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랑 활용 전략
(5. 1. 2022.)

잠언 28:11

 

자랑하며 거들먹거리는 사람은 너무 싫다. 능력 좋다고, 지식 많다고, 돈 많다고 뽐내고 다닌다. 다 싫어하니까 주변에 친구도 없다. 재수 없으니, 우리는 억지로 그 사람에게 흠집을 낸다. “걔는 인격이 글렀어!”

 

자랑하는 사람을 활용하라. “부자는 자기를 지혜롭게 여기나 가난해도 명철한 자는 자기를 살펴 아느니라”(잠언 28:11) ‘자기를 살핀다’라는 말은 ‘부자를 꿰뚫어 본다’로 번역해야 한다. 명철한 자는 부자의 의도와 심리를 모두 파악할 수 있다는 말이다. 주변에 자랑하고 거들먹거리는 사람이 있는가? 무시하며 비난하지 말고, 꿰뚫어보고 활용하라.

 

회사에서 성과가 좋은 사람이 있는가? 다들 경계할 때 인정하고 세워주라. 성과를 내는 비밀이 굴러들어온다. 돈 많다고 거들먹거릴 때, 멋져 보인다고 예쁘다고 치켜세우라. 남는 물건은 다 내 것이 된다. 능력은 있으나 말이 험한 사람을 만났는가? 대화의 자리를 떠나지 말라. 온갖 지혜를 발설할 것이다. 우리 안에는 내가 더 나은 사람이고 싶고, 가르치는 자리에 있고 싶어서 상대를 정죄할 때가 많다. 그렇지 않다. 가난해도 명철한 자가 되어야 한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자신을 하나님이라고 소개하셨다. 아무도 믿지 않고 자신들의 지혜로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으려고 했다. 예수님은 우월함으로 찍어 누르지 않으시고, 그들의 거들먹거림, 그들의 자랑을 사용하셨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너희가 알거니와 부요하신 이로서 너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심은 그의 가난함으로 말미암아 너희를 부요하게 하려 하심이라”(고린도후서 8:9) 가난했지만 명철하신 예수님께서, 그들의 자랑을 활용해 우리에게 구원을 주셨다.

 

주변 사람이 나보다 잘되는 꼴을 보기 싫은가? 하나님이 당신에게 그 사람 붙여주신 것이다. 그사람보다 내가 나음을 증명하려 하지 말고, 겸손하게 나아가라. 굽히고 들어가라. 가난해도 명철한 자 되라. 꿰뚫어보고, 활용하라. 삶의 길이 쉽게 열릴 것이다.

 

[1] 잘 나가는 사람 참 많습니다. 나보다 잘나갈 때 흠집 내고 싶은 마음도 있습니다. 주변에서 나보다 잘나가고 거들먹거리는 사람이 그냥 싫어지고, 흠집내고 싶었던 경험이 있다면 나누어봅시다.

 

[2] 잠언 28장 11절을 읽어봅시다. 부자의 특징은 무엇입니까? 가난한 자의 특징은 무엇입니까?

 

[3-5] 나보다 잘 나가는 주변 사람들 속에서 겸손하고 지혜롭게 그들을 활용하고 인정하려고 노력한 적이 있습니까? 내게 주신 나보다 잘 나가는 사람들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 나누어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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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쁜 사람에서 불쌍한 사람으로
(4. 24. 2022.)

마태복음 18:33

 

내가 사랑하는 사람은 나빠 보이지 않는다. 불쌍해 보인다. 일을 잘 못해서 쩔쩔매는 직원을 보라. 답답하고 한심스럽다. 짤라 버리고 싶다. 그런데 그 사람이 내 아빠라고 생각해보라. 내 딸이라고 생각해보라. 인내의 깊이가 달라진다. 한심한 거 맞지만, 그래도 잘 됐으면 좋겠다. 나빠 보이는 모든 것은, 사랑이 들어가면 풀린다. 사랑하면, 다 불쌍해 보인다.

 

예수님이 우리를 사랑하셨다. 도대체 무슨 말인가? 나쁜 놈으로 보지 않고, 불쌍하게 보셨다는 뜻이다. “예수께서 제자들을 불러 이르시되 내가 무리를 불쌍히 여기노라 그들이 나와 함께 있은 지 이미 사흘이매 먹을 것이 없도다 길에서 기진할까 하여 굶겨 보내지 못하겠노라”(마태복음 15:32) 예수님 옆에 무리들이 있었다. 어차피 나중에 예수님 죽을 때 다 배신하고 떠날 사람들이었다. 나쁜 사람들이었지만, 불쌍히 여기시고 기적으로 배를 채우신다. 사랑한다는 것은, 불쌍하게 보이기 시작한다는 말이다.

