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론적 상상은 가짜다
(2. 15. 2015)

 

성실이라는 개념을 이론적으로 상상해보자. 한 취준생이 신문을 본다. 신문에 휴가를 보내고 있는 대통령의 모습이 나온다. “국민을 위해 일은 안하고 놀고만 있네라고 익명 댓글을 달며 분노했다. 취직 후 회사에 들어갔다. 대통령과는 다르게 열심히 일하시는 성실한 부장님을 만났다. 이론대로 돌아가는 바른 기업을 만나서 기뻤다. 아뿔싸. 내 위에 부장님이 해외출장 중에도 연락을 하고, 휴가를 가서도 일을 점검한다. 집에는 잘 들어가시지도 않고, 회사를 위해 목숨 바치자며 나를 동기부여 한다. 제발 좀 마음 놓고 휴가 좀 가셨으면 좋겠다. 회사를 다녀보니, 의사결정권자는 얼마간 자리를 비워도 회사는 아무 문제 없이 경영될 수 있는 곳이라는 것을 뒤늦게 깨닫는다. 갑자기 느껴진다. "대통령이 가끔은 휴가 가줘야 되는 거구나! 청와대 직원들과 그의 가족들은 모처럼 쉼을 느꼈겠구나!" 성실하기만 하면 되는 줄 알았다. 아니다. 성실의 이론적 상상은 가짜다.

 

정의라는 개념을 이론적으로 상상해보자. 조현아는 잘못했다. 박창진은 그 권리를 존중 받아 마땅하다. “정의가 이루어지는 사회를 위하여 박창진은 마지막까지 조현아에게 무시당했다고 말했다. 사람들은 박창진에 대해 이론적인 정의를 추구하라고 외쳤다. 온라인에서 사람들은 댓글로 힘내세요, 응원합니다. 재벌에게 지지 마세요!”라며 격려했고, 좋아요의 수는 수만 건에 이르렀다. 박창진은 그대로 행동했다. 그러나 회사 다니는 사람들은 다 안다. 박창진은 지금 죽을 맛이라는 것을. 해남 땅끝마을 초등학생의 힘내라는 댓글에 전국민이 만 개의 좋아요를 눌러준들 그것은 하나도 자신의 무거움을 덜어줄 능력이 없는 허상이었다는 것을. 사태가 심각하게 돌아갈 즈음, 박창진이 용서를 선포했다면 어떨까? “부사장님께서 저를 과도하게 나무라셔서 많은 상처를 받았지만, 순간적인 분노 때문에 의도치 않게 일이 이렇게 된 것이지, 부사장님이 저를 정말 그렇게 대할 의도는 없으셨다고 생각합니다. 회장님과 부사장님, 그리고 제가 수십 년간 몸 담아온, 제가 사랑하는 이 회사가 이러한 작은 갈등으로 어려워지기를 원치는 않습니다. 서로가 더욱 회사를 위해 발전하는 방향으로 사건이 마무리되었으면 합니다.” 박창진은 좀 더 편하게 회사생활을 하지 않았을까? 정의만 이루면 다 되는 줄 알았다. 아니다. 정의에 대한 이론적 상상은 가짜다.

 

C.S. 루이스는 그의 책 순전한 기독교에서, 이론적으로 말하는 사람들이 사실은 얼마나 무지한 것인지를 이렇게 표현했다. “선을 행하기 위해 치열한 노력을 기울여 보기 전까지는 자기가 얼마나 악한 인간인지 깨닫지 못하는 법입니다. 선한 사람들은 유혹이 어떤 것인지 모를 것이라는 어리석은 생각이 요즘 유행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명백한 거짓말입니다. 유혹에 맞서 싸워 본 사람만이 유혹의 힘이 얼마나 강력한지 압니다. 독일군의 힘이 얼마나 막강한지 알려면 항복할 것이 아니라 싸워봐야 합니다. 바람이 얼마나 세찬지 알려면 누워 있을 것이 아니라 바람을 거슬러 걸어가 봐야 합니다. 고작 5분 만에 유혹에 굴복하는 사람은 그 유혹이 한 시간 후에 어떻게 변할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악한 사람들은 어떤 의미에서 악에 대해 거의 알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들은 늘 악에 굴복하여 그 그늘 아래 삽니다. 그러나 악한 충동과 싸우기 전까지는 결코 그 힘을 알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는 유혹에 무릎 꿇지 않았던 유일한 인간-유일하게 완벽한 현실주의자(realist)-입니다.

 

이론적 상상으로 결론 내리지 말라. 살아보지 않은 사람들이 적어놓은 댓글과 카더라 통신에 끌려다니지 말라. 하나님은 당신을 현실의 지혜로 이끄신다. 사회에 부조리함이 많이 보이는가? 이론적으로 말이 안되는 일들을 왜 하고 있는지 이해되지 않는가? 나이가 어릴수록, 젊을 수록, 이론적 상상에 분노하지 말고 하루라도 빨리 이론을 뛰어넘는 현실의 세계를 만나라. 현실주의자가 되라. 거기에서 세찬 바람을 맞으며 문제를 풀어가는 사람이 되라. 이론적 상상은 가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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