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당의 구체화
(4. 3. 2022.)

고린도전서 10:13

 

무엇이든 할 만할 때는 이 말을 모른다. 그런데 벅차다고 느낄 때 처음으로 이 단어를 배운다. ‘감당’할 수 없을 것 같다. 감당이 어렵다는 생각이 들면, 인생의 부담과 염려가 시작된다.

 

하나님은 신자에게 감당할 수 있는 시험만 주신다. “사람이 감당할 시험 밖에는 너희가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하지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하지 아니하시고 시험 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고린도전서 10:13) 감당하게 하신다는 말은, 당한 이 일이 궁극적으로 손해가 아닌 유익이 되도록 이끄신다는 말이다. 그래서 신자는 이렇게 생각해야 한다. “이 일도 무조건 감당할 수 있다.” 나의 능력이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이기 때문이다.

 

어떻게 감당하는가? 감당을 구체화하라. 하나님은 감당할 수 있는 다양한 도구를 주실 것이다. 시간이 없어 감당 못한다 하지 말라. 더 나은 능력과 재능으로 이길 수도 있다. 병 들었다고 주눅들지 말라. 내면을 강건하게 하셔서 절망을 이길 것이다. 돈이 없어 감당 못한다 하지 말라. 주님 뜻 따를 때 내 지갑은 비었어도 분명 필요를 채우시는 기적이 따라올 것이다. 감당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구체적으로, 다양하게 느껴야 한다. 내가 감당해오던 기존의 방식을 내려놓으라.

 

마귀가 예수님을 시험했다. 돌이 떡에 되게 하라, 성에서 뛰어내리라, 내게 경배하라는 시험을 다 감당하셨다. 그런데 마지막 십자가에서 죽으신다. 죽으셨으니, 시험을 감당 못하신 것 아닌가? 아니다. “죽음으로” 감당하신 것이다. 이것이 감격이다. 하나님께서 ‘죽으라’고 말씀하신 시험에, 죽으심으로, 우리의 죄는 사라지고, 부활과 영생이 주어졌다.

 

이제 예수님 안에 사는 나의 삶은 죽는 일도, 감당할 수 있는 일이 된다. 하나님이 죽으라 하실 때 난 그것도 감당할 수 있을 것이다. 죽음을 이기는 것도 보장되어 있는데, 이 땅의 무슨 시험을 두려워하겠는가? 무엇이든 감당할 수 있다. 무조건 그렇게 생각하라. 다양한 방법으로, 어떻게든 감당하게 하실 것이다. 나의 해결책에 집착 말고, 감당하게 하시는 주님 의지하라. 무조건 감당할 수 있다.

 

[1] ‘이건 감당하기 어렵겠다’라고 처음 느꼈던 인생의 무게가 있습니까? 나누어봅시다.

 

[2] 고린도전서 10장 13절을 읽어봅시다. 하나님이 믿는 자들에게 주신 약속은 무엇입니까?

 

[3-5] 나의 해결 방식에만 집착하며 ‘감당하기 어려울 거야’라고 생각되는 삶의 영역이 있습니까? 주님 말씀을 신뢰할 때, 다양한 방법으로 시험을 감당하게 하셨던 경험이 있다면 나누어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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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쾌함의 선물
(3. 27. 2022.)

말라기 1:8

 

수능 전날 밤을 새는 사람은 없다. 컨디션이 상쾌해야 성적이 나오니까 그렇다. 백수는 밤새 놀지만, 직장인은 일찍 자기 바쁘다. 내일의 성과를 위해서는, 오늘 상쾌함을 확보해야 한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줄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은 상쾌함이다. 예물을 가져오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하나님이 책망하신다.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가 눈 먼 희생 제물을 바치는 것이 어찌 악하지 아니하며 저는 것, 병든 것을 드리는 것이 어찌 악하지 아니하냐 이제 그것을 너희 총독에게 드려 보라 그가 너를 기뻐하겠으며 너를 받아 주겠느냐”(말라기 1:8) 좋은 것, 신선한 것 다 빼놓고, 컨디션 나쁜 예물들만 가져왔다. 하나님은 그 행위를 ‘악하다’라고 규정하신다. 상대에게 줘야 할 상쾌함을 내가 빼앗는 것은 죄이다.