 

사람을 불쌍하게 바라보라. 내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다 생각하고 대해보라. 불쌍해 보이기 시작하면, 제자가 되어 가는 것이다. 저녁에 예배 드리러 가면서 ‘꽐라’가 되어 사람들이 비틀거리는 술집을 지나갔다. 한숨과 짜증, 우월감이 들었다. 예배 드리고 나오는데, 똑 같은 그 사람들이 불쌍해 보였다. 나도 예수님 없었으면 저 자리에 있었을 것이란 확신이 들었다.

 

언제 사람들이 불쌍해 보이는가? 내가 먼저 불쌍히 여김 받았음을 깨달았을 때이다. “내가 너를 불쌍히 여김과 같이 너도 네 동료를 불쌍히 여김이 마땅하지 아니하냐”(마태복음 18:33) 가장 한심한 것은 내 인생 아니었나? 주님이 나를 십자가에서 먼저 참으셨다. 은혜로 믿음 주셨다. 나를 나쁘게 보지 않으신 예수님 때문에 지금도 살아있다. 그것을 믿는다면 타인에 대한 시선도 달라져야 한다. 내 동료도 불쌍히 여김이 마땅하다.

 

마땅한 일을 하며 살자. 마땅한 일이 무엇인가? 내 주변 사람들을 나쁜 사람으로 바라보는 시선을 버리고, 불쌍한 사람으로 봐주기 시작하는 것이다. 당신도 예수님 때문에 살았듯이, 그 사람도 당신 때문에 살아날 것이다.

 

[1] 사랑하지 않으면 나빠 보이고, 사랑하면 불쌍해 보입니다. 내 마음의 애정에 따라, 상대에 대한 나의 태도가 한 없이 달라졌던 경험이 있다면 나누어봅시다.

 

[2-3] 마태복음 15장 32절을 읽어봅시다. 예수님이 무리를 어떻게 대하셨습니까? 예수님으로 충만할 때 타인을 바라보는 내 삶의 시선은 어떻게 변화됩니까?

 

[4-5] 내가 다른 사람들을 불쌍히 여겨야 할 이유는 무엇입니까? 싫고, 짜증나고, 무시하고 싶은 사람들을 대할 때 나의 모습을 돌아봅시다. 나는 특히 어떤 사람들을 무시합니까? 상대를 대하는 태도와 마음이 어떻게 변화되어야 할지 나누어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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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공식적인 순간
(4. 17. 2022.)

마가복음 5:25-30

 

이 세상에 공식적인 행사는 왜 개최되는가? 비공식적인 일들을 기대하기 때문이다. 국내 경영대 MBA에 진학한 사람에게 왜 뒤늦게 대학원에 다니냐고 물었다. 공부를 위한 것이 아니었다. “거기서 사업하는 사람들 다 만나요” 비공식적인 만남이 목적이었다. 수업을 왜 듣는가? 끝나고 교수님과 친해지기 위해서 듣는다. 여러 모임에 왜 참석하는가? 나의 연인을 만날 수도 있으니까!

 

예수님은 비공식적으로 사람을 만나시는 분이다. 예수님은 한 행사가 끝나고 다른 행사를 위해서 이동중이었다. 팬들에 둘러싸여 있었다. 정신없는 와중에 병든 여자가 예수님에게 손을 댄다. "예수의 소문을 듣고 무리 가운데 끼어 뒤로 와서 그의 옷에 손을 대니 … 이에 그의 혈루 근원이 곧 마르매 병이 나은 줄을 몸에 깨달으니라 예수께서 … 누가 내 옷에 손을 대었느냐 하시니"(마가복음 5:27-29) 예수님은 이동중에 잠깐 옷을 만진 여자에게 친절히 대답하시고, 치유하셨다. 군중들은 전혀 모르는 비공식적인 만남이었다.

