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살 변호 변증”
(1. 23. 2022.)
데살로니가후서 1:8-9
우리나라엔 자살이 많다. 언제 자살하는가? ‘내 삶에 남은 것이 불행 밖에 없을 때’ 자살한다. 단순한 슬픔 말고 극단적인 슬픔을 생각해보라. 거대한 비리의 책임자로 적발이 되었다. 남은 생은 감옥에 가서 평생을 사는 일 밖에 남지 않았다. 감옥 가기 전에, 자살 하는 것이 낫지 않을까? 사별이든 이별이든, 사랑하는 사람이 내 삶을 떠났다. 그 사람이 없으면 불행 뿐이다. 살고 싶지 않은 건 당연한 일 아닐까?
성경은 내 삶의 나쁜 일 때문에 당하는 결과를 ‘형벌(=불행)’이라고 한다. 사람은 모두 형벌을 가지고 산다. 형벌을 받기 싫어서 자살하는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을 믿는 사람의 삶에는, 결코 형벌이 없다. 왜?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대신 형벌을 받으셨기 때문이다. “하나님을 모르는 자들과 우리 주 예수의 복음에 복종하지 않는 자들에게 형벌을 내리시리니 이런 자들은 주의 얼굴과 그의 힘의 영광을 떠나 영원한 멸망의 형벌을 받으리로다”(데살로니가후서 1:9) 예수님이 없는 자들에게만, 형벌이 있다.
오늘 내 삶에 확신하라. 내게 벌어지는 모든 일은, 내가 저지른 과거의 잘못이나, 내게 벌어진 삶의 문제 때문에 닥치는 형벌(=불행)이 아니다. 현재 그 고난, 실연, 가난, 절망을 통해서 하나님은 새 일을 행하신다. 내게 벌주시는 분이 아니다. 분명히 그 일 때문에 좋아질 것이다. 분명히 그 일 때문에 기쁨이 커질 것이다. 분명히 그 상황 때문에 행복해질 것이다. 이것이 예수님을 믿는 자에게 주시는 선물이다.
사람의 마지막 형벌은 무엇인가? 영원한 죽음이다. 그러나 예수님이 영원한 멸망의 형벌을 십자가에서 대신 받으셨다. 그러나 예수님은 죽음만 가져가신 것이 아니다. 죽음 이전에 받아야 할 모든 죄의 형벌도 다 가져가셨다. 그것이 십자가의 선물이다. 믿는다면, 오늘 내 삶에 확신하라. 지난 날의 형벌로 내가 이 삶을 살고 있는 것이 아니다. 내 삶의 남은 일은 하나님이 내게 행복을 위해 남겨두신 날들이다.
내가 예수님을 믿지 않았다면, 자살할 만할 것 같다. 나는 예수님을 믿기 때문에 절대 자살하지 않는다. 남은 인생의 고난도 분명 내게 행복을 줄 것을 믿기 때문이다. 죽이려면 벌써 죽이셨다. 살려 두셨다면, 행복을 위함이다. 열심히 살자. 삶은 행복이다.
[1] 남은 인생이 불행 뿐이라고 생각된다면, 굳이 계속 살 필요가 있을까요? 나와 주변에서, 계속 살아간다는 것의 무의미함을 느꼈던 적이 있다면 나누어봅시다
[2-3] 데살로니가후서 1장 9절을 읽어봅시다. 예수님을 믿지 않는 자, 하나님을 모르는 자에게 벌어지는 일은 무엇입니까? 예수님은 우리의 무엇을 가져가셨습니까? 그렇다면 우리 삶에 형벌이 남아있습니까?
[4-5] 예수님이 영원한 죽음 말고, 십자가에서 또 가져가신 것은 무엇입니까? 예수님을 믿는다면, 나의 현재를 언제나 어떻게 해석해야 합니까? 현재 내게 주신 삶을 대하는 나의 태도를 나누어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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