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굽을 이기는 요셉
(7. 18. 2021.)

창세기 41:34-36

 

과거의 삶이 평탄할수록 새로 닥치는 위기에 적응을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괜찮은 학창시절을 보낸 최근의 젊은 세대일수록 좌절이 큰 것이다. 사회 분위기도 어둡고, 기회도 없어 보이고, 나도 점점 무력해진다. 결국 최종 타락의 결과에 봉착한다. 더 나아질 것을 기대조차 하지 않는 것이다.

 

애굽에 흉년이 다가오고 있었다. 누구도 대비할 수 있는 감각이 없었다. 위기 앞에서 하나님은 미리 준비하신 하나님의 사람, 요셉을 세우신다. “이와 같이 그 곡물을 이 땅에 저장하여 애굽 땅에 임할 일곱 해 흉년에 대비하시면 땅이 이 흉년으로 말미암아 망하지 아니하리이다”(창세기 41:36) 지도자의 무감각, 경제적인 붕괴라는 심각한 위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요셉을 통한 하나님의 일하심이 바로의 무감각을 이겼다. 흉년을 막았다. 애굽 전체를 살렸다.

 

요셉을 통한 하나님의 일하심을 내게 이렇게 정의하라. “상황을 돌파하는 하나님의 지혜” 우리에게 이것이 필요하다. 사회 구조적인 어려움에 처해있는가? 내 힘으로는 도저히 해결할 수 없는 문제인가? 하나님이 주시는 지혜의 한 문장을 구하라. 다들 죽겠다고 할 때, 나도 살고, 오히려 나 때문에 주변도 살아나는 일이 벌어질 것이다.

 

맹신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에겐 근거가 있다. 죽음 앞에 서신 예수님의 능력이 우리 안에 있다면 가능하다. “하나님의 어리석음이 사람보다 지혜롭고 하나님의 약하심이 사람보다 강하니라”(고린도전서 1:25) 예수님은 사람들이 볼 때 어리석은 존재였다. 예수님은 사람들이 볼 때 약한 존재였다. 그러나 그 분은 하나님의 지혜 그 자체이셨다. 그분이 십자가의 죽음 앞에 서자, 택한 백성 전체가 죄에서 구원받았다.

 

그 능력이 지금도 내 안에 살아 있음을 확신하는가? 애굽을 이기는 요셉과 함께하신 하나님이 계신다. 죽음을 이기신 예수님이 나와 함께 계신다. 당신의 삶이 절대 그냥 무너지지 않을 것이다. 간절히 지혜를 구하라. 바로도, 흉년도, 모두 이길 것이다.

 

[1] 삶에서 경험해보지 못한 위기 때문에 더 나아질 것을 기대하지 않고, 소망이 점점 사라지며 현재의 문제에 매몰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내가 깨어있지 못했던 최근의 영적 무감각을 나누어봅시다.

 

[2-3] 창세기 41:36을 읽어봅시다. 국가적인 위기 앞에서 문제를 해결한 것은 누구였습니까? 그것은 누가 주신 것입니까? 요셉을 통한 하나님의 일하심은 어떤 문제를 해결하였습니까?

 

[4-5] 요셉에게 임했던 능력이 우리에게도 있음을 확신할 수 있는 이유는 누구 때문입니까? 당신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 거하고 있음을 확신합니까? 내 삶의 구체적인 영역 속에서 지혜를 구해야 할 주제들을 나누어봅시다. 또 하나님이 주신 지혜로 위기를 벗어난 경험이 있다면 나누어봅시다.

https://soundcloud.com/hansaram-church/20210711-5-51-21a/s-y5aLGDXHe6Z

“하나님이 사라지는 해결책
(7. 11. 2021.)

사무엘상 13:8-9

 

원하는 때에 일이 해결되지 않는다. 기다림이 늦어진다. 그때부터 사람은 조급해진다. 이러다가 언제 결혼하나! 이러다가 언제 돈을 버나! 이러다가 언제 취업하나! 해결을 위해 이리 기웃 저리 기웃 하다가 복잡해지기만 하는 것이 우리 인생이다.

 

블레셋 민족이 이스라엘을 지독하게 괴롭혔다. 위급함 속에 해결책이 보이지 않았다. 예배 인도를 맡았던 사무엘이 오지 않는다. 다급한 마음에 사울에 대신 해결해버린다. “사울이 이르되 번제와 화목제물을 이리로 가져오라 하여 번제를 드렸더니”(9절) 블레셋에게 호되게 당해야 하지 않을까? 뒤에 그런 내용이 없다. 사울은 뒤에 모든 곳에서 블레셋을 이겼다. 해결했는데, 하나님이 사라졌다. 하나님이 사울을 떠나신다. 다 이겼는데, 갑자기 사울은 사라지고 다윗 이야기만 나온다.