 

언제나 비공식적인 기회를 기대하라. 공식 예배가 진행중일 때, 내게 성령님께서 비공식적으로 말씀하시고 마음 주시는 일들에 민감해야 한다. 팀모임때 성경만 배우는 것이 아니라 동역자, 배우자, 사업 파트너를 다 만나는 것이다. 후배와의 잠깐의 티타임 때, 이동 중에 차안에서, 상사 담배피는 것 따라가다가 전도도 하고, 애로사항도 해결하고, 승진도 담보되는 것이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셨다. 공식적으로 우리의 죄를 사하시는 일이다. 그러나 그곳에는 비공식적인 일이 숨겨져 있었다. 바로 옆에 있던 강도가 옆에서 죽어가는 예수님께 살짝 말한다. "이르되 예수여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에 나를 기억하소서 하니"(누가복음 23:42) 죽음 앞에서 비공식적인 요구에 예수님은 어떻게 대답하셨을까?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하시니라"(43) 예수님은 언제나 내게 개인적으로, 비공식적으로, 친밀하게 구원을 주시는 분이다.

 

오늘의 삶에도 확신하라. 군중 속에, 행사처럼 벌어지는 많은 예배와 일상의 업무들 속에서, 주님은 나에게 비공식적으로 말씀하실 것이다. 그리고 내 삶이 열리는 많은 기회들도, 비공식적인 일 속에 숨어있을 것이다. 비공식적인 일을 무시하지 말라. 학교 수업을 집중해서 듣는 것보다, 옆자리의 짝꿍과 대화하는 것이 인생에 더 유익할 때가 있다.

 

[1] 나의 삶에 공식적인 행사들 속에서 비공식적인 만남이 삶의 새로운 기회를 주었던 경험이 있다면 나누어봅시다.

 

[2] 마가복음 5장 27절을 읽어봅시다. 혈루증을 앓는 여자는 예수님께 어떻게 접근했습니까? 29-30절을 읽어봅시다. 예수님은 어떻게 반응하시고, 어떻게 대답하셨습니까?

 

[3-5] 예수님께서 십자가 위에서 하신 ‘비공식적인’ 일은 무엇이었습니까? 내 삶에서 (1)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 / (2)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 내가 비공식적인 기회들을 누리기 위해 변화되어야 할 모습이 있다면 나누어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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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식의 신앙
(4. 10. 2022.)

빌립보서 4:8-9

 

신자들이 신앙 때문에 어려움을 겪는다고 하지만, 그런 일은 많지 않다. 대부분은 삶에서 상식적이고 보편적인 부분에서 연약함을 경험한다. 어떻게 세상 사람들보다 부모를 그렇게 함부로 대하나! 어떻게 안 믿는 사람들보다 말이 그렇게 험한가! 우린 모두 어느 부분에서 상식 이하의 사람들이다.

 

바울이 빌립보 성도들에게 ‘상식의 신앙’을 주문한다. “끝으로 형제들아 무엇에든지 참되며 무엇에든지 경건하며 무엇에든지 옳으며 무엇에든지 정결하며 무엇에든지 사랑 받을만 하며 무엇에든지 칭찬 받을 만하며 무슨 덕이 있든지 무슨 기림이 있든지 이것들을 생각하라”(빌립보서 4:8) 바울이 말한 가치들은 당시 그리스-로마에서 높이 평가하던 덕(virtue)의 가치들의 목록과 비슷했다. 무슨 말인가? 그 당시 로마 사람들이 훌륭하다고 인정했던 가치들부터 갖추라는 말이다. 신앙은 결코 상식을 벗어나지 않는다.

 

교회는 다니지만, 정작 상식은 없는 내 모습을 돌아보라. 편견과 선입견 없이 누군가의 의견을 들어주는 것은 상식적인 가치이다. 상사와 부하 직원을 존중하고 예의 바르게 대하는 것은 보편적인 가치이다. 지각하지 않고, 성실하게 일하는 것은 보편적인 직원의 역량이다. 힘들어도 나이든 부모를 성실하게 사랑하고, 내게 있는 소득에 감사하는 것은 이 시대 모두가 추구해야 할 가치이다. 그리스도를 만났는데, 정작 상식에서는 무너지고 있지는 않은가?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하나님의 뜻을 행하셨다. 그러나 그것은 상식을 실행하는 것부터 시작이었다. “예수는 지혜와 키가 자라가며 하나님과 사람에게 더욱 사랑스러워 가시더라”(누가복음 2:52) 예수님은 하나님 뿐만 아니라 사람에게 사랑스러워 가시는 곳에서부터 시작하셨다. 세상 사람과 충돌했던 십자가는 처음부터 지신 것이 아니다. 예수님이 내게 주신 구원은 상식에서부터 시작되었다.

