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on.soundcloud.com/Q3Uoc

https://soundcloud.com/hansaram-church/20230303-243-14a/s-cVALPCJz36Z?si=368552291da04f389d6068573b7db86c&utm_source=clipboard&utm_medium=text&utm_campaign=social_sharing

“기쁨은 어디에
(3. 5. 2023.)

시편 4:7

 

사람마다 너무나 재미있어 빠져들었던 일들이 있다. 그 아이돌이 왜 그렇게 좋았을까? 그 스포츠가 왜 그렇게 재미있었을까? 지나보면 뭘 그렇게 목숨 걸었나 싶다. 시간이 지나면서 자연스럽게 손을 떼게 된다. 왜? 처음에 느꼈던 그 기쁨이 점점 시들해지기 때문이다.

 

기쁨은 하나님이 주시는 것이다. “주께서 내 마음에 두신 기쁨은 그들의 곡식과 새 포도주가 풍성할 때보다 더하니이다”(시편 4:7) 경험하는 것에 따라 기쁨이 달라지는 것이 아니다. 같은 행동을 하는데 지겨울 수 있고, 같은 행동을 하는데 기쁨이 넘칠 수 있다. 기쁨을 주시는 주체가 하나님이기 때문이다. 기쁨을 찾고 있다면, 당신은 사실 하나님을 찾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을 빼고 ‘기쁜 것’을 찾으러 돌아다닌다면, 당신은 곧 지칠 것이다.

 

하나님을 즐거워하는 일을 인생의 최우선에 두라. 늘 하나님께 기도하고, 나의 삶을 고백하라. 걸을 때마다, 일할 때마다, 하나님의 임재를 사모하라.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시도하고, 하나님이 싫어하시는 일을 거부하라. 예수님이 내게 하신 일을 끊임없이 묵상하라. 처음엔 지겹고 투박한 일 같다. 변화가 무엇인 줄 아는가? 삶이 기뻐지는 것이다. 별 것도 아닌데 기쁘고 감사하다. 여행 가지도 않았는데 삶이 충만하다. 기쁨은 하나님이 주시는 것이기 때문이다.

 

죽음이란 무엇인가? 하나님과 끊어지는 것이다. 그렇다면 지옥은 무엇인가? 영원히 기쁨이 사라지는 곳이다. 하나님과 끊어졌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나 대신 기쁨 없는 운명을 맞이하셨다. 그리고 십자가에서 가장 큰 기쁨을 만들어 내셨다. 그것이 부활이다. 예수님이 나와 함께하심을 믿는가? 그렇다면 오늘의 삶에도 그 능력이 임할 것이다. 상황은 최악인데, 내가 하나님만 즐거워하면, 분명 그 상황 속에 기쁨이 임하기 시작할 것이다.

 

상황이 바뀌어야 기뻐질 것이라고 착각하지 말라. 곡식과 포도주가 없어서 문제가 아니라, 주께서 내 마음에 두신 기쁨이 없어서 문제다. 기쁨의 주인은 하나님이다. 주인이 기쁨 주셔야 내 삶이 기뻐진다. 그분을 꼭 붙잡으라. 기쁨도 함께 올 것이다.

 

[1] 내 인생에 가장 큰 기쁨을 느꼈던 몇 가지 행동이나 취미들을 나누어봅시다. 얼마나 빠져들었고, 언제 시들해졌습니까?

 

[2-3] 시편 4편 7절을 읽어봅시다. 내 마음에 기쁨을 주신 주체는 누구입니까? 그 기쁨의 정도는 어느 정도라고 말합니까? 같은 상황인데 사람마다 기쁨을 느끼는 정도가 다르다는 것을 경험했던 적이 있다면 나누어봅시다.

 

[4-5] 사람은 죽으면 어떻게 됩니까? 왜 기쁨이 사라집니까? 예수님이 죽음 속에서 만들어 내신 것은 무엇입니까? 그분의 능력을 사모하며, 기쁨을 회복하기 위해 내 삶에 먼저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나누어봅시다.

 

https://soundcloud.com/hansaram-church/4-81-103a/s-UTG9PP9zfsJ?si=867ef4f5363b49afb1ad9a4c6f76ab1d&utm_source=clipboard&utm_medium=text&utm_campaign=social_sharing

https://soundcloud.com/hansaram-church/4-166-10a/s-5mklRE6IzRH?si=867ef4f5363b49afb1ad9a4c6f76ab1d&utm_source=clipboard&utm_medium=text&utm_campaign=social_sharing

“상황이 아니라 사람
(2. 26. 2023.)

