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예비한 곳
(3. 17. 2024.)

출애굽기 23:20

 

길을 잃었다는 생각은 늘 마음을 힘들게 한다. 어렸을 때는 입학, 취업, 합격 등 인생의 표지판을 따라가면 목적지에 닿을 줄 알았다. 그러다 어느 순간 ‘이제는 어디로 가야하지?’라는 질문에 답을 쉽게 내리지 못하게 된다.

 

하나님은 우리를 예비한 곳에 이르게 하시는 분이다. 광야 길에서 모세에게 약속하신다. “내가 사자를 네 앞서 보내어 길에서 너를 보호하여 너를 내가 예비한 곳에 이르게 하리니”(출애굽기 23:20) 광야를 지나고 있지만, 분명 예비하신 곳에 가고 있다. 준비된 자리가 있다. 준비된 위치가 있다. 준비된 단계가 있다. 보이는 상황에 속아서 방황하며 버리는 시간이라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여전히 예비하신 곳을 향해 나아가고 있는 과정이다.

 

분명한 방향성에 대한 확신을 회복하라. 이유 없이 지금 이 자리에 있는 것도 아니고, 목적 없이 내 마음대로 이 시간 보낼 권한이 있는 것도 아니다. 내 눈에 그 길이 보이지 않아도, 지금 이 순간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을 꾸준히 묻고 깨어 있어야 한다. 우리는 아빠 차를 타고 처음 가는 길을 창문으로 바라보는 어린 자녀와 같다. “아빠 여긴 어디야?”, “응 조금만 가면 도착해” 우리가 평안할 수 있는 이유는 내가 길을 알아서가 아니다. 분명한 방향성을 가지고 우리를 이끄시는 분이 있다는 하늘 아버지를 향한 신뢰 때문이다.

 

모든 인생은 확실한 한 가지 방향성을 가지고 있다. 죽음이다. 죽음은 하나님과의 관계가 끊어진 사람들의 ‘영원한 방황’이다. 죽음 앞에서 방황하는 우리 인생을 대신하여 예수님은 분명히 우리가 가야할 곳을 예비해 두셨다. “내가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러 가노니”(요한복음 14:2) 예수님이 내 대신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나의 인생에 영원한 방황이 그치게 됨을 믿는가? 그렇다면 오늘의 인생도 다시 확신해야 한다. 나는 어디로 가는지 잘 모르지만, 분명 주님은 이 땅에서 내 삶을 향해 분명한 방향성을 가지고 이끌고 계신다.

 

올 한해 나의 삶은 어떻게 될까? 분명 하나님이 예비한 곳에 이르게 될 것이다. 순간적으로 어려워지는 마음들을 부여잡고, 영원히 내 삶의 여정을 붙드실 주님을 신뢰하라. 내가 가야 할 곳은 예비되어 있다.

 

[1] 어렸을 때는 정해진 길을 가는 것 같았는데, 어느 순간 인생의 방황을 경험할 때가 있습니다. 어디로 가야할지 몰라 마음이 분주했던 경험들이 있다면 나누어 봅시다.

 

[2-3] 출애굽기 23장 20절을 읽어봅시다. 하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내가 길을 알지 못해도 내 삶의 여정을 어떻게 해석해야 합니까? 인도하심이 흐릿해 진다는 이유로 방향성에 대한 확신을 잃었던 경험들을 나누어 봅시다.

 

[4-5] 요한복음 14장 2절을 읽어봅시다. 예수님은 우리의 죽음 이후의 삶을 위해 어떤 일을 행하셨습니까?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면서 내 삶을 바라보는 관점도 어떻게 회복되어야 하겠습니까? 나누어 봅시다.

“다른 종류의 기도
(3. 10. 2024.)

마가복음 9:28-29

 

같은 영역에 있으나, 다른 수준이라고 느껴지는 것들이 있다. 선릉역 앞 ‘명품수선집’. 양복 수선은 무조건 여기 가야 한다. 강화도 놀러갈 땐 ‘화목 칼국수’. 육수가 정말 끝내준다. 교회 커피 원두는 ‘챔프 커피 알리블렌딩’. 영역은 같다. 그러나 수준이 다르다. 우린 그걸 능력이라고 한다.

 

신자들의 삶에는 수준이 다른 기도를 통해 나오는 삶의 능력이 있다. 제자들이 쫓아내지 못한 귀신을 예수님이 쫓아내자, 제자들이 묻는다. “우리는 어찌하여 능히 그 귀신을 쫓아내지 못하였나이까”(마가복음 9:28) 예수님은 다른 종류의 기도를 소개하신다. “이르시되 기도 외에 다른 것으로는 이런 종류가 나갈 수 없느니라 하시니라”(29) 제자들은 그 전에도 기도를 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분명 다른 능력을 보여주는, 다른 종류의 기도가 있다는 말이다.