 

나의 상쾌함을 점검하라. 토요일 밤, 밤새 놀고 즐기며 상쾌함을 다 써버리고 졸고 있는 모습으로하나님 앞에 나오고 있지는 않은가? 피곤한 상태에서 자녀와 남편, 아내를 대하고, 업무를 대하며 마땅히 드려야 할 상쾌함을 내가 가로채고 있는 것은 아닌가? 나의 상쾌함은 누구에게 드려지고 있는가? 소중한 사람, 소중한 업무가 있다면 나의 상쾌함을 선물로 준비하라. 내가 상쾌한 곳에 나의 유익이 있다. 상쾌한 기도시간, 상쾌한 예배시간을 확보하라. 상쾌한 데이트 시간, 상쾌한 유튜브 시간만 확보하고 있다면 유익의 왜곡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우리에게 주신 것은 무엇인가? 상쾌한 자신의 온전한 삶이었다. “모든 일에 우리와 똑같이 시험을 받으신 이르되 죄는 없으시니라”(히브리서 4:15) 똑같이 시험을 받으셨다. 그러나 죄로 무너지지 않으셨다. 끝까지 지키신 신실함으로 십자가로 가셨다. 의인이셨기에, 죄를 사하실 수 있었다. 컨디션이 최상이셨기에, 최악의 우리를 품어 주실 수 있었다. 내 삶도 똑같다. 하나님 앞에서 좋은 컨디션, 상쾌한 컨디션을 유지하려고 해보라. 내게 벌어진 모든 악과 고난을 품고 극복할 능력도 함께 생길 것이다.

 

소중한 사람 앞에서, 상쾌함도 함께 준비하자. 맨날 피곤해 보인다는 말만 듣지 말자. 그것을 보는 상대도 피곤하다. 나의 상쾌함을 선물하라. 상대는 당신의 좋은 컨디션에 고마워할 것이다.

 

[1] 하루 중 컨디션이 제일 좋을 때, 제일 나쁠 때는 언제입니까? 나의 상쾌함에 따라 상대를 대하는 나의 감정과 태도가 달라졌던 경험이 있다면 나누어봅시다.

 

[2-3] 말라기 1장 8절을 읽어봅시다. 하나님은 컨디션이 좋지 않은 예물을 가져오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무엇이라고 말씀하십니까?

 

[4-5] 히브리서 4장 15절을 읽어봅시다. 예수님이 우리에게 주신 선물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어떤 능력을 발휘했습니까? 그 능력이 내 안에도 거하고 있음을 믿으며, 상쾌한 컨디션을 위해 변화되어야 할 나의 삶의 패턴을 나누어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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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이 불편한 사람처럼
(3. 20. 2022.)

마태복음 5:27-30

 

몸에 병이 있거나, 장애가 있는 분들이 많다. 평범한 삶을 누리는 것이 어렵다. 걷기 힘들고, 보기 힘들고, 듣기 어려운 분들을 만날 때마다 내 삶의 감사를 느낀다. 분명 그들은 부활 때에 온전한 몸을 갖게 될 것이다.

 

하나님은 신자인 우리도 몸이 불편한 사람처럼 살라고 말하신다. “만일 네 오른 눈이 실족하게 하거든 빼어 내버리라 백체 중 하나가 없어지고 온 몸이 지옥에 던져지지 않는 것이 유익하며”(마태복음 5:29) 모두들 음란하게 산다. 그런데 나만 눈이 없어 불편한 사람처럼 살라는 말이다. 주변에서 말할 것이다. “넌 눈이 없니?” 그럼 잘 사는 것이다. “네 오른손이 너로 실족하게 하거든 찍어 내버리라 네 백체 중 하나가 없어지고 온 몸이 지옥에 던져지지 않는 것이 유익하니라”(30) 손이 없는 사람처럼 살아야 한다. “넌 손이 없니?” 이것이 바로 신자가 들어야 할 말이다.

