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대하심, 세밀하심
(5. 12. 2024.)

느헤미야 9:32

 

두려움은 큰 것에서 온다. 큰 돈을 갚아야 한다. 큰 무대에 서야 한다. 높은 분들 앞에서 발표한다. 두렵다. 지겨움은 작은 것에서 온다. 이 업무를 한다고 내 인생 바뀌지 않는다. 이 돈 모아봐야 갈 길이 멀다. 이런 일을 해봐야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다. 지겹다.

 

하나님은 가장 광대하신 분이시자, 가장 세밀하신 분이시다. 느헤미야가 바벨론 포로귀환 후 성벽을 재건할 때 하나님을 이렇게 묘사한다 “우리 하나님이여 광대하시고 능하시고 두려우시며 언약과 인자하심을 지키시는 하나님이여 우리와 우리 왕들과 방백들과 제사장들과 선지자들과 조상들과 주의 모든 백성이 앗수르 왕들의 때로부터 오늘까지 당한 모든 환난을 이제 작게 여기지 마옵소서”(느헤미야 9:32) 큰 것의 두려움은 광대하신 하나님 만나야 이길 수 있다. 작은 것으 지겨움은 세밀하신 하나님 만나야 감당할 수 있다.

 

내 인생에 크고 작은 것을 하나님과 연결시켜보라. 내가 지금 당면하고 있는 큰 문제는 무엇인가? 소리지르고 배포를 크게 갖는다고 감당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크신 하나님 앞에서 떨어본 경험이 없어서 그렇다. 광대하신 하나님을 만나야 한다. 가장 큰 분 앞에서 나의 죄인됨을 깨닫고 용서함을 경험하면, 세상의 큰 것들과 마주해도 죽지 않겠다는 자신감이 생긴다. 작은 문제에 대한 태도도 변화되어야 한다. 내 인생에 사소한 것에 감사하거나 최선을 다하지 못하는 이유는, 세밀한 마음과 행동을 살피시는 하나님을 경험한 적이 없어서 그렇다. 가장 작은 부분도 알고 계신 분을 만날 때, 내가 행하는 작은 일들의 중요성을 깨닫는다.

 

가장 크신 하나님이, 가장 보잘 것 없게 되셨다.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빌립보서 2:8) 예수님의 가장 낮은 모습이셨던 십자가의 죽음이, 나의 가장 큰 문제인 죄와 사망의 문제를 해결하였음을 믿는가? 그 때에야 비로소 내 인생의 ‘크고’, ‘작은’ 문제를 바라보는 모든 해석이 거듭나게 된다. 모든 큰 일들은 하나님보다 작다. 모든 작은 일들은 하나님이 계시기에 소중하다.

 

내 인생에 크고 작은 문제를 내 기준으로 평가하여 두려워하거나, 내치려 하지 말라. 광대하신 하나님과 마주하라. 세밀하신 하나님을 경험하라. 크고 작은 문제가 다르게 해석될 것이다.

 

[1] 큰 것은 두렵습니다. 작은 것은 두렵습니다. 내가 했던 ‘큰 경험’들, 내가 했던 ‘작은 지겨움’들을 나누어 봅시다.

 

[2-3] 느헤미야 9장 32절을 읽어봅시다. 하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그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이 당한 환란을 어떻게 여기십니까? 하나님 없이 해석하려고 했던 내 인생의 크고 작은 일들을 생각해 봅시다.

 

[4-5] 빌립보서 2장 8절을 읽어봅시다. 예수님이 경험하신 가장 비천한 일은 무엇입니까? 그 사건을 통해 성취된 가장 큰 일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광대하심과 세밀하심을 경험했던 적이 있다면 나누어 봅시다. 그분의 성품을 따라 오늘의 크고 작은 일을 어떻게 다르게 바라보아야 할지도 나누어 봅시다.

“다른 계절 적응하기
(5. 5. 2024.)

전도서 3:1-2

 

내가 속한 시절을 인식하는 것만으로 지혜가 생긴다. 겨울에 씨를 뿌리면 미련한 것이다. 한참 공부해야 할 때를 놓치면 후회를 낳는다. 사람 만나야 할 때 공부 더하면 안 된다. 무엇을 하고 있는지 묻지 말고, 내가 속한 시기가 어느 때인 것 같은지 물어야 한다.

 

하나님은 우리 삶의 시기마다 다른 계절을 허락하시는 분이다. “범사에 기한이 있고 천하 만사가 다 때가 있나니 날 때가 있고 죽을 때가 있으며 심을 때가 있고 심은 것을 뽑을 때가 있으며”(전도서 3:1-2) 모든 열심이 선이 될 수는 없다는 말이다. 계절을 고려하지 않은 열심은 독이 된다. 시기의 변화를 이해해야 우리의 삶에 지속적인 승리가 가능하다.

