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칙은 인격의 지배를 받아야 한다
(11. 4. 2018.)

요한복음 5:39-40

 

한 아이가 부모님에게 교육을 받는다. “가난하고 불쌍한 애들 무시하지 말고, 맛있는 것 사주고 도와주렴부모님께 배운 삶의 법칙이었다. 좋은 법칙을 배워 착하게 살았다. 부모가 되어 다시 자신의 자녀에게 똑같이 가르치려고 한다. 그때 깨닫는다. 훌륭하게 자라기를 바라는 부모의 마음을 배운다. 부모의 인격이 느껴진다. 그 부모는 법칙을 배운 것이 아니었다. 사랑을 먹은 것이다.

 

성경을 배우는 것은 하나님 중심의 원리를 배우는 것이다. 그러나 성경은 법칙이 아니다. 인격이다. 성경을 열심히 배우려는 자들에게 예수님이 말씀하신다.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연구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언하는 것이니라”(요한복음 5:39) 법칙을 아는 것이 아니라, 인격을 알아야 한다.

 

성경을 배우면 악을 벗어나게 될 것이다. 지혜로워질 것이다. 효율적인 삶도 살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법칙이다. 성경은 법칙이 아니다. 성경은 활자화된 예수님의 인격이다. 성경을 법칙으로 읽지 말고 인격으로 읽으라. 그러면 보인다. 예수님의 내 삶을 향한 사랑이 보인다. 세상을 향한 계획이 보인다.

 

법칙에 머무르는 것은 자기 중심적이라는 증거이다. 성경을 연구하는 자의 특징을 다음 구절에서 이렇게 말한다. “내게 오기를 원하지 아니하는도다”(40) 성경은 원하지만 예수님의 인격은 만나길 원치 않는다. 지적인 놀음일 뿐이다. 성경을 그렇게 읽은 사람이 김일성이다. 모든 법칙은 안다. 그러나 마무리의 인격에는 늘 내 이름이 있다. 성경을 완전히 잘못 읽은 것이다. 법칙에 머무르는 우상숭배를 벗어나라.

 

전도란 무엇인가? 남들에게 성경의 논리를 설명하고 싶다면 아직도 예수님을 만나지 못한 것이다. 상대에게 성경을 설명해주고 싶은 것이 아니라, 인격을 설명해주고 싶어야 한다. 내가 만난 예수를 만나기를 원해야 한다. 법칙은 부차적인 것이다. 성경을 자세히 몰라도 된다. 그것은 부차적인 것이다. 성경의 본질이 뭔질 알아야 한다. 그렇게 성경을 배우고, 그렇게 전도하면 된다. 내가 느낀 그분의 사랑, 그분의 인격을 전하고 싶은 것, 그게 전도이다.

 

그래서 성경 읽기는 늘 기도와 묵상이 함께 따라가야 한다. 활자를 열어주시는 것은 성령, 즉 예수님의 인격이 도우셔야 하기 때문이다. 법칙을 아는 사람이 아니라 인격을 아는 사람이 되라. 법칙이 아니라 인격을 전하는 사람이 되라. 성경을 소개하려 하지 말고, 예수를 소개하려 하라. 법칙은 늘 인격의 지배를 받아야 한다.

 

[1] 우리가 배운 많은 법칙 뒤에는 그것을 가르치고 만든 인격이 있습니다. 법칙보다 인격이 중요함을 깨달은 경험이 있습니까?

 

[2-4] 요한복음 5 39절을 읽어봅시다. 성경을 연구하는 사람들에게 예수님은 뭐라고 말씀하십니까? 무엇을 놓친 것입니까? 그리고 법칙을 강조하면 어떤 결과를 낳게 됩니까?

 

[5-6] 나의 성경읽기와, 나의 전도에서 착각하고 있는 것은 무엇입니까? 법칙을 잘 모르는 것입니까, 인격에 대한 친밀함이 부족한 것입니까? 오늘도 내가 성경을 읽고 전도를 할 때 기억해야 할 태도들을 돌아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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