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의 간접성
(4. 21. 2024.)

잠언 16:7

 

엄마가 보는 앞에서 자녀가 공부를 열심히 했더니, 엄마가 엄청 비싼 음식을 사줬다. 공부했을 뿐인데, 왜 음식이 오는가? 이 자녀는 ‘엄마 유니버스(universe)’ 안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모든 행위에 대한 보상이 엄마를 통해 온다.

 

신자의 삶의 모든 행위는 하나님 앞에서 연결되어 있다. “사람의 행위가 여호와를 기쁘시게 하면 그 사람의 원수라도 그와 더불어 화목하게 하시느니라”(잠언 16:7) 여호와를 기쁘시게 하기 위한 행위를 했을 뿐인데, 나랑 원수였던 사람의 마음이 풀리게 되는 일이 벌어진다는 말이다. 하나님은 내가 ‘개별적’으로 하는 모든 행위를 ‘종합적’으로 살피신다. 신자의 삶에 나만 아는 사적인 일이란 없다. 우리가 행하는 모든 사적인 일들은 하나님 한 분 앞에서 하는 일이 된다. 이것을 ‘코람데오’(coram deo, 하나님 앞에서)라고 한다.

 

그러므로 우리의 삶은 언제나 구원의 간접성을 기대할 수 있다. 내가 감당할 수 없는 복잡하고 어려운 일들은 어떻게 풀릴까? 여호와를 기쁘시게 하면서 풀린다. 오늘 이 단순한 삶을 회복하라. 개별적인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지 말고, 모든 일에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것을 생각하며 행하라. 분노를 죽였을 뿐인데 내 필요가 채워질 것이다. 죄를 끊었을 뿐인데 진로가 열릴 것이다. 기도를 시작했을 뿐인데 자녀가 변할 것이다. 소외된 사람을 격려했을 뿐인데 승진이 빨라질 것이다. 세상이 자신의 이익을 향해 ‘개별적’이 되어 갈 때, 신자들은 점점 더 하나님 앞에서 ‘종합적’으로 산다.

 

예수님이 인류 구원의 큰 문제를 어떻게 감당하셨는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것을 찾은 것이다. “이르시되 아빠 아버지여 아버지께는 모든 것이 가능하오니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하시고”(마가복음 14:36) 아버지의 뜻을 구하며 십자가에 죽으셨을 때, 우리에게 구원이 주어졌다. 우리의 일상도 마찬가지다. 여호와를 기쁘시게 하는 일만 구할 때, 그분이 계획하신 놀라운 일들이 우리 삶의 전 영역에 펼쳐질 것이다.

 

내 힘으로 나를 구원하려고 발버둥치는 직접적인 구원의 추구를 그치라. 구원의 간접성 속에 살라. 여호와를 기쁘시게 하면, 원수와 화목해진다. 신자들에게만 주신 비밀의 약속이다.

 

[1] 부모, 친구, 상사 등 한 존재가 좋아하는 일을 했더니, 그로부터 다른 좋은 일이 흘러나왔던 경험이 있다면 나누어 봅시다.

 

[2-3] 잠언 16장 7절을 읽어봅시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약속은 무엇입니까? 내 삶의 모든 행위를 나의 이익과 편의에 따라 개별적으로 생각하고 있지는 않았는지 나누어 봅시다.

 

[4-5] 마가복음 14장 36절을 읽어봅시다. 우리의 구원은 어떻게 이루어졌습니까? 주님이 주실 종합적인 구원을 믿으며, 오늘 내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노력해야 할 삶의 모습들을 나누어 봅시다.

“경험을 통한 사랑
(4. 14. 2024.)

신명기 32:11-12

 

엄마 돈 함부로 쓰던 청소년이 처음 택배 상하차 아르바이트를 했다. 인생이 이렇게 힘든 건가 느끼며 서럽게 집에 돌아왔다. 식탁 위에 어제와 똑같이 엄마가 두고 간 용돈 5천 원을 본다. 그는 오열했다. 경험을 통해 이미 존재하던 엄마의 사랑이 느껴지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우리의 경험을 통해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이해시키신다. “마치 독수리가 자기의 보금자리를 어지럽게 하며 자기의 새끼 위에 너풀거리며 그의 날개를 펴서 새끼를 받으며 그의 날개 위에 그것을 업는 것 같이 여호와께서 홀로 그를 인도하셨고 그와 함께 한 다른 신이 없었도다”(신명기 32:11-12) 하나님 사랑은 모른다. 그런데 독수리의 자식 사랑을 본다. 그 때 하나님이 우리를 훈련시키는 방식도 이해된다. 하나님은 우리가 일상에서 관찰하고 경험하는 것들을 통해 우리가 하나님을 더 깊이 알아갈 수 있게 하신다.