 

일상에 중요한 적용은 이것이다. 계절에 적응하는 것을 불행으로 생각하면 안 된다! 바뀐 계절에 적응하고 있지 못한 내 자신을 돌아보라. 나이가 이제 많이 들었는데 아직도 주변을 향한 수군거림과 편가르기를 하면 어떻게 하나? 주님 앞에 설 날이 얼마 남지 않았는데 아직도 부동산 걱정하면 어떻게 하나? 대학교 때 놀던 것처럼 30대 때에도 놀면 어떻게 하나? 가정과 아이가 생겼는데 친구 관계를 똑같이 유지할 수는 없는 것 아닌가? 몸이 부서지는 것이 보이는데 어떻게 운동 안하고 버틸 생각을 하나? 하나님이 삶의 계절을 변화시키실 때 그 파도를 즐겨보라. 분명 더 큰 유익이 있다.

 

예수님이 결혼식에 초대받아 가셨다. 포도주가 떨어지자 말씀하신다. “내 때가 아직 이르지 아니하였나이다”(요한복음 2:4) 아직 결혼식을 즐기시겠다는 말이다. 자신이 마실 십자가의 잔을 바라보고 말씀하신 것이다. 아직 살 때였다. 죽을 때가 오자, 단번에 다른 계절에 적응하신다. “이에 제자들에게 오사 이르시되 이제는 자고 쉬라 보라 때가 가까이 왔으니 인자가 죄인의 손에 팔리느니라 일어나라 함께 가자 보라 나를 파는 자가 가까이 왔느니라”(마태복음 26:45-46) 죽음의 계절에 적응하신 예수님 때문에, 나에게는 영원의 계절이 약속되어 있다.

 

주님이 내 대신 죽음의 계절을 감당하셨으니, 이렇게 확신해야 한다. 하나님이 주시는 모든 계절이 선하다. 정말 그렇다. 다른 계절이 왔다고 아쉬워 하지 말고, 옛날 생각 말고, 다른 계절을 살아낼 준비를 하라. 그것이 지혜다.

 

[1] 열심은 적절한 계절을 만나야 합니다. 내가 속한 시절의 변화를 체감하는 최근의 이야기들이 있다면 나누어 봅시다.

 

[2-3] 전도서 3장 1-2절을 읽어봅시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세상에는 무엇이 존재합니까? 내가 요즘 바뀐 계절에 대해 무감각하거나, 회피하거나, 민감하지 못했던 부분들이 있었다면 나누어 봅시다.

 

[4-5] 요한복음 2장 4절과 마태복음 26장 45-46절을 대조해 봅시다. 예수님의 공생애에서 삶의 계절이 어떻게 바뀌었습니까? 예수님은 어떻게 순종하셨습니까? 죽음도 영생으로 바꾸신 약속 앞에서, 오늘 바뀌는 나의 계절을 어떻게 감사하며 적응할 수 있을지 나누어 봅시다.

“온갖 좋은 것
(4. 28. 2024.)

야고보서 1:17

 

살아갈 재미가 없어지는 때가 있다. 더 좋은 것을 기대할 일이 없을 때이다. 바빠질 일만 남았다. 연봉 떨어질 일만 남았다. 돈 나갈 일만 남았다. 건강 나빠질 일만 남았다. 앞으로 더 좋을 것이 없어 보이는데 어떻게 기뻐하나? 기대감이 사라지면 삶을 지속할 에너지를 잃는다.

 

하나님은 아직도 내 삶에 좋은 일을 남겨두신 분이다. “온갖 좋은 은사(Every good)와 온전한 선물(perfect gift)이 다 위로부터 빛들의 아버지께로부터 내려오나니(is from above.)”(야고보서 1:17) 그 분 안에는 아직도 좋은 것(good)이 있다. 그분 안에 아직도 완전한 것(perfect)이 남아있다. 좋고 완전함은 하나님의 속성이다. 하나님을 믿는다면, 내 삶을 내 마음대로 예측하며 좌절하는 삶을 청산해야 한다. 하나님은 여전히 내 삶에 좋고 완벽한 것이 올 것임을 약속하고 계시다.

 

그러므로, 상황과 관계없이 더 좋고 더 완전한 선물을 사모하라. 이 직장을 통해 너무나 좋고 완전한 선물을 내게 주실 것을 끝까지 믿어야 한다. 이 갈등과 가난과 고통을 통해서도 여전히 완전하고 좋은 것은 약속되어 있음을 믿어야 한다. 사이즈도 커져야 한다. 단순히 이 급여 받고, 이 직장만 다니다가 끝나지 않을 것이다. 내가 만나는 교회와 사람들과 경험들을 통해 분명 내 인생, 내 신앙, 내 사업의 영역은 더 커지고, 더 넓어지고, 더 깊어질 것이다.

 

아무 것도 기대할 수 없는 것이 죽음이다. 예수님은 우리의 죽음의 자리에 오셔서 여전히 좋고 완전한 것을 기대할 수 있게 하셨다. 그것이 영생이다.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요한복음 3:15) 신앙은 인생의 마지막에 좋은 것이 있음을 믿는 것이 아니다. 마지막에 좋을 뿐 아니라, 오늘의 여정도, 좋고 완벽한 것을 향한 여정으로 보는 것이다.

