅시다. 예수님은 무엇을 책임지셨습니까? 그 결과는 무엇입니까? 하나님이 오늘 내 삶에 주시는 거룩한 책임감은 무엇인지 깨닫고, 내가 기존의 삶을 청산하고 어떻게 변화될 수 있을지 나누어 봅시다.

“헌신하는 삶
(1. 12. 2025.)

이사야 6:8

 

“네가 하고싶은 것 해, 엄마는 뭘 하든 널 응원할게” 이런 부모 밑에서 방황하는 청소년이 많다. 왜? 사람은 자기가 정말 무엇을 하고 싶은지 잘 모르기 때문이다. ‘지금은 하고 싶지만 나중에 싫어지면 어쩌지?’, ‘하고싶은 것이 여러가지인데 이 중에 무엇을 고르지?’ 나의 내면을 들여다보라는 시대의 목소리는, 훨씬 사람을 혼란스럽게 만든다.

 

하나님의 사람들은 하고 싶은 것을 하며 사는 사람들이 아니라, 하나님의 부르심에 헌신하는 사람들이다. 이사야가 하나님의 부름을 받는다. “내가 또 주의 목소리를 들으니 주께서 이르시되 내가 누구를 보내며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꼬 하시니 그 때에 내가 이르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Here am I. Send me!") 하였더니”(이사야 6:8) 하나님 사람들의 인생은 이 부르심에 헌신하기 전과 후로 나뉜다. 주변에서 다들 하고 싶은 것 찾아다닐 때, 절대 조급해 하지 말라. 하나님의 부르심만을 사모하고, 그곳에 헌신해야 한다.

 

올 한해, 원하는 것을 내가 찾으려는 노력보다, 부르심에 헌신하기를 사모하는 기도를 훨씬 더 많이 하라. 조급하게 결정 내리기 보다, 평범한 것을 지속하며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라. 어느 순간 느끼게 하신다. ‘아, 하나님이 이 교회에 헌신하라고 하시나보다’, ‘하나님이 이 공부 하라고 하시나보다’, ‘하나님이 이 사람과 가정을 꾸리라고 하시나보다’, ‘하나님이 이 회사에 재능을 쏟으라고 하시나보다’ … 시간이 지날수록 하고싶은 것이 아니라 부르신 것이 무엇인지 발견하는 삶이어야 한다. 그래야 훨씬 재밌게 산다. 훨씬 오래 간다.

 

하고 싶은 것에 속지 않으셨던 분이 예수님이다. “아빠 아버지여 아버지께는 모든 것이 가능하오니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하시고”(마가복음 14:36) 예수님의 삶에 가장 중요했던 것은 ‘아버지의 뜻’이었다. 그 뜻대로 십자가에 헌신할 때 우리에게 구원이 임했다. 내 삶도 같은 일이 벌어질 것이다. 하나님이 주신 뜻에만 헌신할 때, 삶 전체에 구원이 임할 것이다.

 

남은 삶, 헌신할 준비가 되었는가? 그 부르심에 순종할 자세가 되어 있는가? 하고 싶은 대로 사는 삶 말고, 헌신하는 삶을 살라. 차원이 다른 삶을 살게 될 것이다.

 

[1] ‘하고 싶은 것’을 고민하며 살아왔던 경험들을 나누어 봅시다. 어떤 결정을 내렸었고, 어떤 후회들과 갈등들이 있었습니까?

 

[2-3] 이사야 6장 8절을 읽어봅시다. 이사야의 삶은 어디서부터 변화됩니까? 이사야는 무엇이라고 고백합니까? 세상적인 움직임을 멈추고 부르심을 기다리며 하나님의 뜻을 구했던 삶의 기간이 있다면 나누어 봅시다.

 

[4-5] 마가복음 14장 36절을 읽어봅시다. 예수님이 마지막까지 집중하셨던 인생의 목표는 무엇이었습니까? 그것을 통해 우리에게 주어진 복은 무엇입니까? 나는 지금 헌신하고 있는 삶입니까? 하나님이 무엇에 나를 부르셨다고 느끼고 있습니까? 그 부르심 따라 살기 위해 변화되어야 할 삶의 태도들을 나누어 봅시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