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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때문에 잘되는 사람
(9. 25. 2022.)

창세기 6:18

 

부모 잘 만난 사람들 보면 허탈할 때가 있다. 자기는 잘하는 게 아무 것도 없는데 일을 안 해도 평생 먹고 산다. 자기는 실력이 하나도 없는데, 때가 되면 승진한다. 자신은 능력이 하나도 없는데 부모가 사업을 차려준다. 나도 누가 나를 밀어줬으면 좋겠다.

 

노아의 시대에 하나님이 홍수로 세상을 심판하셨다. 노아와 모든 생물의 암수 한 쌍이 방주에 탔다. 퀴즈. 방주 속에 ‘사람’은 몇 명이었을까? 자기들은 잘한 것도 없는데 노아의 가족이라고 그냥 살아남은 사람들이 있었다. “그러나 너와는 내가 내 언약을 세우리니 너는 네 아들들과 네 아내와 네 며느리들과 함께 그 방주로 들어가고”(창세기 6장 18절) 노아만 의인이었다. 하나님이 노아와만 언약을 맺으셨다. 그러나 노아의 아들들과 아내와 며느리들은 잘한 것도 없는데 살아남았다. 왜? 오직 노아 때문에 잘 된 것이다.

 

이것이 믿는 자의 사명이다. 내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이유 없이 나 때문에 먹고 살고, 나 때문에 행복해지고, 나 때문에 위기에서 건짐 받는 사람들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그 사람의 실력? 안 좋다. 그 사람의 성격? 더럽다. 그 사람이 잘한 게 있나? 없다. 바로 그곳, 그 사람이 당신의 사명지이다. 끝까지 사랑하고, 먹이고, 재우고, 입히라. 노아는 손해보지 않았다. 노아의 언약은 그 아들들과 아내와 며느리들의 후손을 통해서 성취 되었다.

 

내가 왜 그렇게 살아야 하는가? 내가 그렇게 살아남았기 때문이다. 내가 잘한게 있나? 없다. 내가 실력이 있나? 없다. 그런데 예수님이 죽음에서 날 건져주셨다.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에베소서 2장 8절) 죄인에게 이유 없이 구원 주신 것을 은혜라고 한다. 은혜 받은 자라면, 오직 나 때문에 잘 되는 사람을 만들라.

 

이 땅에 살면서 남들처럼 더 잘되지 못하는 억울함만 있다면, 아직 은혜를 모르는 것이다. 사람에게 은혜를 구걸하며 어디가서 빌어먹을까 생각하지 말라. 주님이 은혜 베푸실 것을 믿고, 은혜 베풀며 살라. 나 때문에 잘되는 사람들을 만들라. 인생의 가장 큰 행복이다.

 

[1] 참 가진 것도, 실력도 없이 잘 나가는 사람들을 보며 씁쓸하고 억울할 때가 있습니다. 나보다 가진 것도 없는 주제에(실력, 외모, 경험 등) 잘 나가서 배아팠던 경험이 있다면 나누어봅시다.

 

[2-3] 창세기 6장 18절을 읽어봅시다. 노아의 방주에 탄 사람들은 누구였습니까? 그들이 타게 된 단 한가지 이유는 무엇입니까? 내가 노아처럼 산다는 것은, 어떻게 살아야 한다는 말입니까?

 

[4-5] 에베소서 2장 8절을 읽어봅시다. 내가 왜 그렇게 살아야합니까? 내가 구원을 받은 이유는 무엇입니까? 요즘 내가 무조건 잘되게 만들어야겠다고 섬기는 사람은 누구입니까? 누구를 더 그렇게 품어야 하겠습니까? 나누어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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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이고 벗기고
(9. 18. 2022.)

창세기 3:6-7

 

벗겨지면 부끄러움을 느낀다. 추운 겨울 정장을 입는 파티에 참석한적이 있다. 셔츠, 타이, 정장 자켓, 코트를 입어야 했다. 바쁜 나머지 자켓을 빼먹고 코트만 입었다. 가는 도중에 알았다. 코트 안에 셔츠밖에 안 입었다는 것을! 천국에 가고 싶었다. 벗겨지면 늘 부끄럽다.

 

세상은 좋은 것을 먹인 후, 부끄럽게 만든다. 뱀이 아담과 하와에게 선악과를 먹이자 부끄러움을 느낀다. “여자가 그 열매를 따먹고 자기와 함께 있는 남편에게도 주매 그도 먹은지라 이에 그들의 눈이 밝아져 자기들이 벗은 줄을 알고”(창세기 3:6-7) 선악과를 먹으니 벗은 것이 부끄러워졌다. 무슨 말인가? 하나님을 떠난 기준을 먹으면, ‘내 모습이 충분하지 않다고 느끼게’ 만든다는 것이다.