 

하나님이 사라지는 해결책이 있다. 내가 원하는 대로 문제를 해결하면, 정말 해결되는 경우가 있다. 잠깐 외로움도 사라진다. 돈도 번다. 꿈꾸던 일도 이룬다. 삶의 저주는, 해결되지 않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사라지는 것이다. 계속 그렇게 해보라. 인도하심도 느껴지지 않고, 함께하신다는 확신도 들지 않는다. 기쁨과 감사, 소망도 다 사라진다. 나의 조급한 해결은, 하나님의 부재를 낳는다.

 

다급한 해결책을 찾지 않으신 분이 있다. 예수님에게 십자가에서 내려오라고 쏘아붙인다. “네가 너를 구원하여 십자가에서 내려오라 하고”(마가복음 15:3) 예수님은 성부 하나님을 떠나 해결하려고 하지 않으셨다. 그 죽음을 통해, 하나님이 사라질 뻔한 내 인생의 죄의 문제를 해결해 주셨다. 나의 삶의 다급한 문제도 이제 확신하라. 죽을 것 같은 상황 속에서 하나님의 방식대로 일을 처리할 때, 내 인생의 중요한 문제도 해결될 것이다.

 

블레셋은 사울을 죽일 수 없었다. 하나님이 사울을 죽이셨다. 해결책이라고 다 따라가지 말라. 하나님이 사라지는 해결책도 있다. 블레셋은 사실 진짜 다급한 내 문제가 아닐지도 모른다.

 

[1] 하나님의 뜻,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고려하지 않고 위기가 생길 때, 부족할 때 급하게 문제를 해결하려다가 이도저도 되지 않았던 삶의 경험이 있다면 나누어봅시다.

 

[2-3] 사무엘상 13장 8-9절을 읽어봅시다. 사울은 왜 사무엘을 대신하여 번제를 드렸습니까? 14장 47절을 읽어봅시다. 사울은 블레셋과의 전쟁에서 어떤 결과를 얻었습니까?

 

13:8 사울은 사무엘이 정한 기한대로 이레 동안을 기다렸으나 사무엘이 길갈로 오지 아니하매 백성이 사울에게서 흩어지는지라
13:9
사울이 이르되 번제와 화목제물을 이리로 가져오라 하여 번제를 드렸더니
14:47
사울이 이스라엘 왕위에 오른 후에 사방에 있는 모든 대적 곧 모압과 암몬 자손과 에돔과 소바의 왕들과 블레셋 사람들을 쳤는데 향하는 곳마다 이겼고

 

[4-5] 사무엘상 15장 11절을 읽어봅시다. 블레셋은 해결했으나, 사울에게 임한 결과는 무엇입니까? 예수님은 다급한 문제 속에서, 주님께 순종하심으로 우리에게 어떤 해결을 주셨습니까? 하나님이 사라지는 해결책을 경계하기 위한 삶의 결단들을 나누어봅시다.

 

15:11 내가 사울을 왕으로 세운 것을 후회하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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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 수 있는 일로 전진하기
(7. 4. 2021.)

마태복음 10:5-6

 

하반기가 시작되었다. 전반기에 좀 잘 풀렸는가? 잘 된다고, 살만하다고 안주하는 것 자체가 패배이다. 반년 동안 좀 어려웠는가? 같은 방식으로 싸울 순 없다. 하나님이 낮과 밤, 계절과 시간을 주셨다. 새로운 시즌에는, 새로운 변화와 다짐을 하기 좋은 시기이다. 한 번 점검하고 돌아보면, 승리의 하반기를 디자인할 수 있다.

 

예수님이 제자들을 보내신다. 가지 말아야 할 곳과, 가야할 곳을 알려주신다. “이방인의 길로도 가지 말고 사마리아인의 고을에도 들어가지 말고”(마태복음 10:5) 제자들이 있었던 곳은 갈릴리였다. 남쪽 사마리아를 제외하고는, 사방이 유대인들이 사는 곳에 둘러 쌓여 있었다. 굳이 멀리 이방인 만나러 가지 말라는 것이다. 굳이 사마리아 들어가지 않아도 된다는 말이다. “오히려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에게로 가라”(6) 처음엔 지리적으로 제한된 이 조건 속에서 할 수 있는 일을 하라고 명하신다. 이스라엘 백성들을 먼저 만나라는 것이다.

 

할 수 있는 일로부터 전진하라. 하반기에 집중해야 할 것이 바로 이것이다. 머나먼 미래의 일들을 신경 쓰면서 오늘을 놓치지 말라. 삶의 압박감이 너무 심해 지금 잡을 수 있는 기회를 미루지 말라. 멀리 이 사람 저 사람 챙기면서, 정작 중요한 가까운 사람을 놓치지 말라. 이스라엘 집에 가면, 나중에 이방인과 사마리아인의 고을에도 들어갈 것이다.

