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경 쓰이는 것이 우상이다"
(3. 6. 2016)
우리는 알게 모르게 우상(idols)을 섬긴다. 나는 불상에 절하지도 않고, 사이비 종교 집단에 속해 있지도 않은데 우상을 섬길 수 있는가? 그렇다. 우상이 무엇인가? "나를 신경 쓰이게 만드는 것"이 우상이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자유를 주신다고 했다. "주는 영이시니 주의 영이 계신 곳에는 자유가 있느니라"(고린도후서 3장 17절) 사람이 하나님을 섬길 때 누리는 최고의 특징은 자유를 누리기 시작한다는 것이다. 그 어떠한 상황과 주변의 평가에도 얽매이지 않는다. 따라서 자유가 없는 곳은 주의 영이 계시지 않은 곳이다. 자유가 없이 신경 쓰이는 곳이 있는가? 바로 그곳에 우리의 우상이 있다.
"거짓 신들의 세상"이라는 책에 나오는 이야기이다. 한 남자가 바람둥이였다. 이 남자는 여자를 유혹하여 즐기고 나면 바로 다른 여자를 찾는 사람이었다. 그러다가 크리스천이 되었다. 그 후 문란한 생활을 그만두었다. 전도도 열심히 했다. 문란함을 이겨냈으니 훌륭한 것 아닌가? 그런데 교회 활동을 하던 도중 이 사람의 또 다른 문제가 드러났다. 이 남자는 논쟁적이었고, 남을 지배하고 싶어 했다. 모든 회의 때마다 리더를 하기 원하고, 남을 평가하고 싶어 했다. 이 사람은 "두 가지 행동"이 문제였는가? 아니다. 두 가지 행동을 이끌어 낸 "한 가지의 우상"이 문제였다. 무엇인가? 이 사람은 남을 지배하는 힘이 자신의 우상이었다. 여자를 지배하며 기쁨을 얻었다. 나의 지식을 자랑하며 인정 받기 원했다. 우상은 특정한 행동보다 마음에 뿌리를 내린다. 단순히 행동을 끊는 것은 우상을 제거하는 것이 아니다. 이렇게 우상은 슬며시 우리 삶에 들어와 나의 자유와 평안을 빼앗아 간다.
분노한다는 것은 내가 기쁨을 얻고자 했던 그 무엇이 가로막혔다는 것이다. 두려워한다는 것은 내가 안정감을 느끼고 있던 것이 위협받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왜 자존심에 상처를 입었다고 분노하는가? 자존심이 나를 든든하게 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왜 겉모습에 집착하는가? 남이 나의 외모를 인정하는 것에서 평안함을 얻기 때문이다. "이런 행동 하지 말자. 이런 감정을 품지 말자"라고 다짐하는 것은 별 효과가 없다. 마음에서 신뢰하고 있는 대상, 마음에서 기쁨과 안정감을 찾고 있는 우상이 그대로 있기 때문이다.
어떻게 이 우상에서 벗어날까? 현재 예수님을 사랑하는 것보다 훨씬 더 예수님을 사랑해야 한다. 사랑한다는 것은 단순히 목소리 크게 찬양하는 것이 아니다. 단순히 예수님을 여러 번 부르는 것도 아니다. 그 사랑의 가치와, 그 아름다움과, 내 삶을 책임지시는 은혜가 얼마나 위대하고 실제적인 것인지 끊임없이 묵상하는 것이다. 등록금을 고민하던 친구가 "등록금이 완납되었습니다."라는 문자를 받고 이렇게 말했다. "지금 등록금으로 신경 쓰이는데 이런 문자 좀 그만 보냈으면 좋겠네." 이 친구는 신경을 계속 쓰기보단 그 문자가 무슨 뜻인지 생각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오아시스 앞에서 목마르다고 발버둥 치면 안 된다. 물을 마시는 법을 배워야 한다.
생각보다 우리의 우상이 많으며, 생각보다 우리의 고집이 세며, 생각보다 우리의 의지가 약하다. 그러나 생각보다 예수님의 희생이 위대하며, 생각보다 그분의 사랑이 영원하며, 생각보다 그분의 도우심이 친밀하다. 하나의 행동을 끊으려 하면 분명히 실패할 것이다. 그러나 나를 향한 예수님의 공로가 내 가슴을 사로잡으면 모든 우상을 가려낼 수 있을 것이다. 신경 쓰이는 곳에 나의 우상이 있다.
[1-2] 최근 일상에서 내가 과도하게 신경 쓰는 부분은 어디입니까? 그것에 따라 내 마음은 어떻게 변합니까?
[3-4] 우상은 행동이 아니라 마음 속에 숨겨져 있습니다. 한 가지 우상이 다양한 행동을 만들어 냅니다. 주변에서 여러 행동 속에 숨어있는 나와 다른 사람의 우상을 발견한 경험이 있다면 나누어봅시다.
[5-6] 예수님 안에서 자유를 찾았던 삶의 영역이 있습니까? 요즘은 바쁜 삶 속에서 예수님의 임재 안에 거하기 위해 어떠한 노력들을 하고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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