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 에세이가 넘치는 시대”
(8. 19. 2018.)
빌립보서 3:8-9
지친 사람이 정말 많은 것 같다. 서점을 가보라. 온갖 위로 에세이가 넘쳐난다. 글로 안 되니까 그림이 나온다. 포토 에세이가 유행했었다. 이젠 그림도 안 된다. 애니메이션까지 나온다. 곰돌이 푸, 디즈니의 엘리스, 심지어 보노보노까지 등장했다. 성인이 되어도 인생의 위로를 곰탱이에게서 받아야 하다니, 우리가 힘들긴 한가보다.
내용의 핵심들은 거의 비슷하다. 일과 사회, 관계 속의 요구에 지쳐 ‘나’를 잊어가는 것이다. 그래서 나답게 살면서도, 온갖 경쟁과 평가, 그리고 남의 시선에서 해방되고자 하는 열망이 있다. “나는 나로 살기로 했다” 이것이 바로 이 시대가 내놓는 해답이다.
친구가 나는 나로 산다고 말한다면, 이렇게 말해주라. 이 말은 거짓말이고, 그렇게 사는 것은 불가능하다. 묻겠다. 나는 누구인가? 진짜 나는 누구인가? 진짜 놀고 싶지만, 진짜 성취하고 싶다. 둘 다 재미있다. 진짜 일하고 싶고, 진짜 사랑하고 싶다. 둘 다 좋다. 둘 중 뭐가 날 더 행복하게 하는가? 하나를 택하면, 다른 나는 가짜인가? 다른 나도 진짜다. 둘 중 뭐가 맞나? 이것을 했더니, 저것이 만족이 안 된다. 처음에 이것이었다가 나중엔 저것이 더 좋아지기도 한다. 내 마음은 생각보다 복잡하다. 생각이 변하기도 한다. 나로 산다는 말은 사실 그냥 변해가는 대로 산다는 말과 똑같다.
이제 왜 워라밸(워크 앤 라이프 밸런스)가 강조되는지 알겠는가? 흔들리는 나를 찾는 마지막 탈출구는 ‘균형’이다. 이것도 하다가 바뀌면 저것도 하겠다는 것이다. 진짜 나로 사는 것이 목적이었다. 그런데 결과는? 맨날 변하면서 ‘균형’이라는 근사한 말을 찾지만, 사실 이것 저것 느낌 날 때 따라다니는 흘러가는 인생이다. 아무 중심도 없고 의미도 없고 방향도 없는, 이것이 결국 참된 나였던 것인가?
내 삶의 의미는 내 안에 없다. 선택의 기준은 외부에서 와야 한다. 바울은 열심히 하던 것 다 그만하겠다고 한다. 그리고 이렇게 고백한다.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이라…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빌립보서 3:8-9) 다른 지식과 선택을 버린다고 고백한다. 이유가 특이하다. 발견 ‘되고’ 싶다는 것이다. 내가 나를 발견하는 것이 인생인 줄 알았다. 그렇지 않다. 하나님 앞에서 내가 발견 ‘되는’ 것이다. 그분이 나를 창조하셨고, 나를 구원하셨음을 발견하는 삶, 그것이 참된 나로 사는 삶이다.
타인의 시선처럼, 하나님의 시선이 부담되지 않을까? 그렇지 않다. 그분은 나를 바라보시지만, 평가하시지 않는다. 나에 대한 평가가 다른 사람 때문에 끝났기 때문이다. 그것이 예수님이다. 예수를 아는 지식이란, 나를 바라보시면서도, 나의 죄와 약점을 감싸주시는 그분의 시선을 아는 지식이라는 뜻이다.
타인에게 인정받으려고 했더니 온갖 평가에 피곤했다. 시선을 피했더니, 곰돌이 푸와 보노보노는 괜찮다고 하는데 나의 삶에 해줄 수 있는 것이 없다. 내 삶을 구원하시면서도, 관심 가지시면서도, 날 정죄하지 않을 신, 진짜 나의 길이 무엇인지 가르쳐줄 신이 필요하다. 예수님 안에 나를 찾아야 한다. 그것이 위로 에세이보다 훨씬 좋다.
[1-2] 요즘 스트레스는 대부분 관계 속에서 옵니다. 돈을 벌기 시작하면서도, 수 많은 평가와 비교, 눈치에 힘들었던 경험들을 나누어봅시다.
[3-4] 나로 사는 것은 가능합니까? 내가 원하는 가치들이 충돌했던 경험이 있습니까? 균형을 찾는다고 하지만, 그것은 궁극적인 만족이 될 수 있습니까?
[5-7] 빌립보서 3:8-9를 읽어봅시다. 바울은 참된 나를 어디서 찾을 수 있다고 합니까? 예수님이 나를 바라보시는 것은 세상이 나를 바라보는 것, 보노보노가 나를 바라보는 것과 어떻게 다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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