 

할 수 있는 일만 해봐야 여기서 어떻게 전진할 수 있겠는가? 예수님이 두로와 시돈 지방에서 유대인이 아닌 가나안 여자를 만나신다. 딸이 귀신들려 고쳐달라고 하자, 예전에 했던 말을 또 하신다. “나는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 외에는 다른 데로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노라”(15:24) 일부러 이 말을 하시고, 딸을 고쳐주신다. 예수님의 때에, 사역은 확장되었다. 당신도 확신하라. 먼저 할 수 있는 일을 하면, 예수님의 때에, 예수님이 직접 내 삶을 확장시키실 것이다.

 

예수님이 내 삶의 죄와 죽음을 넘어 영생과 부활까지 확장시키셨다. 그러므로 오늘 나는 그를 신뢰하는 마음을 가지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에 집중하겠다. 그러면 하나님이 정하신 때에, 두로와 시돈으로, 사마리아와 이방인에게로 내 삶이 확장될 것이다. 할 수 있는 일로 전진하라. 이것이 하나님의 뜻이다.

 

[1] 2021년의 반이 지났습니다. 지난 반년 간의 내 삶의 이슈는 무엇인가요? 전반기와 똑같이 살아가면 안될 것 같은 내 삶의 새로운 변화와 도전들은 무엇인가요? 내 안에 변화를 거부하는 안주하려는 마음도 있다면 나누어봅시다.

 

[2-3] 마태복음 10장 5절을 읽어봅시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보내시면서 (1) 어디로 가지 말라고, (2) 어디로 가라고 말씀하십니까?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4-5] 마태복음 15장 24절을 읽어봅시다. 가나안 여자에게 예수님이 의도적으로 했던 말을 반복하시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예수님의 때에 내 삶이 자연스럽게 확장될 것을 믿고, 하반기 내가 집중해야 될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지 나누어봅시다.

https://soundcloud.com/hansaram-church/20210627-3-31-18a/s-oLL7Jc5i5Qj

“있는 것으로 안 되고, 없는 것으로 되고
(6. 27. 2021.)

사무엘상 1:2

 

인생을 힘들게 만드는 것은 없는 것이다. 어릴 땐 남들 사는게 다 비슷해 보였는데, 점점 내게는 무언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된다. 돈이 없다. 건강이 없다. 친구가 없다. 배우자가 없다. 자녀가 없다. 있는 것과 없는 것이 인생을 가르는 것 같다. 있어야 ‘된다’. 없으면 ‘안 된다’.

 

두 여자가 있었다. 한 여자는 자녀가 있고, 또 한 여자는 자녀가 없었다. “한 사람의 이름은 한나요 한 사람의 이름은 브닌나라 브닌나에게는 자식이 있고 한나에게는 자식이 없었더라”(사무엘상 1:2) 고대 사회에서 자녀는 가문의 전부였다. 그런데 성경의 그 이후 모든 이야기는 없던 여자, 한나 이야기만 적혀있다. 브닌나는 한나에게 자녀 없다고 놀리다가 사라져버린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은 세상과 정반대이다. 있는 것으로는 안 되고, 없는 것으로 된다.

 

내게 무언가 있는가? 거기서 끝이다. 내게 무언가 없는가? 바로 그곳에 주목하라. 약함과 부재, 결핍과 공허 속에 하나님이 일하신다. 없는 것을 가지고 기도하며, 한나는 사무엘을 얻는다. 사무엘이 바라본 이스라엘에는 하나님이 없었다. 사무엘은 없는 것을 가지고 기도하여, 이스라엘에게 하나님의 임재를 회복시킨다. 없는 것 속에서 하나님을 만나면서 인생의 새 길이 열렸던 경험이 있는가? 없는 것 뒤에는 언제나 하나님이 숨어계신다.

 

정말 없으면 안되는 것이 있다. 하나님이다. 하나님이 없어지는 죄의 형벌을 내 대신 예수님이 당하셨다. “엘리 라마 사박다니 하시니 이를 번역하면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하는 뜻이라”(마가복음 15:34) 그러므로 내 인생에는 언제나 하나님이 있다. 하나님이 계시므로, 모든 없는 것을 다시 해석하라. 내 인생은 세상의 것이 있다고 풀리지 않을 것이다. 분명히 없는 것을 통해 무언가 될 것이다. 예수님 안에서, 없는 것을 향한 소망이 생긴다.

 

있는 것으로 해보려 하지 말라. 없는 상황 속에 하나님을 찾아보라. 하나님은 한나에게 응답하셨다. 당신에게도 그러실 것이다. 있는 것으로는 안 된다. 없는 것으로 된다.

