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롱의 영을 배격하라
(3. 1. 2015)

 

조롱의 정의는 단순하다. “나쁘게 해석하는 것이 조롱이다. 조롱의 영에 사로잡히면 사람은 결국 파멸에 이른다. 한 때 이게 다 노무현 때문이다”, “이게 다 이명박 때문이다라는 댓글이 유행했다. 사람은 얼마든지 나쁜 논리를 만들 수 있다. 습관적으로 모든 것을 나쁘게 해석한다면, 당신은 조롱에 사로잡힌 사람이다.

 

조롱의 아비는 마귀이다. 성경은 이 세대를 이미 수 천년 전부터 예언한 바 있다. “먼저 이것을 알지니 말세에 조롱하는 자들이 와서 자기의 정욕을 따라 행하며 조롱하며”(베드로후서 3:3) 조롱의 영이 활개를 치게 될 것이라는 말이다. 인터넷 게시판을 뒤져보라. 댓글을 살펴보라. 심지어 나와 내 친구가 했던 카톡을 다시 찾아보라. 대부분 남에 대한 조롱 뿐이다.

 

조롱은 왜 나쁜가? 첫째, 이유를 잘못 짚는다. 욥은 자신의 잘못 때문에 고난 당한 사람이 아니었다. 가장 경건했지만, 가장 깊은 고난을 당했다. 성경은 바르게 살아도 고난이 있음을 말한다. 그런데 그것을 보고 어리석게 반응했던 사람들을 보라. “나의 친구는 나를 조롱하고 내 눈은 하나님을 향하여 눈물을 흘리니”(욥기 16:20) 함부로 조롱한다는 것은, 남의 삶, 남의 고난을 함부로 판단한다는 것이다. 내 삶을 누군가 함부로 해석하는 것만큼 기분 나쁜 것은 없다. 남의 고난에 침묵하라. 그것이 조롱의 영을 벗어난 사람의 삶이다.

 

둘째, 결코 좋은 것을 끌어낼 수 없다. 이 시대에 지도자가 등장하지 않는 이유가 무엇인가? 과거를 품지 않기 때문이다. 현 정권은 이전 정권을, 다음에 정권을 잡고 싶은 사람은 현 정권을 비판한다. 민주화는 독재를, 산업화는 가난을 비난한다. 조롱은 남의 구멍만 이야기한다. 기억하라. 당신이 지도자가 되고 싶다면, 다른 사람의 잘못, 지난날의 구멍들에 대해 이렇게 이야기 해야 한다. “과거의 부족함들은 미래에 내가 채우겠다.” 그 부족함은 이제 내가 감당하겠다는 선언, 그것이 조롱하지 않는 자의 삶이다.

 

조롱의 영을 배격하라. 나쁘게 해석하지 말라. 예수님은 우리를 조롱하는 마귀의 세력을 대적하시고 이 사람의 부족함은 내가 메우겠다라며 십자가로 달려가셨다. 예수님은 나를 향한 조롱을 담대히 대적하셨다. 사랑의 시작은 조롱을 그치는 것이다. 가족, 친구, 회사, 나라에 대한 조롱을 무조건 그치라. 이유를 함부로 짚지 말라. 다른 사람의 부족함은 내가 메우겠다고 다짐하라. 조롱의 영이 물러가고, 번영을 맛보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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