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안에서 할 수 있는 일”
(10. 3. 2021.)
열왕기상 18:3-4
주변이 변화될 것 같지 않을 때 사람은 한계를 느낀다. 직장 가서 잘해보려고 했다. 온갖 더러움과 추악함이 난무하는 것을 본다. 내가 잘한다고 이 회사가 바뀔까? 회의적이다. 부모님께 잘한다고 평생 살아오신 부모님 성격이 변하기를 기대하는 것은 무리수다. 변화에 대한 소망이 없으면, 선(善, good)에 대한 소망도 사라진다.
최악의 정권에 살았던 사람이 있다. 아합 왕 밑에서 왕궁의 일을 맡았던 오바댜라는 사람이다. 아합은 이스라엘의 바알 숭배를 극악으로 치닫게 만든 악인 중의 악인이었다. 그 밑에서 일했으니 얼마나 한계를 느꼈을까? 아합을 죽일 수도 없고, 우상숭배를 막아낼 능력도 없고, 그렇다고 시키는 일을 안 할 수도 없다. 오바댜는 그 안에서 할 수 있는 일을 한다. “이세벨(아합의 아내)이 여호와의 선지자들을 멸할 때에 오바댜가 선지자 백 명을 가지고 오십 명씩 굴에 숨기고 떡과 물을 먹였더라”(열왕기상 18:4) 선지자 몇 명을 숨겨가며 그들을 살려주었다. 그 안에서만 할 수 있는 일이었다.
변화될 것 같지 않은 조직과 가정에 나를 두게 하실 때가 있다. 할 수 없는 것에 한탄하지 말고, 그 안에서만 할 수 있는 일을 찾으라. 하나님이 그 안에 두신 이유가 있다. 다 뒤집으라고 하신 적 없다. 사사건건 반대하고 혁명을 일으키라고 하신 적 없다. 잠잠히 그 안에서 할 수 있는 일을 해보라. 한 사람을 돕고 관심을 가지라. 하나의 업무를 제대로 처리하라. 한 가지만 개선하라. 하나님이 당신을 그곳으로 보내셨다면, 그 일을 통해 하나님이 더 큰 일을 행하신다. 오바댜는 그 안에서 신실하게 서있다가 죽을 줄 알았는데, 엘리야를 만난다. 자신을 소개했더니, 엘리야와 아합의 빅매치가 성사된다. 다 오바댜 때문이었다.
예수님이 십자가의 한계 상황에 서신다. 하실 수 있는 일이 딱 하나 있었다. 죽는 일이었다. 죽는 일 밖에 할 수 없을 때, 믿음을 가지고 신실하게 죽으셨다. 십자가 위에서 할 수 있는 일이었다. 죽는 일만 했는데, 영원히 사는 일이 우리에게 주어졌다. 우리의 삶에도 그 능력이 있음을 확신하는가? 그렇다면 한계가 많은 삶을 답답해 하며 함부로 뛰쳐나오지 말라. 그 가정 안에서, 그 직장 안에서, 그 상황 안에서 할 수 있는 일을 하라. 이것이 그리스도인의 신실한 모습이다.
[1] 세상은 참 쉽게 변하지 않습니다. 정말 답답하고 한계를 느꼈던 경험을 나누어봅시다. (예: 가정, 회사, 부서, 사람…)
[2-3] 열왕기상 18장 4절을 읽어봅시다. 아합은 누구이며, 오바댜는 누구였습니까? 오바댜는 아합 밑에서 어떤 한계를 느꼈을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바댜는 어떤 일을 수행했습니까?
[3-4]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하실 수 있는 일은 무엇이었습니까? 그것이 무슨 결과를 낳았습니까? 하나님이 나를 한계 상황 속에 두셨을 때, (1) 너무 극단적으로 변화를 추구하거나, (2) 모든 것을 너무 쉽게 포기하는 모습이 있지는 않습니까? 한계의 상황 속에서, 내가 신실하게 계속 감당해야 할 일이 있다면 나누어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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