 

돈은 좋은 것이다. 하지만 돈을 기준으로 삼으니 연봉 이야기만 나오면 내 인생의 돈 없음이 한없이 부끄럽다. 외모가 기준이 되니 멋진 사람들 속에서 부끄러워진다. 자녀가 인생 성공의 기준이 되니 방황하는 자녀가 늘 부끄럽다. 오늘 내가 어느 부분에서 소외되고 부끄럽고 숨고 싶다고 느낀다면, 사실 나는 선악과를 먹은 원죄의 결과를 벗어나지 못한 것이다.

 

해결책은 무엇인가? 그리스도로 다시 옷 입는 것이다. “누구든지 그리스도와 합하기 위하여 세례를 받은 자는 그리스도로 옷 입었느니라”(갈라디아서 3:27) 복음을 체험하고 변화될 때 특징이 있다. 부끄러움을 극복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신자는 하나님께 사랑받고 있다는 사실, 예수님이 날 위해 죽으셨다는 사실만이 내 인생의 유일한 기준이 된다. 그 영적인 실재를 현실로 체험하기 시작하면서, 복음은 내가 현실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충분하게 바라보게 해준다.

 

세상이 좋은 것 먹어보라고 할 때, 자꾸 받아먹지 말라. 먹인 다음에는 벗긴다. 좋은 것을 보게 만들고 “너는 이 좋은 것이 없잖아?” 부끄럽게 만든다. 날 위해 벗겨지신 예수님이, 내 죄를 위해 부끄러움 당하신 예수님이, 여전히 나를 사랑하신다. “그의 옷을 벗기고 홍포를 입히며 가시관을 엮어 … 희롱하여 이르되 유대인의 왕이여 평안할지어다 하며”(마태복음 27:28-29) 날 결코 부끄럽게 하지 않으실 그 분만이 나의 주님이시다.

 

[1] (1) 물리적으로 부끄러움을 느꼈던 적이 있습니까? (2) 혹은 남들이 가진 것, 남들이 하는 것을 나만 못하거나, 세상의 기준에 미치지 못하는 인생인 것 같아 부끄러움을 느꼈던 경험이 있습니까? 나누어봅시다.

 

[2-3] 창세기 3장 6-7절을 읽어봅시다. 아담과 하와가 선과 악을 알게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은 결과는 무엇이었습니까? 부끄러움을 느낀다는 것은 어떤 뜻입니까?

 

[4-5] 갈라디아서 3장 27절을 읽어봅시다. 부끄러움을 해결하는 방법은 무엇입니까? 예수님이 나를 위해 당하신 일은 무엇입니까? 예수님 안에서 부끄러움을 극복하고 자신감과 충만함을 회복해야 할 삶의 영역을 나누어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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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요의 부르심
(9. 11. 2022.)

시편 50:12-13

 

사람들은 내가 필요할 때만 나를 부른다. 회사는 내 능력과 재능이 필요할 때만 나를 찾는다. 자기가 심심할 때만 나한테 밥먹자고 한다. 일손이 부족하니 나보고 도와 달라고 한다. 나는 필요의 부르심 속에 살고 있다.

 

하나님은 필요로 나를 부르시지 않는다. “내가 가령 주려도 네게 이르지 아니할 것은 세계와 거기에 충만한 것이 내 것임이로다 내가 수소의 고기를 먹으며 염소의 피를 마시겠느냐”(시편 50:12-13) 배고파도 너한테 밥 달라고 안 하신다는 뜻이다. 하나님은 소고기 사달라고 나한테 오시지 않는다. 삼위 하나님은 스스로 충만하신 분이다. 필요로 나를 부르시지 않는 유일한 존재다. 하나님이 나를 부르시는 것은, 그분의 충만함을 오히려 내게 주시기 위함이다.

 

하나님이 내게 이것저것 요구하시는 일들은 하나님이 부족하시기 때문이 아니다. 하나님이 당신에게 구걸하시지 않는다. 누군가를 사랑하는 일, 교회의 어떤 일을 맡는 일, 하나님 나라를 위해 헌금하는 일, 하나님의 방식대로 업무를 처리하는 일. 그 일을 하면 내가 충만해지고, 내가 하나님의 영광을 볼 수 있기 때문에 나를 시키신 것이다. 주님이 마음 주시면 기회인 줄 알아야 한다. 주님 뜻대로 행하면 오히려 내 필요가 채워질 것으로 생각해야 한다. 신자를 향한 하나님의 부르심은 충만의 부르심이다.

