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력의 함정
(3. 9. 2025.)

사사기 16:17

 

매력이 있으면 살기 쉽다. 그래서 세상은 불공평하다. 한 회사 인사팀장이 면접 지원자에게 말했다. “장담하는데, 너는 그냥 대충 가도 뽑힐 거야.” 매력은 남보다 나를 우월하게 만드는 힘이다.

 

하나님보다 매력을 의지하면 망한다. 삼손은 머리가 길고 힘이 셌다. 머리 자르면 힘도 빠진다. 하나님이 주신 매력임을 기억하라는 뜻이다. 매력 앞세우다가 망한다. “삼손이 진심을 드러내어 그에게 이르되 내 머리 위에는 삭도를 대지 아니하였나니 이는 내가 모태에서부터 하나님의 나실인이 되었음이라 만일 내 머리가 밀리면 내 힘이 내게서 떠나고 나는 약해져서 다른 사람과 같으리라 하니라”(사사기 16:17) 남보다 더 가지고, 더 잘하고, 더 우월한 부분이 있는가? 그것이 내 인생을 무너뜨리는 함정이 된다.

 

매력을 철저히 하나님 앞에 절제하라. 매력을 의지하는 것은 우상숭배이다. 매력을 이렇게 정의해보라. 매력이란 ‘그것 때문에 하나님이 덜 필요해지는 것’이다. 돈이 있어서 기도 덜해도 된다. 외모가 되기에 언제나 어필이 가능하다. 젊고 체력이 좋아서 많은 일을 감당할 수 있다. 머리가 좋아서 일처리가 빠르다. 바로 그 방식으로 망한다는 뜻이다. 매력을 의지하면 머리가 잘린다는 사실을 기억하라. 매력을 자랑하면 하나님의 능력이 사라진다.

 

하나님 앞에 서면 매력의 기준이 바뀐다. “기록된 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로마서 3:10) 하나님의 관심을 끄는 의인의 매력을 가진 자는 아무도 없다는 말이다. 나는 하나님 눈에 매력을 끌 수 없었으나, 예수님이 나 대신 자신의 매력을 내게 주셨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 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24) 그분이 완전한 사랑으로 나를 바라보고 계시다는 사실을 믿는가? 비로소 그 때에 세상의 매력을 의지하는 마음을 내려놓을 수 있다.

 

매력으로 하나님을 막지 말라. 주신 매력에 갇혀, 하나님의 매력이 드러나지 않는 함정에 빠지지 말라. 당신을 통해 드러내실 하나님의 영광은 지금 그 매력보다 훨씬 크다.

 

[1] 매력 있으면 살기 쉽습니다. 내 매력을 의지하거나, 누군가의 매력이 부러웠던 경험들을 나누어 봅시다. (재능, 외모, 키, 재력, 언변 등…)

 

[2-3] 사사기 16장 17절을 읽어봅시다. 삼손의 매력은 무엇이었습니까? 그 매력은 어떤 조건을 가지고 있었습니까? 그것은 무슨 뜻입니까? 내가 지금 하나님이 덜 필요해지고, 나의 매력을 의지하여 일을 감당해 나가는 삶의 영역이 있다면 나누어 봅시다.

 

[4-5] 로마서 3장 10절을 읽어봅시다. 이 땅을 바라보는 하나님의 시선에서 매력 있는 존재는 누구입니까? 24절을 읽어봅시다. 예수님을 통해 하나님은 나를 어떻게 바라보십니까? 복음 안에서 나의 정체성을 회복하고, 하나님보다 나의 매력을 앞세우지 않기 위해 삶이 어떻게 변화되어야 할지 나누어 봅시다.

감정을 지배하시는 하나님
(3. 2. 2025.)

