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 자체에 대한 경외”
(1. 24. 2021.)
레위기 19:32
사람은 세월을 이길 수 없다. 이 말을 다른 말로 바꾸어 보자. 젊음을 이길 수 없다는 말이다. 나이가 들면 모든 능력과 지능이 쇠한다. 그래서 능력 중심, 이미지 중심의 사회에서는 늙음에 대한 거부와 혐오가 훨씬 심해진다. 늙은 사람도 싫고, 내가 늙는 것도 싫다. 바라는 모습과 반대로 가기 때문에 그렇다.
성경은 삶 자체에 대한 경외감을 가르친다. “너는 센 머리 앞에서 일어서고 노인의 얼굴을 공경하며 네 하나님을 경외하라 나는 여호와이니라”(레위기 19:32) 나이 많은 사람 앞에서 일어서라고 한다. 그런데 그 나이 많은 사람이 친절한지, 고집불통인지는 설명하지 않는다. 노인의 얼굴을 공경하라고 하는데, 그 노인이 얼마나 인생을 잘 살았는지는 말하지 않는다. 그 사람이 꼰대이든 아니든, 그것은 성경의 관심이 아니다. 살아온 삶이 많다는 것, 그 자체로 성경은 먼저 존경을 표할 가치가 있다고 말하는 것이다.
개그맨 유세윤이 생일 선물로, 엄마에게 편지를 받고 싶다고 했다. 엄마가 아들에게 편지를 썼다. “이제 엄마는 기억력도, 판단력도, 인내력도 점점 옅어져 가고 있으나, 내 못나서가 아니라 늙어감이니” 기억력, 판단력, 인내력이 없고 싶어서 없는게 아니고, 늙음 그 자체 때문이라는 것이다. 혹시 나이든 사람을 기억력, 판단력, 인내력으로 평가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그 능력이 나랑 안맞아서 답답하고 화를 내는 것은 아닌가? 능력과 관계없이 늙은 자를 존경하는 것이 하나님 나라이다.
노인의 얼굴을 공경하는 방식대로 나를 사랑하신 분이 있다. 예수님이시다. 그분은 나를 노인을 대하듯 대하셨다. 기억력, 판단력, 인내력이 없는 내 앞에서 무시하지 않으시고 십자가를 향해 일어서셨다. 나를 존귀하게 대하셨기 때문이다. 십자가 사랑으로 내 삶 자체에 대한 경외심을 가르치셨다. 그분의 사랑을 알기에, 나는 부족한 내 삶도 사랑할 수 있게 되었다.
예수님의 사랑을 받았다면, 그 사랑의 방식을 안다면, 내 주변의 어른들을 대하는 모든 태도를 다시 점검하라. 삶 자체에 대한 경외감을 회복하라. 능력과 젊음을 숭상하는 젊음의 가벼움을 피하려면, 당신의 마음속에는 ‘삶 자체에 대한 경외’라는 무거운 돌덩이가 필요하다.
[1] 주변 사람들이 나이 들어 간다는 것을 느낀 적이 있습니까? 나의 나이듦도 느껴집니까? 나이듦이 애잔하면서도, 그 사람들 때문에 답답하고 어려웠던 경험이 있다면 나누어봅시다.
[2-3] 레위기 19장 32절을 읽어봅시다. 성경은 나이 든 사람에 대한 태도를 어떻게 가르치고 있습니까? 유세윤의 어머님은 자신이 무능하게 된 원인이 무엇이라고 이야기합니까? 내 관점, 내가 가진 능력을 기준으로 사람을 답답해 하며 배려하지 못했던 적이 있습니까?
[4-5] 예수님은 나를 어떻게 대하셨습니까? 나의 능력과 관계없이 나를 존귀히 여기시고 사랑하신다는 증거가 무엇입니까? 예수님의 사랑의 방식으로, 내 주변의 나이 든 사람들을 대하는 방법과 마음가짐이 어떻게 달라져야 할지 나누어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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