 

[1] 시기마다, 상황마다 필요한 것들이 내게는 없음을 발견할 때가 있습니다. 무엇이 부족했고, 무엇이 없었습니까? ‘없음’ 때문에 고민했던 경험들을 나누어봅시다.

 

[2-3] 사무엘상 1장 2절을 읽어봅시다. 두 여자를 어떻게 대조하고 있습니까? 브닌나는 어디에서 끝납니까? 사무엘상의 뒷 이야기는 모두 누구의 이야기입니까?

 

[4-5] 인생에 없으면 정말 안 되는 것이 있습니다. 무엇입니까? 예수님 때문에 우리에게 언제나 있는 것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이 계시기에, 이 땅에 무엇인가 없는 나의 상황을 대해야 할 새로운 마음가짐을 나누어봅시다.

https://soundcloud.com/hansaram-church/20210620-2-112-213a/s-QgmTtfaKqt1

“피곤함을 다스리기
(6. 20. 2021.)

마가복음 4:37-39

 

모두가 보람 있게 살고 싶은 열정이 있다. 좋은 목표, 좋은 헬스장, 좋은 책을 찾아 나선다. 그러다가 삶의 열매를 가로막는 진짜 문제를 깨닫는다. 피곤이다. 피곤해서 못하겠다. 체력이 없는 것이다. 하고 싶은 일을 끝내지 못하고 지쳐 잠에 드는 삶, 그것이 우리 모습이다.

 

피곤을 관리해야 한다.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배를 타고 이동하신다. 다음 사역지에서 밀려오는 엄청난 일들을 감당하시기 위해, 예수님은 잠을 청하신다. “예수께서는 고물에서 베개를 베고 주무시더니”(마가복음 4:38) 주님은 죄가 없으셨다. 그런데 주무셨다. 우리는 여기서 알 수 있다. 잠은 죄가 아니다. 피곤해서 잠을 자는 것은 하나님이 인간이 그렇게 살도록 정하신 일이다.

 

문제는 피곤을 틈타서 들어오는 죄이다. 내가 육체의 피로를 관리하지 못하면, 마귀는 피곤을 틈타서 들어온다. 주변 사람들에게 짜증을 내거나, 무관심해지는 나의 태도의 뿌리에는 피곤이 있지 않은가? 날 피곤하게 만드는 일에만 집중하다가 모든 경건생활이 무너지고 있는 것은 아닌가? 분노, 게으름, 무시, 산만함 등은 표면적인 죄인 경우가 많다. 내 삶이 하나님 것이라면, 나는 근본적으로 나의 피곤함을 다스려야 할 책임이 있다.

 

심한 고민과 스트레스 중에도 깨어 계신 분이 있다. “내 마음이 심히 고민하여 죽게 되었으니 너희는 여기 머물러 깨어 있으라 하시고”(마가복음 14:34) 모두가 피곤했으나, 가장 중요할 때 예수님은 피곤함을 다스려서 승리하셨다. 제자들은 중요할 때 다 잤다. “네가 한 시간도 깨어 있을 수 없더냐”(37), “그들이 자니 그들의 눈이 심히 피곤함이라”(40) 자신의 피곤함을 관리하심으로, 십자가 앞에서 깨어 기도하신 예수님 때문에 내가 구원받을 수 있었다. 그것을 믿는 나의 삶도 달라져야 한다. 피곤함을 다스리신 예수님 앞에서, 나의 피곤함을 지혜롭게 관리하는 것이 제자의 마땅한 바이다.

 

마음대로 하루를 허비하다가 중요한 일 앞에서 피곤해지는 우를 범하지 말라. 피곤을 관리하지 못하는 한가지 어리석음 때문에 온갖 파생적인 죄악에 무너지지 말라. 피곤함 하나만 잘 다스려도, 삶의 중요한 문제를 놓치지 않을 것이다.

 

[1] 나이와 체력이 변해 가면서 피곤함 때문에 일을 그르치거나, 집중하지 못하고, 기쁨이 사라졌던 경험이 있습니까? 나누어봅시다.

 

[2-3] 마가복음 4장 38절을 읽어봅시다. 잠을 자는 것, 피곤해지는 것은 죄입니까? 당연한 인간의 한계 속에서 예수님이 하신 일은 무엇입니까? 피곤을 다스리지 못해서 파생적으로 내 삶에 나타나는 죄악이 있다면 나누어봅시다.

 

[4-5] 마가복음 14장 34절, 40절을 읽어봅시다. 가장 중요한 문제 앞에서 제자들과 예수님의 차이는 무엇입니까? 내게 주신 삶이 주님의 것임을 기억하며, 내게 주신 스케쥴 속에서 어떻게 피곤을 관리하는 것이 지혜로운 일일지 생각해봅시다.

https://soundcloud.com/hansaram-church/20210613-1-11-11a/s-CcOZKevGXl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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