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을 잃는 자리
(8. 18. 2024.)

시편 139:7-8

 

휴가철 바닷물은 과연 깨끗할까? 물 밖에서 웃으며 노는 저 사람이 물 속에서 무슨 일을 행하는지 나는 알지 못한다. 나만 잘 한다고 될 일이 아니다. 저 사람을 막을 재간이 없다. 사람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모두 악해지고, 약해진다.

 

하나님은 나를 어느 자리에서나 지켜보시는 분이다. “내가 주의 영을 떠나 어디로 가며 주의 앞에서 어디로 피하리이까 내가 하늘에 올라갈지라도 거기 계시며 스올에 내 자리를 펼지라도 거기 계시니이다”(시편 139:7-8) 삶의 이중성은 죄이다. 죄는 내 삶의 기쁨을 앗아간다. 그래서 이중적일수록 기쁠 것 같은데, 오히려 불행해지고 우울해진다. 내 삶의 모든 이중적인 모습은 노력으로 해결되지 않는다. 삶의 일관성, 삶의 진실함으로부터 오는 기쁨은 어느 자리에서나 하나님의 시선을 의식할 때에만 회복된다.

 

특별히 내가 하나님을 잃어버리는 자리를 찾으라. 운전대를 잡을 때, 교회 사람들 없는 직장에 출근할 때, 혼자 스마트폰을 할 때, 윗사람이 없고 아랫사람들만 함께 있을 때 … 하나님을 잃어버린 그 자리가 내 삶의 열매를 계속 가로막는다. 하나님 앞에 자신이 없으니, 세상에서도 점점 자신이 없어진다. 하나님 앞에서 일관된 경건을 회복할 때, 삶의 자신감과 능력이 생긴다.

 

베드로가 예수님 부인할 때 예수님과 눈이 마주친다. “주께서 돌이켜 베드로를 보시니 베드로가 주의 말씀 곧 오늘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 하심이 생각나서 밖에 나가서 심히 통곡하니라”(누가복음 22:61-62) 베드로는 왜 울었을까? “너 딱 걸렸어!” 들켜서 부끄러워서? 아니다. 예수님을 부인할 것을 이미 알고 계셨음에도 자신을 끝까지 사랑하셨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혼자서 실패했을 때, 자책하지 말고 다시 예수님의 시선을 보라. “난 네가 넘어질 것을 이미 보았음에도, 너를 놓지 않을 것이다.”

 

세상에는 이런 사랑의 시선이 없다. 이렇게 바라보아 주시는 주님 앞에, 인생 헛되이 살 수 없다. 하나님을 잃는 자리에, 다시 예수님과 시선을 맞추라. 하나님의 시선 앞에 일관된 삶은 평생의 복이다.

 

 

[1] 아무도 보지 않는 곳에서 사람은 변합니다. 누군가 지켜보는 것의 차이가 행동의 변화를 일으켰던 나와 주변의 이야기들을 나누어 봅시다.

 

[2-3] 시편 139편 7-8절을 읽어봅시다. 하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내 삶의 이중성이 가장 극심해지는 삶의 자리는 어디입니까? 하나님 앞에 바로 서지 못하는 모습이 삶의 자신감과도 연결되었던 적이 있다면 나누어 봅시다.

 

[4-5] 누가복음 22장 61-62절을 읽어봅시다. 베드로가 예수님을 부인하는 순간 무슨 일이 벌어졌습니까? 베드로는 왜 울었을까요? 내 모습을 이미 보셨음에도 사랑하시는 분의 시선 앞에서 내가 어떻게 변화되어야 할지 나누어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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