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인에게 잡힌 주인”
(8. 1. 2021.)
사도행전 16:16-18
술 중독자에게 유명한 말이 있다. 내가 술을 먹고, 술이 술을 먹고, 술이 나를 먹는다. 내가 주체적으로 만족을 추구하는 것 같지만, 내가 추구하는 것이 오히려 나를 통제하는 것이다. 열심히 사는 것 같지만, 그것 없이는 기쁨도 없고, 만족도 없고, 그것을 벗어날 수 없다면, 그것은 이미 당신의 하나님이 된 것이다.
바울이 전도하다가 점치는 귀신들린 여종을 만난다. “점치는 귀신 들린 여종 하나를 만나니 점으로 그 주인들에게 큰 이익을 주는 자라”(사도행전 16:16) 바울이 귀신을 쫓아냈는데, 화내는 사람이 따로 있다. 그 주인들이다. “여종의 주인들은 자기 수익의 소망이 끊어진 것을 보고 바울과 실라를 붙잡아 장터로 관리들에게 끌어 갔다가”(19) 귀신들린 여종이 없이는 수익도 없고 살 수도 없는 삶. 그것이 주인의 삶이었다. 역설이 보이는가? 주인(owner)이 여종(slave)을 부리는게 아니었다. 사실 그 주인들이 수익의 노예였던 것이다. 여종의 주인들은 자신들의 주인인 사탄에게 잡혀 있었다.
내가 주인이라고 착각하며 살지 말라. 내가 돈을 벌고, 내가 쾌락을 좇아 자유롭게 선택하는 것 같지만, 당신은 이미 노예일 수 있다. 내가 바라는 그것이 실패하고, 없어진다고 생각해보라. 외롭고, 공허하며, 염려되고, 걱정된다면 이미 그것은 당신의 삶을 쥐고 흔들고 있는 것이다. 돈인가? 쾌락인가? 사람인가? 승진인가? 사업인가? 잘 안되게 하시는 그 상황은 사실 내가 귀신에게서 벗어나게 만드시려는 하나님의 계획일지 모른다.
사람은 내가 주인이라고 착각하며 죽음 앞까지 간다. 자신의 삶의 진짜 주인, 죽음에 잡아 먹히는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은 생명의 주인이셨다. 죽음이 예수님을 삼켰지만, 예수님은 먹히시지 않았다. 예수님은 생명의 주인이셨기 때문이다. “죽을 것이 생명에 삼킨 바 되게 하려 함이라”(고린도후서 5:4) 우리도 예수님 안에 있으면, 어떤 어려움 속에도 귀신에 잡히지 않고 다시 구원받을 수 있다.
주인이라고 행세하다가 주인에게 잡히지 말라. 생명의 주인이신 예수님을 만나고, 나는 종이라고 고백하라. “우리는 무익한 종이라”(누가복음 17:10) 예수님의 종인 것 같지만, 세상에 어떤 일이 벌어져도 낙심하지 않고 모든 일을 다스리며 살아가고 있음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1] 즐길 뿐, 관심이 갈 뿐이라고 생각했는데 삶의 전부가 되어 내 삶을 주도하는 것들이 있습니다. 무엇에 빠져 있고, 무엇을 염려하고, 무엇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습니까? 나누어봅시다.
[2-3] 사도행전 16장 16절을 읽어봅시다. 바울은 누구 안에 있던 귀신을 쫓아냈습니까? 19절을 읽어봅시다. 귀신을 쫓아내자 화를 낸 사람들은 누구입니까?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4-5] 예수님을 삶의 주인으로 모실 때, 삶의 모든 염려와 나쁜 일도 생명으로 인도함 받을 것을 믿을 수 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고린도후서 5장 4절을 근거로 대답해봅시다. 나의 나쁜 상황이 생명에 삼켜져 있음을 확신하며 전진해야 할 삶의 영역을 나누어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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