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지 않는 샘
(1. 21. 2024.)

이사야 58:11

 

세상의 먹거리에는 끝이 있다. 삼성전자 스마트폰 사업부 친구가 엄청난 성과급을 받았던 기억이 난다. 갤럭시가 뜰 때였다. 지금은 추억이다. 어렸을 때 피씨방 사장님들은 벤츠를 타고 다녔다. 지금은 물이 다 빠졌다. 이디야 커피를 운영했던 사장님께 요즘은 메가커피가 대세이지 않냐고 물었더니, 메가커피도 끝났다고 한다. 이제는 컴포즈라며!

 

하나님은 우리에게 마르지 않는 샘이 되어 주시는 분이다. “여호와가 너를 항상 인도하여 메마른 곳에서도 네 영혼을 만족하게 하며 네 뼈를 견고하게 하리니 너는 물 댄 동산 같겠고 물이 끊어지지 아니하는 샘 같을 것이라”(이사야 58:11) 세상의 유행을 따라가면 성장과 쇠퇴에 마음이 흔들릴 수밖에 없다. 그러나 하나님 의지하면, 유행과 상관없이 그분이 언제나 내 인생을 먹이고 입히신다.

 

하나님이 내 삶에 끊어지지 않는 샘물이심을 확신하라. (1) 유행도 지나고, 쇠퇴하는 영역에서 변화를 준비해야 할 때 낙심하지 말라. 하나님이 물을 대어 주시기에, 새로운 공급처를 주시고, 시기에 맞는 새로운 인생을 열어 나를 먹이실 것이다. (2) 물 들어온 곳에서 일하고 있다면 주의하라. 물을 대어주시는 분은 하나님밖에 없다. 겸손하게 유행을 따르지 않고 주님 끝까지 따라가야 한다. (3) 물 빠진 영역에서 계속 일해야 한다면 위축되지 말라. 감당할 새로운 능력을 대어 주셔서, 같은 상황이지만 다른 열매를 맺을 수 있도록 여전히 공급해 주실 것이다.

 

물을 공급하시는 하나님과 끊어지는 것을 나 대신 경험하신 분이 있다. 예수님이다. “그 후에 예수께서 모든 일이 이미 이루어진 줄 아시고 성경을 응하게 하려 하사 이르시되 내가 목마르다 하시니”(요한복음 19:28) 마르지 않는 샘 되신 하나님과 끊어져야 할 심판을 나 대신 예수님이 당하셨음을 믿는가? 그렇다면 예수님 때문에, 하나님은 영원히 내 삶에 생명의 물을 공급하실 것도 함께 믿어야 한다.

 

평생에 나를 이끄실 하나님을 신뢰하고, 물 들어오고 물 빠지는 시대 가운데 위축되거나 교만해지지 말라. 내 인생에 마르지 않는 샘은 오직 한 분, 하나님 뿐이시다.

 

[1] 돈도 잘 벌리고 잘 되던 것들이, 시간이 지나니 물이 빠짐을 느낄 때가 있습니다. 내가 경험했던 시대의 변화가 있다면 나누어 봅시다.

 

[2-3] 이사야 58장 11절을 읽어봅시다. 하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내가 처한 상황을 살펴보고 지금 나의 믿음을 점검해 봅시다.

 

[4-5] 요한복음 19장 28절을 읽어봅시다. 예수님이 나 대신 경험하신 일은 무엇입니까? 내 인생에 영원히 주어진 약속은 무엇입니까? 마르지 않는 샘 되신 하나님을 믿으며, 내 삶을 대하는 태도가 어떻게 변화되어야 할지 나누어 봅시다.

“좋은 것과 충돌하는 경험
(1. 14. 2024.)

마태복음 10:37

 

나쁜 일만 피하면서 살면 인생 잘 살 줄 알았다. 살아 보면 깨닫는다. 삶에서는 좋은 것끼리 충돌한다는 것을! 일도 하고 싶지만, 아이도 돌보고 싶다. 결혼도 하고 싶지만, 혼자 살고 싶을 때도 있다. 돈도 벌고 싶지만, 놀러만 다니고 싶기도 하다. 하나를 하면, 다른 하나는 포기해야 한다.

 

예수님을 따르려면 좋은 것을 포기하는 경험을 해야 한다. “아버지나 어머니를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는 내게 합당하지 아니하고 아들이나 딸을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도 내게 합당하지 아니하며”(마태복음 10:37) 좋은 걸 다 그만두라는 말인가? 그렇지 않다. 좋은 것을 예수님보다 앞세워서는 결코 제자가 될 수 없다는 말이다. 좋은 것은 언제나 하나님 아래에 있어야 한다.

