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을 담는 시간”
(9. 29. 2024.)
시편 56:8
아기는 울면서 태어난다. 가장 무력하니까 그렇다. 무력의 끝에는 눈물이 있다. 연약할 땐 울어야 하는데, 세상에서는 울지 말고 강해지라 한다. 그래서 강해졌는가? 모두 눈물을 참고 있을 뿐, 훨씬 고난 앞에 약해졌다.
하나님은 사람의 눈물을 통해 일하시는 분이다. “나의 유리함을 주께서 계수하셨사오니 나의 눈물을 주의 병에 담으소서 이것이 주의 책에 기록되지 아니하였나이까”(시편 56:8) 부모 앞에서 울 수 있는 자녀가 훨씬 건강하고 강해진다. 우리도 마찬가지다. 하나님은 우리로 하여금 자신 앞에서 울게 하신다. 마귀는 내 눈을 가려 울지 않아도 되는 상황이라고 속인다. 나의 비참한 영적 상황을 숨기는 것이다. 내 비참함을 보게 해달라고 기도해야 한다. 그래야 눈물이 회복된다. 눈물을 담는 시간 자체가 우리에게 치유의 시간, 승리의 시간, 회복의 시간이다.
울 때까지 기도해보라. 눈물로 찬양해보라. 울 때까지 예배해보라. 눈물에 힘이 있다. 이것은 이론으로 설명되는 것이 아니다. 너무 어려운 문제가 있다면, 그냥 눈물을 담는 시간으로 들어가라. 회심하고, 회복되는 사람들이 경험하는 공통적인 일이 있다. 예배당에 들어오자 마자 눈물이 난다. 예배 드리다가 갑자기 눈물이 한없이 흐른다. 오늘 마음도 메마르고, 사랑도 없고, 인생에 재미도 없고, 열정도 사라지지 않았는가? 근본 원인은 하나다. 눈물이 사라져서 그렇다. 나와 주변의 모든 처지를 두고 울라. 눈물 자체를 달라고 기도하라. 이상하게 눈물이 회복되면, 모든 응답과 회복이 뒤따라 찾아온다.
예수님은 십자가 지시기 전에 어떠셨을까? “…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기도할 동안에 너희는 여기 앉아 있으라 하시고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을 데리고 가실새 심히 놀라시며 슬퍼하사”(마가복음 14:32-33) 예수님이 십자가 앞에서 우셨다. 기도하며 울었더니, 뒤집어졌다. “일어나라 함께 가자 보라 나를 파는 자가 가까이 왔느니라”(42) 예수님의 구원은 눈물을 통과한 구원이었다.
예수님의 눈물 때문에 내가 구원받았음을 믿는가? 나도 이 고난 앞에 그렇게 구원받을 것이다. 도대체 이 상황에 지금 내가 무엇을 해야하는가? 울어야 한다. 울어야 산다. 눈물을 담는 시간으로 들어가라. 승리의 문이 열릴 것이다.
[1] 사회 생활을 하면서 사람의 눈물은 수치스러움이 되었습니다. 언제 많이 울었습니까? 언제 많이 눈물이 사라졌습니까? 언제 울고 싶은데 참았습니까?
[2-3] 시편 56편 8절을 읽어봅시다. 하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사람이 점점 울지 않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눈물을 통해 변화가 나타났던 경험이 있다면 나누어 봅시다.
[4-5] 마가복음 14장 32-33절을 읽어봅시다. 예수님은 십자가 지시기 전에 무엇을 경험하셨습니까? 42절을 읽어봅시다. 그 이후에 무엇이 찾아왔습니까? 삶의 눈물의 회복을 위해서 어떻게 기도하며 어떻게 삶이 변화되어야 할지 나누어 봅시다. 요즘 어떤 기도제목에 가장 많은 눈물이 납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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