시편 30:11

 

감정은 통제할 수 없다. 상황을 마주할 때 자연스럽게 생기는 결과이기 때문이다. 연인과 헤어졌는데 갑자기 기쁜 사람은 없다. 취업에 성공하거나, 병이 나으면 너무나 기쁘다. 정서는 마음의 반사작용이다. 내가 오늘 특정한 감정을 느낀다면, 그 감정을 만들어내는 무엇을 먼저 경험했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우리의 감정을 지배하시는 분이다. “주께서 나의 슬픔이 변하여 내게 춤이 되게 하시며 나의 베옷을 벗기고 기쁨으로 띠 띠우셨나이다”(시편 30:11) 살면서 당연히 느껴지는 감정을 뒤집는 유일한 길은 하나님을 경험하는 것이다. 슬퍼 마땅한 일을 경험해도 하나님을 함께 경험하면 감정이 바뀐다. 분노하는 것이 당연한 일을 경험해도 하나님을 함께 경험하면 평안과 담대함이 생긴다. 내가 참된 신앙인인지 검증할 수 있는 중요한 요소 중의 하나는, 하나님으로 인해 내 감정이 다스려지고 있는지를 점검하는 것이다.

 

나의 감정에 ‘프리패스’ 이용권을 주지 말라. 당연한 감정의 순간에, 하나님을 함께 경험하여 새로운 감정의 지배를 사모하라. “너희 소유를 빼앗기는 것도 기쁘게 당한 것은 더 낫고 영구한 소유가 있는 줄 앎이라(히브리서 10:34) 소유를 빼앗길 때 어떻게 기쁨이 함께하는가? 하나님 안에서는 그것이 가능하다. 영구한 소유를 경험했기 때문이다. 오늘 당신의 통제되지 않는 감정의 순간은 무엇이 있는가? 질투, 분노, 정욕, 우울, 자기연민의 순간에 구원하시는 하나님을 사모해보라. 새로운 감정이 느껴질 수 있다는 것을 경험하면, 다시 예전으로 돌아가지 못한다.

 

당신의 구원을 엄중하게 다시 바라보라.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빌립보서 3:8) 구원이란 내가 원하는 다른 것을 포기하고 싶을 정도로 예수님을 갈망하는 마음이 생기는 것을 경험하는 것이다. 예수님이 나를 위해 죽으셨으며, 그분이 나를 영원히 자신의 자녀 삼으셨다는 것을 믿는가? 당신은 구원 받았는가? 그분을 사모함으로부터 오는 감정의 새로운 지배를 경험하지 못했다면, 당신은 아직 구원받은 증거를 경험하지 못한 것이다. 그 구원을 사모하라. 주실 것이다.

 

세상의 일을 경험하며 따라오는 뻔한 감정을 반복하며 살지 말라. 그 상황과 상관없이 예수님을 구원자로 고백할 때 주어지는 새로운 정서를 느끼며 살라. 새로운 정서는 하나님이 주시는 선물이다. 세상은 이 선물을 줄 수 없다.

 

[1] 기분은 통제하기가 어렵습니다. 특정한 상황 속에서 도저히 빠져나올 수 없는 감정의 지배를 경험했던 적이 있다면 나누어봅시다. (분노, 우울, 불안 등)

 

[2-3] 시편 30편 11절을 읽어봅시다.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하시는 일은 무엇입니까? 내 기분을 나아지게 하기 위해 상황을 회피하거나 통제하려고 했던 잘못된 해결의 시도들을 나누어 봅시다. (도망가기, 다른 자극을 찾기 등)

 

[4-5] 히브리서 10장 34절을 읽어봅시다. 신자가 경험하게 되는 것은 무엇입니까? 빌립보서 3장 8절을 읽어봅시다. 예수님을 나의 구주로 모실 때 하나님이 주시는 구원의 증거는 무엇입니까? 나는 참된 구원을 받았습니까? 상황을 바라보는 새로운 감정을 경험했거나, 그 구원을 사모해야 할 삶의 영역이 있다면 나누어 봅시다.

작은 저항
(2. 23. 2025.)