 

하나님을 가로막는 나의 좋은 것과 직면하라. 자녀가 너무 귀하지만, 그 자녀는 하나님 아래에서 움직여야 한다. 연애와 결혼이 너무 좋지만, 하나님을 무시하고 진행하면 그것이 우상이다. 돈이 너무 귀해서 하나님 앞에 헌금도 못하고 커리어를 좇는다면, 그 돈이 하나님을 막는 원수이다. 내 스케쥴과 일상이 너무 귀해서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순종할 수 없다면, 그 일상 전부가 하나님과 충돌하는 것이다.

 

왜 좋은 것을 막으시는가? 하나님이 좋은 분이시기 때문이다. “온갖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이 다 위로부터 빛들의 아버지께로부터 내려오나니”(야고보서 1:17) 하나님을 놓치지 않도록, 예수님은 나 대신 하나님을 잃어버리는 심판을 당하셨다. “예수께서 크게 소리 지르시되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하시니 이를 번역하면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하는 뜻이라”(마가복음 15:34)

 

예수님은 내게 가장 좋은 하나님을 주신 분이라는 것을 믿는가? 하나 더 믿어야 한다. 예수님 뜻대로 삶의 모든 것을 정렬하면, 나는 결코 좋은 것을 놓치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을! 그 사실 믿고 새해에는 좋은 것을 포기하고 내려놓는 경험을 해보라. 시간을 내려놓으라. 돈을 내려놓으라. 자녀를 내려놓으라. 나쁜 것과 싸우지 말고 좋은 것과 싸워보라. 새해의 내가 해야 할 가장 큰 싸움이다.

 

[1] 삶의 좋은 것들이 서로 충돌합니다. 좋은 것끼리 비교하며 인생의 미래를 고민하는 내 모습이 있다면(있었다면) 나누어 봅시다.

 

[2-3] 마태복음 10장 37절을 읽어봅시다. 예수님을 따르려면 무엇을 포기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습니까? 나열된 것들은 좋은 것입니까 나쁜 것입니까? 좋은 것을 하나님보다 앞세워 후회하거나 삶의 질서가 파괴 되었던 적이 있다면 나누어 봅시다.

 

[4-5] 야고보서 1장 17절을 읽어봅시다. 좋은 것은 어디로부터 옵니까? 마가복음 15장 34절을 읽어봅시다. 예수님은 무엇을 잃는 심판을 대신 당하셨습니까? 예수님이 가장 좋은 것 주시는 분임을 믿고, 올 한해 치열하게 싸워 하나님 앞에 복종시켜야 할 나의 좋은 것이 무엇일지 나누어 봅시다.

 

“판단의 말 사용하기
(1. 7. 2024.)

요한복음 1:47

 

남의 말에 신경 쓰지 않고 내 인생 사는 시대이다. “네가 뭘 안다고 나보고 훈수를 둬?”, “남 일에 신경 끄시고 본인 일이나 보세요.” 욕 먹을까 두렵다. 그러다 보니 남을 판단하는 이야기가 점점 조심스럽다. 속으로만 생각한다. 내 인생이나 잘 해야지!

 

예수님은 판단의 말을 지혜롭게 사용하신 분이다. 나다나엘을 처음 만나시며 이렇게 말씀하신다. “예수께서 나다나엘이 자기에게 오는 것을 보시고 그를 가리켜 이르시되 보라 이는 참으로 이스라엘 사람이라 그 속에 간사한 것이 없도다”(요한복음 1:47) 야곱은 속이는 사람이었다. 하나님 만나고 이름이 ‘이스라엘’로 바뀌었다. 너도 그런 사람이라는 판단을 긍정적으로 표현해주신 것이다. 그 사람의 삶에 있는 긍정적인 것을 꺼내어 일부러 표현하셨다.

 

그 사람을 향한 긍정적인 판단을 일부러 표현하라. 상대를 정죄하는 판단은 경계해야 하지만(롬 2:1) 그렇다고 상대를 긍정적으로 판단해주는 격려까지 버려서는 안 된다. 잘 했을 때, 그냥 넘어가지 말고 꼭 잘 한 것 같다고 표현해주라. 장점과 매력이 보일 때, 넌 그게 참 장점인 것 같다고 꼭 짚고 넘어가라. 고마운 일을 해줬을 때, 수고했을 때, 그것 때문에 고마웠다고, 참 수고했다고 분명하게 전달하라. 긍정적인 판단의 말을 지혜롭게 사용하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사명이다.

 

괜히 좋은 말 하는 것은 말장난 아닌가? 그리스도인은 언제나 상대에 대한 긍정적인 판단이 가능하다. 그를 위해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약속은 얼마든지 그리스도 안에서 예가 되니 그런즉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아멘 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되느니라”(고린도후서 1:20)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No(아니오)’ 당하셨기에, 우리의 삶의 소망은 언제나 예수님 안에서 ‘예(Yes)’가 된다.

