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갖 좋은 것
(4. 28. 2024.)

야고보서 1:17

 

살아갈 재미가 없어지는 때가 있다. 더 좋은 것을 기대할 일이 없을 때이다. 바빠질 일만 남았다. 연봉 떨어질 일만 남았다. 돈 나갈 일만 남았다. 건강 나빠질 일만 남았다. 앞으로 더 좋을 것이 없어 보이는데 어떻게 기뻐하나? 기대감이 사라지면 삶을 지속할 에너지를 잃는다.

 

하나님은 아직도 내 삶에 좋은 일을 남겨두신 분이다. “온갖 좋은 은사(Every good)와 온전한 선물(perfect gift)이 다 위로부터 빛들의 아버지께로부터 내려오나니(is from above.)”(야고보서 1:17) 그 분 안에는 아직도 좋은 것(good)이 있다. 그분 안에 아직도 완전한 것(perfect)이 남아있다. 좋고 완전함은 하나님의 속성이다. 하나님을 믿는다면, 내 삶을 내 마음대로 예측하며 좌절하는 삶을 청산해야 한다. 하나님은 여전히 내 삶에 좋고 완벽한 것이 올 것임을 약속하고 계시다.

 

그러므로, 상황과 관계없이 더 좋고 더 완전한 선물을 사모하라. 이 직장을 통해 너무나 좋고 완전한 선물을 내게 주실 것을 끝까지 믿어야 한다. 이 갈등과 가난과 고통을 통해서도 여전히 완전하고 좋은 것은 약속되어 있음을 믿어야 한다. 사이즈도 커져야 한다. 단순히 이 급여 받고, 이 직장만 다니다가 끝나지 않을 것이다. 내가 만나는 교회와 사람들과 경험들을 통해 분명 내 인생, 내 신앙, 내 사업의 영역은 더 커지고, 더 넓어지고, 더 깊어질 것이다.

 

아무 것도 기대할 수 없는 것이 죽음이다. 예수님은 우리의 죽음의 자리에 오셔서 여전히 좋고 완전한 것을 기대할 수 있게 하셨다. 그것이 영생이다.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요한복음 3:15) 신앙은 인생의 마지막에 좋은 것이 있음을 믿는 것이 아니다. 마지막에 좋을 뿐 아니라, 오늘의 여정도, 좋고 완벽한 것을 향한 여정으로 보는 것이다.

 

여전히 가정과 자녀와 진로와 미래에 대해 긍정하라. 여전히 좋은 것이 남아있음을 확신하라. 빛들의 아버지께서 주시는 선물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온갖 좋은 것은 아버지께로부터 온다.

 

[1] 점점 좋아질 때는 살맛이 나다가, 나빠질 일 밖에 보이지 않아 삶의 기대감이 사라졌던 경험들이 있다면 나누어 봅시다.

 

[2-3] 야고보서 1장 17절을 읽어봅시다. 하나님은 무엇을 주시는 분입니까? 하나님의 성품을 신뢰하지 못하고 상황을 예측하며 기대감을 잃어가는 것 자체가 죄가 될 수 있습니다. 회개해야 할 부분들을 나누어 봅시다.

 

[4-5] 요한복음 3장 15절을 읽어봅시다. 예수님은 나 대신 죽으심을 통해 죽음의 자리에서 무엇을 기대할 수 있게 하셨습니까? 오늘 분명 더 좋고 완벽한 것이 올 것을 믿으며 변화되어야 할 내 삶의 태도를 나누어 봅시다.

“구원의 간접성
(4. 21. 2024.)

잠언 16:7

 

엄마가 보는 앞에서 자녀가 공부를 열심히 했더니, 엄마가 엄청 비싼 음식을 사줬다. 공부했을 뿐인데, 왜 음식이 오는가? 이 자녀는 ‘엄마 유니버스(universe)’ 안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모든 행위에 대한 보상이 엄마를 통해 온다.

 

신자의 삶의 모든 행위는 하나님 앞에서 연결되어 있다. “사람의 행위가 여호와를 기쁘시게 하면 그 사람의 원수라도 그와 더불어 화목하게 하시느니라”(잠언 16:7) 여호와를 기쁘시게 하기 위한 행위를 했을 뿐인데, 나랑 원수였던 사람의 마음이 풀리게 되는 일이 벌어진다는 말이다. 하나님은 내가 ‘개별적’으로 하는 모든 행위를 ‘종합적’으로 살피신다. 신자의 삶에 나만 아는 사적인 일이란 없다. 우리가 행하는 모든 사적인 일들은 하나님 한 분 앞에서 하는 일이 된다. 이것을 ‘코람데오’(coram deo, 하나님 앞에서)라고 한다.

