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위의 시인”
(7. 24. 2022.)
디도서 1:16
내키지 않으면 안 해도 된다. 너의 마음이 중요하다. 이것이 시대의 생각이다. 그래서 누구도 상대방의 행위를 탓할 수가 없다. 내 마음은 최고의 권위가 되었다. “내가 싫다는데 누가 뭐라 그래?”
내가 그리스도인이 되었음을 고백하는 최후의 장소는 행위이다. 바울이 그레데라는 섬에서 사역하는 디도에게 그레데 사람들을 설명한다. “그들이 하나님을 시인하나 행위로는 부인하니 가증한 자요 복종하지 아니하는 자요 모든 선한 일을 버리는 자니라”(디도서 1:16) 모두 그리스도인이었지만, 행위로는 아무 것도 변화되지 않는 사람들이니 조심하라는 것이다. 마음 없는 행위가 가식적이라고 배웠다. 아니다. 행위 없는 마음이 가식적이다.
그리스도인은 누구인가? 내키는 대로 행하지 않는 사람들이다. 예수님 사랑하는 마음이 있는가? 내키지 않아도 행위로 시인해야 한다. 그레데 사람들은 거짓말 했고(12), 게으름뱅이이고(12), 거슬러 말하며(2:9), 술의 종이 되고(2:3), 모함하고(2:3), 절제하지 못하는(2:2) 사람들이었다. 이렇게 살면 편하다는 것 누가 모르나? 내키지 않는 일을 향해 한걸음 나아가는 것이 곧 신앙 고백이다.
예수님이 나를 마음으로 사랑하셨다. 그리고 행위로 시인하셨다. 이 세상 그 어느 신도 나를 사랑하는 마음을 행위로 고백한 존재가 없다. 그러나 예수님의 나를 향한 마지막 시인은 십자가였다. 십자가로 나를 사랑하심을 시인하셨다.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빌립보서 2:8)
행위로 마음을 보여주신 예수님 만날 때에만, 내키지 않는 행위로 나아갈 수 있다. 하나씩 행위로 시인하라. 내 마음이 최고라는 우상을 버리라. 마음내키지 않으면 안 해도 된다는 가증한 마음을 회개하라. 예수님이 행위로 순종하실 때 부활의 능력이 나타난 것처럼, 우리도 행위로 예수님을 시인할 때 그의 능력을 경험할 것이다.
[1] 누군가에게 어떤 행위(혹은 라이프스타일)를 권하거나 훈계하기 어려웠던 적이 있습니까? 요즘 사람들의 행동의 중심에는 무엇이 있습니까? 마음 내키지 않아서 하기 어려웠던 일이 있다면 나누어봅시다.
[2-3] 디도서 1장 16절을 읽어봅시다. 우리의 신앙은 무엇으로 고백되어야 합니까? 교회 다니는 사람들이 쉽게 변화되지 않는 행위에는 무엇이 있을까요?
[4-5] 예수님이 우리를 사랑하심을 어떻게 보여주셨습니까? 그 행위의 시인에는 어떤 능력이 나타났습니까? 내가 예수님의 능력을 확신하며, 내키지 않아도 행위로 신앙을 고백해야 할 삶의 영역을 나누어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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