 

내 주변 사람들을 그냥 지나치지 말라. 이번 대화에는 어떤 긍정적인 판단을 집어넣을 수 있을지 늘 고민하라. 갑자기 상대가 눈이 커지고 몸을 가까이하며 당신의 말을 듣고 싶어 할 것이다. 나를 좋게 생각해주는 사람이 있다니! 현대인들은 다들 그렇게 좋은 판단에 목말라 있다. 예수님이 나를 주의 자녀라 판단해 주셨으니, 나도 예수님 따라 이 땅에서 그렇게 살면 된다. 당신 주변에 사람이 모여들기 시작할 것이다.

 

[1] 남에게 판단의 한 마디 해주고 싶은데 참았던 경험이나, 판단의 한 마디 들어서 기분이 좋고/나빴던 경험을 나누어 봅시다.

 

[2-3] 요한복음 1장 47절을 읽어봅시다. 예수님은 나다나엘을 처음 만났을 때 무엇이라고 말씀하셨습니까? 그것은 어떤 의미였습니까? 내가 상대를 긍정적으로 판단해주는 사명을 잊고 살았던 것은 아닌지 돌아봅시다.

 

[4-5] 고린도후서 1장 20절을 읽어봅시다. 왜 우리는 상대방의 삶에 대해 긍정해줄 수 있습니까? 그리스도 안에서 내가 지나쳤던 사람들을 향해 어떤 판단의 말을 해줄 수 있을지 나누어 봅시다. 오늘 모임에서 한 사람을 정해, 내가 긍정적인 판단의 말(칭찬, 감사, 강점 말해주기 등)을 해봅시다.

“날을 계수하는 지혜
(12. 31. 2023.)

시편 90:12

 

한 해가 저물어간다. 사람은 시기마다 나의 이 시절이 계속 지속될 것이라고 착각한다. 만년 학생이었다. 이제 아무도 나보고 학생이라고 안 한다. 아직 젊다는 말 많이 들었다. 어느새 주위엔 후배들 뿐이다. 언제 애들 다 키우나 싶었는데, 이제 손자가 날 보러 온다고 한다. 흐르는 시간은 나를 당황케 한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제한된 날수만을 허락하신 분이다. “우리에게 우리 날 계수함을 가르치사 지혜로운 마음을 얻게 하소서”(시편 90:12)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 시간이 얼마나 남았는지 세면서 살라는 말이다. 날을 계수할 줄 아는 것은 분명 지혜다. 시간에 대한 감각 없이 사는 것은 자유가 아니라 미련함이다. 이제 몇 살인가? 몇 년 차인가? 몇 년 남았는가? 내 모든 행동에는 시계를 달아야 한다.

 

시간에 대한 두 방향의 죄악을 모두 벗어나라. (1) 후회의 죄: 지금 시기에 할 수 있는 것을 해야 하는데, 지난 세월만을 아까워 하는 것이다. 그 때 결혼 했어야 하는데, 그 때 공부 했어야 하는데… 그 말 하다가 오늘의 집중을 놓친다. (2) 여유의 죄: 지금 해야 할 일들에 대해 여유 부려도 된다고 착각하는 것이다. 이 시기에 집중해서 그 일을 끝내라고 그 시간 주신 것이다. 아직 괜찮다고 말하지 말고 해야 할 일은 미리미리 서두를 필요가 있다.

 

예수님은 날을 계수하며 순종하신 분이다. 예수님이 공생애를 시작하면서 날을 계수 하신다. “내 때가 아직 이르지 아니하였나이다”(요한복음 2:4) 십자가를 목전에 두고, 날을 계수하며 진행하신다. “때가 왔도다 보라 인자가 죄인의 손에 팔리느니라”(마가복음 14:41) 시간을 계수하는 지혜로 주님은 우리에게 영생을 주셨다.

 

예수님의 구원을 믿는다면, 나도 시간을 도구로 사용해야 한다. 주신 시간마다 그 이유와 해야 할 일이 있다. 주신 세월에 맞게 행할 때, 내 인생은 분명 주님 주신 열매로 가득 차게 될 것이다. 이유 없이 여유부리지 말고, 쓸데없이 조급해지지도 말라. 날을 계수하는 지혜를 구하라. 분명 내년에 많은 열매를 거둘 것이다.

 

[1] 세월이 너무 빨리 흘러가는 것을 느끼며 당황하곤 합니다. 언제 그것을 가장 크게 느낍니까? 시간이 지나며 급격히 변화되는 나의 삶의 모습들을 나누어 봅시다.

