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수구 이론”
(1. 17. 2021.)
시편 78:38
더러운 물은 가장 낮은 하수구로 흐른다. 겉은 다 깨끗해 보인다. 그러나 더러움은 하수구에 가서 쌓여 있을 뿐이다. 사람에게도 하수구가 있다. 사람은 내면의 부정적인 감정을 쏟아 버리지 않으면 살 수가 없다. 분노, 학대, 냉소, 무시, 폭발로 모든 오물을 부어버리는 나의 그 상대, 그곳이 나의 하수구이다.
나의 하수구는 어디일까? (1) 내가 가장 강해지는 곳이면서, 동시에 (2) 상대가 가장 약해지는 그곳이다. 그래서 부모가 화가 나면 힘 없는 자녀에게 막말을 한다. 공부를 잘하는 형이나 누나는 줄곧 공부 못하는 동생들에게 함부로 말을 내뱉는다. 공부를 근거로 내가 강할 수 있기 때문이다. 돈이 있을 때, 돈 없는 자들을 향해 훈수 두며 우쭐한다. 지난 주 강동구청 주차 단속 민원을 담당하던 직원이 한강에 투신 자살했다. 단속에 걸린 주민들이 하루 종일 전화로 욕을 쏟아 부었기 때문이다. 실력이 없고 사회 생활 못하는 후배 직원을 당신은 어떻게 대하는가? 은근히 비꼬며, 무시하고, 정중하게 대하지 않고 있다면, 그 사람은 당신의 하수구가 된 것이다.
사람을 하수구로 삼지 말라. 그것이 우리의 죄이다. 화가 나서 당연한 반응을 했다는 말은 거짓 말이다. 아무리 옳지 않은 행동이라도, 상대가 강하면, 당신은 분노를 절제하지 않는가? 윤리적으로 파렴치한 범죄자, 약자, 나보다 성취를 못한 자에게 함부로 대하는 모습이 있다면 당신은 하나님 앞에서 분노가 죄임을 아직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회개하지 않은 것이다.
왜 내가 마음대로 분노할 수 없는가? 내 삶의 주인이신 하나님이, 내게 분노를 쏟지 않는 방식으로 나를 대하셨기 때문이다. “오직 하나님은 긍휼하시므로 죄악을 덮어 주시어 멸망시키지 아니하시고 그의 진노를 여러 번 돌이키시며 그의 모든 분을 다 쏟아 내지 아니하셨으니”(시편 78:38) 주님이 나의 약함과 부족함을 근거로 화를 내셨다면 나는 이미 죽었다. 분내지 않으신 주님 때문에 살아있음을 인정한다면, 나의 분냄도 정당함을 잃는다.
하나님은 나의 죄에 대한 진노를 다른 곳에 쏟으셨다. 그것이 예수님이 짊어지신 십자가이다. 분노를 쏟아 놓는 곳이 달라질 때, 구원이 임했다. 내 삶도 마찬가지다. 끓어오르는 내 삶의 분노를 십자가 앞에 쏟아 놓으라. 십자가만을 나의 하수구로 삼으라. 내가 지은 죄의 더러움도 깨끗하게 씻기신 그분의 능력이, 내 억울함을 치유하시고 새로운 길을 여실 것이다.
[1-2] 사람마다 삶의 부정적인 요소를 해소하는 하수구가 있습니다. 나는 누구에게 함부로 말합니까? 나는 어떤 사람들을 무시하는 경향이 있습니까? 나의 하수구를 찾아봅시다.
[3-4] 시편 78편 38절을 읽어봅시다. 우리가 주변 사람들에게 함부로 더러움을 쏟아내지 말아야 할 이유는 무엇입니까? 내가 주변 사람을 함부로 대하는 것이 하나님 앞에서 죄가 될 수 있음을 인지한 적이 있습니까?
[5] 하나님은 우리의 죄에 대한 진노를 다른 곳에 쏟으셨습니다. 그곳은 어디입니까? 예수님의 능력으로 우리의 삶의 더러움은 어떻게 변화되었습니까? 내 삶에서 경험하는 더러움을 예수님께 쏟아 놓으면서, 우리가 기대해야 할 예수님의 능력은 무엇인지 생각해봅시다. 그리고 그것을 경험한 적이 있다면 나누어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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