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선불가”
(7. 7. 2024.)
로마서 7:24
다 끝났다고 생각한 죄의 문제는 다시 날 찾아온다. 이 나이 들면 화가 가라앉을 줄 알았는데, 여전히 분노가 살아있다. 염려는 오래 전 이야기인 줄 알았는데, 주제만 달라지고 걱정은 그대로다. 시기, 질투, 음란, 탐욕, 미움, 이기심이 시퍼렇게 살아있다. 내 안의 죄가 여전히 살아있음이 느껴진다.
사람은 스스로의 힘으로 죄를 이길 수 없는 존재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로마서 7:24) 사람은 죄에서 벗어나고 싶어도 스스로 벗어날 수 없다. 하나님은 사람에게 삶을 ‘개선’해보라고 하시는 분이 아니다. 죄를 버릴 ‘기회’를 주시는 분도 아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시는 분이다. 죄에서 ‘벗어나게’ 하시는 분이다.
어떻게 죄에서 벗어나는가? 예수님이 내 죄를 모두 가지고 십자가에서 죽으셨음을 믿어야 한다.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로마서 8:1-2) 믿는다고 벗어나지지 않던데? 여전히 죄가 있던데? 그 말을 한다면 당신은 아직 벗어나고 싶은 게 아니다. 당신은 아직 믿지 않고 있다. 내가 노력하고 참으면 앞으로 괜찮아질 수 있다고 생각하고, 실제로는 믿음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믿음이 역사하지 않는 것이다.
정말 믿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는 증거가 있다. 어느 날 다시 ‘믿는 것 밖에는 답이 없다’라고 느껴져야 한다. 나는 개선불가다. 죄는 내가 이길 수 없음이, 죄가 내 삶을 망치고 있음이 처절하게 느껴져야 한다. 그제서야 정말로 이 죄를 가져가신 예수님을 믿고 고백한다. 예수님은 내가 예수님 안에서 깨끗하고 사랑받는 존재라고 선언하신다는 것을 받아들인다. 이것을 ‘칭의’(justification)라고 한다.
믿음 이후에도 죄가 계속 있다니까? 맞다. 그 죄는 더 이상 나를 지배하는 죄가 아니라 죄의 잔재다. 하나님은 남은 죄의 잔재가 (1) 바로 없어지게, (2) 점진적으로 없어지게, (3) 쉽게 없어지지 않고 애매하게 남아있게 하실 수 있다. 방법은 다르지만 깨닫게 하시는 것은 하나다. 그 모든 싸움의 여정을 통해 나는 죽을 수밖에 없는 죄인이며, 믿음을 통한 구원 외에는 답이 없는 존재임을 알게 하시며, 오직 믿음만, 오직 은혜만 붙들게 하실 것이다. 그러다가 실제 변화도 경험될 것이다. 이것이 ‘성화’(sanctification)다. 절대 외적인 개선만이 성화가 아니다. 그래서 죄의 잔재도 복이다.
다 끝났다고 생각한 죄의 문제가 다시 찾아왔는가? 정말로 내가 죄인임을 깨달을 기회다. 내가 노력만 하면 다 될 줄 알았다. 아니다. 건지시고, 구원하시는 예수님을 믿으라. 믿는 자에게 구원이 있다.
[1] 나이스하게 살다 보면 나는 죄와 멀어졌다고 생각되다가, 특정한 상황이 닥치면 내 안에 여전히 살아있는 내 안의 죄성을 발견할 때가 있습니다. 요즘 그런 것을 느낀 적이 있습니까? 나누어 봅시다.
[2-4] 로마서 7장 24절을 읽어봅시다. 바울은 자신의 몸을 무엇이라고 표현합니까? “믿는데도 아무 일이 일어나지 않던데?”라는 말 속의 속임수는 무엇입니까? 정말로 믿음을 붙드는 것 외에는 내 삶이 의로워질 길이 없다고 느껴졌던 때가 있다면 나누어 봅시다.
[5-6] 믿고 난 이후에 성도의 삶에 남아있는 죄는 무엇입니까? 주님이 나를 성화시키셨다고 느껴지는 부분이 있습니까? 남은 죄의 잔재와 싸우는 여정은, 믿음이 없었던 때와 어떤 다른 결과를 만들어 냅니까? 오늘 나의 힘을 의지하던 것을 내려놓고, 다시 예수님의 죄사함을 믿어야 할 삶의 영역을 나누어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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