 

[2-3] 시편 90편 12절을 읽어봅시다. 성경은 무엇이 지혜라고 말합니까? 그 반대는 무엇입니까? 시간의 관점으로 현재 내 인생을 생각해 봅시다. 미련함과 죄악을 벗어나기 위해 어떻게 변화되어야 하겠습니까?

 

[4-5] 요한복음 2장 4절과 마가복음 14장 41절을 읽어봅시다. 예수님의 완전한 순종에는 무엇이 포함되어 있었습니까? 그분의 구원을 믿고, 내가 지금 주어진 시간 속에서 어떻게 지혜롭게 행할 수 있을지 나누어 봅시다. 주변의 지혜도 구해 봅시다.

 

“감춰진 구원
(12. 24. 2023.)

마태복음 1:21

 

그게 기회인 줄 몰랐던 순간들이 있다. 자녀가 옆에 있을 때가 행복이었지. 부모님이 옆에 계실 때가 행복이었지. 직장 다닐 수 있다는 것이 감사였지… 지나보면, 그 순간, 그 사람이 기회였고, 나의 행복이었다.

 

하나님은 감추어진 구원을 주시는 분이다.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마태복음 1:21) 어느 누가 젖을 주고 돌보아야 할 아기를 구원자라고 믿었겠는가? 그러나 구원은 그렇게 왔다. 아기 예수님을 나의 구원자로 믿는 사람이라면, 삶에서 또 한가지를 더 믿어야 한다. 나의 삶의 구원도 내 삶에 감춰진 형태로 올 것이다. 구원은 세상이 멸시하는 약함, 수치, 가난, 질병, 열등함 속에 숨어 있다.

 

하나님이 나를 구원하시기 위한 요소는 이미 내 삶에 감추어져 있다. 내가 모를 뿐이다. 아기 예수님 처럼, 내 삶에 감춰진 구원을 찾으라. 방황하는 자녀, 잔소리 하는 부모, 집 나간 남편, 재산 날린 아내, 호통치는 상사, 말썽 피우는 알바생! 읽기만 해도 지긋지긋한 것들이지만, 원래 구원은 그런 것이다. 감춰져 있고, 나만 모를 뿐이다. 지나고 나면 보인 적이 있지 않은가? 그 사람을 통해 하나님은 내 고집 꺾으시고, 주님만 의지케 하시고, 하나님의 일하심을 보여주셨다. 구원은 여전히 내 삶에 감춰져 있다.

 

예수님은 구원자이셨다. 동시에 예수님은 감춰진 구원을 찾아내신 분이다. 예수님 삶의 구원은 어디에 감추어져 있었는가? 죽음이었다. “죽음의 고난 받으심으로 말미암아 영광과 존귀로 관을 쓰신 예수를 보니 이를 행하심은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을 위하여 죽음을 맛보려 하심이라”(히브리서 2:9) 성부 하나님은 예수님의 부활을 죽음 속에 감추어 두셨다. 예수님은 아버지 하나님이 주신 십자가를 구원으로 받아들였다. 그랬더니 숨겨진 부활이라는 구원이 튀어나왔다.

 

예수님 때문에 내 죽음은 이제 영생으로 바뀌었음을 믿는가? 그렇다면 매일의 모든 삶도 확신해야 한다. 주님은 ‘내게 구원이 되지 않는 것을 주실 수 없는 분’이다. 다시 말하면, 내게 주신 모든 것이 내 삶에 구원이 될 것이다. 그 시선 가지고, 주어진 삶 다시 바라보라. 하나님이 내게 주신 이 일을 통해, 난 살게 될 것이다. 그것이 아기로 오신 예수님을 환영하는 크리스마스의 믿음이다.

 

[1] 그때가 기회였습니다. 지나가봐야 압니다. 한 해 동안 참 행복했고, 감사했고, 하나님의 일하심이 느껴졌던 순간들을 나누어 봅시다. 뭐가 그렇게 불만이라고 즐기지를 못했던 것일까요?

 

[2-3] 마태복음 1장 21절을 읽어봅시다. 예수님은 이 땅에 어떤 모습으로 오셨습니까? 그것은 어떤 뜻입니까? 하나님이 내게 주신 환경들이 감춰진 구원으로 느껴졌던 순간들이 있다면 나누어 봅시다.

 

[4-5] 히브리서 2장 9절을 읽어봅시다. 예수님이 삶에서 감춰진 구원으로 받아들이신 사건은 무엇이었습니까? 그분을 믿을 때 내 삶의 모든 환경은 어떻게 해석할 수 있습니까? 주신 삶을 바라보는 나의 시선이 어떻게 변화되어야 할지 나누어 봅시다.

