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겸손한 리프레시(refresh)”
(7. 14. 2024.)

창세기 2:2

 

열심히 살아간 삶의 끝은 무엇인가? 한계에 부딪히는 것이다. 지쳐서 도저히 공부를 더 못하겠다. 졸려서 더 일을 못하겠다. 더 돈을 벌다가는 몸이 망가지겠다. 더 가지 못하고, 더 많은 것을 하지 못하는 나의 인생에 답답함을 느낀다.

 

하나님의 사람들은 한계를 지혜롭게 인정하는 삶을 산다. “하나님이 그가 하시던 일을 일곱째 날에 마치시니 그가 하시던 모든 일을 그치고 일곱째 날에 안식하시니라”(창세기 2:2) 하나님이 체력이 부족하셨나? 아니다. 하나님이 내가 피조물임을 깨닫도록 일부러 한계를 주신 것이다. 세상은 한계를 뛰어넘는 것을 미덕으로 삼는다. 더 잘하고, 더 늦게 자며, 더 버틸수록 인정받는다. 성경은 그것을 ‘교만’이라고 한다. 게으름도 문제지만, 성실의 우상도 문제다. 더 할 수 없는 것은 잘못 살고 있는 것이 아니다. 

 

삶에 겸손한 리프레시를 계획하라. 잠시 멈추고, 그만두는 시간을 지혜롭게 계획해야 한다. 인간 수면 과학 센터 원장 매튜 워커는 “수면 부족으로 인한 해로운 영향을 피할 수 있는 신체 기관은 단 하나도 없다.”고 말한다. 더 못함을 인정하고 겸손하게 자야 한다. 기분이 맨날 좋은게 아니다. 기분도 주기적으로 리프레시 해야 한다. 쉬는 것은 예술이다. 쉬는 것을 미리 계획하고, 배울 필요가 있다. 나는 어떻게 쉴 때 하나님을 향한 감사와 찬양이 다시 샘솟는가? 성실이 선을 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는 지표들이 있다. 과도한 분노, 일탈의 욕구, 한없는 자기연민, 감사와 평안의 실종이 나타난다면, 내 성실은 안식을 무시하는 교만으로 바뀐 것이다.

 

한계를 인정하며 쉬어도 괜찮다는 확신을 어디서 얻는가? “이미 그의 안식에 들어간 자는 하나님이 자기의 일을 쉬심과 같이 그도 자기의 일을 쉬느니라”(히브리서 4:10) ‘그의 안식’은 예수님의 안식이다. 예수님이 우리 대신 십자가에 못박히셔서 다 이루었다고 말씀하셨다. 대신 일해주셨다. 우리의 죽음도 영원한 안식이 되었다. 그 예수님 안에서, 오늘의 내 삶은 이제 ‘무조건 더 해야 하는 삶’이 아니다. 주신 한계를 인정하고 안식할 때, 오히려 더 많은 열매를 거둘 수 있다.

 

일상을 악바리로 밀어붙이고 있다면 교만한 것이다. 될 것 같은데, 휘어지다가 부러져버린다. 다 망가지기 전에 겸손히 안식하라. 훨씬 더 오랜 시간 열매를 거둘 것이다.

 

[1] 열심히 하면 된다고 생각했는데, 열심에도 한계가 있음을 깨닫습니다. 한계에 부딪쳐 자책하거나 괴로워했던 경험이 있다면 나누어 봅시다. (시간활용, 체력, 건강, 재정 등…)

 

[2-3] 창세기 2장 2절을 읽어봅시다. 하나님이 사람에게 주신 명령은 무엇입니까? 쉬지 않음이 교만의 죄일 수 있다면, 내가 오늘 한계를 인정하지 못하고 과도한 죄책감과 책임감에 빠지는 삶의 영역이 무엇일지 나누어 봅시다.

 

[4-5] 히브리서 4장 10절을 읽어봅시다. 우리가 겸손히 쉬어도 열매를 기대할 수 있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바쁜 내 삶에 어떤식으로 내 삶을 리프레시 하면 좋을지, 쉼의 지혜를 나누어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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