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엔 기도가 없다
(11. 25. 2018.)

마태복음 26:41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믿고 나서 자연스럽게 생기는 현상은 기도하게 된다는 것이다. 기도는 숨쉬는 것과 같다. 어떻게 배우는지, 어떻게 하는진 모르지만 아무튼배우게 되고, ‘그러다가하게 되는 것이다. 기도를 잘 못하는 사람도 기도에 대한 강박과 갈망이 생긴다. 기도를 안 하면서도 기도 해야 하는데라는 말을 달고 다닌다. 숨을 제대로 쉬고 싶다는 뜻이다. 그래서 예수님은 늘 깨어 기도하라 하셨다.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기도하라 마음에는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마태복음 26:21) 숨쉬지 않으면 곧 질식한다는 것이다. 질식은 악에 사로잡히는 것이다. 그것이 시험이다.

 

도대체 언제까지 기도해야 하는가? 기도에 대한 지겨움을 새롭게 바라보자. 제목과 같다. “마지막엔 기도가 없다.” 무슨 말인가? 그리스도인은 예수님의 초림과 재림 사이에 살고 있다. 이것을 이미와 아직 사이(already but not yet)’라 한다. 이미 예수님이 십자가 구원을 행하셨지만, 그 구원은 아직 완성되지 않았다. 완성은 최종 재림 때에 있다. 마지막 재림의 때가 신자의 마지막 날이다. 그런데 그 마지막 날 이후에 대한 성경의 언급을 보라. 부활도 있고, 찬양도 있고, 회복도 있다. 그런데 한 가지가 없다. 기도가 없다.

 

마지막엔 기도가 없다. 이 말은 엄청난 기대감이거나, 엄청난 공포이다. 예수님을 구주로 믿는 자들에게는 더 이상 기도가 없다. 왜 그런가? 이미 하나님을 직접 보고 마시며 깨지지 않는 친밀한 관계를 즐기는 상태가 되기 때문이다신자의 마지막엔 기도가 없다. 기도할 필요가 없다. ‘영원히하나님과 관계 맺는 상태가 된다.

 

마지막엔 기도가 없다. 불신자의 마지막에도 기도가 없다. 그들은 왜 기도하지 못하는가? 하나님과의 관계가 영원히단절되었기 때문이다. 성경은 죽음을 단순한 육체적인 소멸로 묘사하지 않는다. 성경에서 죽음은 관계의 단절을 뜻한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영원히 끝나서, 기도할 가능성마저 사라지는 것이다.

 

예수님은 내가 하나님과 단절될 관계의 문을 열어주셨다.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마가복음 15:34) 영원히 기도가 사라질 경험을 예수님이 나 대신 해주셨다. 지금 기도한다는 것은, 내가 영원히 하나님과 관계 맺는 영광을 미리 맛보는 것이다. 그래서 기도는 징표이다. 기도하고 있는가? 당신은 영원히 숨쉬는 것이 보장된 사람이라는 뜻이다.

 

내 미래 마지막에는 기도가 없을 것이다. 영원히 하나님과 단절되거나, 영원히 하나님과 연결되어 있을 것이다. 연결되었다는 징표는 기도이다. 단절되었다는 징표는 기도하지 않음이다. 당장 기도하라. 이것이 나의 신분이요, 이것이 나의 징표이다.

 

[1-2] 요즘 기도생활은 어떠합니까? 재림 때에 성도들의 모습에 나타나지 않는 것이 있습니다. 무엇입니까? 왜 그렇습니까?

 

[3-4] 재림 이후 모든 사람들은 기도하지 않지만, 그 양상은 두 가지로 나뉩니다. 어떻게 나뉩니까? 불신자의 최후 심판은 무엇입니까?

 

[5-6] 영원히 기도 할 수 없는 상태를 나 대신 경험하신 분은 누구이십니까? 내가 하나님과 영원히 연결되었음을 확신할 수 있는 내 삶의 패턴은 무엇입니까? 다시 기도에 힘쓰기 위해 고쳐야 할 내 삶의 패턴들을 나누어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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