 

“죽어도 살겠고
(12. 17. 2023.)

요한복음 11:25

 

다 막혔을 때까지 가보는 경험이 중요하다. 사랑하는 사람이 세상을 떠난다. 슬픔에 인생 끝날 것 같지만, 또 어떻게 살아진다. 돈이 없어서 이제 끝나는 줄 알았다. 어떻게 또 살 길이 생긴다. 불합격, 이별, 실패, 탈락… 인생의 여러가지 끝을 경험하면서, 사람은 점점 살아내고 견디는 힘이 세진다.

 

하나님은 끝나는 곳에서 은혜를 주시는 분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요한복음 11:25) ‘죽음을 피하겠고’가 아니라 ‘죽어도 살겠고’이다. 예수님을 믿어도 똑같이 죽는다. 죽음을 피하지 못한다. 그러나 끝나는 곳에 은혜가 임하여, 죽음이 부활의 시작이 된다. 이것이 삶에 적용되어야 한다. 예수님 믿는다고 어려운 일이 안 생기는 것이 아니다. 똑같이 생긴다. 더 많이 생기기도 한다. 상관없다. 여러 번 끝나도 좋다. 끝나는 곳에 은혜가 임하는지가 중요하다.

 

하나님이 끝장나게 하시는 내 삶의 모든 지점을 감사와 은혜로 받아들이라. 어려운 일을 피하게 하셔도 감사하지만, 어려운 일 한복판에 있어도 감사해야 한다. 죽어도 살 수 있는 예수님의 권세가 내 삶에 흐르고 있기 때문이다. 끝장 난 곳에 은혜가 임한다. 이미 극복한 예전에 끝장난 일들을 돌아보라. 그렇게 절망할 일이었는가? 좀 더 열심히 살아볼 걸 후회되지 않는가? 끝장난 상황에서도 성실히 살아내야 한다. 하나님이 내 삶의 끝장난 곳에서 이미 일하고 계시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끝장나는 순간까지 성실하게 삶을 감당하셨다. “그 후에 예수께서 모든 일이 이미 이루어진 줄 아시고 성경을 응하게 하려 하사 이르시되 내가 목마르다 하시니”(요한복음 19:28) 시편 69편 21절에 ‘목마르다’는 말을 성취하시기 위해 십자가 위에서 끝까지 일하셨다. 죽을 때까지 순종하신 예수님 때문에, 우리가 살게 되었다.

 

그 예수님 믿는다면, 나도 같은 능력을 체험할 것이다. 내게 허락하신 모든 끝은, 은혜 주시기 위함이다. 그것을 믿고 이 땅에서 끝난 것 같은 곳에서 여전히 성실과 소망으로 살기를 원한다. 끝나는 곳에서 은혜를 주시는 그분을 기대하는 것, 그것이 성도의 삶이다.

 

[1] 그 당시는 다 막혔다고 생각했는데, 어떻게 또 살아졌던 경험을 나누어 봅시다. 끝인 줄 알았는데 어떻게 삶의 길이 열렸습니까?

 

[2-3] 요한복음 11장 25절을 읽어봅시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의 삶에 주시는 선물은 무엇입니까? 무엇이 아닙니까? 끝났다고 생각한 곳에서 삶의 열정과 소망마저 잃어버린 내 삶의 모습이 있다면 나누어 봅시다.

 

[4-5] 요한복음 19장 28절을 읽어봅시다. 십자가 위에서 예수님이 마지막에 하신 일은 무엇입니까? 모든 ‘끝나는 곳’에서 가져야 할 나의 태도가 어떻게 변화되어야 할지 나누어 봅시다.

“놓아지는 은혜
(12. 10. 2023.)

누가복음 19:5,10

 

지금까지 무엇을 붙잡고 살았는가? 사람은 붙들 것 없이는 살 수 없다. 아이들은 엄마 손 붙잡는다. 엄마 손 뗀다고 끝이 아니다. 연인 붙잡는다. 돈 붙잡는다. 자녀 붙잡는다. 가장 중요하다 싶은 것은 도저히 놓아지질 않는다.

 

하나님은 붙잡고 있던 것들을 놓게 하시는 분이다. 예수님이 삭개오를 만나서 집에 들어가겠다고 하신다. “예수께서 그 곳에 이르사 쳐다 보시고 이르시되 삭개오야 속히 내려오라 내가 오늘 네 집에 유하여야 하겠다 하시니”(누가복음 19:5) 예수님이 들어간 후, 그 집에서는 예수님이 나오시지 않았다. 다른 것이 나왔다. “삭개오가 서서 주께 여짜오되 주여 보시옵소서 내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겠사오며 만일 누구의 것을 속여 빼앗은 일이 있으면 네 갑절이나 갚겠나이다”(10) 예수님이 들어가자, 삭개오가 붙들고 있던 돈이 나왔다. 삭개오는 돈이 놓아지는 은혜를 경험한 것이다.

