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라고 말해도 그건 불평
(9. 22. 2024.)

시편 37:8

 

말은 그 사람 평생의 습관이다. 재밌는 사람은 계속 재밌고, 우울한 사람은 계속 우울하다. 감사하는 사람은 불평을 입에 대지 않고, 불평하는 사람은 감사를 표현할 줄을 모른다. 사람은 말로 영향을 주고받다 보니, 부정적인 말을 자주 하는 사람의 이야기를 들으며 우리는 결정한다. ‘이 사람 말 계속 들어주기 너무 힘들다. 가까이하면 안되겠구나.’

 

하나님은 ‘불평’과 ‘원망’을 하나님을 대적하는 치명적인 죄로 보신다. 불평이란 무엇인가? ‘상황’이마음에 들지 않음을 드러내는 것이다. “분을 그치고 노를 버리며 불평하지 말라 오히려 악을 만들 뿐이라”(시편 37:8) 원망이란 무엇인가? ‘사람’이 마음에 들지 않음을 드러내는 것이다. “형제들아 서로 원망하지 말라 그리하여야 심판을 면하리라 보라 심판주가 문 밖에 서 계시니라”(야고보서 5:9) 어떤 상황에도 불평해선 안되고, 원망해선 안된다. 이걸 너무 쉽게 생각하면 안 된다. 절대로 금하시는 명령인데, 사람은 다 그런 거라고 핑계 댄다.

 

원망과 불평이 아닌 척하지만, 뭐라고 말해도 원망이고 불평인 부분들을 회개하라. “이런 망할 놈의 회사, 망할 놈의 나라, 망해버릴 대표, 망할 놈의 입시제도!” 그냥 화나서 한 이야기라고? 이것이 바로 원치 않는 모든 상황을 불평으로 해결하는 나의 죄악된 언어습관이다. 옆사람에 대해 당신은 어떻게 말하는가? “아 진짜 부모 잘못 만나서 이게 뭐냐고!”, “아내가 그 정도 밖에 못 해주는 게 마음에 안 들어.”, “내 자식이지만 정말 걔 때문에 내가 미쳐버리겠어” 그냥 있는 그대로 말한 것 뿐이라고 포장하지 말라. 성경은 그걸 원망이라고 한다. 그 사람이 내 마음에 차지 않아 못마땅함을 밖으로 드러내는 말이다.

 

원망과 불평을 어떻게 안 할 수 있는가? 원망과 불평 할 상황에 다른 방법으로 승리하신 분이 계시기 때문이다.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그는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히브리서 12:2) 왜 의인이 십자가를 지나?(상황) 예수님은 불평하지 않으셨다. 왜 죄인을 위해 내가 죽어야 하나?(원망) 예수님은 원망하지 않으셨다. 구원은, 원망과 불평으로 오지 않았다.

 

당신은 예수님을 구주로 모셨는가? 그렇다면 구원받았는가? 맞다. 그렇다면 오늘 내가 처한 상황에도 구원이 임할 것을 믿는가? 분명 그럴 것이다. 구원이 원망과 불평으로 오지 않았음도 믿는가? 맞다. 그러니 원망과 불평하지 말라. 당신도 예수님의 구원을 경험할 것이다.

 

[1] 언어는 중요한 삶의 태도 중에 하나입니다. 대화 속에서 큰 힘을 얻고 친밀해지고 싶었던 경험이나, 대화를 그만 듣고 싶고 피하고 싶었던 경험들이 있다면 나누어 봅시다.

 

[2-3] 시편 37편 8절과 야고보서 5장 9절을 읽어봅시다. (1) 불평이란 무엇입니까? (2) 원망이란 무엇입니까? 내가 그냥 있는대로 말할 뿐이라고 포장하며 죄를 짓는 언행의 범죄를 나누어 봅시다.

 

[4-5] 히브리서 12장 2절을 읽어봅시다. 예수님은 어떤 방식으로 구원을 이루셨습니까? 나도 오늘 이 상황에서 구원이 임할 것임을 믿는다면, 당장 버려야 할 삶의 태도는 무엇입니까? (1) 상황에 대해서 (2) 사람에 대해서 내가 죄악을 버리고 삶의 태도와 언행을 어떻게 새롭게 할지 나누어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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