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속 살아야 할 이유”
(3. 26. 2023.)
요한복음 12:14-16
지나고 나서 이해되는 것이 삶이다. 부모가 너무 싫었지만, 내가 부모 되어보면 이해되는 부분이 생긴다. 부하 직원일 땐 모른다. 조금만 올라가도 내 지난 생각이 틀렸음을 느낀다. 운동, 식단, 습관, 경건에 대한 잔소리들, 회사 생활에 대한 꼰대 같은 이야기들. 처음엔 무시했지만 세월이 조금만 지나도 깨닫는다. 어느새 내가 그 꼰대가 되어있음을 본다. 지나고 나야 보이는 것이 있기 때문이다.
신앙을 계속 붙들고 일단 살아야 할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하나님의 뜻도 지나고 나서 보이기 때문이다. 예수님이 나귀타고 오신다는 스가랴의 예언을 읽었다. 이해도 못하고, 중요하지도 않은 줄 알았다. 예수님이 눈 앞에서 나귀 타고 가시는 데도 연결이 되지 않았다. 제자들은 나중에 깨닫는다. “제자들은 처음에 이 일을 깨닫지 못하였다가 예수께서 영광을 얻으신 후에야 이것이 예수께 대하여 기록된 것임과 사람들이 예수께 이같이 한 것임이 생각났더라”(요한복음 12:16) 나중에 모든 것이 연결되고, 모든 것이 해석될 날이 올 것이다. 그 날이 올 것이라는 믿음은 ‘계속 오늘을 살아내는 것’으로 연결되어야 한다.
이해되지 않고, 너무 답답한 상황 속에 처할 때가 있다. 전혀 가능성이 보이지 않고, 기대도 되지 않는 적적한 삶일 때도 있다. 그래도 걸어야 한다. 그래도 돈 벌러 나가라. 그래도 또 시도해보라. 그래도 새롭게 살 길이 있나 좀 찾아보라. 어떻게든 우울을 딛고 일어나려고 해보라. 최대한 좋은 생각하고, 기쁨의 자리에 참여하라. 맹목적인 긍정이 아니다. 지나고 나면 주님이 무엇인가 깨닫고 보게 하실 것이 있음을 믿기 때문에 그렇게 하는 것이다.
예수님이 죽으셨을 때 제자들 마음이 다 무너졌다. 천사가 여자들에게 조금만 더 살아보라고 한다. “… 너희에게 어떻게 말씀하셨는지를 기억하라 … 제삼일에 다시 살아나야 하리라 하셨느니라 한대 그들이 예수의 말씀을 기억하고”(누가복음 24:6-7) 죽으신 3일 동안 말씀을 기억하고 버텼다. 주님이 다 이해되고 회복하게 하셨다.
예수님을 나의 구주로 믿는가? 내 인생에 죽음 같은 일도 그렇게 계속 살아갈 때 이해되고 회복하게 하실 것이다. 가난하고, 병들고, 너무 어려워도 계속 살아보자. 날 위해 죽으신 예수님 만이 내 인생에 계속 살아야 할 유일한 이유가 되신다.
[1] 지나고 보면 깨닫게 되는 것들이 있습니다. 예전엔 몰랐는데, 요즘 느껴지는 것들이 있다면 나누어 봅시다.
[2] 스가랴 9장 9절은 무엇이 예언되어 있었습니까? 요한복음 12장 14절을 읽어봅시다. 제자들은 나귀타는 예수님을 보고 예언과 연결시킬 수 있었습니까? 16절을 읽어봅시다. 제자들은 언제 그것을 깨달았습니까?
* 스가랴 9:9 시온의 딸아 크게 기뻐할지어다 예루살렘의 딸아 즐거이 부를지어다 보라 네 왕이 네게 임하시나니 그는 공의로우시며 구원을 베푸시며 겸손하여서 나귀를 타시나니 나귀의 작은 것 곧 나귀 새끼니라
[3-5] 가능성이 없어 보이고, 의미와 재미가 없어 보여도, 계속 살아야 할 이유가 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예수님이 날 위해 하신 일에 비추어 생각해봅시다. 오늘 다시 힘내어 걸어가야 할 내 삶의 영역을 나누어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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