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일의 확신”
(12. 11. 2022.)
요한일서 5:18
하나님의 보호하신다는 약속이 의심될 때가 있다. 하나님이 지켜주신다면 이런 사고가 나지 않아야 하는 것 아닐까? 하나님이 내 안에 계신데 내가 또 이런 죄에 넘어질 수 있는 것일까? 하나님이 보호하신다면 그 사람이 나를 이렇게 대할 수 있는 것일까?
마귀는 예수님을 믿는 사람을 건드릴 수 없다.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는 다 범죄하지 아니하는 줄을 우리가 아노라 하나님께로부터 나신 자가 그를 지키시매 악한 자가 그를 만지지도 못하느니라”(요한일서 5:18) 만질 수도 없다. 엄청난 약속이다. 예수님을 믿는데 동시에 다시 귀신 들릴 수 있는가? 그럴 수 없다. 하나님이 신경 쓰지 않아서 사고 날 수 있나? 없다. 신자들이 타인으로부터 하나님이 허용하시지 않은 욕을 먹을 수 있나? 그럴 수 없다. 이걸 확신해야 한다.
그러므로 신자의 확신은 ‘모든 일’의 확신이다. 좋은 일만 벌어질 때가 아니다. 모든 일이다. 믿는 자에게 복 주시는 ‘명령적인 뜻’이 있지만, 그 과정으로 이끄실 때 악을 허용하시는 ‘작정적인 뜻’이 있다. 나쁜 일이 벌어지는 것도 통제되지 않는 상황이 아님을 확신해야 한다. 그 때 평안이 있다. 하필 그렇게 다치는 것, 하필 그런 사고를 당하는 것, 하필 그런 병이 나는 것 모두 하나님이 이끄시는 ‘모든 일’이다. 하나님의 사람이 된다는 것은 좋은 일에서만 평안을 찾다가, 모든 일에서 평안을 누리는 사람으로 변화되는 것이다.
가장 선한 사람에게, 가장 나쁜 일이 벌어졌다. 그 모든 일이 하나님 안에 있음을 증거하는 것이 예수님의 삶이다. 죄가 없는 자에게, 죄가 뒤집어 쓰여졌다. 그 죄가 나의 죄였다는 것이 핵심이다. 나를 향한 사랑 때문에 억울함이 없으셨던 그분이 나와 함께하신다. 그렇다면 주님 안에 내 삶도 이제 억울하지 않다. 분명 이 나쁜 일도 하나님이 통치하시는 ‘모든 일’에 속함을 믿기 때문이다.
나쁜 일이 생길까봐 조마조마 하는 두려움에서 벗어나라. 무슨 일이 일어나도 좋다. 하나님 없이 아무 일이나 생길 수가 없음을 알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허용하신 일만 일어난다. 그곳에서 주님 따라 살기를 원한다. 그것이 모든 일 속의 확신을 가진 자의 삶이다.
[1] 하나님이 함께하심을 믿지만, 과연 함께하시는 데 이 일이 생기는 것이 맞는지 의심이 될 정도로 받아들이기 어려운 일들이 일어납니다. 어떤 경험들이 있었습니까?
[2-3] 요한일서 5장 18절을 읽어봅시다. 예수님을 믿는 자들이 누리는 권위는 무엇입니까? 신자들에게 하나님을 벗어난 나쁜 일이 생길 가능성이 있습니까? ‘이 일도 하나님 안에 있다’라고 생각이 확장되었던 경험이 있다면 나누어봅시다.
[4-5] 가장 선한 사람이, 가장 나쁜 일을 당했습니다. 누구의 삶입니까? 그 이유는 누구의 죄 때문입니까? 그 사랑을 신뢰하며 힘들고 어려운 내 삶을 어떻게 다시 바라봐야 할지 나누어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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