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을 넘었을 때
(5. 25. 2025.)

창세기 3:6

 

인생은 선을 넘는 여정이다. “한번만 더 술 마시면 같이 못 살 줄 알아!” 또 술 마시고 들어온다. “한번만 더 장난치면 엄마한테 혼날 줄 알아!” 한번 더 장난친다. “이번에도 점수 떨어지면 알아서 해!” 점수가 더 떨어진다. 아무리 선을 세워도, 인간은 그 선을 넘는다.

 

복음이란 선을 넘었을 때 다르게 반응하는 것이다. 하나님이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으면 죽는다고 경고하셨다. 먹으면 선을 넘는 것이다. “여자가 그 나무를 본즉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인지라 여자가 그 열매를 따먹고 자기와 함께 있는 남편에게도 주매 그도 먹은지라”(창세기 3:6) 선을 넘었으니 죽어야 하는데, 오히려 보호받았다.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과 그의 아내를 위하여 가죽옷을 지어 입히시니라”(21) 영적으로는 하나님과의 관계가 단절되었으나, 육체적으로는 바로 죽지 않았다. 선을 넘었을 때에도, 구원하시기 위한 은혜의 계획이 실행되기 때문이다.

 

상대가 선을 넘었을 때, 극단적으로 반응하지 말라. 선을 넘지 않게 해야겠지만, 넘었다면 그 다음 계획도 세워야 한다. 그 다음 계획이 포기인 것은 복음이 아니다. 회복의 계획, 용서의 계획, 은혜의 계획이 있어야 한다. 상대가 업무적으로 큰 실수를 했더라도, 너무 빈틈없이 몰아붙이지는 말라. 부부 사이에 말도 안되는 실망이 있었는가? 다시 풀어볼 수 있는 대화의 여지를 주라. 자녀가 아무리 말을 안 들어도, 편하게 밥먹고 집 안에서 쉴 수 있는 한결 같은 사랑을 유지하라. 선을 넘어도 언제나 새로운 길이 있다! 그것이 복음을 믿는 자들의 여유로움이다.

 

왜 이렇게 살아야 하는가? 상대가 선을 넘기 전에, 내가 먼저 선을 넘은 사람이었음을 인정하는 죄인된 마음이 있기 때문이다. “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을 인하여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너희는 은혜로 구원을 받은 것이라”(에베소서 2:3-5)

 

내가 죄인이었지만, 나 대신 죽음을 넘으신 그분 때문에 나도 현세의 경계를 지나 영생으로 넘어갈 것을 믿는가? 오늘의 구원도 그렇게 올 것이다. 예수님 안에서, 그어둔 선에서 멈추지 말라. 실망시키고, 범죄하고, 기대를 저버렸어도 그 선을 넘었을 때 주실 새로운 은혜를 구하라. 선을 넘었어도 살 길이 열릴 것이다.

 

[1] 인간은 아무리 선을 그어 놓아도, 그 선을 못 지키고 넘어갑니다. 나와 내 주변 사람들이 끊임없이 선을 지키지 못하고 넘어가며 실망을 안겨줬던 경험들을 나누어 봅시다.

 

[2-3] 창세기 3장 6절을 읽어봅시다.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으면 어떤 결과가 예정되어 있었습니까? 아담과 하와는 어떻게 행동했습니까? 21절을 읽어봅시다. 그들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내가 신앙을 가졌음에도, 내가 볼 때 선을 넘은 행동과 상황에 너무 극단적으로만 반응하는 삶의 영역이 있다면 나누어 봅시다.

 

[4-5] 에베소서 2장 3-5절을 읽어봅시다. 우리가 선을 넘은 상황에서 다르게 반응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선을 넘을 때에도 새로운 은혜의 계획이 펼쳐질 것을 확신할 수 있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오늘 선을 넘은 실망스러운 내 자신과, 실망스러운 상대방을 어떤 방식으로 다시 대할 수 있을지 나누어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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