 

삶의 더 위대한 변화를 이끌어내고 싶을 때, 다른 종류의 기도를 시작하라. 샤워를 하며 지내지만, 목욕을 해야 할 때가 있다. 삶의 중요하고 무거운 문제들을 두고 고민할 때, 결단해야 할 때, 돌파해야 할 문제가 있을 때, 맹하게 앉아있지 말고 다른 종류의 기도를 계획해보라. (1) 기도의 기간을 정해야 한다. 1주, 2주, 한달 등 먼저 기간을 정하라. (2) 정해진 기도 시간을 사수해야 한다.(매일 밤 10시, 매일 새벽 6시 등) (3) 기도의 양을 정하라. (30분, 1시간 등) 좀 냉정하게 말해보자. 당신이 그 문제가 기도가 필요하지 않다고 계속 생각한다면, 그건 계속 늦어지거나 계속 해결되지 않을 것이다. 당신이 평범하게 기도해도 충분하다고 생각한다면, 결과도 평범할 것이다. 완전한 변화와 역전을 바란다면, 비범하게 기도해야 한다.

 

예수님이 우리를 위한 구원사역을 이루신 마지막 방법은 기도였다. “예수께서 힘쓰고 애써 더욱 간절히 기도하시니 땀이 땅에 떨어지는 핏방울 같이 되더라”(누가복음 22:44) 십자가의 무거운 사역 뒤에는 가장 무거운 기도가 있었다. 기도의 구원이 내 삶에 임했음을 믿는가? 오늘 내 삶도 기도의 구원이 임할 것임을 기대해야 한다.

 

특별한 기도기간을 정해보지 않았다면, 아직 살아계신 하나님의 능력을 경험하지 못했다고 봐도 무방하다. 다른 종류의 기도를 시도하라. 다른 종류의 능력이 삶에 임할 것이다.

 

[1] 같은 영역에 있지만, 다른 수준이라고 느껴져 감탄할 때가 있습니다. 내가 경험했던 일상의 다른 수준의 것들(맛, 음악, 실력, 재능, 인격 등…)을 소개해 봅시다.

 

[2-3] 마가복음 9:28-29을 읽어봅시다. 제자들은 무엇을 물어봤습니까? 그에 대해 예수님은 어떻게 대답하셨습니까?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에 새로운 능력을 경험하게 하시기 위해 주시는 것은 무엇입니까? 과거에 정해진 기도시간을 통해 새로운 삶의 장이 열렸던 경험이 있다면 나누어 봅시다.

 

[4-5] 누가복음 22장 44절을 읽어봅시다. 십자가의 구원사역은 마지막에 무엇을 통해 이루어졌습니까? 내 인생에 하나님이 다른 종류의 기도로 부르신다고 느껴지는 기도제목들이 있다면 나누어 봅시다. 새로운 기도의 계획들도 한번 세워봅시다.

“새로운 재료의 출현
(3. 3. 2024.)

히브리서 13:8

 

오래 사귀면 결혼하기 쉽지 않다. 왜? 시간이 길어지면서 그 사람에게 실망할만한 새로운 재료들이 출현하기 때문에 그렇다. 잠깐 만난 사람은 영원히 사랑할 수 있다. 그러나 영원히 얼굴 볼 사람들은 계속 사랑하기 어렵다.

 

하나님은 나를 영원토록 동일하게 사랑하시는 분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니라”(히브리서 13:8) 내가 어렸을 때도, 성장했을 때에도 그렇다. 내가 성령으로 충만할 때에도, 너무나 크게 무너졌을 때도 마찬가지다. 하나님을 실망시킬만한 내 삶에 새로운 재료가 출현했을 때에도, 그분의 사랑은 변하지 않는다. 내 삶의 재료는 하나님의 사랑을 ‘증감’시키지 않는다.

 

이렇게 적용할 수 있다. 내가 만나는 사람들에 대해서 새롭게 알게 된 점을 미움의 재료로 삼지 말라. 새로운 재료는 내가 더 사랑해야 할 근거가 될 뿐이다. 다정해서 좋아했던 사람이었는데 생각보다 매정한 면이 있음을 발견했는가? 잘 클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자녀가 방황을 심하게 하는가? 꼼꼼한 줄 알았는데 의외로 구멍이 많은가? 내가 알게 된 상대방에 대한 새로운 재료는 자칫 잘못하면 매 순간 미움과 정죄의 근거로 사용될 수 있다.

 

예수님이 이 땅에서 자신이 하나님임을 끊임없이 드러내셨다. 어느정도 해줬으면 받아들여야 하는데, 죽이겠다고 덤빈다. 더 극단적인 적대감이 출현한 것이다. 예수님은 이렇게 대응하셨다. “세상에 있는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니라”(요한복음 13:1) 내 앞날이 어떻게 될지 모르지만, 나의 마지막 날에도 동일한 사랑으로 그분이 나를 받아주실 것을 믿는가? 영원토록 변하지 않는 동일한 사랑 받았다면, 나도 그렇게 살아야 한다.