 

나의 삶에 예수님을 모실 때 나타나는 현상이 있다. 예수님 외에 붙들던 다른 것들이 놓아지게 되는 것이다. 그것 없이는 죽을 것 같고, 그게 안되면 망할 것 같던 모든 것들이 놓아진다. 가장 열심히 붙들고 있던 것들이 놓아진다면, 내가 지금 예수님을 제대로 붙들고 있는 것이다. 아니다. 반대로 말해야 한다. ‘예수님이 나를’ 완전히 붙들고 계신 것이다. 그분이 나를 붙들고 계시다는 확신만 있으면, 그제서야 땅에 있는 것들을 놓을 수 있다.

 

절대 놓을 수 없는 것이 사람의 목숨이다. 그러나 예수님은 마지막에 자신의 생명마저 놓으셨다. “예수께서 큰 소리로 불러 이르시되 아버지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 하고 이 말씀을 하신 후 숨지시니라”(누가복음 23:46) 어떻게 놓으셨는가? 자신이 붙들린 ‘아버지의 손’을 보았기 때문이다. 왜 놓으셨는가? 나의 생명을 붙드시려고 놓으셨다. 그분의 생명을 포기한 순종 때문에 내 삶에 영생이 임했다.

 

예수님 믿는 내 삶도 그렇게 될 것이다. 하나님께 붙들림 받아서 영생 얻음을 믿는가? 죽을 것 같은 오늘의 상황도, 예수님이 붙드심을 믿고 놓으라. 놓아지는 은혜를 경험할 때부터 새로운 구원의 길이 열린다.

 

[1] 무엇을 붙들며 살았습니까? 특정한 시기에 내 삶에 유일하게 붙들었던 그 ‘무엇’을 나누어 봅시다.

 

[2-3] 누가복음 19장 5절을 읽어봅시다. 예수님은 어디로 들어가셨습니까? 10절을 읽어봅시다. 삭개오의 삶에서 나온 것은 무엇입니까? 예수님을 모실 때 우리의 삶에는 어떤 변화가 나타납니까?

 

[4-5] 누가복음 23장 46절을 읽어봅시다. 예수님은 어떻게 자신의 생명을 내려 놓으실 수 있었습니까? 그분의 생명 때문에 이루어진 일은 무엇입니까? 나를 붙드심을 믿고 오늘 예수님 대신 붙들고 있었던 것이 무엇인지, 무엇을 내려놓아야 할지 나누어 봅시다.

“후회없음 vs. 기회없음
(12. 3. 2023.)

시편 32:6

 

영화배우 김혜수가 청룡영화제 MC 자리에서 은퇴하며 이렇게 말했다. “일이든 어떤 관계든, 떠나보낼 때는 미련을 두지 않는다고 한다. 지난 시간들에 대해서는 후회 없이 충실했다고 자부한다.” 멋있어 보여도 슬프다. 김혜수를 다시 볼 기회도 없어진다는 말이니까. 후회 없다는 말은 슬픈 말이다. 지금의 행복을 더 이상 누릴 수 없다는 말이라서 그렇다. 다시 공부할 기회, 일 할 기회, 젊음으로 돌아갈 기회, 다시 건강을 누릴 기회는 오지 않는다. 아무리 후회 없다 말해도, 사람은 기회가 점점 없어져서 슬프다.

 

하나님 안에서는 삶의 모든 순간이 새로운 기회가 된다. 사람은 후회 없는 삶에 만족하지 못하는 존재다. 사람은 늘 새로운 기회를 찾는 존재이다. “이로 말미암아 모든 경건한 자는 주를 만날 기회를 얻어서 주께 기도할지라 진실로 홍수가 범람할지라도 그에게 미치지 못하리이다”(시편 32:6) 아무리 후회 없이 살아도 인생은 기회가 없어져갈 뿐이다. 그러나 그 모든 인생의 순간은 하나님이 계획하신 새로운 일들을 만날 기회가 된다.

 

나는 인생에 후회 없고 미련 없다며 안주하지 말라. 지금 내게 필요한 것은 오늘 내게 주신 삶을 기회로 보는 시각이다. 지난 삶이 어떠했든 상관없다. 후회가 없든, 후회가 많든, 내게 지금 필요한 것은 기회이다. 오늘 내 삶은 어떤 기회인가? 하나님은 내게 늘 기회주시는 분이다. 백수도 기회이고, 취업도 기회이다. 바쁨도 기회이고, 아픔도 기회이다. 평안도 기회이고, 전쟁도 기회이다. 하나님이 계시면, 기회의 시각이 열린다.