누가복음 8:4-8

 

학교 급식은 맨날 맛없는 줄 알았다. 같은 재료였는데 갑자기 최고의 맛으로 바뀐다. 알고 보니 조리사가 바뀌었다. 재미없는 과목인 줄 알았다. 강사가 바뀌었더니 흥미가 생겼다. 살아가면서 삶의 중요한 요소를 깨닫게 된다. 상황보단 사람이 중요하다는 것을!

 

상황이 아니라 사람이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말씀을 씨에 비유하신다. 씨는 똑같이 뿌려졌는데, 땅의 종류에 따라 열매가 달랐다. “(1) 더러는 길 가에 떨어지매 공중의 새들이 먹어버렸고 (2) 더러는 바위 위에 떨어지매 싹이 났다가 습기가 없으므로 말랐고 (3) 더러는 가시떨기 속에 떨어지매 가시가 함께 자라서 기운을 막았고 (4) 더러는 좋은 땅에 떨어지매 나서 백 배의 결실을 하였느니라”(누가복음 8:5-8) 중요한 결론이 나온다. 내 삶에서 열매를 막고 있는 것은 힘든 상황이 아니라 나 자신, 바로 나라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하나님이 하시는 가장 큰 일은 나를 바꾸시는 일이다. 상황을 바꾸어 주시지 않는다고 원망하지 말고, 나를 어떻게 바꾸어 가시는지 살펴보라. (1) 성품의 영역: 나의 마음과 태도를 어떻게 새롭게 하고 계시는가? (2) 배움의 영역: 무엇을 새롭게 배우라고 하시는가? (3) 표현의 영역: 나의 표정, 눈빛, 언어, 행동에서 변화되어야 할 것은 무엇인가? (4) 습관의 영역: 나의 라이프스타일 자체가 어떻게 바뀌어야 하는가? 땅이 바뀌면, 분명 열매가 바뀐다.

 

사람의 굳은 마음은 자기 스스로 변화되지 않는다. 사람은 죄인의 상황과 자신의 상황을 바꾸신 ‘사람’을 만날 때 변한다. 망하고 죽고 영벌에 처할 죄인의 상황에 예수님이라는 한 사람이 들어가니 모두 바뀌었다. 이것이 복음이다. 내 운명이 그분 때문에 영원히 변화되었음을 믿는가? 날 사랑하신 그 십자가를 자꾸 쳐다보고, 또 쳐다보라. 하나님이 열매를 막고 계셨던 것이 아니라, 내가 하나님을 막고 있었음을 깨닫게 된다. 내 죄인됨을 인정하고, 그 사람을 의지하기 시작하는 순간부터 내 삶의 변화도 물밀듯이 밀려온다.

 

상황 바꿀 계획 세우지 말고, 사람 바꾸시는 하나님 바라보라. 하나님의 사람으로 멋지게 다시 서라. 당신이라는 사람만 바뀌어 있으면, 한 해 동안에 생기는 모든 일이 열매가 될 것이다.

 

[1] 사람 하나 바뀌었을 뿐인데, 분위기와 결과가 바뀜을 경험했던 적이 있다면 나누어 봅시다.

 

[2-3] 누가복음 8장 4-8절을 읽어봅시다. 씨는 무엇입니까? 각 땅들이 열매를 맺지 못했던 이유는 무엇입니까?(11-15절 참조), 예수님을 영접하고 경험했던 내 삶의 가장 큰 변화는 무엇이었습니까?

 

[4-5] 사람의 변화는 언제부터 시작됩니까? 그분을 끝까지 의지하며 오늘도 여전히 내가 마땅히 변화되어야 할 모습을 나누어 봅시다.

 

https://soundcloud.com/hansaram-church/3-51-710a/s-PxegtsIoEdg?si=ad7709ed2e58437ab2d3d7bbcca124cb&utm_source=clipboard&utm_medium=text&utm_campaign=social_sharing

https://soundcloud.com/hansaram-church/3-1133-44a/s-e4Cqxv9DppJ?si=ad7709ed2e58437ab2d3d7bbcca124cb&utm_source=clipboard&utm_medium=text&utm_campaign=social_sharing

“그리스도의 법
(2. 19. 2023.)

갈라디아서 6:2

 

선한 일을 하면 복을 받고, 나쁜 일을 하면 벌을 받는다는 생각을 권선징악이라고 한다. 신학적으로는 ‘행위의 법’이라고 한다. 우리 모두는 이 세상이 그렇게 돌아가기를 바란다. 하지만 그 법의 엄격한 집행자는 하나님이고, 그 대상자가 나라면 어떤가? 그때부터 나는 하나님이 두려워지고, 삶이 불안해진다.

