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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서만 할 수 있는 일
(10. 9. 2022.)

마태복음 24:38-39

 

때를 놓치면 다시 하기 어렵다. 어렸을 때 잘 못 먹으면 커서도 체력이 안 좋다. 나이 들고 새로운 언어를 공부하려면 학습보다 망각이 빠르다. 너무 늦은 나이에 돈을 잃으면 새로 모으기 어렵다. 살면서 알게 된다. 삶에는 옳고 그른 것만 있는 것이 아니라, 적절한 ‘타이밍’도 있다는 것을.

 

질문. 천국은 언제 가나? 죽어서 간다. 맞지만 틀렸다. 천국은 “살아서만 갈 수 있는 곳”이다. 이 문장을 잘 생각해보라. 죽은 사람은 천국에 갈 수 없다. 살아있을 때에만 갈 수 있는 곳이다. 천국은 “살아서 들어가는 곳”이다. 예전에도 사람들이 다 천국 갈 수 있을 줄 알고 살았다. “홍수 전에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까지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 들고 시집 가고 있으면서 홍수가 나서 그들을 다 멸하기까지 깨닫지 못하였으니 인자의 임함도 이와 같으리라”(마태복음 24:38-39) 살아서 가는 곳인데, 죽어서 가는 곳인 줄 안 것이다. 천국 갈 때를 놓치면, 그 기회는 영원히 돌아오지 않는다.

 

케빈 드 영 목사님의 말이다. “죽음은 누구에게나 온다, 천국은 누구에게나 오지 않는다”(“Death comes to us all, heaven does not.”) 아무에게나 오지 않는 기회를 잡으라. 아무나 할 수 없는 이 복음을 전하라. 살아 있을 때만 할 수 있는 일이 있다. 예수님 믿는 것이다. 살아 있을 때에만 할 수 있는 일이 있다. 복음 전하는 것이다. 후회되는 일이 있는가? 아파트를 못 잡았는가? 건강 관리를 못했는가? 천국 가면 그 모든 후회는 다시 회복된다. 그러나 천국 못 가면 부활할 기회를 영원히 놓친다. 지난 기회 후회 하지 말고, 하나님이 지금 내게 주신 사명의 기회를 잘 생각해보라. 남은 삶, 나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시고 내 죄를 다 용서해주셨다. 믿고 쉬다가 나중에 보자고 하셨을까? 아니다. “너희도 준비하고 있으라 생각하지 않은 때에 인자가 오리라”(44) 믿으니까 마음대로 살라고 하시지 않았다. 준비하며 살라고 하셨다. 내가 천국 갈 준비, 내 옆 사람도 천국 가게 만들 준비 해야한다.

 

놓친 기회 좇지 말고, 하나님이 지금 내게 주신 영적인 기회를 활용하라. 살아있을 때 천국 가게 해야 한다. 내가 천국가서는 할 수 없는 일이 있다. 죽어서는 다시 못할 일이 있다. 내가 복음 전하는 일이다.

 

[1] 인생에는 타이밍이 있습니다. 적절히 해야 할 때를 놓쳐 후회했거나, 적절한 타이밍에 행하는 바람에 유익을 누렸던 경험이 있다면 나누어봅시다.

 

[2-3] 마태복음 24장 38-39절을 읽어봅시다. 천국은 어떻게 옵니까? 누가 그 천국에 들어갈 수 있습니까? 내가 살아있을 때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은 무엇입니까?

 

[4-5] 천국 가서 유일하게 할 수 없는 하나님의 일은 무엇입니까? 믿은 이후의 내 삶의 돌아봅시다. 누구에게나 오지 않는 천국의 기회 앞에서, 내게 주신 나머지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 나누어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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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게 말하는 능력
(10. 2. 2022.)

열왕기상 19:11-12

 

목소리가 크면 이긴다. 작게 말하는 사람은 무시 받는다. 기싸움에서 밀리면 조직 생활에서도 힘들어진다. 내 주장을 펼치며 한 평생 살아보니, 어느새 내 목소리가 많이 커져 있음을 느낀다.

 

엘리야가 큰 목소리로 하나님의 말씀을 외쳤는데, 사람들이 듣질 않았다. 지쳐 있는 엘리야에게 하나님은 작게 말하신다. “여호와께서 지나가시는데 여호와 앞에 크고 강한 바람이 산을 가르고 바위를 부수나 바람 가운데에 여호와께서 계시지 아니하며 … 또 지진 후에 불이 있으나 불 가운데에도 여호와께서 계시지 아니하더니 불 후에 세미한 소리가 있는지라”(열왕기상 19:11-12) 하나님은 지친 엘리야에게 더 큰 목소리를 내라고 하지 않으셨다. 하나님은 작은 목소리로 엘리야를 살리셨다.