 

모든 것이 기회라는 말장난 아닌가? 그렇지 않다. 죽음도 기회로 만들어 주신 분이 예수님이시기 때문이다. “죽음을 통하여 죽음의 세력을 잡은 자 곧 마귀를 멸하시며”(히브리서 2:14) 예수님 믿으면, 내 인생의 죽음도 천국의 기회가 된다. 믿는가? 그 믿음으로 죽음과 같은 내 인생도 다시 자신감 있게 바라볼 수 있는 것이다. 예수님만 함께 계시다면, 후회 타령 하지 말고 여기서도 기회 찾아야 한다. 죽음 속에서도 하실 일이 있음을 믿을 수 있기 때문이다.

 

영생은 무엇인가? ‘영원히 살 기회’이다. 영원한 기회를 가진 그리스도인으로서, ‘후회 없다’는 교만한 말 하지 말라. 앞으로의 기회 없으면 절망이다. ‘후회된다’는 낙심의 말도 하지 말라. 언제나 새로운 기회 주시는 주님 계시기 때문이다. 오늘이 새로운 기회다. 기회를 구하고 열심히 살자.

 

[1] 후회 없이 삶을 쏟았던 순간이 있다면 나누어 봅시다. 무엇에 삶을 던졌었습니까? 후회 하지 않게 삶을 살아도, 인생에 점점 사라져 가는 것은 무엇입니까?

 

[2-3] 시편 32편 6절을 읽어봅시다. 사람이 경험하는 모든 순간은 어떤 기회가 될 수 있습니까? 오늘을 기회로 보지 못하고 후회의 관점(후회없음: 교만과 안주 / 후회함: 좌절)에 빠져 있는 내 모습을 나누어봅시다.

 

[4-5] 히브리서 2장 14절을 읽어봅시다. 예수님은 무엇을 기회로 삼으셨습니까? 죽음을 통해 우리에게 주신 것은 무엇입니까? 언제나 내게 기회 있음을 알고, 오늘 내 삶의 형편을 기회의 관점에서 어떻게 바라보아야 할지 나누어 봅시다.

 

 

“새로 기도할 마음
(11. 26. 2023.)

역대상 17:25

 

삶이 복잡해지면 어디서부터 건드려야 될지 모를 때가 많다. 다른 진로를 알아볼까? 사업을 위해 다른 공부를 시작해야 하나? 가정을 살펴야 하나? 몸을 챙겨야 하나? 간절히 변화를 원하지만, 너무 복잡하고 할 것이 많아서 한가지 변화도 만들어 내기도 힘든 것이 우리 일상이다.

 

하나님은 변화를 위해 새로 기도할 마음을 주시는 분이다. 다윗은 하나님의 성전을 지어야 하는데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마음이 복잡했다. 선지자를 통해 다윗이 아닌 솔로몬을 통해 성전을 지을 것이라고 정리 시켜 주신다. 복잡했던 다윗의 마음이 변했다. “나의 하나님이여 주께서 종을 위하여 왕조를 세우실 것을 이미 듣게 하셨으므로 주의 종이 주 앞에서 이 기도로 간구할 마음이 생겼나이다”(역대상 17:25) 새롭게 기도할 제목을 정리해 주셨다. 그리고 그 기도한대로 실행된다.

 

복잡한 삶 속에서 하나님이 주시는 변화를 어떻게 경험할 수 있는가? 말씀을 통해 새롭게 기도할 마음을 받아야 한다.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모를 때 예배 드리고 말씀 들으라. 성도들과 교제하라. 그런다고 뭐가 되는가? 된다. 새로운 기도제목이 떠오른다. 새로 기도할 마음이 생기는 것이다. 하나님이 기도하라고 시키시는 일이, 하나님이 하실 일과 관련되어 있다. 목사도 일이 많다. 그래서 이것저것 기도하면 자꾸 하나님이 기도제목을 정리 시켜 주신다. “영광을 보게 하옵소서!”, “예배를 통한 부흥을 보게 하옵소서!” 새로 기도할 마음이 생길 때, 하나님이 이끄시는 삶의 변화가 시작된다.

 

십자가 직전 예수님 주변 상황은 혼란함 그 자체였다. 하나님이 새로 기도할 마음 주셨다. “아빠 아버지여 아버지께는 모든 것이 가능하오니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하시고”(마가복음 14:36) 이 기도가 시작된 뒤로 예수님은 멈추지 않고 십자가로 달려가셨다. 우리를 살리신 십자가 구원은, 하나님이 새로 주신 기도제목의 성취였다.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모르겠다면, 기도의 방향부터 다시 잡으라. 어떻게 기도하기를 바라시는가? 어떻게 기도가 바뀌기를 원하시는가? 새로 기도할 마음이, 곧 하나님이 내게 품으신 마음이다.

