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택장애의 시대
(9. 22. 2015)

 

선택할 때 심한 압박감과 불안을 느끼는 것을 선택장애라 한다. 메뉴도, 진로도, 학과도, 직장도 선택이다. 부담스럽다. 왜 선택장애를 겪는 사람들이 늘어나는가? “문명의 발달로 선택의 폭이 넓어져서라고 답변하는 사람들이 많다. 아니다. 예전에도 선택하고 결정해야 할 일은 많았다. 선택장애는 세속주의(Secularism)’의 결과이다. 세속주의란, "인간 이외에 다른 존재, 이 세상 말고 다른 세상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믿음이다. 다른 의미, 다른 가치란 없다. 이 세상에서 행복하고, 여기서 의미를 찾아야 한다. 다들 나는 세속적이지 않아라고 말하지만, 의미를 모르고 하는 말이다. 당신, 그리고 당신이 만나는 95% 이상의 사람들은 모두 자신도 모르게 세속적이다.

 

, 다른 세계는 없으니 이 세계 속에서 의미를 찾아야 한다. 이 세계에서는 어떤 삶이 의미 있는 삶인가? , 학벌, 자녀, 결혼, 여행 등이 있겠다. 그 중에 어떤 것을 골라야 잘 산 인생인가? 묻지 말라. 물어볼 다른 세계는 없다. 나에게 훈수 둘 수 있는 권리가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난 자유한 존재다. 내가 직접 골라야 한다. 내가 마음대로 할 것이다. ‘내 안의 목소리’, ‘내 속의 울림을 찾아야만 한다.

 

내 속에 무엇이 있는지 찾아보았다. 화장실 앞에 붙어 있던 이름 모를 외국인의 명언이 있다. 어떤 교수가 썼다던 갈까 말까 할 때는 가라류의 조언도 어렴풋이 생각난다. 친구가 술자리에서 창업을 해야 한다고 말했던 것이 스쳐 지나간다. 가끔 타락도 하고 싶다. 뭔지는 모르겠지만 성공도 하고 싶다. 결혼도 하고 싶다. 자녀도 사랑스럽다. 내 마음 속 여러가지 목소리를 조합하여 이제 선택해야 한다. 고작 이런 목소리들로 선택해야 하다니! 이것은 절망이다. 사람은 금방 깨닫는다. 도무지 내 선택의 결과를 확신할 수 없다는 것을. 내 안에 선택의 기준이 아무것도 없었다는 것을. 그러나 사회는 계속 나에게 외친다. “이건 우리 안의 소리!” 이것이 사람을 미치게 한다. 선택장애의 시작이다.

 

기원전 8세기에도 그런 일이 있었다. 사람들이 어떻게 하면 성공하고, 의미를 찾을까 고민했다. 유대인들에게 조상은 생명과도 같았다. 그래서 자기들의 조상 아브라함, 이삭, 야곱, 요셉이 살았던 역사적인 장소들을 선택하면 복을 받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 장소에 가도 답이 없었다. 그 사람들을 향하여 아모스라는 선지자가 한마디를 던진다. “벧엘을 찾지 말며 길갈로 들어가지 말며 브엘세바로도 나아가지 말라…”(아모스 5:5) 벧엘, 길갈, 브엘세바는 조상들의 성공 장소였다. 장소를 잘 정한다고 성공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 선지자가 덧붙여 말한다.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족속에게 이와 같이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나를 찾으라 그리하면 살리라”(아모스 5:4) 나를 찾으라고? 뜨는 장소를 찾고 있는데 갑자기 무슨 소리인가? 이 말이 중요한 이유는, 방법과 전략, 장소와 타이밍을 찾고있던 그 시대 사람들에게 존재를 찾으라고 난데없이 이야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살기를 원한다면, 장소를 찾지 말아라. 전략을 찾지 말아라. 뜨는 곳을 찾지 말아라. 나를 찾아라. 너와는 다른 존재를 찾아라. 하나님인 를 찾아라!”

 

그리고 시간이 흘러 2천년 전 예수라는 한 사람이 이 땅에 와서 이런 행동을 한다. “이에 모세와 모든 선지자의 글로 시작하여 모든 성경에 쓴 바 자기에 관한 것을 자세히 설명하시니라”(누가복음 24:27) 무슨 말인가? “모세가 말하던 그 존재, 그게 바로 나다. 선지자가 말하던 그 존재, 그게 바로 나다. 모든 성경에 쓴 바, 바로 나에 대한 이야기이다. 나 예수가 바로 하나님이다! 너희는 나 예수를 찾으라. 그리하면 살리라

 

어떤 선택을 하면 성공합니까라고 묻는 우리들에게, 예수님은 우리가 질문부터 잘못하고 있음을 지적하신다. “넌 어떤 선택이 맞는지 묻지 말아라. 그 질문은 틀렸다. 넌 특정한 선택을 하면 성공할 것이라고 생각하는구나. 그 생각은 틀렸다. 선택의 의미는 내가 부여하는 것이다. 네가 어떤 선택을 하든, 난 그 모든 것에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 의미의 주인은 나다. 난 의미를 창조하는 존재이다. 네가 찾는 너의 의미는 바로 내 안에 있다.”

 

의미는 존재에게 부여 받는 것이다. 존재에 가까이 갈 때 의미가 생기는 것이다. 선택장애를 깨는 방법은 세속주의를 벗어 던지는 것이다. 세속주의를 벗는다는 것은 나보다 더 큰 존재를 인정한다는 것이다. 선택에 집중하지 말고 어떤 선택을 하든 의미를 창조하는 존재에게 집중하라. 모든 선택에서 의미를 찾을 것이며, 나의 모든 선택이 내가 찾던 의미로 연결되는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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