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사랑하기에”
(11. 21. 2021.)
요한1서 4:10
이 세상 모든 단절에는 이유가 있다. 회사에서 짤렸다. 왜? 능력이 없어서. 사랑하던 사람과 관계가 중단되었다. 왜? 너무 심한 말을 해서. 소개팅 한 번 하고 애프터를 거절했다. 왜? 내 스타일이 아니라서. 단절에는 만 가지 이유가 있다. 반대로, 단절된 것을 연결시킬 때는 오직 한 가지 이유만 있다. 사랑이다. 사랑하면 단절했던 이유가 문제되지 않는다. 내가 사랑하면 다 되는 것이다.
틀어진 관계를 바로잡을 때, 상대에게서 근거를 찾지 말라. 그 사람의 행동과 상태를 근거로 관계가 회복되는 것이 아니다. “나한테 미안하다고 말을 해야 받아주든지 말든지 하지!” 아니다. 다시 내가 먼저 이것저것 말을 걸면서 관계를 풀어나가는 것이다. “능력이 없는데 그 사람과 어떻게 일해?” 아니다. 능력 있도록 내가 도와주겠다고 먼저 제안하는 것이다. “연락도 안 하는데 내가 도와줄 필요가 있나!” 아니다. 괜찮은지 내가 먼저 연락하면서 회복하는 것이다. 사실 사랑이 없는데, 만 가지 이유로 핑계대지 말라. 왜 그렇게 행동하냐고? 내가 사랑하기에. 그것 뿐이다. 내가 사랑하면 된다. 그게 관계 회복의 근거가 되어야 한다.
합당한 자에게만 합당한 것을 주어야 한다는 말에 속지 말라. 합당하지 않으니 함부로 대하겠다는 마음을 버리라. 그것은 상대 속에서 근거를 찾는 것이다. 그리스도인의 행동의 근거는 상대 안에 있지 않다. 그리스도를 만난 나의 마음 속에 있다. 그래서 신자가 가는 곳마다 새로운 관계의 회복과 돌파가 나타나야 한다. 내가 사랑하기에, 부모를 다시 대해보라. 내가 사랑하기에, 배우자와 자녀를 다시 대해보라. 내가 사랑하면 모든 것을 다시 시작할 수 있다.
우리는 어떻게 하나님과 관계를 회복할 수 있었는가? 그가 우리를 사랑하기에. 그것 뿐이다.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속하기 위하여 화목 제물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라”(요한1서 4:10)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적이 없는데 왜 우리를 잘 대해주시는가? 답은 똑같다. 예수님이 우리에게서 사랑할 근거를 찾으신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분의 사랑만을 근거로, 내가 사랑받은 존재임을 믿는가? 그렇다면 내가 한없이 부족할 때에도 그의 사랑 때문에 다시 일어설 수 있을 것이다. 당신이 일어난 그 방식대로, 상대도 사랑해보라. 당신의 사랑을 힘입어, 그도 다시 일어설 것이다.
[1] 헤어지거나, 관계를 끊었던 사람을 나누어봅시다. 그 이유는 무엇이었습니까? 반면, 한 없이 관대하고, 봐주고, 잘해주는 사람이 있다면 나누어봅시다. 당신은 왜 그렇게 행동합니까?
[2-4] 요한1서 4장 10절을 읽어봅시다. 신자가 관계를 회복할 때 근거로 삼아야 할 것은 상대의 행동입니까? 아니면 그리스도의 사랑입니까? 상대를 사랑하지 않을 이유를 찾는 것은 사실 내 안에 무엇이 부재한 것입니까?
[5] 내게 주신 그분의 사랑을 근거로, 다시 사랑해야 할 관계들을 나누어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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