 

상대에게 실망할만한 새로운 재료를 발견했을 때, 눈빛 바뀌지 말라. 실망감 비추지 말라. 어떻게 하면 더 사랑할지, 동일하게 품을 수 있을지 고민해보라. 상대는 원래 그런 사람이었다. 당신도 원래 그런 사람 아니었는가? 예수님이 나를 품으셨다. 나에게 사랑하라고 주신 사람, 나도 끝까지 사랑해야 한다. 새로운 재료는, 사랑의 재료이다.

 

[1] 오래 만난 사람에게는 실망감을 느끼기 마련입니다. 멀고 애매한 관계에서는 오히려 친밀함과 즐거움을 느끼고, 오래되고 더 깊어지며 실망감 때문에 마음이 어려웠던 경험이 있다면 나누어 봅시다.

 

[2-3] 히브리서 13장 8절을 읽어 봅시다. 예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타인에 대해서 새롭게 알게 된 재료들이 쉽게 미움의 재료로 사용될 수 있는 순간들을 나누어 봅시다.

 

[4-5] 요한복음 13장 1절을 읽어봅시다. 마지막 극단의 적대감을 표출한 세상에 대한 예수님의 반응은 무엇이었습니까? 예수님은 나를 어떻게 사랑하십니까? 나도 가까운 사람들에 대해 더 많이 알게 될수록, 어떻게 조심하고, 어떻게 지혜롭게 대해야 할지 나누어 봅시다.

 

 

“줄일 줄 아는 사람
(2. 25. 2024.)

베드로전서 4:8

 

영향력의 시대이다. 이제 큰 기업의 광고보다 인플루언서 한 명이 물건을 홍보하는 힘이 더 크다. 작은 사건 하나가 미디어를 타면 사회 전체의 마녀사냥감이 된다. 세상은 모든 일을 키우는 데 능하다.

 

하나님은 신자를 ‘줄일 수 있는 사람’으로 부르신다. “무엇보다도 뜨겁게 서로 사랑할지니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느니라”(베드로전서 4:8) 하나님의 사람들은 세상의 여러가지 갈등과 분노를 줄이는 역할을 해야 한다. 나를 거쳐가면 화가 줄어들고, 염려가 줄어들고, 갈등이 줄어들고, 문제가 줄어들어야 한다.

 

축소의 영향력을 추구하라. 증폭시키는 영향력만을 추구하지 말라. 이렇게 자신에게 물어보라. (1) 나는 요즘 회사나 가정에서 누구에게 무슨 말을 듣고, 무슨 말을 전달하고 있는가? (2) 나를 거쳐가면 상대와 내 안에 부정적인 것들이 커지는가 줄어드는가? 일을 키워서 해결하려는 사람은 초보이다. 하나도 드러나지 않는데 일을 해결하는 사람은 고수이다. 가장 조용히 일을 처리하는 방식을 배워야 한다.

 

예수님은 어떤 분이신가? 줄일 줄 아는 분이셨다. “우리를 거스르고 불리하게 하는 법조문으로 쓴 증서를 지우시고 제하여 버리사 십자가에 못 박으시고”(골로새서 2:14) 우리의 죄를 단톡방에 올리지 않으셨다. 사내게시판에 폭로하지도 않으셨다. 그분은 우리의 죄를 자신의 몸에 쏟으심으로 ‘줄이셨다.’

 

줄이고 줄여 내 죄를 완전히 지워 버리신 그분 앞에서 나도 그렇게 살아야 한다. 죄를 없애신 예수님의 권세가 내 삶에도 흐른다. 나를 만나는 사람과 문제 앞에서 그 모든 부정적인 것들은 줄어들 것이다. 그 지혜로 행하라. 세상을 조용히 섬기는 자가 될 것이다.

 

[1] 요즘 작은 문제들이 크게 확산되는 모습들을 보며 두려움을 느꼈던 적이 있습니까? 삶에서 경험했던 영향력들을 나누어 봅시다.

 

[2-3] 베드로전서 4장 8절을 읽어봅시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무엇을 명하십니까? 내 삶의 여러 영역들 속에서 나를 통해서 문제가 커지거나 작아졌던 경험들이 있다면 나누어 봅시다.

 

[4-5] 골로새서 2장 14절을 읽어봅시다. 예수님은 우리의 죄를 어떻게 처리하셨습니까? 내 삶에도 여전히 예수님의 권세가 흐름을 믿습니까? 그 분의 방식대로 내가 현재 당면하고 있는 일들을 어떻게 처리하면 좋을지 나누어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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