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대와 경계
(8. 13. 2023.)

누가복음 15:20

 

학교 교실에서 한 학생 가방에 있던 지갑이 없어졌다. 그 범인 하나 때문에 모두가 서로를 의심하고 경계하기 시작했다. 사회도 똑같이 움직인다. 한가지 나쁜 일은 거기에서 멈추지 않고 분위기를 바꾼다. 두려운 범죄들이 사회에 많이 일어날수록, 사람들은 서로를 경계하기 시작한다.

 

하나님은 나를 환대(hospitality)하신 분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의 실천적인 삶의 표지는 환대가 되어야 한다. 아버지 재산을 탕진한 아들이 집을 나갔다가 돌아온다. 아버지는 돌아오는 아들을 여전히 환대한다. “이에 일어나서 아버지께로 돌아가니라 아직도 거리가 먼데 아버지가 그를 보고 측은히 여겨 달려가 목을 안고 입을 맞추니”(누가복음 15:20) 구원의 시작은 환대였다.

 

환대란 접대와 비슷한 말이다. 나의 수고로 상대를 초대하고, 대접하며, 기쁘게 맞이하는 것이다. 이 땅에서 하나님 사람으로서 살아보고 싶거든, 환대를 실천하라. 최근 누군가를 나의 집으로 초대한 적이 있는가? 별로 상관없는 사람에게 내가 밥과 차를 사겠다고 손을 내민 적이 있는가? 서로 경계하는 것이 당연한 사람에게 먼저 나아가 대화를 시도하며 관계를 맺은 적이 있는가? 이상하다. 환대한 곳에서는 밥만 먹고 끝나는 게 아니다. 온갖 진실과 참회, 위로와 우정, 사랑과 나눔이 싹튼다. 환대는 하나님 나라를 경험하는 길이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셨다. 우리는 그를 환대하지 않았다. “선지자가 고향에서는 높임을 받지 못한다 하시고”(요한복음 4:44) 환대하지 못한 자들 손에 죽으셨으나, 그 죽으심을 통해 내가 죽을 때 천국에서 환대 받게 하셨다. 그분은 ‘죽는’ 수고를 통해 나를 끝까지 환대하셨던 분인 것이다. 내가 주님의 환대를 이미 경험한 자임을 믿는가? 경계의 시대 분위기를 뛰어넘어 사람들을 환대하라. 그것이 주님의 명령이다.

 

팀마다 서로 먼저 과일을 싸오고, 먹을 것도 싸오고, 커피도 싸온다는 말을 듣는다. 내가 뭐라고 그 사람이 내 먹을 것을 챙기나? 경계심은 그만 내려놓고, 일단 먹으라. 환대의 즐거움을 누리라. 그리고 나도 환대하라. 경계심은 마귀의 것이다. 환대가 하나님 나라의 방식이다.

 

[1] 경계심이 높아진 요즘 사회에서 관계를 맺는 방식이 달라졌던 것을 경험했던 적이 있습니까? 환대와 경계의 분위기가 달랐음을 경험했던 나라, 조직, 공동체 등이 있다면 나누어 봅시다.

 

[2-3] 누가복음 15장 20절을 읽어봅시다. 집 나간 아들이 돌아올 때 아버지의 반응은 무엇이었습니까? 기독교인들이 이웃을 대하는 삶의 기본 방식은 무엇입니까? 내가 가장 큰 환대를 경험하거나 시도했던 적이 있다면 나누어 봅시다.

 

[4-5] 요한복음 4장 44절을 읽어봅시다. 예수님은 이 땅에서 어떤 대접을 받으셨습니까? 십자가의 죽으심을 통해 예수님은 우리를 어떻게 환대하셨습니까? 내가 환대 받은 존재임을 기억하며, 내가 관계 맺는 사람들에게 어떻게 환대를 실천할 수 있을지 나누어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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