 

당신에게 건강한 몸을 주셨는가? 몸이 불편한 사람처럼 살라. 그것이 그리스도인의 삶이다. 건강하다는 말은, 하나님을 위한 장애가 있다는 말로 받아들이라. 화 못내는 장애가 있는 것처럼 살라. 이익을 추구할 줄 모르는 사람처럼 베풀라. 성욕이 없는 사람처럼 순결을 추구하라. 하나님만 붙들고 절뚝거리며 이 땅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그리스도인이다.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이 땅에서 장애인이다.

 

예수님이 이 땅에서 몸이 불편하신 분처럼 우리를 사랑하셨다. “네가 너를 구원하여 십자가에서 내려오라”(마가복음 15:30) 이렇게 물은 것이다. “능력이 있다며, 어디 몸이 불편하신가보네? 왜 못내려와?”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몸이 불편한 분이 되셨다. 나의 능력을 철저히 죽이고, 오직 하나님을 통한 승리를 추구하셨기에, 우리를 평생 불편하게 만드는 죄와 죽음이 제거된 것이다.

 

그 예수님을 믿는다면 오늘도 확신하라. 남들은 뻔히 잘만 하는 일들이지만, 오직 하나님 때문에 불편하게 살아야 하는 순간이 온다면, 그것은 분명히 내 삶을 가로막는 진짜 죄를 제거하는 과정이 될 것이다. 몸이 불편한 사람처럼 살아보라. 어느새 주변에 모든 악이 사라지며 시온의 대로가 열릴 것이다.

 

[1] 남들은 평범하게 사는데, 몸이 불편하여 삶에 어려움을 겪는 것을 본 적이 있습니까? 장애가 아니더라도, 남들은 쉽게 하는데, 나는 쉽게 누리지 못했던 삶의 형편이 있다면 나누어봅시다.

 

[2] 마태복음 5장 29절을 읽어봅시다. 예수님은 음욕에 대해 어떻게 살라고 말씀하십니까? 30절도 읽어봅시다. 예수님은 신자가 어떤 삶을 살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까?

 

[3-5] 내가 그리스도인으로서 몸이 불편한 사람처럼 사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언제입니까? 그 때에 보장되어 있는 것은 무엇입니까? 내가 감당해야할 하나님을 위한 불편함을 나누어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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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택할 수 있을 때”
(3. 13. 2022.)

신명기 30:19

 

삶은 두 시기로 나뉜다. 선택할 수 있을 때가 있고, 선택할 수 없을 때가 있다. 자녀를 낳는다. 아들인가 딸인가? 선택할 수 없다. 받아들여야 한다. 그 사람과 결혼할까 말까? 이것은 내가 선택할 수 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에 들어가기 직전에, 모세가 마지막으로 한마디 한다. 선택할 수 있을 때 선택하라는 것이다 .”내가 생명과 사망과 복과 저주를 네 앞에 두었은즉 너와 네 자손이 살기 위하여 생명을 택하고”(신명기 30:19) 생명을 택하는 ‘선택을 통해’ 전진해야 한다는 말이다. 삶에는 의외로 내가 결정할 수 있는 일이 많다. 누가 욕을 하든, 누구 눈치가 보이든, 핑계대지 말고 내가 매번 잘 선택하고, 결정해야 한다. 그래야 잘 산다.

 

부모가 특정한 전공, 특정한 회사에 가라고 한다. 그래서 어쩔 수 없다고 핑계대지 말라. 내가 선택 안 하면 나중에 부모 핑계 대게 되어 있다. 너무 오래 사귀어서 결혼할 수밖에 없다는 둥, 남에게 잘 보이기 위해 피부와 옷에 돈을 쓸 수밖에 없다는 둥, 상태가 안 좋아서 예배 드리기 힘들다는 둥. 자신이 선택한 일들을 어쩔 수 없었다는 말로 포장하지 말라. 하나님은 맨날 어쩔 수 없는 길로만 인도하시는 분이 아니다. 하나님은 선택의 기회를 주심을 통해 나를 인도하시는 분이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박히셔서 우리의 죄의 짐을 모두 가져가셨다. 예수님을 믿는 자의 중요한 변화가 있다. ‘죄를 짓지 않을 수 있는 존재가 된다’는 것이다.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마다 죄를 짓지 아니하나니”(요한1서 3:9) 죄인은 선택할 수 없다. 하나님을 사랑할 마음을 아예 주지 않으셨기 때문이다. 그러나 거듭난 자는 선택할 수 있다. 죄에 끌리지만, 하나님을 사랑할 능력을 주셨다. 그러므로 신자는 선택을 통해 하나님께 영광 돌려야 한다.

