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능예찬
(10. 16. 2022.)

고린도전서 1:27

 

행복이 능력에 비례하는 시대에 살아가고 있다. 그 사람 왜 행복한지 가만히 보라. 능력이 있으니까 여기저기서 인정도 받고, 돈도 벌고, 기회도 생긴다. 무능하면 그 모든 것이 너무 힘들다. 그래서 무능한자는 사회에서 도태된다. 무능하면 불행하다. 그리스도인은 내 행복이 능력에 상당부분 기반하고 있음을 겸손히 인정해야 한다.

 

하지만 하나님은 무능한 자를 좋아하신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며”(고린도전서 1:27) 능력 좋은 사람은 다 거부하신 다는 말이 아니다. 능력이 있는 바람에 자신의 일을 하느라 하나님이 시키는 일을 못하는 사람은 하나님께 방해가 된다는 말이다. 하나님은 바빠 보이는 사람을 싫어하신다. 차라리 무능한 자 데리고 자신의 일을 하기 원하신다. 단순한 절대적 능력이 무능하다는 말이 아니다. 관계 안에서 자신의 능력을 하나님께만 드리는 자를 찾으신다.

 

외국계 패션회사에 입사하고, 준수한 외모를 가진 ‘박위’라는 형제가 클럽에서 술 마시다가 떨어져 전신마비를 당한다. 누군가 24시간 간병을 해야 했다. 가족이 간병인을 고용하려 했을 때, 3살 차이나는 대학 졸업반 남동생이 이렇게 말한다. “우리 형을 간병인에게 맡기고 싶지 않아요.” 바로 휴학하고 형 간병에 뛰어든다. 형이 잘나갈 때는 그 동생은 형보다 무능한 사람이었다. 형이 무능해지자, 동생은 무능은 오히려 위대해진다. 왜 위대한가? 관계 속에서 상대가 원하는 바에 기꺼이 뛰어들었기 때문이다. 무능은 절대적 능력부족이 아니다. 무능은 하나님의 부르심 앞에 세상의 관심사를 내려놓는 것이다.

 

예수님은 모든 능력을 소유한 분이셨다. 그러나 무능과 연약함으로 쓰임 받으셨다. 그것이 십자가 사건이다. 무능은 절대적 능력부족이 아니라고 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부르심 앞에서 모든 것을 내려놓고 죽음을 향해 가셨다. 그래서 그의 무능은 위대하다. 그의 죽으심 때문에 나는 죽음 앞에서도, 심판 앞에서도 능력 있게 설 수 있다.

 

요즘 세상에서 좀 잘 나가는가? 인정 좀 받는가? 하나님이 볼 때 제일 불쾌한 사람일 수 있다. 바쁘다고 하나님한테 관심을 끄다니? 하나님은 그래서 당신을 그렇게 두시고 무능한 자를 찾으시는 것이다. 하나님의 콜 앞에 모든 것을 다 내려놓을 수 있는 사람. 하나님의 간병인을 기대한다.

 

[1] 이 시대는 능력이 없으면 인정받기 어렵습니다. 여러모로 내가 능력 때문에 상대적으로 유익과 불익을 경험한 적이 있다면 나누어봅시다.

 

[2-3] 고린도전서 1장 27절을 읽어봅시다. 하나님은 어떤 자를 사용하십니까? 성경적인 무능의 정의는 무엇입니까? 무능한 자는 언제 위대해집니까?

 

[4-5] 예수님이 가장 위대하게 쓰임받으신 방법은 무엇입니까? 내가 요즘 하나님의 부르심을 따라서 헌신 해야겠다고 느끼는 일이 있습니까? 혹은 회피하고 있는 일이 있습니까? 나누어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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