 

작게 말하는 것이 능력이다. 큰 목소리는 상대의 마음을 얻지 못한다. 진실된 마음을 가지고 작게 말하라. 상대를 부수려고 하지 말고, 녹이려고 해보라. 내 목소리가 가장 커지는 순간은 언제인가? 누구 앞에서, 어떤 상황에서 가장 목소리가 커지는가? 목소리가 커진 순간은 하나님의 능력을 의지하는 순간이 아니다. 하나님의 작은 목소리가 엘리야를 살렸다. 더 커지려고 하지 말고, 더 작아지려고 해보라.

 

세상에서 가장 큰 소리가 온다. 주님 오실 때이다. “또 내가 들으니 허다한 무리의 음성과도 같고 많은 물 소리와도 같고 큰 우렛소리와도 같은 소리로 이르되 할렐루야 주 우리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가 통치하시도다”(요한계시록 19:6) 심판 때에는 큰 소리가 난다. 그 전에, 구원의 작은 소리로 예수님이 우리에게 말씀하신다. “예수께서 침묵하시거늘 대제사장이 이르되 내가 너로 살아 계신 하나님께 맹세하게 하노니 네가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인지 우리에게 말하라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가 말하였느니라”(마태복음 26:63-64) 작은 소리로 먼저 구원의 기회를 주셨다. 그 소리 듣고 우리가 살았다. 심판 전에 주님 믿고 작게 말하라. 작게 말해도 그의 능력이 임할 것이다.

 

큰 소리로 심판하러 다니지 말라. 주님이 곧 큰 소리로 오신다. 주님의 작은 음성 듣고 일어서라.주변에 작은 소리로 구원 하러 다니라. 작은 소리가 능력이다.

 

[1] 인생을 살면서 내 목소리가 많이 커졌음을 느낍니다. 요즘 어떤 순간에, 누구에게 내 목소리가 가장 커집니까? 왜 그럴까요? 나누어봅시다.

 

[2-3] 열왕기상 19장 11-12절을 읽어봅시다. 엘리야는 어떻게 선지자 활동을 했었습니까? 왜 지쳤습니까? 하나님이 다가오셔서 엘리야를 일으키신 방식은 무엇입니까? 주님의 음성, 주변 사람의 작은 한마디에 내 인생이 다시 힘을 얻고 일어섰던 경험이 있다면 나누어봅시다.

 

[4-5] 요한계시록 19장 6절을 읽어봅시다. 심판과 재림 때에는 무슨 소리가 납니까? 마태복음 26장 63-64절을 읽어봅시다. 구원의 기회가 있을 때에는 무슨 소리가 납니까? 예수님을 닮아 나도  어떤 관계 속에서 작은 소리를 회복해야 할지 나누어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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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때문에 잘되는 사람
(9. 25. 2022.)

창세기 6:18

 

부모 잘 만난 사람들 보면 허탈할 때가 있다. 자기는 잘하는 게 아무 것도 없는데 일을 안 해도 평생 먹고 산다. 자기는 실력이 하나도 없는데, 때가 되면 승진한다. 자신은 능력이 하나도 없는데 부모가 사업을 차려준다. 나도 누가 나를 밀어줬으면 좋겠다.

 

노아의 시대에 하나님이 홍수로 세상을 심판하셨다. 노아와 모든 생물의 암수 한 쌍이 방주에 탔다. 퀴즈. 방주 속에 ‘사람’은 몇 명이었을까? 자기들은 잘한 것도 없는데 노아의 가족이라고 그냥 살아남은 사람들이 있었다. “그러나 너와는 내가 내 언약을 세우리니 너는 네 아들들과 네 아내와 네 며느리들과 함께 그 방주로 들어가고”(창세기 6장 18절) 노아만 의인이었다. 하나님이 노아와만 언약을 맺으셨다. 그러나 노아의 아들들과 아내와 며느리들은 잘한 것도 없는데 살아남았다. 왜? 오직 노아 때문에 잘 된 것이다.

 

이것이 믿는 자의 사명이다. 내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이유 없이 나 때문에 먹고 살고, 나 때문에 행복해지고, 나 때문에 위기에서 건짐 받는 사람들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그 사람의 실력? 안 좋다. 그 사람의 성격? 더럽다. 그 사람이 잘한 게 있나? 없다. 바로 그곳, 그 사람이 당신의 사명지이다. 끝까지 사랑하고, 먹이고, 재우고, 입히라. 노아는 손해보지 않았다. 노아의 언약은 그 아들들과 아내와 며느리들의 후손을 통해서 성취 되었다.

