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전이 없는 종교”
(12. 18. 2022.)
요한계시록 21:22
사람에게 만족과 성취를 주는 모든 곳에는 종교적인 속성이 있다. 종교에는 희생-보상 구조가 늘 포함된다. 원한다면, 무엇을 가져다 바쳐야 한다는 말이다. 멋진 옷을 원하는가? 돈을 바치러 백화점이라는 성전으로 들어 가야 한다. 승진하고 싶은가? 회사라는 성전에서 몸을 갈아 넣어야 한다. 외모를 원하는가? 피부과/성형외과라는 성전으로 들어가야 한다. 이 시대 성전은 교회가 아니다. 내가 원하는 것을 위해 내 모든 것을 바치는 곳이 내 성전이다.
성전이 없는 유일한 종교가 기독교이다. “성 안에서 내가 성전을 보지 못하였으니 이는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와 및 어린 양이 그 성전이심이라”(요한계시록 21:22) 예수님이 직접 성전이 되신다. 무슨 말인가? 기독교는 사람의 희생으로 신의 복을 받는 종교가 아니다. 신의 희생으로 사람이 신의 복을 받는 종교다. 누가 희생하셨는가? 예수님이 희생하셨다. 어디로 들어가야 복을 받을 수 있나? 예수님께로 들어가면 복을 받을 수 있다.
이것을 믿으면 ‘성전에 들어가지 않아도 되는 자유’를 누린다. 꼭 그 학교에 들어가야만 행복이 있을 줄 알았다. 그러나 들어가지 않아도 되는 자유를 누린다. 꼭 그런 집에 살고, 그런 배우자 만나고 싶었다. 그러지 않아도 복이 있음을 믿을 수 있다. 못 이루어서 아쉽고, 못 가봐서 서러운 일들이 사라진다. 성전 되신 예수님이 내 안에 계시기에, 그분이 함께 계시면 어디서나 만족이 있음을 깨닫게 되기 때문이다.
성전에 들어가지 않아도 어디서나 만족 주시기 위해, 예수님은 아예 우리 안으로 들어오셨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요한복음 1:14) 죽음에 들어가셔도 부활을 가지고 나오신 분이다. 최악에서 최고의 기쁨을 주시는 분이 내 안에 계시니, 지금 여기에서도 완전한 만족을 누릴 수 있음을 확신할 수 있다.
교회에 와서 성전 놀이하지 말라. 헌금을 더 많이 하면 복을 주실까? 더 많이 기도하면 간절한 내 소원을 이루어주실까? 무언가 드리기 전에, 먼저 다 주신 그분을 바라보라. 그 때에 모든 것을 즐거움으로 다 내어드릴 수 있다. 그분이 나의 유일한 성전이시다.
[1] 사람들이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돌아다니는 것을 보면서 종교적/영적인 느낌을 받을 때가 있습니다. 나와 내 주변 사람들이 요즘 추구하는 것은 무엇이며, 그것을 위해 어떻게 자신을 희생합니까?
[2-3] 요한계시록 21장 22절을 읽어봅시다. 기독교가 다른 종교와 다른 점은 무엇입니까? 예수님을 믿을 때 자유하게 되는 삶의 변화는 무엇입니까?
[4-5] 요한복음 1장 14절을 읽어봅시다. 어디에서나 복을 주시기 위해 예수님은 어디에 거하시기로 하셨습니까? 내가 드나들던 성전이 무너지고 예수님과 함께 동행을 시작했던 경험이 있다면 나누어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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