 

그러므로 우리의 삶은 언제나 구원의 간접성을 기대할 수 있다. 내가 감당할 수 없는 복잡하고 어려운 일들은 어떻게 풀릴까? 여호와를 기쁘시게 하면서 풀린다. 오늘 이 단순한 삶을 회복하라. 개별적인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지 말고, 모든 일에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것을 생각하며 행하라. 분노를 죽였을 뿐인데 내 필요가 채워질 것이다. 죄를 끊었을 뿐인데 진로가 열릴 것이다. 기도를 시작했을 뿐인데 자녀가 변할 것이다. 소외된 사람을 격려했을 뿐인데 승진이 빨라질 것이다. 세상이 자신의 이익을 향해 ‘개별적’이 되어 갈 때, 신자들은 점점 더 하나님 앞에서 ‘종합적’으로 산다.

 

예수님이 인류 구원의 큰 문제를 어떻게 감당하셨는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것을 찾은 것이다. “이르시되 아빠 아버지여 아버지께는 모든 것이 가능하오니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하시고”(마가복음 14:36) 아버지의 뜻을 구하며 십자가에 죽으셨을 때, 우리에게 구원이 주어졌다. 우리의 일상도 마찬가지다. 여호와를 기쁘시게 하는 일만 구할 때, 그분이 계획하신 놀라운 일들이 우리 삶의 전 영역에 펼쳐질 것이다.

 

내 힘으로 나를 구원하려고 발버둥치는 직접적인 구원의 추구를 그치라. 구원의 간접성 속에 살라. 여호와를 기쁘시게 하면, 원수와 화목해진다. 신자들에게만 주신 비밀의 약속이다.

 

[1] 부모, 친구, 상사 등 한 존재가 좋아하는 일을 했더니, 그로부터 다른 좋은 일이 흘러나왔던 경험이 있다면 나누어 봅시다.

 

[2-3] 잠언 16장 7절을 읽어봅시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약속은 무엇입니까? 내 삶의 모든 행위를 나의 이익과 편의에 따라 개별적으로 생각하고 있지는 않았는지 나누어 봅시다.

 

[4-5] 마가복음 14장 36절을 읽어봅시다. 우리의 구원은 어떻게 이루어졌습니까? 주님이 주실 종합적인 구원을 믿으며, 오늘 내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노력해야 할 삶의 모습들을 나누어 봅시다.

“경험을 통한 사랑
(4. 14. 2024.)

신명기 32:11-12

 

엄마 돈 함부로 쓰던 청소년이 처음 택배 상하차 아르바이트를 했다. 인생이 이렇게 힘든 건가 느끼며 서럽게 집에 돌아왔다. 식탁 위에 어제와 똑같이 엄마가 두고 간 용돈 5천 원을 본다. 그는 오열했다. 경험을 통해 이미 존재하던 엄마의 사랑이 느껴지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우리의 경험을 통해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이해시키신다. “마치 독수리가 자기의 보금자리를 어지럽게 하며 자기의 새끼 위에 너풀거리며 그의 날개를 펴서 새끼를 받으며 그의 날개 위에 그것을 업는 것 같이 여호와께서 홀로 그를 인도하셨고 그와 함께 한 다른 신이 없었도다”(신명기 32:11-12) 하나님 사랑은 모른다. 그런데 독수리의 자식 사랑을 본다. 그 때 하나님이 우리를 훈련시키는 방식도 이해된다. 하나님은 우리가 일상에서 관찰하고 경험하는 것들을 통해 우리가 하나님을 더 깊이 알아갈 수 있게 하신다.

 

내가 하고 있는 지금 그 경험 속에서 하나님을 찾아보라. 한 자매가 연애를 하다가 헤어졌다. 사랑에 빠지니 그 남자가 늘 생각나고, 생전 하지 않던 일들을 기쁨으로 했다. 그 남자는 떠났지만, 내가 어떻게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합당한 것인지 깊이 깨닫게 되었다고 한다. 연애 경험을 통해 내 안의 하나님 사랑을 발견한 것이다. 개미를 관찰해 본다. 자녀를 낳아 본다. 부모를 떠나 본다. 부하 직원의 반항을 참아 본다. 경험은 하나님 사랑을 더 풍성하게 만든다.

 

예수님은 자신의 마지막 사랑을 암탉에 비유하신다.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선지자들을 죽이고 네게 파송된 자들을 돌로 치는 자여 암탉이 그 새끼를 날개 아래에 모음 같이 내가 네 자녀를 모으려 한 일이 몇 번이더냐 그러나 너희가 원하지 아니하였도다”(마태복음 23:37) 예수님은 자신의 품을 원치 않는 자를 위해 죽으셨다. 암탉을 볼 때 그의 사랑과 인내가 위대해진다. 예수님은 그 품을 떠난 나도 결코 놓지 않으실 것이다.