 

예수님이 내 모든 죄와 허물을 대신 가지고 십자가에 죽으셨다. 믿으면 형벌도 없고, 심판도 없다. 이것을 ‘믿음의 법(복음)’이라고 한다. “그런즉 자랑할 데가 어디냐 있을 수가 없느니라 무슨 법으로냐 행위로냐 아니라 오직 믿음의 법으로니라”(로마서 3:27) 그러면 대답해보라. 신자는 이제 다시 율법을 지킬 필요가 있는가? 다시 죄를 지어도 나를 사랑하시는데, 편한 마음을 가지고 살 수 있는 것 아닌가? 여기서부터 사람이 헷갈린다.

 

신자에겐 그리스도의 법이 남아있다. “너희가 짐을 서로 지라 그리하여 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하라”(갈라디아서 6:2) 행위의 법과 그리스도의 법의 차이는 무엇인가? 계명의 내용은 모두 똑같다. 하지만 그 동기가 다르다. 행위의 법은 지켜야만 복을 받고(약속) 어기면 저주받는(위협) 법이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법은 행위의 법 속에 숨어 있던 ‘약속’과 ‘위협’이 사라진다. 그리스도의 법은 저주와 두려움이 동기가 아니다. 사랑이 동기다. 사람이 하나님 안에서 행복을 얻는 길로써 주어진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은 무서운 집행자가 아니라, 아들을 내어주기까지 나를 사랑하시는 분으로 보인다. 그분이 주신, 그리스도의 법은 내 삶을 풍성하게 하는 길이 됨을 믿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법을 지키지 않으면 분명 고난과 징계도 있다. 그러나 그것은 날 죄에서 돌이키고 연단시키시기 위해 주시는 것이다.

 

복을 잃을까봐, 두려워서 순종하는 사람을 율법주의자라고 한다. 예수님이 다 하셨으니, 아무 것도 지키지 않아도 하나님께 사랑받는다고 말하는 사람을 반율법주의자라고 한다. 둘 다 똑같다. 두려움이 사라지면 순종도 안 해도 된다는 말은, 아직도 나는 율법주의에 사로잡혀 있다는 말이기 때문이다. 돈을 예로 들겠다. 헌금을 하면 돈이 줄어든다. 율법주의는 이렇게 말한다. “헌금해야, 하나님이 네 삶을 채워 주실 거야”, "헌금 안하면, 하나님이 널 치실 거야" 하긴 하는데, 얼마나 해야 할지, 언제 채워주실지 두려움과 부족함, 아까움은 사라지지 않는다. 반율법주의는 이렇게 말한다. “할 필요 없어. 헌금한다고 너를 사랑하시는게 아니야.” 헌금을 안 하지만, 돈에 대한 두려움과 부족함은 여전히 사라지지 않는다. 돈이 없는게 아니었다. 그분이 날 사랑하신다는 확신과 믿음이 없는 것이다.

 

유일한 자유는 그리스도의 법에 있다. 예수 그리스도가 내 인생의 영생을 위해 모든 것을 주셨음을 믿고, 그 진리를 음미하는 것이다. 그가 결코 나를 버리지 않고, 부족함을 좌시하지 않으실 것이다. 십자가 사건이 나에게 확신으로 다가올 때, 염려하지 않는다. 부족한데 담대하고, 없었는데 채워진다. 행위의 법에서 벗어나는 길은 믿음의 법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믿음의 법을 받아들인 자가 해야 할 일은 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하는 것이다. 그리스도인들에게, 여전히 율법(그리스도의 법)은 남아있다.

 

[1] 내가 하나님의 말씀을 충분히 지키지 않는 것 같을 때 하나님이 내 삶에 복을 앗아가시거나, 심판하실 것 같아서 생겼던 두려움이 있습니까? 나누어봅시다.

 

[2-3] 로마서 3장 27절을 읽어봅시다. 하나님은 행위의 법을 가져가시고 내게 무엇을 주셨습니까? 갈라디아서 6장 2절을 읽어봅시다. 복음을 받아들였는데도 불구하고 내가 율법에 순종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4-5] 율법주의자와 반율법주의자의 공통점은 무엇입니까? 두려움 속에 순종하면서(율법주의), 혹은 ‘순종하지 않으면서’(반율법주의) 예수님의 풍성함을 삶에서 누리지 못하는 영역이 있다면 나누어봅시다. 그의 풍성하심을 믿는다면 어떻게 변화되어야 하겠습니까?

https://soundcloud.com/hansaram-church/2-219-417a/s-2UhMlTHtngX?si=cd4b59ab1bdb4d82be5874fd885e93b6&utm_source=clipboard&utm_medium=text&utm_campaign=social_sharing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