 

내가 하고 있는 지금 그 경험 속에서 하나님을 찾아보라. 한 자매가 연애를 하다가 헤어졌다. 사랑에 빠지니 그 남자가 늘 생각나고, 생전 하지 않던 일들을 기쁨으로 했다. 그 남자는 떠났지만, 내가 어떻게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합당한 것인지 깊이 깨닫게 되었다고 한다. 연애 경험을 통해 내 안의 하나님 사랑을 발견한 것이다. 개미를 관찰해 본다. 자녀를 낳아 본다. 부모를 떠나 본다. 부하 직원의 반항을 참아 본다. 경험은 하나님 사랑을 더 풍성하게 만든다.

 

예수님은 자신의 마지막 사랑을 암탉에 비유하신다.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선지자들을 죽이고 네게 파송된 자들을 돌로 치는 자여 암탉이 그 새끼를 날개 아래에 모음 같이 내가 네 자녀를 모으려 한 일이 몇 번이더냐 그러나 너희가 원하지 아니하였도다”(마태복음 23:37) 예수님은 자신의 품을 원치 않는 자를 위해 죽으셨다. 암탉을 볼 때 그의 사랑과 인내가 위대해진다. 예수님은 그 품을 떠난 나도 결코 놓지 않으실 것이다.

 

개척 시작할 때 풋내기 전도사였는데, 이제 두 자녀의 아빠가 되었다. 아들을 죽이신 하나님 사랑. 도대체 아들을 어떻게 포기하나? 경험이 그 사랑을 더 크게 느끼게 만든다. 그 사랑 안에 살자.

 

[1] 경험할수록 사랑이 깊어집니다. 관찰이나 경험을 통해 누군가의 마음과 사랑을 더 깊이 느꼈던 적이 있다면 나누어 봅시다.

 

[2-3] 신명기 32장 11-12절을 읽어봅시다. 하나님은 자신의 사랑을 무엇에 비유하고 계십니까? 나의 경험을 통해 (1) 하나님의 사랑을 새롭게 알게 되었거나 (2) 내가 하나님을 사랑하는 방식을 돌아보게 되었던 적이 있다면 나누어 봅시다.

 

[4-5] 마태복음 23장 37절을 읽어봅시다. 예수님은 자신의 마지막 사랑을 무엇에 비유하고 계십니까? 품에 있고 싶지 않았던 우리를 하나님은 어떤 방식으로 사랑하셨습니까? 최근 경험하는 나의 일들을 통해 내가 하나님을 어떻게 더 사랑할 수 있을지 나누어 봅시다.

“규모무관
(4. 7. 2024.)

시편 3:5-6

 

나이가 들어갈수록 웃음기가 사라진다. 삶의 문제의 규모들이 커져서 그렇다. 학교 미술 준비물을 안 가져 온건 괜찮다. 그러나 인생의 준비가 안 되어 있는 것은 크다. 초등학교 친구 중 하나가 날 싫어하면 괜찮다. 결혼까지 생각했던 사람이 날 싫다고 하면 크다. 규모가 커지면, 염려도 함께 커진다.

 

하나님은 문제의 규모와 상관없이 나를 보호하시는 분이다. “내가 누워 자고 깨었으니 여호와께서 나를 붙드심이로다 천만인이 나를 에워싸 진 친다 하여도 나는 두려워하지 아니하리로다”(시편 3:5-6) 아들 압살롬이 반란을 일으켜 온 나라가 자기를 죽이러 달려왔을 때 했던 고백이다. 천만인이라는 규모가 인상깊다. 다윗은 문제의 규모와 상관없이 편하게 잤다. 왜? 하나님은 문제의 규모와 무관한 분이시기 때문이다.

 

문제의 크기에 따라서 흔들리지 않아야 한다. 하나님만이 크신 분이기에, 그분 앞에 큰 문제는 없다. 큰 문제도 하나님 손 안에 있으며, 작은 문제 속에 하나님을 의지했던 동일한 방식으로 풀리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1) 작은 문제라고 가볍게 여기지 말고 겸손해야 한다. 하나님이 붙드시지 않으면 규모와 상관없이 무너질 수밖에 없다. (2) 큰 문제라고 위축되지 말고 담대해야 한다. 붙드시는 하나님만 계시면 규모와 상관없이 승리할 것이다. 돈의 액수가 커져도 두려워하지 말라. 갈등의 골이 깊어져도, 자녀 마음의 완고함이 깊어져 가도 담대해야 한다. 큰 문제는, 크신 하나님이 푸신다.