 

개척 시작할 때 풋내기 전도사였는데, 이제 두 자녀의 아빠가 되었다. 아들을 죽이신 하나님 사랑. 도대체 아들을 어떻게 포기하나? 경험이 그 사랑을 더 크게 느끼게 만든다. 그 사랑 안에 살자.

 

[1] 경험할수록 사랑이 깊어집니다. 관찰이나 경험을 통해 누군가의 마음과 사랑을 더 깊이 느꼈던 적이 있다면 나누어 봅시다.

 

[2-3] 신명기 32장 11-12절을 읽어봅시다. 하나님은 자신의 사랑을 무엇에 비유하고 계십니까? 나의 경험을 통해 (1) 하나님의 사랑을 새롭게 알게 되었거나 (2) 내가 하나님을 사랑하는 방식을 돌아보게 되었던 적이 있다면 나누어 봅시다.

 

[4-5] 마태복음 23장 37절을 읽어봅시다. 예수님은 자신의 마지막 사랑을 무엇에 비유하고 계십니까? 품에 있고 싶지 않았던 우리를 하나님은 어떤 방식으로 사랑하셨습니까? 최근 경험하는 나의 일들을 통해 내가 하나님을 어떻게 더 사랑할 수 있을지 나누어 봅시다.

“규모무관
(4. 7. 2024.)

시편 3:5-6

 

나이가 들어갈수록 웃음기가 사라진다. 삶의 문제의 규모들이 커져서 그렇다. 학교 미술 준비물을 안 가져 온건 괜찮다. 그러나 인생의 준비가 안 되어 있는 것은 크다. 초등학교 친구 중 하나가 날 싫어하면 괜찮다. 결혼까지 생각했던 사람이 날 싫다고 하면 크다. 규모가 커지면, 염려도 함께 커진다.

 

하나님은 문제의 규모와 상관없이 나를 보호하시는 분이다. “내가 누워 자고 깨었으니 여호와께서 나를 붙드심이로다 천만인이 나를 에워싸 진 친다 하여도 나는 두려워하지 아니하리로다”(시편 3:5-6) 아들 압살롬이 반란을 일으켜 온 나라가 자기를 죽이러 달려왔을 때 했던 고백이다. 천만인이라는 규모가 인상깊다. 다윗은 문제의 규모와 상관없이 편하게 잤다. 왜? 하나님은 문제의 규모와 무관한 분이시기 때문이다.

 

문제의 크기에 따라서 흔들리지 않아야 한다. 하나님만이 크신 분이기에, 그분 앞에 큰 문제는 없다. 큰 문제도 하나님 손 안에 있으며, 작은 문제 속에 하나님을 의지했던 동일한 방식으로 풀리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1) 작은 문제라고 가볍게 여기지 말고 겸손해야 한다. 하나님이 붙드시지 않으면 규모와 상관없이 무너질 수밖에 없다. (2) 큰 문제라고 위축되지 말고 담대해야 한다. 붙드시는 하나님만 계시면 규모와 상관없이 승리할 것이다. 돈의 액수가 커져도 두려워하지 말라. 갈등의 골이 깊어져도, 자녀 마음의 완고함이 깊어져 가도 담대해야 한다. 큰 문제는, 크신 하나님이 푸신다.

 

사람의 가장 큰 규모의 문제는 무엇인가? 죽는 문제다. 죽음을 해결하신 분이 예수님이시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요한복음 5:24) 규모와 무관하게 나를 구원하신 주님 앞에 오늘 확신해야 한다. 내가 소유한 구원은 규모에 무관한 구원이다.

 

일부러 하나님이 삶의 문제를 키우실 때, 나의 믿음도 함께 키우시는 여정이라고 생각해 보라. 작은 문제를 해결하셨던 동일하신 하나님의 일하심을 기대하라. 내가 섬기는 나의 하나님이 훨씬 커지는 계기가 될 것이다.

 

[1] 삶의 문제의 규모가 커지면서 삶에 대한 압박감도 커지게 됩니다. 규모가 커지면서 믿음이 위축되었던 나의 삶의 경험들을 나누어 봅시다. (재정의 규모, 질병의 규모, 갈등의 규모 …)

 

[2-3] 시편 3편 5-6절을 읽어봅시다. 다윗은 무엇이라고 고백하고 있습니까? 하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내가 하나님을 잃어버리고 규모에 가장 큰 영향을 받는 삶의 영역은 무엇인지 나누어 봅시다.

 

[4-5] 요한복음 5장 24절을 읽어봅시다. 인생에 가장 큰 규모의 문제는 무엇입니까? 예수님은 그것을 어떻게 해결하셨습니까? 요즘 예수님의 능력을 의지하도록 나를 이끄시는, 큰 규모의 삶의 문제는 무엇인지 나누어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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