 

[1] 변화는 어렵습니다. 무엇 하나 시도해보겠다고 생각만한지 며칠째인지, 삶의 복잡함 속에 파묻힌 요즘의 일상을 나누어 봅시다.

 

[2-3] 역대상 17장 25절을 읽어봅시다. 다윗이 원래 품었던 생각은 무엇이었습니까? 하나님이 나단 선지자를 통해 새롭게 주신 마음은 무엇이었습니까? 그때 다윗의 마음에 생긴 변화는 무엇입니까?

 

[4-5] 마가복음 14장 36절을 읽어봅시다. 십자가 직전에 예수님은 어떻게 새롭게 기도하시기 시작했습니까? 그 결과는 무엇입니까? 내 삶의 변화를 위해 오늘 새롭게 사모해야 할 것은 무엇입니까? 요즘 새롭게 품게 된 기도제목이나 기도 방향의 변화가 있다면 나누어 봅시다.

 

“거두신 이도 여호와
(11. 19. 2023.)

욥기 1:21

 

추수감사절이다. 추수한 것을 감사해야 하는데, 추수한 것이 없다는 생각이 들 때가 많다. 거둔 것보다 심은 것이 많고, 벌어들인 것보다 잃은 것이 많은 듯하다. 감사하고자 해도, 감사할 수 있는 추수의 영역이 줄어만 간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주시기도 하지만(give), 거두시기도 하는 분이다(take). 욥이 모든 고난을 당한 후에 하나님을 이렇게 정의한다. “이르되 내가 모태에서 알몸으로 나왔사온즉 또한 알몸이 그리로 돌아가올지라 주신 이도 여호와시요 거두신 이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 하고”(욥기 1:21) 주신 것만이 아니라, 거두신 사건에 대해서도 하나님이 찬송 받으셔야 한다.

 

거두어 가신 것에 대하여 감사하라. 하나님이 젊음 주셔서 잠시 젊음 누렸다. 늙었다고 위축될 것이 아니라, 젊음을 거두어 가실 때 주님께 영광 돌려야 한다. 주님이 돈 주셨다가 거두신다. 권위 주셨다가 거두신다. 인기, 시간, 좋은 평판, 건강 주셨다가 거두신다. 원래 내 것이 아니었다. 잠깐 누리게 하신 것도 충분히 감사해야 한다. 그분이 어떤 계획이 있으실지 알지 못하지만, 미래를 예측하기 전에 거두시기까지 주셨던 하나님께 충분히 찬송해야 한다.

 

사람의 마지막 순간에 하나님은 어떻게 다가오시는가? 거두시는 분으로 다가오신다. 무엇을 거두시는가? 생명을 거두신다. 하나님은 생명을 내게 주셨고, 마지막에는 주셨던 생명을 거두어 가신다. 그러나 그 거두어 가시는 생명을 영생으로 바꾸신 분이 예수님이다. “예수께서 큰 소리로 불러 이르시되 아버지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 하고 이 말씀을 하신 후 숨지시니라”(누가복음 23:46) 생명을 거두시는 하나님의 손길에 내 생명 대신 예수님은 자신의 생명을 의탁하셨다.

 

그 분을 믿을 때 확신할 수 있다. 내 삶에 거두어 가시는 것은 결코 저주나 불행이 아니다. 예수님 안에서는 거두어 가시는 생명도 영생이 된다. 그렇다면 오늘 거두어 가시는 일도 감사할 수 있다. 이 일을 통해 내 삶에 더 좋은 생명 주실 것이다. 추수감사절이다. 거두어 가신 일에 전심 다해 감사하라. 이것이 신앙이다.

 

[1] 추수감사절입니다. 한해 동안 감사할 제목들이 있다면 나누어 봅시다. 그 중에, 주신 것이 아니라 거두어 가셨기에 감사가 아니라 염려와 불평, 불만족이 생기는 부분은 어디입니까?

 

[2-3] 욥기 1장 21절을 읽어봅시다. 하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나는 왜 마치 하나님이 내 것을 빼앗아 가신 것처럼 느끼는 것일까요?

 

[4-5] 누가복음 23장 46절을 읽어봅시다. 하나님은 인생의 마지막에 무엇을 거두시는 분이십니까? 나 대신 예수님의 생명을 거두셔서 주님은 우리에게 무엇을 주셨습니까? 왜 나는 오늘 거두어 가시는 일도 감사할 수 있습니까? 예수님을 믿는 믿음 안에서, 거두어 가신 일을 재해석해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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