 

사람의 가장 큰 규모의 문제는 무엇인가? 죽는 문제다. 죽음을 해결하신 분이 예수님이시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요한복음 5:24) 규모와 무관하게 나를 구원하신 주님 앞에 오늘 확신해야 한다. 내가 소유한 구원은 규모에 무관한 구원이다.

 

일부러 하나님이 삶의 문제를 키우실 때, 나의 믿음도 함께 키우시는 여정이라고 생각해 보라. 작은 문제를 해결하셨던 동일하신 하나님의 일하심을 기대하라. 내가 섬기는 나의 하나님이 훨씬 커지는 계기가 될 것이다.

 

[1] 삶의 문제의 규모가 커지면서 삶에 대한 압박감도 커지게 됩니다. 규모가 커지면서 믿음이 위축되었던 나의 삶의 경험들을 나누어 봅시다. (재정의 규모, 질병의 규모, 갈등의 규모 …)

 

[2-3] 시편 3편 5-6절을 읽어봅시다. 다윗은 무엇이라고 고백하고 있습니까? 하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내가 하나님을 잃어버리고 규모에 가장 큰 영향을 받는 삶의 영역은 무엇인지 나누어 봅시다.

 

[4-5] 요한복음 5장 24절을 읽어봅시다. 인생에 가장 큰 규모의 문제는 무엇입니까? 예수님은 그것을 어떻게 해결하셨습니까? 요즘 예수님의 능력을 의지하도록 나를 이끄시는, 큰 규모의 삶의 문제는 무엇인지 나누어 봅시다.

 

 

“지속은 하나님께
(3. 31. 2024.)

학개 2:5

 

인생에서 제일 쉬운 것이 한 번 하는 것이다. 제일 어려운 것은? 지속하는 일이다. 결혼 생활 30년, 근속 30년은 그 자체로 위대하다. 지속이 능력이라서 그렇다. 유튜브 채널 하나가 소위 ‘떡상’하면 바로 그 순간부터 추락을 준비한다고 한다. 그만큼 지속은 어렵다.

 

지속할 수 있는 힘은 하나님이 주시는 것이다. 포로귀환 이후 성전을 다시 지어야 하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신다. “너희가 애굽에서 나올 때에 내가 너희와 언약한 말과 나의 영이 계속하여 너희 가운데에 머물러 있나니 너희는 두려워하지 말지어다”(학개 2:5) 하나님이 계속 함께하시니, 지속할 능력이 생길 것이라는 말이다. 나의 판단과 성실을 내려놓고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할 때, 지금 마땅히 해야 할 일을 지속할 힘을 주신다.

 

하나님 없이 지속성을 담보할 수 있다는 교만함을 버리라. 내가 만남을 지속하는 것이 아니다. 내가 원하는 날까지 이 일을 계속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주님이 지속하게 해주셔야 한다.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너무 지겨운 일, 너무 사랑하기 어려운 사람을 만났더라도, 하나님이 지속하게 하시면 계속 버틸 힘이 생긴다. 지속의 주인은 하나님이기 때문이다.

 

사람은 자신의 인생을 스스로 지속할 힘이 없다. 죽음은 사람의 지속성을 영원히 빼앗아 간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하신 일은 무엇인가? ‘영원’이라는 지속성을 주신 것이다.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이 내 말을 지키면 영원히 죽음을 보지 아니하리라”(요한복음 8:51) 이제 부활주일도 이해된다. 예수님의 부활을 믿는다는 것은 무엇인가? 예수님이 영원한 생명의 지속성을 내게 주셨음을 믿는 것이다.

 

그 믿음 속에 오늘도 살 수 있다. 주님 온전히 섬길 때, 내가 지켜내야 할 것을 계속 할 수 있는 힘을 주실 것이다. 내가 지속할 수 있다는 자만함을 버리고, 사랑도, 공부도, 사업도, 건강도, 지속하게 하시는 주님을 의지하라. 지속은 하나님께만 있다.

 

[1] 순간적인 성공은 쉬운데, 수성하고, 버티고, 지속하기는 어렵습니다. 관계나 학업, 사업 등을 지속하는 데에 어려움을 느꼈던 경험들이 있다면 나누어 봅시다.

 

[2-3] 학개 2장 5절을 읽어봅시다. 성전을 건축할 때 하나님은 어떤 약속을 주십니까? 하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인간적인 선호, 상황, 성실에 의지하여 지속할 수 있다고 자만하고 있는 삶의 영역이 있었다면 나누어 봅시다.

 

[4-5] 요한복음 8장 51절을 읽어봅시다. 모든 사람의 지속성이 끊어지는 사건은 무엇입니까? 예수님이 죽으시고 부활하시면서 우리에게 주신 것은 무엇입니까? 예수님을 믿는 믿음 안에서 지속하게 하시는 힘을 구해야 할 삶의 영역을 나누어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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