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난의 가장 큰 유익

(10. 28. 2018)

빌립보서 3:8

 

모든 고난을 다 이해할 순 없다. 그래도 하나님이 깨닫게 하시는 것들이 있다. 죄의 끔직함이 보이기도 하고, 나의 성품이 성숙하기도 한다. 성장의 모든 유익은 고난에서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이다. 고난의 유익을 무시하는 것은, 아직 삶을 진지하게 여기지 않는 것이다.

 

하지만 고난을 자꾸 효율로만 접근해서는 안 된다. 효율적이지 않아 보일 때에는 바로 원망만 할 것인가? 알 수 없는 고난 속에 우리가 기억해야 할 한 가지 유익이 있다. 고난은 언제나 하나님과 연결되어야 한다. 고난은 하나님을 알아가는 것에 그 마침표가 찍혀야 한다.

 

하나님을 알아가는 것이 무엇인가? “이런 고난을 앞서 당하신 그분을 경험하는 것이다. 한 청소년이 처음으로 택배 상하차 알바를 했다. 일을 가기 전에 5천원도 안 주는 엄마가 밉다고 했다. 밤새 허리 부러지도록 일하고 집에 돌아왔다. 식탁에 5천원이 놓여있었다. 펑펑 울었다. 알바를 해보니, 5천원을 주신 그 마음이 느껴진다.

 

고난 전에는 몰랐다. 그런데 이 고난을 당해보니 예수님이 나를 위해 무엇을 감수하셨는지 느껴진다. 하나님은 나를 가끔 외롭게 하신다. 유혹 속에 두시기도 한다. 실패도 경험하시게 한다. 이해 안 되는 상황도 펼쳐진다. 상황 안에 직접적으로 경험하는 유익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기억하라. 그 분의 인격을 알아가는 것만큼 큰 유익은 없다. 그분이 나를 이렇게 기다리셨겠구나. 그분이 나를 이렇게 참으셨겠구나. 고난의 가장 큰 유익은, 그분의 마음, 그분의 나를 향한 사랑이 절절히 느껴지는 것이다.

 

바울이 고난 속에 그분의 사랑을 깨닫고 이렇게 고백한다.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빌립보서 3:8) 다른 유익이 하찮다고 이야기 한다. 고난을 당할 수록, 그 고난을 당하신 나를 향한 사랑의 확실성을 깨닫는다는 것이다.

 

고난 속에 그분의 사랑과, 그분의 약속에 대한 확신이 희미해진다면, 고난 속에 손에 잡히는 유익만 찾고 있어서인지도 모른다. 그 분은 사람이 되셨다. 그리고 나와 같이 고난 받으셨다. 홀로 십자가로 가신 그분 때문에, 홀로 죽음으로 먼저 들어가신 그 분 때문에, 내 인생은 영원히 안전하다. 앞서 고난 당하신 그분을, ‘고난을 통해뒤따라 갈 때, 나는 그분의 인격을 더욱 신뢰할 수 있을 것이다.

 

고난의 궁극적인 유익은 그 분을 아는 데에 있다. 고난의 때마다 예수님이 겪으셨던 그 감정과 상황을 함께 묵상하라. 나의 삶의 견고함은 거기서부터 시작된다.

 

[1] 신앙적인 이야기가 아니더라도, 고난은 나에게 많은 유익을 줍니다. 고생 끝에 배우게 된 것, 고난 중에 변하게 된 나의 깨달음이나 삶의 방식을 나누어봅시다.

 

[2-5] 빌립보서 3 8절을 읽어봅시다. 고난이 주는 가장 큰 유익은 무엇입니까? 왜 그렇습니까? 나의 고난을 통해 (1)예수님의 날 위한 고난을 더 깊이 느낀 적이 있습니까? (2)날 소중히 여기는 사람의 고난을 더 깊이 느낀 적이 있습니까? 나누어봅시다.

 

[6-7] 오늘 내가 당하는 고난 속에 묵상 해야 할 그분의 고난은 어떤 것이 있을까요? 그분은 그 고난 속에서 날 위해 어떻게 행동하셨습니까? 나의 고난을 그분을 알아가는 데 연결시키는 지혜를 나누어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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