 

나를 향한 인도하심의 순서도 마찬가지다. 영적인 위대한 일을 경험하기 전에, 예수 안에서 상식을 배우라. 상식의 가치부터 추구하라. 오히려 주변 사람들이 당신을 사랑하면서, 영적인 권세는 훨씬 쉽게 발휘될지 모른다.

 

[1] 내 자신이나 주변의 믿는 사람들이 상식적인 부분에서 주변에 실망을 줬던 경험이 있습니까? 나누어봅시다.

 

[2] 빌립보서 4장 8절을 읽어봅시다. 바울의 권면들은 그 당시 누가 추구하던 가치들과 비슷했습니까?

 

[3-5] 예수님의 사역은 어디에서부터 출발이셨습니까? 내가 세상과 충돌하는 영적인 가치를 추구하기 전에, 상식적이고 보편적인 부분에서 변화되어야 할 부분이 있다면 나누어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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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가는 승리
(4. 10. 2022.)

마태복음 9:18,24-25

 

나이에 걸맞지 않게 어릴적 습관이나 관심사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아직도 분유를 못 끊었니! 아직도 노래방을 그렇게 다니니! 아직도 유학 타령이니! 아직도 그 여자가 생각나니! 지나가지 못한 문제는, 삶에 발목을 잡는다.

 

예수님이 딸이 방금 세상을 떠나 슬퍼하고 있는 아버지를 만나신다. 죽음을 지나가지 못하고 떠드는 사람들 앞에서 말하신다. 지나갈 거야. “이르시되 물러가라 소녀가 죽은 것이 아니라 잔다 하시니 그들이 비웃더라”(마태복음 9:24) 딸이 죽은 것을 보고 잔다고 하신다. 예수님께 죽음은 ‘지나갈 수 있는 문제’라는 것이다. “예수께서 들어가서 소녀의 손을 잡으시매 일어나는지라”(25) 죽음에서 멈추지 않고, 죽음을 지나갔다. 그랬더니 승리했다.

 

인생의 승리는 언제 오는가? 지나갈 때 온다. 이것이 주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승리이다. 갈등과 가난, 질병 중독의 위기속에 빠져 있는가? 지나가게 하시는 예수님의 능력을 구하라. 이 갈등이 잘 풀릴 수 있도록, 이 위기를 잘 빠져나가도록 기도하라. 상황이 좋지 않다고 절대 머물러 있지 말고 발버둥치라. 계속 앞으로 나아가라. 잘 지나가기만 하면, 어느새 인생의 새로운 스테이지가 열린다.

 

어떻게 예수님은 소녀의 죽음을 지나가게 하셨는가? 예수님 자신이 먼저 죽음 속을 지나가셨기 때문이다. “우리가 예수께서 죽으셨다가 다시 살아나심을 믿을진대 이와 같이 예수 안에서 자는 자들도 하나님이 그와 함께 데리고 오시리라”(데살로니가전서 4:14) 소녀의 부활은 상징적인 것이었다. 예수님 안에 있는 우리도, 죽으면 이제 모두 자는 자가 된다. 신자에게 죽음은 멈추는 곳이 아니라 지나가는 곳이 된다.

 

죽음을 지나가게 하신 예수님의 능력이 우리 안에 있다. 그렇다면 오늘의 삶에서도 확신하라. 많이 어려워 보이지만, 죽음도 지나가게 하신 분이 이 상황도 지나가게 하실 것이다. 이것이 끝인가 싶지만, 지나가면서 새로운 승리가 있을 것이다. 지나가면 다 끝난다. 신자는 영원까지 멈추지 않고 계속 지나가는 사람들이다.

 

[1] 인생의 여러 단계들에서 경험하는 취미나 관심사를 지나가지 못하고 오랫동안 계속 머물러 있었던 경험이 있습니까? 나의 경험담을 나누어봅시다.

 

[2] 마태복음 9장 18절, 그리고 24절을 읽어봅시다. 예수님은 딸을 잃은 아버지에게 무엇이라고 말씀하십니까? 예수님은 죽음을 어떻게 바라보셨습니까?

 

[3-5] 예수님이 우리에게 주신 선물은 무엇입니까? 오늘의 삶에도 확신해야 할 것은 무엇입니까? 자연스럽게 지나가게 하시며 승리하게 하신 경험이 있다면 나누어봅시다. 지나가게 하실 것을 믿고 전진해야 할 현재의 상황도 나누어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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