 

부모, 상사, 사회적 분위기, 가정 환경, 눈치라는 말에 내 선택을 빼앗기지 말라. 선택의 순간이 곧 사라지기 전에 생명을 택하라. 후회하지 않는 삶이 될 것이다.

 

[1] 삶에서 기억나는 뼈아픈 선택이 있습니까? 사실 다르게 결정할 수 있었는데, 핑계 대거나 안일하게 생각했던 요소는 무엇입니까?

 

[2] 신명기 30장 19절을 읽어봅시다.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에게 한 마지막 권면은 무엇입니까?

 

[3-5] 예수님을 믿고 거듭난 사람이 바뀌는 것은 무엇입니까? 어떤 능력이 생깁니까? 당신은 지금 선택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선택의 기회를 주셨을 때, 다시 고민해봐야 할 삶의 문제는 무엇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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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결하려는 죄
(3. 6. 2022.)

아모스 4:6-10

 

문제가 생기면 해결을 해야한다. 하지만 신앙인들은 해결과 함께 한 가지를 더 물어야 한다. 하나님이 계시다면, 이 문제는 왜 생긴 것인가? 하나님이 없는 문제는 해결에 초점이 있다. 그러나 하나님과 함께하는 문제는, 하나님의 메시지에 초점이 있다.

 

북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떠나자 문제를 일으키신다. 먹을 것이 없었다. “너희 모든 성읍에서 너희 이를 깨끗하게 하며 너희의 각 처소에서 양식이 떨어지게 하였으나”(6), 비가 안 오고(“비를 멈추게 하여”(7)), 전염병이 생겼다. “전염병 보내기를”(10) 그런데 각종 문제가 생겨도 모든 구절이 똑같이 끝난다. “너희가 내게로 돌아오지 아니하였느니라”(6,8,9,10)

 

문제가 생겼는가? 당신이 범하는 가장 큰 죄가 있다. 해결하려는 죄이다. 문제가 생기면, 해결만 하면 된다는 생각이 하나님을 가장 크게 대적하는 죄이다. 하나님이 왜 사랑하는 자에게 문제를 보내시는가? 문제는 해결하라고 있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께로 돌아오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다. 각종 문제 속에 돌아오라는 하나님의 음성이 들리지 않는가? 당신은 아직 해결의 우상에 빠져 있는 것이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그 자체로 인생의 문제였다. 그 문제를 하나님께 돌아가 해결을 구한다.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하시고”(마가복음 14:36) 예수님은 죽을 위기를 직접 해결하려고 하시지 않았다. 하나님을 의지하자, 자신이 부활하실 뿐만 아니라 해결될 수 없는 우리의 죄의 문제가 해결되었다. 결론은 간단하다. 해결은 해결책이 아니다. 하나님이 곧 문제의 해결이 되신다.

 

해결만 찾고 있는가? 삶에 문제가 그치지 않을 것이다. 돌아올 때까지 문제를 주실 것이기 때문이다. 그만 해결하고, 먼저 하나님께 돌아오라. 돌아오기만 했는데, 문제가 해결되는 기적을 맛 볼 것이다.

 

[1] 요즘 어떤 문제를 가지고 살아갑니까? 당장 해결하기 위해서 내가 신경쓰고 있는 부분이 있다면 나누어봅시다.

 

[2-3] 아모스 4장 6-10절을 읽어봅시다. 하나님이 북이스라엘에 일으키신 문제는 무엇이었습니까? 모든 구절의 마지막에서 나타난 북이스라엘의 동일한 죄는 무엇입니까?

 

[4-5] 예수님이 십자가라는 문제를 해결하신 방식은 무엇이었습니까? 어떻게 해결되었습니까? 문제 해결에 집착하는 나의 모습을 돌아보며, 내가 처한 삶의 상황에서 내게 원하시는 일이 무엇일지 고민해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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