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대의 대상이 바뀐다
(5. 14. 2017.)

로마서 9:14-18

 

삶에서 지치는 순간들이 있다. 몸이 피곤해서 지치는 줄 알았다. 그러나 우리를 더 지치게 만드는 것이 있다. 기대가 무너질 때이다. 회사가, 국가가, 사회가 내 기대처럼 돌아가지 않는다. 내가 만난 이 사람이 내가 기대했던 그런 사람이 아니었다. 내 자신 조차도, 스스로 기대한 것과는 다른 모습이다. 기대가 꺾이는 순간, 기대가 컸던만큼 내 삶에 절망을 느낀다.

 

성경은 우리의 구원이 오직 하나님께 있음을 말한다. “그런즉 원하는 자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달음박질하는 자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오직 긍휼히 여기시는 하나님으로 말미암음이니라”(로마서 9:16) 누가 구원을 얻는가? 오늘 성경은 명확히 이야기한다. (1) 원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 (2) 노력으로 되는 것이 아니다. 그럼 뭔가? “하나님이 나를 불쌍히 여기셨기 때문이다.”

 

주변에 잘못된 생각과 행동방식을 가진 사람들 때문에 분노할 때가 있다. 왜 분노하는가? 내가 지혜롭게 생각할 수 있는 이유는 나의 달음박질 때문이었다.”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내 지혜와 판단력은 어디로부터 왔는가? 내 달음박질이 아니다. 하나님이 나를 불쌍히 여기셨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기대대로 행동하지 않는 내 주변에 대하여 분노가 아닌 긍휼로 대할 수 있다. 구원이 하나님께로부터 온다는 선언은, 부족한 상대방을 존귀하게 여김과 동시에 내 자신의 교만을 철저하게 봉쇄한다. 이것을 하나님의 주권이라고 한다.

 

내가 원해서, 노력해서 이 자리에 있는 것이 아니다. 그의 긍휼 때문이다. 그러므로, 상대에게 의지와 노력을 기대하지 말라. 기대의 대상을 바꾸라. 이제 내가 기대하는 것은 그 사람의 노력이 아니다. 이제 내가 기대하는 것은 이 회사의 각성이 아니다. 각성하지 않아도 긍휼을 베푸시면 된다. 노력하지 못했어도 긍휼을 베푸시면 일어선다. 이제 긍휼을 베푸시는 하나님을 기대한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로마서 5:8) 내가 각성하기 전에 주님이 내게 오셨음을 잊지 말라. 이제, 상대가 각성하지 못했어도 긍휼을 베풀기를 잊지 말라. 하나님이 나를 긍휼히 여기셨듯이, 그 사람도, 이 사회도 긍휼히 여기실 것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긍휼을 기대하자. 그것이 성도의 소망이다.

 

[1] 사람과 사회, 그리고 나에 대한 기대가 무참히 깨졌던 순간이 있습니까? 무엇을 기대했으며, 그것은 어떻게 무너졌습니까?

 

[2-4] 로마서 916절을 읽어봅시다. 성경은 나의 영적인 구원 뿐만 아니라, 나의 모든 것이 (1)무엇 때문이라고 말하고 있으며, (2) 무엇 때문이 아니다라고 말하고 있습니까? 나보다 실력이 낮거나, 답답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을 향한 나의 태도를 돌아봅시다. 분노입니까? 긍휼입니까? 분노는 어디서부터 온 것입니까?

 

[5] 내가 지금까지 무엇을 기대했었는지 돌아봅시다. 우리는 무엇을 기대해야 하겠습니까? 하나님의 긍휼을 기대할 때 바뀌어야 할 내 삶의 행동방식, 사고방식들을 나누어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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