 

내가 왜 그렇게 살아야 하는가? 내가 그렇게 살아남았기 때문이다. 내가 잘한게 있나? 없다. 내가 실력이 있나? 없다. 그런데 예수님이 죽음에서 날 건져주셨다.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에베소서 2장 8절) 죄인에게 이유 없이 구원 주신 것을 은혜라고 한다. 은혜 받은 자라면, 오직 나 때문에 잘 되는 사람을 만들라.

 

이 땅에 살면서 남들처럼 더 잘되지 못하는 억울함만 있다면, 아직 은혜를 모르는 것이다. 사람에게 은혜를 구걸하며 어디가서 빌어먹을까 생각하지 말라. 주님이 은혜 베푸실 것을 믿고, 은혜 베풀며 살라. 나 때문에 잘되는 사람들을 만들라. 인생의 가장 큰 행복이다.

 

[1] 참 가진 것도, 실력도 없이 잘 나가는 사람들을 보며 씁쓸하고 억울할 때가 있습니다. 나보다 가진 것도 없는 주제에(실력, 외모, 경험 등) 잘 나가서 배아팠던 경험이 있다면 나누어봅시다.

 

[2-3] 창세기 6장 18절을 읽어봅시다. 노아의 방주에 탄 사람들은 누구였습니까? 그들이 타게 된 단 한가지 이유는 무엇입니까? 내가 노아처럼 산다는 것은, 어떻게 살아야 한다는 말입니까?

 

[4-5] 에베소서 2장 8절을 읽어봅시다. 내가 왜 그렇게 살아야합니까? 내가 구원을 받은 이유는 무엇입니까? 요즘 내가 무조건 잘되게 만들어야겠다고 섬기는 사람은 누구입니까? 누구를 더 그렇게 품어야 하겠습니까? 나누어봅시다.

 

https://soundcloud.com/hansaram-church/20220918-3-220a/s-Zvlk3MaKRHu?si=faf9a863108e41a09e0e3e0d4341362c&utm_source=clipboard&utm_medium=text&utm_campaign=social_sharing

“먹이고 벗기고
(9. 18. 2022.)

창세기 3:6-7

 

벗겨지면 부끄러움을 느낀다. 추운 겨울 정장을 입는 파티에 참석한적이 있다. 셔츠, 타이, 정장 자켓, 코트를 입어야 했다. 바쁜 나머지 자켓을 빼먹고 코트만 입었다. 가는 도중에 알았다. 코트 안에 셔츠밖에 안 입었다는 것을! 천국에 가고 싶었다. 벗겨지면 늘 부끄럽다.

 

세상은 좋은 것을 먹인 후, 부끄럽게 만든다. 뱀이 아담과 하와에게 선악과를 먹이자 부끄러움을 느낀다. “여자가 그 열매를 따먹고 자기와 함께 있는 남편에게도 주매 그도 먹은지라 이에 그들의 눈이 밝아져 자기들이 벗은 줄을 알고”(창세기 3:6-7) 선악과를 먹으니 벗은 것이 부끄러워졌다. 무슨 말인가? 하나님을 떠난 기준을 먹으면, ‘내 모습이 충분하지 않다고 느끼게’ 만든다는 것이다.

 

돈은 좋은 것이다. 하지만 돈을 기준으로 삼으니 연봉 이야기만 나오면 내 인생의 돈 없음이 한없이 부끄럽다. 외모가 기준이 되니 멋진 사람들 속에서 부끄러워진다. 자녀가 인생 성공의 기준이 되니 방황하는 자녀가 늘 부끄럽다. 오늘 내가 어느 부분에서 소외되고 부끄럽고 숨고 싶다고 느낀다면, 사실 나는 선악과를 먹은 원죄의 결과를 벗어나지 못한 것이다.

 

해결책은 무엇인가? 그리스도로 다시 옷 입는 것이다. “누구든지 그리스도와 합하기 위하여 세례를 받은 자는 그리스도로 옷 입었느니라”(갈라디아서 3:27) 복음을 체험하고 변화될 때 특징이 있다. 부끄러움을 극복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신자는 하나님께 사랑받고 있다는 사실, 예수님이 날 위해 죽으셨다는 사실만이 내 인생의 유일한 기준이 된다. 그 영적인 실재를 현실로 체험하기 시작하면서, 복음은 내가 현실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충분하게 바라보게 해준다.