 

여전히 가정과 자녀와 진로와 미래에 대해 긍정하라. 여전히 좋은 것이 남아있음을 확신하라. 빛들의 아버지께서 주시는 선물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온갖 좋은 것은 아버지께로부터 온다.

 

[1] 점점 좋아질 때는 살맛이 나다가, 나빠질 일 밖에 보이지 않아 삶의 기대감이 사라졌던 경험들이 있다면 나누어 봅시다.

 

[2-3] 야고보서 1장 17절을 읽어봅시다. 하나님은 무엇을 주시는 분입니까? 하나님의 성품을 신뢰하지 못하고 상황을 예측하며 기대감을 잃어가는 것 자체가 죄가 될 수 있습니다. 회개해야 할 부분들을 나누어 봅시다.

 

[4-5] 요한복음 3장 15절을 읽어봅시다. 예수님은 나 대신 죽으심을 통해 죽음의 자리에서 무엇을 기대할 수 있게 하셨습니까? 오늘 분명 더 좋고 완벽한 것이 올 것을 믿으며 변화되어야 할 내 삶의 태도를 나누어 봅시다.

“경험을 통한 사랑
(4. 14. 2024.)

신명기 32:11-12

 

엄마 돈 함부로 쓰던 청소년이 처음 택배 상하차 아르바이트를 했다. 인생이 이렇게 힘든 건가 느끼며 서럽게 집에 돌아왔다. 식탁 위에 어제와 똑같이 엄마가 두고 간 용돈 5천 원을 본다. 그는 오열했다. 경험을 통해 이미 존재하던 엄마의 사랑이 느껴지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우리의 경험을 통해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이해시키신다. “마치 독수리가 자기의 보금자리를 어지럽게 하며 자기의 새끼 위에 너풀거리며 그의 날개를 펴서 새끼를 받으며 그의 날개 위에 그것을 업는 것 같이 여호와께서 홀로 그를 인도하셨고 그와 함께 한 다른 신이 없었도다”(신명기 32:11-12) 하나님 사랑은 모른다. 그런데 독수리의 자식 사랑을 본다. 그 때 하나님이 우리를 훈련시키는 방식도 이해된다. 하나님은 우리가 일상에서 관찰하고 경험하는 것들을 통해 우리가 하나님을 더 깊이 알아갈 수 있게 하신다.

 

내가 하고 있는 지금 그 경험 속에서 하나님을 찾아보라. 한 자매가 연애를 하다가 헤어졌다. 사랑에 빠지니 그 남자가 늘 생각나고, 생전 하지 않던 일들을 기쁨으로 했다. 그 남자는 떠났지만, 내가 어떻게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합당한 것인지 깊이 깨닫게 되었다고 한다. 연애 경험을 통해 내 안의 하나님 사랑을 발견한 것이다. 개미를 관찰해 본다. 자녀를 낳아 본다. 부모를 떠나 본다. 부하 직원의 반항을 참아 본다. 경험은 하나님 사랑을 더 풍성하게 만든다.

 

예수님은 자신의 마지막 사랑을 암탉에 비유하신다.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선지자들을 죽이고 네게 파송된 자들을 돌로 치는 자여 암탉이 그 새끼를 날개 아래에 모음 같이 내가 네 자녀를 모으려 한 일이 몇 번이더냐 그러나 너희가 원하지 아니하였도다”(마태복음 23:37) 예수님은 자신의 품을 원치 않는 자를 위해 죽으셨다. 암탉을 볼 때 그의 사랑과 인내가 위대해진다. 예수님은 그 품을 떠난 나도 결코 놓지 않으실 것이다.

 

개척 시작할 때 풋내기 전도사였는데, 이제 두 자녀의 아빠가 되었다. 아들을 죽이신 하나님 사랑. 도대체 아들을 어떻게 포기하나? 경험이 그 사랑을 더 크게 느끼게 만든다. 그 사랑 안에 살자.

 

[1] 경험할수록 사랑이 깊어집니다. 관찰이나 경험을 통해 누군가의 마음과 사랑을 더 깊이 느꼈던 적이 있다면 나누어 봅시다.

 

[2-3] 신명기 32장 11-12절을 읽어봅시다. 하나님은 자신의 사랑을 무엇에 비유하고 계십니까? 나의 경험을 통해 (1) 하나님의 사랑을 새롭게 알게 되었거나 (2) 내가 하나님을 사랑하는 방식을 돌아보게 되었던 적이 있다면 나누어 봅시다.

 

[4-5] 마태복음 23장 37절을 읽어봅시다. 예수님은 자신의 마지막 사랑을 무엇에 비유하고 계십니까? 품에 있고 싶지 않았던 우리를 하나님은 어떤 방식으로 사랑하셨습니까? 최근 경험하는 나의 일들을 통해 내가 하나님을 어떻게 더 사랑할 수 있을지 나누어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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