출애굽기 1:17-19

 

세상은 너무 크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너무 작다. 내 삶의 의미를 나의 역량으로 평가하는 시대다. 매출 얼마 나와? 논문 몇 개 썼니? 회사에서 무슨 일 해? 한달에 얼마 버니? 높이 올라간다고 비참함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외국계 증권사에서 일하는 직원에게 무슨 일을 하냐고 묻자 이렇게 답했다. “중학생 정도면 할 수 있는 마우스 클릭 업무를 하루 종일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 뜻에 순종하는 작은 행동을 사용하시는 분이다. 이집트 바로 왕이 이스라엘 백성이 늘어나자 위협을 느끼고 남자 아기가 태어나면 다 살해하라고 명령한다. 바로 왕과 맞짱을 뜨거나, 나라를 뒤엎을 순 없었다. 할 수 있는 저항을 한다. “그러나 산파들이 하나님을 두려워하여 애굽 왕의 명령을 어기고 남자 아기들을 살린지라”(출애굽기 1:17) 바로 왕이 왜 아기가 안죽었냐고 묻자 어설픈 핑계를 댄다. “산파가 바로에게 대답하되 히브리 여인은 애굽 여인과 같지 아니하고 건장하여 산파가 그들에게 이르기 전에 해산하였더이다 하매”(19) 이런 말이다. “제가 일부러 안 죽인게 아니라 제가 오기 전에 출산이 이미 끝난 거예요.” 바로에게 죽을까봐 덜덜 떨며 대답한 이 힘없는 저항 속에 모세가 나왔다.

 

내게 주신 할 수 있는 작은 순종의 행위를 찾고, 지속하라. 그것이 작은 일이라고 생각하지 말라. 하나님은 크신 분이기에, 우리의 작은 일을 크게 사용하실 수 있는 분이다. 어떻게든 회사와 학교에 사랑과 기쁨, 용서가 흐르게 하라. 나 혼자라도 웃고 다니라. 최대한 따돌림과 뒷담화가 없게 하라. 틈만 나면 전도하고, 나쁜 비리와 음해, 비성경적인 가치들이 최대한 줄어들게 하라. 어설픈 핑계를 대면서라도 악을 막아내라. 뒤에서 수를 써서 좋은 가치들이 심겨질 수 있도록 일하라. 믿는 자들과 연합하고, 바른 가치를 추구하라. 적은 시간과 물질을 떼어 이웃을 섬기고 헌금하라. 나의 작은 발버둥 속에, 모세의 출애굽이 만들어진다.

 

마지막에 순종으로 저항하신 우리의 왕이 계신다. 예수님이다. “네가 너를 구원하여 십자가에서 내려오라 하고”(마가복음 15:30) 십자가에서 인내로 순종하신 작은 저항이, 죽음을 생명으로 뒤집었다. 그 영생의 수혜자임을 믿는가? 나도 내 행동의 무게를 인간의 잣대로 평가해서는 안 된다. 작은 저항이지만, 그것은 순종이기에, 분명 하나님의 크신 일하심이 나타날 것이다.

 

작은 저항을 가치 없다 여기고 타협하거나 안주하지 말라. 순종의 큰 위력을 무시하지 말라. 산파와 같이 내게 주신 특별한 상황이, 특별한 하나님의 일을 만들어내는 모판이 될 것이다.

 

[1] 일주일 내내 하는 일들이 보잘 것 없다고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나의 작음을 느꼈던 경험들을 나누어 봅시다.

 

[2-3] 출애굽기 1장 17절을 읽어봅시다. 바로가 히브리 남자 아기들을 죽이라고 했을 때 산파들은 어떻게 행동하였습니까? 내가 속한 곳의 분위기와 관행에 휩쓸려 하나님의 뜻대로 저항하기 어려웠던 삶의 경험이 있다면 나누어 봅시다.