 

세상이 좋은 것 먹어보라고 할 때, 자꾸 받아먹지 말라. 먹인 다음에는 벗긴다. 좋은 것을 보게 만들고 “너는 이 좋은 것이 없잖아?” 부끄럽게 만든다. 날 위해 벗겨지신 예수님이, 내 죄를 위해 부끄러움 당하신 예수님이, 여전히 나를 사랑하신다. “그의 옷을 벗기고 홍포를 입히며 가시관을 엮어 … 희롱하여 이르되 유대인의 왕이여 평안할지어다 하며”(마태복음 27:28-29) 날 결코 부끄럽게 하지 않으실 그 분만이 나의 주님이시다.

 

[1] (1) 물리적으로 부끄러움을 느꼈던 적이 있습니까? (2) 혹은 남들이 가진 것, 남들이 하는 것을 나만 못하거나, 세상의 기준에 미치지 못하는 인생인 것 같아 부끄러움을 느꼈던 경험이 있습니까? 나누어봅시다.

 

[2-3] 창세기 3장 6-7절을 읽어봅시다. 아담과 하와가 선과 악을 알게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은 결과는 무엇이었습니까? 부끄러움을 느낀다는 것은 어떤 뜻입니까?

 

[4-5] 갈라디아서 3장 27절을 읽어봅시다. 부끄러움을 해결하는 방법은 무엇입니까? 예수님이 나를 위해 당하신 일은 무엇입니까? 예수님 안에서 부끄러움을 극복하고 자신감과 충만함을 회복해야 할 삶의 영역을 나누어봅시다.

https://soundcloud.com/hansaram-church/20220911-2-2444-49a/s-9QKDUT1PVw9?si=46fb3d69891342ecbbad4a23d7ea6fad&utm_source=clipboard&utm_medium=text&utm_campaign=social_sharing

“필요의 부르심
(9. 11. 2022.)

시편 50:12-13

 

사람들은 내가 필요할 때만 나를 부른다. 회사는 내 능력과 재능이 필요할 때만 나를 찾는다. 자기가 심심할 때만 나한테 밥먹자고 한다. 일손이 부족하니 나보고 도와 달라고 한다. 나는 필요의 부르심 속에 살고 있다.

 

하나님은 필요로 나를 부르시지 않는다. “내가 가령 주려도 네게 이르지 아니할 것은 세계와 거기에 충만한 것이 내 것임이로다 내가 수소의 고기를 먹으며 염소의 피를 마시겠느냐”(시편 50:12-13) 배고파도 너한테 밥 달라고 안 하신다는 뜻이다. 하나님은 소고기 사달라고 나한테 오시지 않는다. 삼위 하나님은 스스로 충만하신 분이다. 필요로 나를 부르시지 않는 유일한 존재다. 하나님이 나를 부르시는 것은, 그분의 충만함을 오히려 내게 주시기 위함이다.

 

하나님이 내게 이것저것 요구하시는 일들은 하나님이 부족하시기 때문이 아니다. 하나님이 당신에게 구걸하시지 않는다. 누군가를 사랑하는 일, 교회의 어떤 일을 맡는 일, 하나님 나라를 위해 헌금하는 일, 하나님의 방식대로 업무를 처리하는 일. 그 일을 하면 내가 충만해지고, 내가 하나님의 영광을 볼 수 있기 때문에 나를 시키신 것이다. 주님이 마음 주시면 기회인 줄 알아야 한다. 주님 뜻대로 행하면 오히려 내 필요가 채워질 것으로 생각해야 한다. 신자를 향한 하나님의 부르심은 충만의 부르심이다.

 

하나님 없으면 우리는 언제나 부족함을 느끼는 죄인들이다. 그러나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우리의 부족함을 해결하셨다. “내가 목마르다”(요한복음 19:28) 오히려 죄인의 부족함을 가져가시고, 영생을 우리에게 주신분이 무엇이 부족해서 나를 부르시겠나? 나는 이제 확신할 수 있다. 하나님이 내게 요구하시는 것은 사람처럼 필요해서 나를 부르시는 것이 아니다. 그의 충만함에 참여하게 하시기 위함이다.

 

필요의 부르심을 벗어나라. 충만의 부르심으로 들어가라. 부름 받은 모든 자가 만족을 누렸다. 이제 당신 차례이다.

 

[1] 세상은 ‘필요의 부르심’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필요할 때만 나를 찾는 가정, 직장, 내 주변의 모습들을 느낀 적이 있다면 나누어봅시다.

 

[2] 시편 50편 12-13절을 읽어봅시다. 하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하나님이 하시지 않는 일은 무엇입니까?

 

[3-5] 하나님이 내게 요구하시고, 부르시는 것은 무엇을 위함입니까? 하나님에 대한 오해를 버리고, 요즘 내게 마음 주시는 요구와 부르심에 순종해야 할 삶의 영역들이 있다면 나누어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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