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개해야 상쾌해진다
(12. 30. 2018.)

누가복음 5:31-32

 

기숙사 룸메이트였던 한 친구는 아침의 피곤함 때문에 일찍 일어나기 어려워했다. 대학교 수업만 없으면 매일 오전 11시를 넘는 게 다반사였다. 늦게 일어나, 후회 속에 씻고 오면서 이렇게 말한다. “, 신기하게 씻으면 이렇게 상쾌할 수가 없다니까!” 그러더니 전략을 바꾼다. 아침에 알람이 울리면 이제 무조건 씻으러 간다. 아침부터 씻더니 멀쩡해졌다. 공부한다. 안 피곤하단다. 그러더니 큰 깨달음을 공유한다. “피곤하고 졸리면 일단! 무조건! 씻어야 돼!”

 

인간은 정신을 못 차리고 스스로를 멸망으로 이끄는 행동을 하며 산다. 그것을 죄라고 한다. 죄가 씻기지 않은 인간은 늘 정신이 없고 피곤하다. 그런 나를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용서하시고, 구원하셨다. 이것을 속죄’(atonement)라고 한다. 예수님이 나를 속죄하셨음을 믿는 자는 구원을 받는다. 내 죄는 무엇으로 씻기는가? 그리스도의 속죄로 씻긴다.

 

그러므로, 회개가 먼저인가, 구원이 먼저인가? 구원이 먼저이다. 구원 받지 못한 사람은 회개할 수 없다. 돌이킬 마음 자체가 들지 않는다. 회개할 마음 자체가 들지 않는다. 구원 받은 사람만 회개할 마음이 생긴다. 회개란 무엇인가? 구원받은 사람이, 내 전인격을 하나님께로 돌이키는 삶의 과정이다.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불러 회개시키러 왔노라”(누가복음 5:32) 행동, 말투, 눈빛, 제스처, 지출, 시간활용 등 모든 것을 바꾸는 과정이다. 회개를 하면 구원받는 것이 아니다. 회개는 구원 받는 사람이 상쾌함을 느낄 수 있는 특권이다.

 

아침에 씻는 것은 어렵다. 씻으러 가는 것도 어렵다. 어느 때는 대충 씻기도 한다. 그러나 씻는다고 다른 보상을 오는 것이 아니다. 씻는 것 자체가 특권이다. 씻는 것 자체가 보상이다. 씻는 것 자체가 나를 사랑하는 방법이다. 씻는 것 자체가 내 삶의 가치가 높아지고, 지혜로워지고, 효율적이 되는 방법이다. 회개가 이와 같다. 회개는 어렵다. 행동과 마음, 생각에 전인적인 훈련이 필요하다. 그러나 구원받은 자는 회개에 참여한다. 그리고 마침내 그 상쾌함을 누린다.

 

아침마다 피곤하고, 회개의 과정마다 피곤한데, 나는 왜 계속 회개하며 살 수 있는가? 나의 깨끗함을 위해, 더러워지신 분을 묵상해야 한다. 깨끗함을 위해 더러워지신 분이 예수님이시다. 그분은 죄의 무게, 심판에 대한 부담감, 내 행위가 충분하지 못하다는 열등감을 다 가지고 십자가로 가셨다. 영원한 피곤함, 죽음을 가져가신 그분이 나를 사랑하심을 알기에, 오늘도 나는 그 사랑에 의지하여 다시 회개에 도전할 수 있다.

 

회개를 기도에 그치지 말라. 회개를 보상에 그치지 말라. 회개는 과정이다. 회개는 구체적인 삶의 행동 변화이다. 생각의 변화이다. 피곤함을 이기기 위해, 씻으러 가자. 회개하라. 상쾌함이 임할 것이다.

 

[1] 삶의 육체적인 피로를 이기기 위해서 노력했던 경험이 있습니까? 막상 실행하면 개운한데, 머뭇거리며 후회했던 경험들을 나누어봅시다.

 

[2-3] 내 죄는 어떻게 용서받습니까? 나의 회개 때문입니까, 예수님의 속죄 때문입니까? 그렇다면 회개는 왜 하는 것입니까? 누가복음 5:31-32절을 읽어봅시다. 회개는 용서의 조건입니까, 아니면 용서받은 자의 특권입니까?

 

[4-6] 구체적으로 회개를 실행하여 상쾌함에 이른 경험을 나누어봅시다. 회개가 어려울 때, 씻는게 귀찮을 때마다 생각해야 할 것은 무엇입니까? 은혜에 충만했을 때 회개가 더 쉬워졌던 경험이 있습니까? 회개를 위한 구체적인 고백과 계획을 나누어봅시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