 

[4-5] 마가복음 15장 30절을 읽어봅시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어떻게 저항하셨습니까? 그 작은 저항 때문에 우리가 얻게 된 것은 무엇입니까? 크신 하나님을 믿고, 내가 결단할 수 있는 삶 속의 작은 순종, 작은 저항들은 무엇이 있을지 나누어 봅시다.

다시 공급되는 힘
(2. 16. 2025.)

잠언 24:16

 

무언가를 계속하는 것은 기적에 가까운 일이다. 계속 사랑하는 일. 매일 밥하는 일. 매주 피부관리 받으러 가는 일. 매일 아침에 일찍 일어나는 일. 계속하는 것은 힘들기에 포기하게 된다. 그래서 내 일상에 포기하는 일은 점점 늘어간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다시 시작할 수 있는 힘을 공급하시는 분이다. “대저 의인은 일곱 번 넘어질지라도 다시 일어나려니와 악인은 재앙으로 말미암아 엎드러지느니라”(잠언 24:16) 의인과 악인의 차이는 다시 시작함에 있다. 모두가 실수하고, 모두가 포기하지만, 하나님은 의인에게 다시 일어설 수 있는 힘을 주신다. “사람이 감당할 시험 밖에는 너희가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하지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하지 아니하시고 시험 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고린도전서 10:13)

 

이렇게 적용할 수 있다. 힘이 없다고 가만히 있지 않고, 다시 힘을 주실 것이라고 믿고 시도하고 행동해보라. 너무 미운 가족에게 절대 나아가지 않겠다고 다짐한 성도가 있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이 아닌 것 같아 내키진 않는 마음을 가지고 연락했는데, 하나님이 자신의 마음을 풀어주셨다고 한다. 새 힘을 공급하신 것이다. 힘이 없다고 가만히 있지 말라. 힘은 내가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다. 다시 할 수 있는 힘을 공급해주시는 분은 하나님이다. 해야 할 일 앞에 다시 서 보라. 힘은 내 안에서 오지 않고 다른 데서 온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기 직전 그 모든 압박감을 감당할 수 없으셨다. 그러나 그 상황에서 기도한 후, 다르게 말씀하신다. “일어나라 함께 가자 보라 나를 파는 자가 가까이 왔느니라”(마태복음 26:46) 다시 일어설 수 있는 힘을 하나님이 주신 것이다. 공급하시는 힘으로 십자가까지 가셨기에 내게 구원이 주어졌음을 믿는가? 나도 동일한 구원을 경험할 것이다. 내 삶의 여정을 마칠 때까지, 하나님은 끊임없이 내게 필요한 힘을 다시 공급하실 것이다.

 

다시 공급받고 싶은 힘은 무엇인가? 구체적으로 생각해보라. 지혜? 재정? 여유? 사랑? 성실? 인내? 기쁨? 평안? 그것이 무엇이든, 하나님은 그 힘을 공급하실 수 있는 분이다. 무너졌던 곳에 다시 힘을 공급받을 것을 믿고 나아가라. 이전과 다른 힘을 경험하게 되리라.

 

[1] 계속하는 힘을 내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힘에 부쳐 중도에 포기한 삶의 여정들을 나누어 봅시다. (관계, 학습, 기상 등등…)

 

[2-3] 잠언 24장 16절을 읽어봅시다. 의인과 악인의 차이는 무엇입니까? 하나님은 우리에게 무엇을 공급하십니까? 내 스스로 내 안에 있는 힘만을 바라보며 선뜻 다시 나서고 있지 못한 내 삶의 영역들이 있다면 나누어 봅시다.

 

[4-5] 마태복음 26장 46절을 읽어봅시다. 십자가 지시기 직전 예수님이 기도하신 후 예수님은 무엇이라고 말씀하셨습니까? 그 힘을 통해 우리가 누리고 있는 유익은 무엇입니까? 예수님 안에서 내 삶에도 동일한 일이 일어날 것을 믿고, 다시 공급되는 힘을 사모하며 직면해야 할 삶의 영역이 있다면 나누어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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