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현된 즐거움”
(11. 20. 2022.)
시편 50:23
아무 일도 아닌데, 그것이 엄청난 보람과 기쁨으로 바뀌는 순간이 있다. 누군가 내가 현재 행하고 있는 일에 감사를 표현하며 즐겨줄 때 그렇다. 남보다 더 나을 때만, 더 탁월할 때만 감사하는 것이 아니다. 그 자체로 즐거워하면 최고의 기쁨이 온다. “이 일을 늘 감당해줘서 정말로 고마워”, “나랑 살아주는 것 자체로 내겐 복이야”, “그렇게 행동하기 쉽지 않은데 정말 대단하세요.” 늘 하던 일인데, 표현만 해줘도 분위기가 바뀐다.
C. S. 루이스는 처음 신앙생활을 할 때 교회에서 찬양 부르는 것을 싫어했다고 한다. 잘 믿기만 하면 되지 왜 굳이? 나중에는 이렇게 고백한다. “즐기는 것을 찬양하는 것이 좋다. 찬양은 즐거움을 표현하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완성해 주기 때문이다. … 즐거움은 표현되기 전까지는 완성되지 못한다. … (무엇이든) 온전히 찬양하면, 가슴이 터질 정도의 감사를 시나 음악, 그림으로 온전히 끌어내면 … 그 대상은 온전히 인정을 받고 우리의 기쁨은 완벽한 수준에 이른 셈이다.” 찬양은 표현된 즐거움이다. 표현하면 상대와 내가 모두 살아난다.
표현된 즐거움을 회복하라.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 그의 행위를 옳게 하는 자에게 내가 하나님의 구원을 보이리라”(시편 50:23) 더 나아질 때까지 상황을 보고만 있지 말라. 당연히 여기면서 침묵하지 말라. 그래서 즐거움이 없는 것이다. 지금 이 상황도 하나님의 은혜다. 올 해, 부어 주신 즐거움을 표현하라. 크게 찬양하라. 헌금하라. 헌신하라. 사람에게도 표현하라. 내 곁에 있어줘서 늘 고맙다고, 당신 참 매력 있다고 말하라. 비싼 밥을 사라. 선물하라. 즐거움은 표현되면서 완성된다.
성자 하나님이신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셨을 때, 성부 하나님이 이렇게 말씀하신다. “하늘로부터 소리가 있어 말씀하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하시니라”(마태복음 3:17) 삼위일체 하나님이 서로 잘 아는데 굳이? 그 관계는 표현된 즐거움으로 가득차 있었다. 그 즐거움이 있었기 때문에, 마지막 십자가 고난도 감당하셨다. “아버지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누가복음 23:46)
추수감사절이다. 현재의 문제를 극복하려고 돌진하지 말고, 먼저 나를 향해 표현하시는 그의 사랑을 받으라. 먼저 그분께 감사와 기쁨을 표현하라. 쓸데 없는 일인 줄 알았는데, 감사 이후 오히려 삶의 문제가 해결되는 기적이 나타날 것이다.
[1] 늘 하던 일에 대해서 내가 누군가에게 감사를 표현하거나, 내가 그 표현을 들을 때 새 힘과 위로가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경험을 나누어봅시다.
[2-3] 시편 50편 23절을 읽어봅시다. 신자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방법 중의 하나는 무엇입니까? 내게 있는 것이 당연하다고 여기거나, 감당하기 벅찬 상황 때문에 감사의 표현에 인색해진 내 삶의 영역이 있다면 나누어봅시다.
[4-5] 삼위일체 하나님은 서로에게 사랑을 어떻게 표현하셨습니까? 지금 하나님을 향한, 사람을 향한 ‘표현된 즐거움’을 생각해봅시다. 무엇이 감사하고, 누구에게 고맙습니까? 어떻게 표현하면 좋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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