 

하나님 없으면 우리는 언제나 부족함을 느끼는 죄인들이다. 그러나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우리의 부족함을 해결하셨다. “내가 목마르다”(요한복음 19:28) 오히려 죄인의 부족함을 가져가시고, 영생을 우리에게 주신분이 무엇이 부족해서 나를 부르시겠나? 나는 이제 확신할 수 있다. 하나님이 내게 요구하시는 것은 사람처럼 필요해서 나를 부르시는 것이 아니다. 그의 충만함에 참여하게 하시기 위함이다.

 

필요의 부르심을 벗어나라. 충만의 부르심으로 들어가라. 부름 받은 모든 자가 만족을 누렸다. 이제 당신 차례이다.

 

[1] 세상은 ‘필요의 부르심’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필요할 때만 나를 찾는 가정, 직장, 내 주변의 모습들을 느낀 적이 있다면 나누어봅시다.

 

[2] 시편 50편 12-13절을 읽어봅시다. 하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하나님이 하시지 않는 일은 무엇입니까?

 

[3-5] 하나님이 내게 요구하시고, 부르시는 것은 무엇을 위함입니까? 하나님에 대한 오해를 버리고, 요즘 내게 마음 주시는 요구와 부르심에 순종해야 할 삶의 영역들이 있다면 나누어 봅시다.

https://soundcloud.com/hansaram-church/20220904-1-459-11a/s-86cOjDMNRQh?si=d6d779f0daca4bbab796e23657121dae&utm_source=clipboard&utm_medium=text&utm_campaign=social_shar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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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 안보이면 정상
(9. 4. 2022.)

로마서 8:24-25

 

사람은 보이는 것으로 예측한다. “인구가 줄어드니 지방은 더 힘들어지겠군” 예측이다. “돈을 이렇게 푸는데 인플레이션이 오겠군” 예측이다. “내 자녀가 이렇게 공부를 안 하니 힘들게 살겠군” 예측이다. 사람은 아무리 똑똑해도, 현재 보이는 것에 기반해 예측할 뿐이다.

 

신자는 예측으로 살지 않고, 소망으로 산다. “우리가 소망으로 구원을 얻었으매 보이는 소망이 소망이 아니니 보는 것을 누가 바라리요”(로마서 8:24) 보이는 미래는 예측일 뿐이다. 보이지 않는 것이 진짜 소망이다. 소망이란, 하나님이 말씀을 통해 주신 미래의 확신이다. 진짜 소망을 구별하는 법이 있다. 하나님 말씀 빼고, 현재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야 한다. “만일 우리가 보지 못하는 것을 바라면 참음으로 기다릴지니라”(25) 그러므로, 절대 안보이는 일을 소망하고 있다면, 정상이다.

 

예측으로 살지 말고 소망으로 살라. 내 자녀에게 소망을 품으라. 우리나라에 소망을 품으라. 내 교회에 소망을 품으라. 소망은 지금 절대 안보여야 한다. 말도 안되는 일이어야 한다. 헛소리라고 욕을 먹어야 한다. 내 부모가 천국에 갈 것이다! 우리 교회에 하나님의 부흥이 일어날 것이다! 이 회사를 통해 선한 일이 일어날 것이다! 절대 안보이는 곳에서 소망을 가지고 일하는 사람들이 그리스도인들이다.

 

인간의 미래가 절대 안보이는 곳이 있다. 죽음이다. 예수님이 소망가지고 죽음으로 들어가셨다. 그게 십자가이다. 그리스도인들은 죽음에서도 소망을 품을 수 있는 존재들이다. 내 대신 예수님이 죽으시고 부활하셨기 때문이다. 그 능력이 현재 내 삶에도 임하고 있음을 확신하는가? 그분의 능력이 있기에 오늘의 소망은 결코 허상이 아니다. 예수님 만나야, 보이는 대로 살지 않고 보이지 않는 것을 소망할 수 있다.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다가, 말도 안되는 꿈과 사모함이 생겼는가? 지금 절대 그 모습이 안보이면, 정상이다. 말도 안 된다면, 정상이다. 소망은 원래 그런 것이다. 예측의 길을 버리고, 소망의 길을 걸으라. 소망의 사람을 기대한다.

 

[1] 최근에 보이는 몇 가지 일들을 통해서 가정이나 회사, 사회에서 예측되는 일들이 있습니까? 나누어봅시다.

 

[2] 로마서 8장 24-25절을 읽어봅시다. 소망이란 무엇입니까? 예측과 달리 소망의 특징은 무엇입니까?

 

[3-5] 우리가 소망을 품을 수 있는 근거는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근거로 내가 소망을 품어야 할 삶의 영역을 나누어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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