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망할 때 싫어지는 것”
(10. 10. 2021.)
욥기 1:21-22
간절히 소원하며 하나님께 기도했던 일들이 있다. 그러나 결과가 좋지 않을 때 실망한다. 사람은 실망하면 서운해진다. 화도 난다. “하나님, 왜 제가 이런 일을 겪게 만드시나요?”, “차라리 이 일을 시작하지 말게 하시지 그랬어요!”, “왜 이 기회를 놓치게 하셨죠?” 실망이 계속되다가, 결국 하나님도 싫어진다.
욥에게 고난이 찾아온다. 집이 부서지고(19), 재산이 날아가며(16), 자녀가 목숨을 잃는다(19). 원하고 바라던 것이 눈 앞에서 사라지니 실망과 절망이 찾아왔다. 욥은 하나님이 싫지 않았을까? “이르되 내가 모태에서 알몸으로 나왔사온즉 또한 알몸이 그리로 돌아갈지라 주신 이도 여호와시요 거두신 이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21) 알몸이 될 때까지 실망이 계속되니, 오히려 나를 여전히 생각하시는 여호와만 바라본다. 욥은 실망의 때에, 하나님이 싫어지지 않았다.
우리의 실망에 변화가 찾아올 때가 있다. 실망스러울 때는 늘 하나님이 싫었다. 그러나 어느 순간, 내가 원하고 바랐던 것이 싫어지기 시작한다. 이 지긋지긋한 탐욕, 이 지긋지긋한 연애, 이 지긋지긋한 사업. 내가 바라고, 내가 집착하던 것이 오히려 내게 기쁨과 만족을 주지 못함을 깨닫는다. 내가 집착하다가 오히려 행복을 빼앗기고 있었던 것은 아닌지 돌아보게 된다. 하지만 실망한 그 자리에서, 여전히 나를 인도하시고, 여전히 나를 사랑하신다고 말씀하시는 하나님을 발견한다.
예수님이 십자가를 피하고 싶다고 기도하신다.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마가복음 14:36) 그러나 안 된다는 응답을 받으신 것 같다. 실망의 때에, 예수님은 하나님을 싫어하지 않았다.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나의 원함을 싫어하고, 아버지의 원함을 끝까지 붙들었다. 하나님을 싫어하지 않으신 예수님의 순종이 내게 구원을 가져온 것이다.
실망스러운 내 삶에도 구원이 찾아올 것이다. 그것이 언제인지 아는가? 실망할 때 싫어지는 것이 바뀌는 때이다. 응답하지 않으셔서 실망스러운가? 이루어주지 않으셔서 실망스러운가? 그 때에 하나님 싫어하지 말고, 나의 집착과 원함을 싫어해보라. 나의 원함과 나의 계획이 내게 행복을 줄 수 없다. 오직 여기 계신 하나님만이 나의 행복이시다. 그게 느껴지면, 당신은 구원받은 것이다. 당신은 그 때부터 잘 될 것이다. 그 때가 당신의 구원의 때이다.
[1] 삶에서 실망스러운 결과를 맞이할 때가 있습니다. 그 때 하나님을 향한 나의 마음도 함께 요동칩니다. 나의 경험이 있다면 나누어봅시다.
[2-3] 욥기 1장 16-19절을 읽어봅시다. 욥은 어떤 일을 당했습니까? 21-22절을 잃어봅시다. 실망의 때에 욥은 어떻게 반응합니까? 무슨 차이가 있습니까?
16 그가 아직 말하는 동안에 또 한 사람이 와서 아뢰되 하나님의 불이 하늘에서 떨어져서 양과 종들을 살라 버렸나이다 나만 홀로 피하였으므로 주인께 아뢰러 왔나이다
17 그가 아직 말하는 동안에 또 한 사람이 와서 아뢰되 갈대아 사람이 세 무리를 지어 갑자기 낙타에게 달려들어 그것을 빼앗으며 칼로 종들을 죽였나이다 나만 홀로 피하였으므로 주인께 아뢰러 왔나이다
18 그가 아직 말하는 동안에 또 한 사람이 와서 아뢰되 주인의 자녀들이 그들의 맏아들의 집에서 음식을 먹으며 포도주를 마시는데
19 거친 들에서 큰 바람이 와서 집 네 모퉁이를 치매 그 청년들 위에 무너지므로 그들이 죽었나이다 나만 홀로 피하였으므로 주인께 아뢰러 왔나이다 한지라
[4-5] 마가복음 14장 36절을 잃어봅시다. 예수님이 기도 중에 실망하신 것은 무엇입니까? 그러나 끝까지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싫어하셨습니까? 내 삶의 실망 속에서 내가 변화되어야 할 태도는 무엇인지 나누어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