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졸던 그분
(9. 17. 2023.)

사도행전 12:6

 

사람의 불안이 분명하게 밖으로 표출되는 현상은 무엇인가? 잠이 안 오는 것이다. 잠을 위해 약을 먹는 시대가 되었다. 걱정과 불안, 염려와 긴장감은 우리의 잠을 빼앗아 간다.

 

하나님께 맡기면 잠이 회복된다. 헤롯 아그립바 1세가 베드로 죽일 준비를 했다. 잡아 놓고 사형 날을 잡았다. 사형 집행 바로 전날 베드로는 무엇을 하였나? “헤롯이 잡아 내려고 하는 그 전날 밤에 베드로가 두 군인 틈에서 두 쇠사슬에 매여 누워 자는데 파수꾼들이 문 밖에서 옥을 지키더니”(사도행전 12:6) 누워 잤다. 내일 내가 죽는데 잠이 오는가? 그는 잤다. 보이지 않는 염려와 근심을 주께 맡기니, 실제적으로 삶의 물리적인 질서와 평안이 회복된 것이다.

 

너무 피곤해서 머리만 베개에 닿으면 잔다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역으로 물어보라. 그렇게 피곤할 정도로 밤새 일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아무리 억울해도 주말이 되면 잠도 안자고 실컷 놀고 먹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이렇게 질문해보라. (1) 내가 홀로 있을 때 곧바로 내 생각을 사로잡는 나의 주된 이슈는 무엇인가? (2) 다른 것에 몰두하면서까지 생각을 지워버리고 싶은 염려는 무엇인가? 매출? 자녀? 건강? 결혼? 진로? 그 영역을 주님이 붙들고 계시다는 확신속에 열심을 내는가? 아니면 내 열심과 걱정으로 확신을 대체하고 있는가?

 

아무리 그래도 베드로는 정신 나간 것 같다. 그런데 베드로가 잠을 자는 이유를 우리는 알 수 있다. 예수님이 배를 타고 갈릴리 호수를 건넜을 때 광풍이 불었다. “예수께서는 고물에서 베개를 베고 주무시더니 제자들이 깨우며 이르되 선생님이여 우리가 죽게 된 것을 돌보지 아니하시나이까 하니”(마가복음 4:38) 베드로는 왜 잘 수 있었는가? 이제 이해가 된다. 베드로는 광풍 앞에서 ‘졸던 그분’을 보았다. 베드로에게 광풍은 죽음이었다. 예수님께는 잠자도 될 문제였던 것이다.

 

그 예수님이 날 위해 죽으셨다. 죽음도 ‘자는 것’으로 바꾸어주셨다.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사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고린도전서 15:20) 믿는가? 그분만 계시면, 어떤 큰 잎 앞에서도 난 염려 내려놓고 잘 수 있다. 잠이 안오는가? 풍랑 앞에 졸던 그분을 다시 바라보라. 주무시던 예수님이, 나보고 그만 염려하고 같이 잠이나 자자고 하신다. 이게 복음이다.

 

[1] 너무나 큰 염려와 두려움으로 잠이 오질 않았던 나와 주변의 경험들이 있다면 나누어 봅시다.

 

[2-3] 사도행전 12장 6절을 읽어봅시다. 사형 전날 베드로의 모습은 어떠했습니까? 수시로 떠오르는 내 인생을 사로잡는 문제는 요즘 무엇입니까?

 

[4-5] 마가복음 4장 38절을 읽어봅시다. 베드로는 감옥을 경험하기 전 예수님과 무엇을 경험하였습니까? 고린도전서 15장 20절을 읽어봅시다. 예수님 안에서 죽은 자들을 어떻게 표현합니까? 내 인생이 예수님 안에서 죽음도 이미 이겼음을 묵상하며, 주님께 맡기고 평안과 잠을 되찾기를 원하는 삶의 영역들을 나누어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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